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당시 이규호 문교부 장관에게 문공부와
협조해 TV중계를 활성화하도록 지시함은 물론 다른 부처에도 연락을 해 프로야구를 정책적으로 밀어주라고 지시했다.
전대통령은 "이왕 만든 것, 다 같이 협력합시다"라며 내무부.재무부.국방부 등에서 협력할 사항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검토해 보라고 했다.
전대통령은 이규호 장관에게 "각 부서에 연락해서 KBO가 요구하는 것은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적극적인 후원은 프로야구가 초창기에 굳건한 기반을 갖추는 데 큰 힘이 됐다. 대통령의 한마디면 온세상이 벌벌 떨던
시절이 아닌가. 그날 방문 이후 각 부서에서는 프로야구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 대통령이 정부에 지시한 내용을 정리하면 ▶문교부와 문공부는 언론기관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할 것이며▶각 구단이 흑자가 될
때까지 면세조치를 해주고▶선수들의 방위병 근무를 몇년간 분할해서 하는 방법을 연구해 보도록 하라는 등 프로야구를 정책적으로 '밀어주는'
내용이 많았다.
전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구단주들에게도 단단히 당부를 했다. 구단주들은 대통령이 당부한 사항들을 모두 메모했다. 그런데 그 당부 내용이
마치 전문적으로 프로야구를 연구한 듯 매우 세부적이고 구체적이었다. 나와 구단주들이 모두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그때 내가 메모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전력이 평준화될 수 있도록 훈련을 철저히 하라▶지방 유지들이 관심을 갖도록 지역적
특색이 있는 응원을 하라▶고교야구 팬들을 프로야구 팬으로 끌어들이도록 하라▶스타를 만들어라. 그것이 프로야구가 발전하는 길이다▶운동선수도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등이다. 지금 다시 읽어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2년 3월 27일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始球)를 했다. 이때 삼엄한 경호로 인해 빚어진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개막전 주심으로 내정됐던 당시 심판원 번호 1번 김옥경 심판원은 하루 전날 동대문구장 주변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일
내가 심판보는 경기에 전대통령이 와서 시구를 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 말이 운동장 주변 경호 상황을 미리 점검 중이던 기관원의 귀에 들어가 김옥경씨는 모처로 연행돼 이틀 동안 곤욕을 치렀고
개막전 심판은 번호 2번 김광철 심판원에게 돌아갔다. 당시는 '전두환 대통령'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기만 해도 기관원에게 붙잡혀가곤
했던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대통령이 프로야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을 두고 "국민을 탈(脫)정치화시키기 위해서 그랬다"라고
해석하는데 나는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정치적인 고려보다도 퇴근 이후 건전한 문화를 즐길 '꺼리'가 없었던 국민들에게 건전한 놀이 문화를 제공했다는 측면으로
해석하고 싶다. 당시 국민들에게는 놀거리라고 해봐야 퇴근길에 대포 한잔을 걸치거나 삼삼오오 모여 화투놀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생기고 야간경기의 조명이 밝혀지면서 건전하게 스포츠를 관람하며 목청 높여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고 본다.
이용일(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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