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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보이아 지역에서 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났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심시켰고,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선임되었으며, 1602년 교구장이 되었다. 그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 12월 28일 리옹에서 세상을 떠나, 1623년 1월 24일에 안시에 묻혔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프란치스코 주교가 목자의 사랑을 실천하여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게 하셨으니
저희도 그를 본받아 형제들을 섬기며
언제나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제1독서
<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7,4-17
그 무렵 4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6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
7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
8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의 매와 인간의 채찍으로 그를 징벌하겠다.
15 그러나 일찍이 사울에게서 내 자애를 거둔 것과는 달리,
그에게서는 내 자애를 거두지 않겠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17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공하는 사람이 반드시 가진 세 가지는?
오늘은 연중 제3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이 무엇인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은총과 진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안에 은총과 진리가 떨어지면 믿음의 씨앗이 자라나서 그 믿는 대로 우리 삶이 이루어지게 되겠죠. 열매를 맺게 되겠죠.
씨가 뿌려지는데 땅에서 똑같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씨는 같지만, 땅의 종류에 따라 열매를 맺지 못하기도 하고, 또 열매를 맺더라도 차이가 30배 60배 100배도 나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는 씨를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의 자세, 곧 의지의 문제일 것입니다. 길가는 교만을, 돌밭은 육욕을, 가시밭은 탐욕을 상징합니다. 삼구를 이기지 못한 밭에 떨어진 하느님의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국의 마윈이라고 하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이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마윈은 뭐를 해도 항상 떨어졌는데, 인생은 알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 포레스트 검프도 IQ가 70밖에 안 되는데 엄마가 “초콜릿을 먹을 때 무슨 맛이 안에 들어있을지는 안 보인다. 그러니까 뭐라도 끝까지 해봐라. 한 번 할 때는 최선을 다해라.”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성공했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마윈에게도 떨어졌고 그도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할 때 자녀들에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서 세속, 육신, 마귀를 없애서 내가 하는 말이 단 한 톨이라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먼저 길과 같은 마음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길은 사탄이고 교만입니다. 모든 인간의 선택은 행복을 기준으로 하기에 사탄은 행복의 방향만 틀어놓습니다. 아무리 말씀의 씨가 뿌려져도 자기 연민에 빠진 이들은 그 씨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부터 행복하여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되려는 마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연예인이 관객에게 행복을 주어야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다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며 당신 자신과 싸우신 것처럼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돌밭처럼 쉽게 포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철봉을 잡으면서 고운 손바닥을 바라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밭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욕에 깃든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투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크게 성공할 수 없습니다. 먼저 자기에 대한 투자를 아끼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양팔 없는 파일럿 제시카 콕스가 있죠. 이 사람은 양 팔이 없이 태어났지만, 20대 때에 이미 경비행기를 조종사가 됐습니다. 물론 자동차를 운전하고 요리하고 글씨를 쓰고 책을 읽고 수영하고 피아노를 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엄마가 뿌린 “할 수 있다.”라는 씨앗을 잘 키웠습니다.
자이온 클락이라는 허리 밑부분이 없이 태어난 사람도 카일 메이나드라는 손발이 없이 태어났지만, 엄청난 성취를 이룬 사람의 책 ‘변명은 없다’를 읽고는 크게 변했습니다. 처음엔 자기 연민에 쌓여 살았지만, 자신도 메이나드처럼 남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벌써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다음은 육체와의 싸움이 기다립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두세 배는 더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는 돌밭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물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계발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였습니다. 가시밭도 극복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워렌 버핏도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그러면 누구도 그것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모든 사람도 1. 이웃 사랑이 행복임을 알고, 2. 자기를 죽여야 함을 알며, 3. 탐욕에서 자유로워야 함을 압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기에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우리 안에서 이뤄지는 법칙이나 같습니다. 우리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듭시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 나라를 살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의사소통이 힘들어집니다. 물론 손짓과 발짓, 그림을 그리거나 몸짓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하게 표현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겠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는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잘 맞는 부부도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부부보다도 금실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니까요.”
이 부부에게 언어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사랑의 언어로는 일치했던 것입니다. 사실 맞지 않는 이유를 계속해서 찾았던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사랑의 언어는 상대와 맞는 이유만을 찾으며, 또 이 안에서 상대에게 감사를 자주 표현합니다. 단순히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랑의 언어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일치와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같은 언어를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용하셨던 아람어를 우리도 써야 할까요? 아니면 주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히브리어와 희랍어를 써야 할까요? 그런 언어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주님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 주셨던 사랑의 언어를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셔서, 당신께서 보여 주신 사랑의 언어를 우리 역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비유로 자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깊은 뜻을 쉬운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길에 떨어진 씨앗, 돌밭에 떨어진 씨앗,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있습니다. 모두 좋은 씨앗이지만, 어떤 땅에 떨어지는가가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좋은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려면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는 좋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언어를 쓰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들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과 일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과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었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니까요.”
오늘의 명언: 사랑은 파도보다 위대하고 두려움보다 강하다. 나는 팔이 두 개일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인생도 서핑과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파도 밑에 처박혀도 곧바로 일어나야 한다. 파도 너머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베서니 해밀턴)
사진설명: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첫댓글 오늘부터 레위기 읽기 시작입니다. 1-4장 읽었습니다.
오늘은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이라 ’신심생활입문’에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 적어봅니다.
비록 작은 행동이라도 하느님
마음에 들겠다는 순수한
지향을 가지고 한다면 그것은
위대하고 훌륭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