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외 1편)
박동주 진흙에 길게 뿌리 내린 미나리 우물물이 미나리꽝으로 흐른다 미나리가 물살에 휘휘거리며 핏줄을 길게 늘인다
뱀이 기어간다 물가에 소름이 돋는다 칼을 든 여자가 웃자란 미나리를 벤다 손가락으로 파고드는 칼 꽃무늬 치마에 뚝 핏방울이 떨어진다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여자 여자의 안으로 물이 고인다 아무래도 괜찮지 않아 흐르는 물은 뼈에 무늬를 새기고 눈으로 귀로 흘러나오는 물을 지나 여자는 흘러간다 미나리가 다리를 감아오른다 미끄러지면서 기어오르는 여자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문이 열리고 미나리 칼국수가 먹고 싶어 얇아지다 툭, 툭 끊어지는 한 줄, 말 한 마디 미나리가 냄비에 들어갈 때 오래 전에 고였다 흩어지는 그의 입김 여자의 손목을 휘감는다
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
햅쌀을 대야에 가득 담아요 차고 푸른 물을 넘치도록 부으면 햅쌀은 물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요 쌀눈까지 하얗게 불었을 때 당신을 향한 마음이 몸을 풀어요 상현달처럼 차오르는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속삭여 주세요 도톰한 떡살에 소를 넣어요 당신을 향한 비문은 골라내고 꽃물결 이는 구절만 버무려 소를 만들어요 당신 생각으로 먹먹해지는 마음이 색색의 반달로 차오르도록 한밤중이 되었을 때 서쪽 하늘을 골똘히 보아 주세요
반죽을 작게 떼어 양 손바닥 사이에 넣고 가을볕이 등을 쓰다듬듯 잔잔히 궁글려요 이야기를 담은 소를 가운데 넣어 가을 한나절을 빚은 색색의 상현달들 떡살에 별자리가 뜨기도 해요 비껴간 당신을 향해 밤하늘이 높이 상현달을 띄워요 이야기가 스며든 여러 빛깔의 편지지 하얀 송편에는 첫 마음을 써요 어떤 송편에는 첫 눈이 내리고 첫 발자국 첫 속삭임이 들어 있어요
〈2024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박동주 / 본명 박현숙. 1962년 경기 이천 출생. 연세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2024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