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의 의미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오늘은 “이웃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평범가귀(平凡可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진리가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음식이 그렇습니다. 늘 먹기 때문에 평범해 보이지만 생사가 달릴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독일의 기독교 영성가 카알라너는 “식사는 신비로운 것”이라는 제목의 묵상글을 남겼습니다. 죽은 음식이지만 그것이 살이 되고 피가 되고 살아 있는 인간이 되고, 그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들 상호간에는 기쁨과 사랑과 신뢰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이웃 사랑도 그렇습니다. 단순한 이웃 사랑이 아닙니다.
이웃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 이웃 사랑은 곧 하나님 사랑입니다.
요일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마25:45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잠19:17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받아 주시리라” 했습니다.
마10:42에도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히6:10에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과 관계가 틀어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틀어집니다. 기도가 나오지 않고 영이 막힙니다.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랑하고 싶은데 안 된다면 이웃 사랑의 부족입니다. 먼저 이웃을 위해서 관심 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이웃 사랑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문제는 사랑을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계2:4~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이웃 사랑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엡5:28에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은 가족입니다. 가족에게 잘하는 것이 나에게 잘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가까운 이웃이 우리 교인들이고 한 골목에 사는 이웃집입니다. 내가 위급할 때 나를 가장 먼저 도와줄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잠27:10에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이웃 사랑이 자기 사랑이란 말이 또 어디 있나요? 마7:12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기독교의 황금율이라고 합니다. 황금 같은 율법입니다. 남을 대접했더니 내가 대접을 받습니다.
시109:17-18을 보면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했습니다. 즉 이웃을 축복하는 것이 내가 복 받는 길이요, 이웃을 저주하는 것이 내가 저주 받는 것입니다.
3. 이웃 사랑은 자기완성의 길입니다.
롬13:8-10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벧후1:4-7에 신의 성품에서 가장 마지막은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신의 성품이 되는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요일4:12에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온전하게 이루어지느니라” 했고, 골3:14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했습니다.
혹 곁에 좋지 않은 이웃이 있을지라도 신앙 안에서 생각하면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옆구리를 찌르는 원주민들과 이방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웃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릅니다. 조금만 신앙생활에 방심하면 이들이 강성하여 대적합니다.
이것이 근신하여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라고 붙여주신 사탄의 사자들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알아야 합니다. 채찍을 내려서라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이웃도 복으로 생각하고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영성가 밥존스의 천국 체험 간증에서 주님이 물으시더랍니다. “너는 이 땅에서 얼마나 사랑하는 법을 배웠느냐?” 율법에 억만 가지가 기록됐다 해도 결국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기 원하시는 것은 사랑이란 말입니다. 사랑,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목표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잘 배웠다면 그는 주님 앞에 칭찬받는 만점짜리 성도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이웃 사랑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은 자기완성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되 원수까지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자기완성의 온전한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