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은 지금 연일 낮에는 가마솥, 밤에는 찜통.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에서
‘조고각하(照顧脚下:네 발밑을 보라)’란 타이틀로
여름수련회가 시작된다기에
아침 일찍 카메라를 챙겨 나서면서
항상 다니는 코스가 지루해
‘네비孃’의 안내와 무관하게 창원시내를 벗어나
북면 본포다리를 지나자마자 바로 좌회전하여
낙동강을 옆에 끼고 계속 창녕 유어면까지 가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적교다리를 건너면
바로 의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지점에 이른다.
적교 다리 / 하재청
의령과 합천으로 갈라지는 길목
새 다리가 생기면서 버려진 다리,
낙동강 적교 다리
붉게 속 탄 근골 허물어져 내리는 교각에
피 흘린 세월 까맣게 덮어쓰고
뿌연 비 맞으며 서 있다
큰물 지던 해 멀리 안동에서 떠내려온
목재 건져 지었다는 도가집,
네 칸 기와 지붕에는
명아주 솜털 바람에 비스듬히 쓰러지고
방둑 너머 오일장 넓은 마당엔
흘러내린 기왓장 파편
옹기종기 모여 텅 빈 침묵으로
흐르는 강물에 떨어지는 빗줄기 바라본다
튼실한 새 다리 건설 공사장에
모여들었던 인부들 웃음소리
허물어진 주막 거미줄에 걸려 있다
{시향 2004년 봄호}
여기서도 낙동강을 진행방향 오른쪽에 두고
북쪽으로 계속 달리다보니 합천 쌍책면.
그리고 ‘합천박물관(전화 055-930-375300’이 나온다.
이곳 박물관에 근무하는 조원영 선생(학예사)은
경남불교대학 개교 때부터 ‘불교미술사’를
강의하였고, 강의내용이 좋아 학과편성 외에
따로 ‘한국불교미술사 슬라이드 강좌’를 개설해
많은 시민들에게 우리 불교미술의 아름다움과
그 깊은 의미를 전한 인연이 깊은 강사 중의 한 분인데,
“꼭 한번 구경오라”는 초청을,
워낙 외진 곳이라 방문하지 못했었는데,
오늘 ‘네비’ 말을 한사코 어긴 덕택에 들리게 되었다.
<사진>박물관 전경
합천박물관은 후기가야를 대표하는 대가야연맹체의
일원이었던 다라국(多羅國)의 의 존재를 확인한
옥전고분군의 유물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대형 고분군이 밀집된 곳에서 발굴된
환두대도를 박물관 상징물로 삼고 있고
‘황금 칼의 나라 다라국’이란 표어를 보듯
그 칼의 손잡이 부분을 부각하고 있다.
서기 400년 경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왜놈들과 결탁한 가야세력을 응징하고자
대규모 기마부대를 이끌고 남부지방을 정벌하는데,
이것이 광개토대왕 비문에 보이는 남정(南征) 기사이다.
이 여파로 오늘날의 경남지방에 근거한
가야諸國(여러나라)은 이합집산으로 요동치게 되는데
그 중의 한 세력이 이곳으로 옮겨와 터를 잡았는데
바로 다라국이다. 다라국은 이후 제철과 교역 등으로
착실히 성장하여 [일본서기]에 보이듯
541년과 544년에는 가야의 재건을 도모하는
‘임나(가야)부흥회의’에 참석하는 등
당당한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후기가야 세력의
강력한 일원이 되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http://museum.hc.go.kr
해인사 수련회 입재식 시간이 가까워져서
자세한 관람은 뒤로 미루고 바퀴는 굴러야겠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오늘 엉뚱한 코스선택이
뜻밖의 소득과 함께, 내가 인생을 쭈욱 살면서
범생이가 아니라 때로는 일탈을 자행하는 유형임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변명이기도 하다.
다라국이 있었던 이곳은 모형과 같이 낙동강과 연결된 황강을 끼고 있다.
발굴조사를 토대로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한 모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