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유(陸游)-시아(示兒)(아들에게 부탁함)
死去元知萬事空(사거원지만사공) 죽으면 만사가 헛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但悲不見九州同(단비불견구주동) 나라의 통일을 보지 못하는 것이 슬플 뿐이다
王師北征中原日(왕사북정중원일) 천자의 군대 북벌하여 중원을 평정하는 날
家祭無忘告乃翁(가제무망고내옹) 제사 지낼 때 나에게 알리는 것 잊지 말아라
*육유[陸游, 1125 ~ 1210,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 산음(山陰:浙江省) 출생]는 철저한 항전주의자로 일관했던 중국 남송(南宋)의 애국시인으로 약 50년 동안에 1만 수(首)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시사 상(詩史上)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고, 당시 남송 고종은 재상 진회(秦檜)와 함께 금과 화친을 목적으로 하여 명장 악비(岳飛)까지 독살하였는데, 육유는 악비의 죽음을 한탄하며 애국충정에 찬 시(詩)를 남겼고, 금나라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다 여러차례 배척받았으며, 한편 육유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는데, 사촌동생 당완(唐琬)과 혼인하여 금슬이 너무 좋아 아들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강요로 헤어지고, 그후 왕씨와 재혼하고 당완도 조사정과 재혼하였는데, 어느 봄날 심원에 놀러간 전처 당완과 우연히 재회한 육유는 이별의 아픔과 회한을 읊은 채두봉釵頭鳳을 지어 심원 담장에 적었고, 그 시를 본 당완 역시 집으로 돌아와 이에 화답하는 시를 쓰고 슬픔을 가누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육유는 그후 해마다 봄이 오면 심원을 찾아 당완을 추모하면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그녀에 대한 추모의 정을 읊었다 합니다.
*위 시는 문학비평가이신 ‘김희보’님의 편저 ‘중국의 명시’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작자 85세 때인 가정 2년(1209년)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중원 회복이 꿈이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이 시를 썼는데, 그때 장남은 62세, 막내는 33세였다. 그러나, 육유의 6남매 중 누구 하나 아버지의 유언을 이루어드리지 못했다. 숙적인 금나라와 더불어 송나라 역시 몽고인 원나라에게 멸망되었기 때문이다.
*형식 : 칠언절구(七言絶句)
*九州(구주) : 중국의 별칭, 중국(中國) 고대(古代)에 전국(全國)을 나눈 9개의 주
*王師(왕사) : 천자의 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