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라이벌 대결 얘기를 하나 더 하겠다. 영호남 대결은 숱한 명승부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프로야구 전체를 뒤흔드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맞았던 최대의 위기도 삼성과 해태의
대구경기로 인해 빚어졌다.
1986년 10월 22일 대구구장.해태-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끝난 직후였다.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에 놀란 나는 허겁지겁 운동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흥분한 대구 열성 팬들이 야구장 밖에서 웅성거리는 가운데 그중 몇명이 근처에
세워져 있던 해태 선수단의 버스(전남 5가 9405)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불이 번졌고 버스 전체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부 관중은 버스 주변에 세워둔 시민들의 승용차에도 불을 질렀다. 밤 11시쯤
시위진압 장비를 동원한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 군중을 해산시켰고 그제서야 사태는 간신히 수습됐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이튿날 경기에 대한 대책 수립에 들어갔다.나는 기자들의 반응부터 살폈다.
"이총장, 더 이상 대구에서 경기를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습니다." 기자들 모두가 대구경기 강행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4차전은 서울로 가서 하자고 했다.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나는 우선 KBO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박현식 심판위원장, 안의현 총무부장, 이기역 운영부장, 김창웅
홍보실장이 모였다. "가뜩이나 지역감정에 예민한 두 팀입니다. 서울로 갑시다." 김창웅 실장이 위험을 감수하지
말고 서울로 가자고 했다. "버스에 불까지 질렀으니 내일은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기운영도
힘들어집니다" 박현식 심판장도 거들었다.
"여러분 뜻을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원칙을 쉽게 뒤집어서는 안됩니다.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나는 반대였다. 내일 경기를 중지할 경우 앞으로 몇년간은 해태와 삼성의 경기는 대구에서 거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을 설득했다.
"예정된 경기를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하거나 장소를 바꾼다면 앞으로 나쁜 전례로 남아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안됩니다. 또
해태-삼성경기를 특별취급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영호남의 감정대립은 더 커질 겁니다. 밀어붙입시다."
"그럼, 경찰의 지원을 요청하죠." 안의현 부장이 먼저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집요한 설득이 이어지자 참석자들도
모두 동의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서종철 총재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서총재도 경기 강행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시리즈 4차전은 그대로 거행됩니다. 대구 시민들께서도 경기의 원만한 진행에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경기장으로 나가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찰은 관중의 소지품을 철저히 검색했고, 사복 경찰관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관중석 곳곳에 배치됐다.
저녁 10시쯤 무사히 4차전이 끝났다.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출범한 프로야구가 지역감정 때문에 존립에 위협을 받을 수 있었던 최대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용일(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