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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灣에 가면 일본을 닮은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 16,17세기 大航海시대에 아시아는 포루투칼, 영국, 스페인, 네델란드의 각축장이었다. 가장 먼저 진출한 포루투칼은 마카오를,스페인은 필리핀 마닐라를,영국과 네델란드는 인도의 자카르타를 거점으로 향료 무역을 전개 했는데...네델란드가 포루투칼을 점점 밀어냈고, 끝내는 일본까지 진출한 포루투칼을 밀어내고 나가사키를 점령하므로써, 대만을 중간 거점으로 이용하게 된것이다. 37년 이 지나서야 식민지 대만을 떠난 네델란드를 이어 , 1895년 청.일 전쟁의 패배로 '시모노세키'조약을 시점으로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패전 할때까지 무려 50년을 지배하게 되었으니.... 대만의 외세 지배역사는 300년을 훌쩍 넘는다. 이런 외세의 지배속에서 1948년도에는 대륙의 漢族까지 밀려오게되는데, 1949년 연패에 몰리던 국민당이 ' 진먼다오(金文島 ; 대만에 딸린 섬)에 상륙한 홍군 1만명과의 전투에서 마져 패배했더라면, 오늘의 대만은 아예 없는것이다. 대만의 名酒 '진먼 고량주'에는 이때의 역사가 담겨 있는것이다. 일본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대만에서의 일본을 닮은 모습중 가장 대표적인것이 패밀리마트( 일본브랜드 편의점)인데, 이 점포가 많기도 하지만, 유리벽에 붙은 가격표의 글씨체와 표기방식이 일본과 똑같다. 거리의상점, 백화점의 진열 방식, 세련된 포장등 모두 일본을 방불케 한다.호텔, 레스토랑, 쇼핑가도 마찬가지다. 오랬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친밀감 때문이다. 대만에 가면 박물관을 꼭 들리게 된다. 우리 친구들도 박물관에 대한 역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장제스> 총통이 대륙을 탈출한것은 1949년 부인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대만에 도착한다. 한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까지 누렸던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이었으나, 1971년 그 지위가 중국에 밀려 상실되었고, 그후 4년뒤에 장 총통은 사망했으며, 그는 國父로 숭앙되었고, 그래서 타이베이 시내 여의도공원만한 거대 부지에 70m에 이르는 중정기념관이 화교와 국민의 기부금으로 지어질 수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북쪽으로 ㅜ15km 에 수영복을 입고 노천 온천욕을 즐기는 양밍산(陽明山)도 유명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도 장총통의 유산이라 하겠다. 장총통이 늘 존경해 온 명나라 학자 <왕양명>의 이름을 따서 개명한 온천장이다. 1992년에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자 대만이 우리와 수교를 단절하지 않았던가? 바로 그해에 대만의 랜드마크인 101층 빌딩을 신축하면서, 대만의 건재함을 온 세계에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이건축물은 대만의 13개 은행에서 각출하여 지었다. 관광객이 몰리는 낮시간을 피하여 야경을 즐기면 좋은 시간이 될것이다. 고궁박물관의 수장품도 장제스의 유산이다. 1948년 국민당이 대세가 기울자 <베이징 大撤退>를 논의하게되는데, 이는 중요 문물의 대만 이전을 뜻하는 것이었으며 <유물의 보존>이라는 의미 보다 <청나라 법통이 국민당으로 이어진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 박물관의 유물을 바라보며 이 생각을 하였던 친구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해군 함정과 상선으로 실어 날랐다. 송, 원 , 명 , 청 네 왕조의 도자기 서화 책자등 75만건. 하지만 이 유물은 <난징>에 쌓아 두었던 유물의 10분의1 . 나머지는 반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만의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중요한것은 다 가져왔다" 이런 대만의 역사를 알고 관광을 다녀오면, 먹거리,문화, 외향적인 분위기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것이며, 101층 빌딩을 오르면서도 눈으로만 보는것이 아니라 대만인의 숨소리까지 듣게 되는것이다. 숲을 보고, 산도 보는 관광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고 온다는 말이 실감 나는겨? 내년 해외여행은 어디로 갈까? |
첫댓글 연구해보자
멋진곳으로
멋진곳이라......my hurt will go on.
참으로 좋은생각이셍?
뮁 그리 조타는겐지 .ㅎㅎㅎ
댁시가조타면나도조타. ㅋㅋㅋ
난 무조건 조타 조타
이유없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