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2. 10. 토요일.
흐리다.
오늘 아침에 거실에 큰 상을 놓은 뒤에 설차례 음식물을 올려놨다.
떡국사발은 일곱 개.
대추 밤 곶감 배 사과 머루 등을 진설하고
소고기 반찬, 생선반찬도 올려놓았다.
술 대신에 노란 빛깔의 쥬스로 잔 따라서 올렸다.
축문도 없고, 촛불도 켜지 않고, 병풍조차도 설치하지 않았다.
나는 제례복장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서 아내, 작은아들, 나 셋이서 절을 올렸다.
'차례는 제사와 다르다'라며 간단하게 절을 올렸다.
차례는 4대봉사를 해야 하는데도 나는 2대봉사, 3대봉사, 4대봉사 등으로 제각각으로 지낸다.
3대 종조부모, 4대 고조부모는 오래 전에 시향으로 돌렸기에 이들에 대한 제사는 별도로 지내지 않는다.
대신에 설, 추석 차례 때에는 떡국 한 그릇, 밥 한 그릇만 더 올리면 된다.
앞으로는 제사도 합사(合祀)해야겠다.
* 합사(合祀) : 둘 이상의 혼령을 한곳에 모아 제사지냄.
예컨대 부모 제사 시에 어느 한 분의 제사날을 생략하고, 조부모 제사도 어느 한 분의 제삿날을 생략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남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부모'라고 한다. 나한테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먼저이다. 따라서 '부모(父母)' 대신에 '모부(母父
'라고 부른다.
나를 낳고, 젖 물려서 키운 어머니의 공덕이 훨씬 크다. 나는 쌍둥이로 태어났기에 키 작은 어머니는 남보다 배나 더 어렵게 간난이 쌍둥이 형제를 키웠을 터.
나한테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먼저이며, 한자로는 '모부(母父)'이다.
오늘부터 나는 나이가 4개나 된다.
음력설을 쇠었으니 음력나이는 77살(일흔일곱살).
음력으로는 섣달 스무사흘생이니 '세는 나이'는 76살
양력으로는 1949년 1월 하순에 태어났으니 양력나이는 75살.
호적신고가 몇 개월 뒤로 늦어져서 6월 중순이니 '만나이'는 아직껏 74살이다.
.... 기타 이하 생략.
올해도 나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만 머문다.
충남 보령 대천시내에 사시는 큰당숙께 설문안 전화를 드리니 지금 산에 오르신다고 대답하신다.
나는 종가종손인데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는 그냥 서울 아파트 안에서만 머문다.
내 큰당숙은 오늘서부터 집나이 여든일곱 살이 되는 노인이다. 그런데도 조상에 대해서 세배 드리려고 고향 화망마을에 있는 선산에 오르시다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내가 서해안 산골에 있는 내 시골집으로 내려갔다면 당숙네의 자손들, 사촌네들과 함께 어울려서 조상 산소에 올랐을 게다.
그런데도 나는 그냥 서울에서만 머물렀다.
점심경에서야 큰딸(큰사위는 지금 외국에 나가있음), 큰아들이 왔다. 큰아들은 일이 있다면서 처가댁인 대구에 내려가지 않고는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에 있었다고?! 그럼 가까운 곳에 사는 아비 집으로 와서 설 차례를 함께 지낼 일이지... 점심밥 먹으려고 아비의 집에 들렀다니.....
다 축소하고, 심지어는 없앴으면 싶다.
차례, 제사, 장례문화 등은 점차로 간소화하고, 축소화하고, 더러는 아예 없앴으면 싶다.
해마다 치르는 설, 추석, 한식, 시향, 4대봉사(제사) 등은 더욱 축소했으면 싶다.
2024. 2. 10. 토요일.
점심밥 먹자.
나중에...
첫댓글 최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집안 분위기를
잘 표현해 주셨어
유.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세요.
기준에 따라서
연세 계산이 달라
지시네요.
연세 계산이 달라
진다고 본질이 변
하는 것이 아니니
편안한 하루가 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출생신고를 제대로 했더라면 저는 학교에 1년 일찍 갔겠지요.
아쉽게도 신고가 늦었기에 집나이 아홉살에서야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요.
학교 배움이 1년 더 앞질렀다면 제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퇴직한 지도 오래되는 지금은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가 모두가 똑같군요.
그게 그것이니까요.
사람이 죽으면 장사, 장례문화, 제사, 차례, 시향 등을 대폭 축소했으면 합니다.
다 허례허식.... 음식장사꾼, 장례식장 관계자 등이나 돈 벌뿐...
자꾸만 예전의 제례문화가 허위라는 인식이 짙어지는군요.
정말로 영혼이 있다면 내가 이꼬라지로 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