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부처’라는 뜻의 마불(麻佛)을 호로 쓰는 공예가 이종국(52)씨
충청북도에 삶을 담고 사는 나 인지라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직접 만나보게 된건
청주 내덕동 안덕벌 입구에 있는 옛 전매청 자리가 청주 예술 문화쎈터로 지정이 되고
그 곳에서 열리는 공예전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해서
일부러 찾아가 만나볼수 있었다.
우선 그의 특이한 호 만큼이나 이종국님의 모습도 특이하다.
긴 수염과 긴 머리.. 두건을 둘러 아무렇게나 느러뜨린 머리모양은 예술인 보다 도인에 가깝다.
천연 염색한 생활한복을 입고 일하다 그대로 나온 모습으로 전시장을 찾은 여러 관람객들과 사진도 찍어주고
작품 설명도 해 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뉘에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자연인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수 있엇다
이종국 한지 공예 장인은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벌판의 밭'이란 뜻으로 불리는
벌랏마을에 산다고 한다....
휴대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이 오지마을에서 한지공작소 '마불겔러리'를 세우고 그 안에
자신이 심고 캐고 제조한 닥종이에
여러가지 기법으로 만든 한지 공예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께 한지의 체험도 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오지였던 벌랏마을을 이제는 한지 체험 마을'이라는
테마마을 공동체 사업장으로 만들어 전국 테마 마을의 귀감이 되고 있다
휴대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이 오지마을에서 한지공작소 '마불겔러리'를 세우고 그 안에
자신이 심고 캐고 제조한 닥종이에
여러가지 기법으로 만든 한지 공예품을 전시하기도 하고
찾아오는 사람들께 한지의 체험도 할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오지였던 벌랏마을을 이제는 한지 체험 마을'이라는
테마마을 공동체 사업장으로 만들어 전국 테마 마을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종국 선생님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청주의 서원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고 하신다.
하지만 도시에서 셋방살이하며 못 하나 박기도 어렵고 밤늦게 작업하기도 눈치 보였던 설움이 쌓여 그림을 접었다고 한다.
어렵사리 운영하던 입시미술학원을 4년 만에 문 닫고 1998년 36살의 나이에 벌랏마을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벌랏 마을로 들어오게된 사연 또한 회화처럼 아리송 하다.
30대 중반.
힘든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가방 하나 들고 고향 괴산으로 내려가던 중 우연히 들른 청주역에서 그는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잡아타고 ‘이 지역에서 가장 오지로 가자’고 했더니 그 택시기사가 자신의 고향인 벌랏마을로 데려다 주었어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벌랏마을의 폐가에서 약초를 캐먹으며 살았단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벌랏마을에서 아내 메루(이경옥 씨의 별명으로 인도어로 ‘사랑의 여신’이라는 뜻이다)를 만난 것도 그곳에서였단다.
그녀는 인도와 네팔 등지를 돌며 요가와 명상에 빠져 살다가
역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정착할 마을을 찾고 있던 중 우연히 벌랏마을을 알게 됐단다
.그녀의 지인이 문의 벌랏 마을에 도인처럼 혼자 사는 젊은 총각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귀띰한 것이란다.
그녀가 벌랏마을을 찾았을때
벌랏마을 산 중턱의 허름한 한옥집앞에 ‘화가네 집’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긴수염과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젊은’ 총각이 그녀를 맞이했다.
벌랏마을 젊은 총각은 객지에서 온 아리따운 여인에게 온 정성을 다했다.
봄 나무위에서 따 말린 가죽나물에 보리딩겨 고추장을 넣어 노릇노릇 부침개도 부쳐주고,
들꽃 한 송이 꺾어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기도 하고 마을 곳곳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가죽나물 부침개가 어찌나 맛있던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죽죽 찢어서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토록 예쁘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녀가 반한 건 마불( 이종국의 호)의 음식 솜씨만은 아니었다고한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자연에 대해 경험으로 터득한 해박한 자연지식으로
들판에 핀 꽃에 대해, 흙위의 지천으로 널린 봄나물에 대해,
그리고 생과 사에 대해 홀로 겪고 생각으로 얻은 아름다운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지게 된 두사람의 인연은 나이 마흔셋에 늦둥이 아들도 얻었다한다.
그는 한동안 벌랏마을의 폐가에서 약초를 캐먹으며 살았단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벌랏마을에서 아내 메루(이경옥 씨의 별명으로 인도어로 ‘사랑의 여신’이라는 뜻이다)를 만난 것도 그곳에서였단다.
그녀는 인도와 네팔 등지를 돌며 요가와 명상에 빠져 살다가
역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정착할 마을을 찾고 있던 중 우연히 벌랏마을을 알게 됐단다
.그녀의 지인이 문의 벌랏 마을에 도인처럼 혼자 사는 젊은 총각이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귀띰한 것이란다.
그녀가 벌랏마을을 찾았을때
벌랏마을 산 중턱의 허름한 한옥집앞에 ‘화가네 집’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긴수염과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젊은’ 총각이 그녀를 맞이했다.
벌랏마을 젊은 총각은 객지에서 온 아리따운 여인에게 온 정성을 다했다.
봄 나무위에서 따 말린 가죽나물에 보리딩겨 고추장을 넣어 노릇노릇 부침개도 부쳐주고,
들꽃 한 송이 꺾어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기도 하고 마을 곳곳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가죽나물 부침개가 어찌나 맛있던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죽죽 찢어서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나요.
그토록 예쁘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녀가 반한 건 마불( 이종국의 호)의 음식 솜씨만은 아니었다고한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자연에 대해 경험으로 터득한 해박한 자연지식으로
들판에 핀 꽃에 대해, 흙위의 지천으로 널린 봄나물에 대해,
그리고 생과 사에 대해 홀로 겪고 생각으로 얻은 아름다운 철학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지게 된 두사람의 인연은 나이 마흔셋에 늦둥이 아들도 얻었다한다.
이종국 그는 모든 재료를 자연에서 얻어 쓴다고 한다.
물감도 종이도 자연에서 체취하여 자연그대로 만들어 쓴다고 하니
자연을 제조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물감도 종이도 자연에서 체취하여 자연그대로 만들어 쓴다고 하니
자연을 제조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고은 선생의 네 번째 시집<문의 마을에 가서>에 실린 표제 시다. 동료 시인 신동문 씨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장례식을 주관한 고은선생이 난생처음 가본 충북 청원군의 오지 마을에서 문득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쓴 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의 文義는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경건하고도 경이로운 장소다
잠시 고은 선생의 시를 여기 옮겨본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2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1974)
나도 어느 겨울.. 눈 내리는 날을 택해 이곳 문의 마을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읽은 시다.
처음 대한 그이지만 다정다감한 모습때문인지
오래된 인연인듯 거부감 없이 사진도 몇장 함께 찍으며
그의 온 전신에서 풍기는 자연스러운 한국인의 멋을 내 곁에 세워 담아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의 文義는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경건하고도 경이로운 장소다
잠시 고은 선생의 시를 여기 옮겨본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2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 1974)
나도 어느 겨울.. 눈 내리는 날을 택해 이곳 문의 마을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읽은 시다.
처음 대한 그이지만 다정다감한 모습때문인지
오래된 인연인듯 거부감 없이 사진도 몇장 함께 찍으며
그의 온 전신에서 풍기는 자연스러운 한국인의 멋을 내 곁에 세워 담아왔다
공예 전시장을 찾은 아이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를만큼 걷 늙어보이는 40대 후반의 이종국 선생은 그 부름이 익숙한듯 개의치 않는다
소박한 천연 염색을 입성으로 걸친 그의 곁에서서 사진을 찍으며
내 마음에 고운 천연염색 물감으로 물들어 가는 그의 자연사랑을 함께 입어본다
소박한 천연 염색을 입성으로 걸친 그의 곁에서서 사진을 찍으며
내 마음에 고운 천연염색 물감으로 물들어 가는 그의 자연사랑을 함께 입어본다
밭에서 키운 닥나무를 잘라 솥에서 푹 삶아낸뒤에 겉껍질을 벗기고, 건조시키고 다시물에 불려 잿물넣어 삶고다시 불려 잿물을 빼내고 두들기고 다시 풀고 ... 다시 두들기고 ..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물과 불과 바람과 햇빛, 자연이 온통 동원되어 거들어 주어야 하는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물과 불과 바람과 햇빛, 자연이 온통 동원되어 거들어 주어야 하는
그야말로 자연 웰빙의 걸작품이 이 닥종이가 아닐까한다.
*몇일후쯤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내가 직접 담근 밑반찬 몇가지 싸 가지고 문의에 있는 소전리 벌랏마을로 가서
마블겔러리에 전시된 이종국님을 만나고.. 그의 귀한 작품들을 내 눈에 담아오고 싶다.
첫댓글 우선 봉자르 쥬의 오랜만에 나들이 글이 반가웠고, 둘째 문의라는 낯익은 지명이 반가웠고, 셋째 하남석 가수의 정겨운 목소리가 반가웠다.
자연인 "마불"이종국 작가의 걸어온길... "메루"이경옥씨와의 인연, 죽음이 삶을 껴안은채...시~~봉자르 쥬의 반찬솜씨...모두가 궁금하다.
내가 문의면에 잠시 머물렀던 시절에는 아주 오지 마을이였는데 이제 알게되니 더욱 궁금하고 마불 자연인의 진 모습을 보고싶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안녕 하신 글월 보듬고... 너무 반갑습니다.
문의면은 지금 문화재 단지가 된지 오래지요.
거기 여러가지 문화인들이 어깨 기대고 사는듯 싶습니다.
원래 예술인들이 고집이 남달라 함께 어우러 지기가 여간 쉽지 않은데 자연에 들면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여 모두 한소큼씩 개성 줄여가며 색색의 물감 자기색 조금씩 서로에게 양보하며 풀려
산수화 속에 어울리는 색으로 함께 그려지듯 하나 봅니다.
요즈음 외손주 키우는 일에 주중엔 머물르다가도 어디 갑니까. 역마살 성격이라
토,일요일엔 휭~~~ 돌뱅이 하다 온답니다요.ㅎ
귀한 글 접하며 선배님의 멋진 모습 떠 올립니다.
늘~ 그리 건강으로 이어가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처럼 주여사향기 나는 자료 대하니 무척이나 반갑고 기뻐 단숨에 읽고 봅니다.
문의면이라는 글자에 눈이 번쩍 !
나의 본적지 우리아버지 고향땅이랍니다 .그곳에 가면 숫자적으로 희소가치인 회덕 황씨의 종가랑 사당이 있는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음 갈 때 나도 델꼬 가요 가 보고 싶어요 .
요즘 왜 이러는지 신기하네요 며칠전 여행방 원정에서 뿌리공원 갔을때 회덕 황씨 기념비를 찾다가 시간부족 못찾고 그냥 돌아와 아쉬웠는데....
문으면 소리들으니 그냥 마음 설레입니다
ㅎ~ 선배님.. 희덕황씨... 전 처음듣는 본성 입니다.
시간 되면 함께 가시지요.
그곳에 가면 저분 아니어도 솟대.. 등등 장인들이 많아 눈요기와 입요기는 실컷 하고 올것같네요.
요즈음 동행 '공간에 자주 들려지지 않습니다.
육아일기 쓰는게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봉쟈르쥬 꼭 같이 가요 입요기 눈요기 실컷 할 수 있다니 마음이 벌써 콩밭에 가 있습니다요.
참으로 오랫만에 반가운 소식 접합니다.
눈이 아파 간단히 인사글 남김니다.
오로라 선배님...
눈 건강이 안좋아 지셨습니까??
다른데 말고 눈은 편히 쉬시고 충분한 수면 취하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모쪼록 쉼을 자주 하셔서 건강하신 모습으로 내내 고운 모습 뵙기를 청합니다.
오랜만에 오심 반갑습니다, 예술에는 전혀 문외한
이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주 멋지게 사시는 분 같아요,
자세한 설명에도 몇번을 읽어봐야 될것 같습니다,
그 반찬 솜씨가 궁굼해 지는데요
왕송님... ㅎㅎ
우리나라 사람 쳐놓고 예술에 문외한 일수가 없다고 하더이다.
길가다 쿵덕쿵 소리에 어깨 장단이라도 맞추는 심성들로 애초에 태인다 했습니다.
저런 글에 마음 멈추어 읽어 주는 그 심성이 벌써 예술혼 아닐지요.ㅎㅎ
반찬 솜씨는 어이한데요.
아무렴 언제 수원 우리 집에서 벙개한번 해얄랑가요???ㅎㅎ
댓글 읽으며 웃습니다.
왕송님도 웃는 날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멋스러운님 보러 가시는길
나도 낑가서
구경한번해보고싶다~^^
여기서 보니 참말로 방갑소.ㅎㅎ
엇!!!!
이름이 낮 설어 회원정보를 보니..
자네도 여기 회원이었구나!!!
반갑네..
밀양 병원일로 엄청 바쁠텐데.... 자네 이름이 김소연'.. 기억 하겠네!!
저곳 가기전에 언제 수원에 먼저 올라와 그리운 이들끼리 우리 함께 하세나!!
수원 올라오면 내 아주 멋스런 곳에서 밥 한끼 대접 함세....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