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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주를 낳게 한 울산광역시 두왕동의 대마도주등
울산광역시 남구에 두왕동(斗旺洞)이라는 법정동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두왕동에 아홉 명의 아들을 둔 효자 김 씨가 살고 있었다. 김 씨는 아버지를 모실 묫자리를 찾았지만 마땅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꿈에 백발노인이 김 씨에게 감남무진 객줏집의 머슴이 되라고 일러주었다. 객줏집 머슴으로 살고 있는 어느 날, 상주와 지관이 인근 산에 삶은 계란을 묻는 것을 보고, 김 씨는 그 자리에 생계란을 묻었다. 다음날 김 씨가 묻은 생계란 가운데 한 개에서 닭이 부화하였다. 그것을 본 김 씨는 그 자리에 아버지를 모셨으며, 일본으로 건너간 후손이 대마도주가 되었다.
남구 두왕동에 소재하는 대마도주등
울산광역시 남구에 두왕동(斗旺洞)이라는 법정동이 있다. 두왕동은 대마도주(對馬島主) 김모(金某)의 선조 무덤이 위치해 있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현재 두왕동이라 부르는 지명은 원래 도왕동(島王洞, 道王洞)이었다. 임금 ‘왕(王)’을 왕성할 왕(旺)으로, 섬 도(島) 또는 길 도(道)를 말 두(斗)로 바꿔서 현재와 같은 두왕동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두왕동에는 ‘울산테크노일반산업단지’가 있으며, 그 옆으로는 북에서 남으로 두왕천이 흐른다.
아홉 명의 아들을 둔 김씨
고려시대 때, 울산시 두왕동 당랑끝[九男田峙]에 아홉 명의 아들을 둔 김 씨가 살고 있었다. ‘당랑끝’은 “김 씨가 아홉 명의 아들과 함께 살았다.”라고 해서 ‘구남받티’라고도 부른다. 하루는 김 씨가 부친상을 당했다. 평상시에도 효심이 깊었던 김 씨는 가묘(假墓)를 만들어 놓고, 아버지를 모실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마땅한 묫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감나무진 객줏집 머슴이 된 김씨
그러던 중 하루는 김 씨의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좋은 묫자리를 얻으려면 감나무진에 있는 객줏집에 가서 머슴이 되어라.”라고 하였다. 꿈에서 깬 김 씨는 “별 이상한 꿈이 다 있네.”라고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꿈이 참 특별하네.”라며, 감나무진(울산시 두왕동 외황강에 있던 아홉 개의 나루터 가운데 한 곳)에 있는 객줏집을 찾아가 머슴이 되었다. 감나무진 객줏집의 머슴이 된 후 며칠이 지나서, 한 상주와 지관이 객줏집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객줏집에 머무르면서 인근 지역의 산들을 살펴보고 다녔다. 며칠이 지난 후 지관이 머슴살이하던 김 씨를 부르더니, “계란 세 개를 구해 주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에 김 씨는 계란을 뜨거운 물에 삶았다가 다시 찬물에 식혀 지관에게 가져다주었다.
삶은 달걀을 묻은 상주와 지관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지난번 꿈에 나타났던 백발노인이 다시 나타나, “빨리 일어나라.”라며 재촉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김 씨는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마침 상주와 지관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김 씨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상주와 지관은 근처의 산으로 올라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서는 땅을 파고는 김 씨가 준 계란을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객줏집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해가 뜰 무렵, 상주와 지관은 전날 갔던 곳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는 땅을 파고 계란을 꺼내 들고 의아해하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대마도주가 된 김씨의 후손
김 씨는 그날 저녁 생계란 두 개를 상주와 지관이 땅을 파고 묻었던 자리에 묻었다. 그리고는 다음 날 해가 뜰 무렵 올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계란 한 개가 부화해, 닭이 나래를 치며 크게 우는 것이었다. 김 씨는 그 자리가 명당자리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를 그 자리에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봉분은 하지 않았다. 그 후 세월이 지나서, 김 씨의 후손이 대마도로 건너가 대마도주(對馬島主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김 씨가 아버지 묘를 쓴 곳을 ‘대마도주등’이르고 부르고, 마을 이름도 도왕동이라 했다고 한다. 곧, 「대마도주를 낳게 한 울산광역시 두왕동의 대마도주등」은 대마도주등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풍수지리에서 금계포란형(錦鷄抱卵形) 곧 닭이 알을 품은 형상 자리에 선친의 묘를 써서 후손이 대마도주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전형적인 명당발복(明堂發福形)의 유래를 가지고 있는 지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특이한 것은 국내에서 후손이 출세한 것이 아니라, 일본 대마도주가 되었다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단행본
신종원외.한국 해양 및 도서신앙의 민속과 설화.2006,372-375.
지방문화원
울산남구문화원 GO
집필자
최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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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마도주를 낳게 한 울산광역시 두왕동의 대마도주등"
수고 하셨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