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지난밤 꿈꾸었던 미로정원이 흐릿한 안개로 덮여있을 시간, 나는 一山新都市의 내부(위장과 큰창자가 만나는 지점)를 분주히 걸어 다니고 있다. 몇 개의 간판들은 벌써 약간의 소스라침으로 눈을 뜨고 차량들은 선충처럼 어두운 지하를 찾아 느리게 헤매고 있다. 아침 일기예보에 50mm미만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보도되기는 했지만 우산을 챙겨오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쓸데없이 걸리적거리는 것이 하나라도 내 물품목록에 추가되지 않는다는 것, 비록 조그만 만족감일 테지만 이것도 행복이리라 믿는다. 그러고보면 난 유난히 걸리적거리는 물품을 잘 잊어버렸던 것 같다. 버스 손잡이 옆에 곱게 두고내린 우산들은 나에게로부터 떠나 어디로 가 안착했을까? 혹, 유실물센터 선반 위에 제 할 일도 못한 채 오래도록 방치되었다가 버려진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비오는 날 누군가의 머리를 가려주지 못하는 녹슨 우산대를 상상하는 것은 슬프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와 비를 맞는 정경이나 구멍 뚫린 기와지붕으로 빗물이 스미어 작은 방에 양동이를 받쳐둔 기억 같은 것들이 자주 내 기억의 창고에서 밀려나와 눈앞에 그려진다. 전에 살던 다세대주택의 계단을 오르다 한 순간 먹먹히 서있었던 기억도 떠오른다. 난간을 붙잡고 오르다 이 난간이 지금 내 생애의 한순간을 대신 살고있구나 싶어서였는데 그 이후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면 어김없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간만큼 가치있고 행복한 시간은 없다. 게으른 난 진정한 형벌의 순간들을 몸소 체득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부질없는, 나뭇잎 하나 흔들지 못하는 슬픔.
20m짜리 RGB코드를 찾아서 지하철역 두 정거장을 걸어갔다면 믿겠는가? 딴엔 할 일도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는데 그 흔하던 전파사들을 新都市에서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것을 몸소 깨닫고 말았다. 롯데마트에서 이마트까지 걸어가 내가 들은 대답은 용산에 가보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터져나오던 웃음이란. 용산을 안 가본지 어언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거의 모든 일을 동네에서 해결하던 내가 용산에 갈 생각을 하니 왜 그리 끔찍하게만 느껴지던지. 막상 실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기는 하다만 마음의 거리로는 대양을 건너는 것만큼 먼 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서울을 나가 본지도 꽤 되지 않았나 싶다. 兄 결혼식 때 연신내에 나간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니 두어 달 쯤 흐르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이야기 할 때마다 마음 저편에선 “벌써?”란 말이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시간이 빨라진 건지, 아니면 삶을 사는 속도가 빨라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여하튼 빨라진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내가 이 도시 안에서 전파사를 찾아 지금도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있으니.
한때 금촌에 있을 때, 교회 옆에 조그마한 전파사가 하나 있었다. 그 전파사 할아버지를 지금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비좁은 가계내부를 온갖 가전기기들로 가득 채우다 못해 가계 밖까지 카세트며, TV를 담장처럼 쌓아둔. 그 가계에선 흘러간 유행가가 자주 흘러나오곤 했었는데 그 노래들이 누구의 무슨 노래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라디오를 켜 둔 것인지, 아니면 카세트테잎을 틀어 둔 것인지도. 지금도 그 자리에 그 가계가 존재할까? 궁금하지만 다시 찾아보지는 않으련다. 적어도 추억에 못질 하고픈 마음이 내게는 없다. 얼핏 바람 속에서나 흘려듣는다면 모를까.
나는 지금 다시 一山新都市의 위장을 거슬러 올라 목울대 부분까지 다다르지 않았나 싶다. 혹자는 서울에 가까운 쪽이 목울대 부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추억에 가까운 쪽이 목울대 부분이다. 이미 전파사를 찾는 일은 포기한 상태이다. 용산에 가기 전 원당에 들려 옛날 약속다방 있던 부근의 전파사에 들려보련다. (이렇게 말해 놓고 또 잊어버릴까봐 겁난다.) 애초에 지하철을 타기 싫었던 마음에 이런 수고를 한 것이기는 하나 지금에 와서는 약간의 후회도 된다. 더욱 후회되는 것은 이마트에 도착해서 그곳에도 물건이 없음을 확인했을 때이다. 그때라도 지하철을 타고 올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이 新都市에서 전파사를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걸어갔던 길의 반대로 건너와 다시금 전파사가 있나, 없나, 간판들을 훑으며 걸어오는 중이다. 한가지 웃긴 일은 전파사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또 왜 웃겼는지 모르겠지만 그 학생을 떠나며 웃음이 살짝 터졌다. 지금은 집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아가씨에게 담배 하나를 사고, 잠시 서서 담배 한 모금 들이키며 장장 3시간에 걸친 여행담을 정리 중. ㅎㅎ. 그리고 지금은 집 안, 깜박이는 커서에 자음과 모음을 입력 하는 중. 원당에 갈 때 전화하마.
첫댓글 백명도 넘게 스쳐지난것 같다. 그 누구나 자기안에 살고 있듯이, 나는 내안에 살고 말시키는 것이 두렵고 사람을 회피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스쳐지나야 난 담담해질 수 있을지...
글 좋아요. 신선하고..여기 원주는 아~~~주 좋은 곳이랍니다. 전파사도 많고 공기 좋고 단지 물가가 좀 비싼 것이 문제지만 저렴한 것을 찝어서 살수있는 기술도 터득하게 되죠. "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간 만큼 가치 있고 행복한 시간은 없다 " 그런 마음을 가질수 있다면 모든 것이 사랑과 애착으로 연결이되죠..
" 원당에 갈때 전화하마 "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서 훔쳐(표현 부적절) 읽는 재미도 좋고..좋은 글입니다. 나도 편지 쓰고 싶어집니다.
편지 나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