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보았다.
"내 깡패같은 애인"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와중에 낯익은 듯한 기시감[旣視感]에 곤혹스러웠다.
화려한 조폭영화가 아닌, 이미 이리저리 대접을 받지 못하는
너절한 깡패의 이야기는 영화의 소재로 너무 자주 응용하였기 때문이었을까?
7.80년대 건달들에게는 의리라는 사소한 명분이 드물게 있기도 하였다.
이제는 깡패들의 위압이나 협박만 가지고는 힘들어, 생계의 언덕 비슷한 구실이 있기는 했다.
기업형조폭이니 건설업조폭이니 하는 류가 그런 식이다.
사채시장의 고리채도 그들이 기대는 언덕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기시감[旣視感]이란 우선 "파이란"이란 영화가 있다.
최민식이란 배우는 이 영화에서 박중훈이가 만들어내는 너절한 깡패보다 더 참담한
아주 남루한 배역이었다.
조폭의 경력은 왕초와 같은 레벨이라 하여도 "형님!"하고 허리를 숙여야 했다.
이와는 좀 다르지만 "똥파리"라는 사채업자의 돈을 받아내는 뒷골목 깡패같은 타입도 있다.
인생을 한 번 제대로 우아하게 살아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달리고
돈이 없어 장가는 고사하고 반반한 옷 한 벌 없는 신세는 이모저모 닮아 있었다.
우리는 영화나 책이나 드라마에서 아무것도 아닌 인생의 그 헛헛함을 자주 본다.
어찌 그들이라 하여 반듯하고 품위있게 사는 일, 외면을 했을까?
왕초로 옛 백성 26명을 데리고 있을 때, 그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싸한 연민에 시달렸다.
아무리 너절한 깡패라 하여도 그래도 한 때는 주먹을 휘두르며 어깨에 힘을 주었던 적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 옛 백성들은 그런 폼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밀려 늙어진 것이다.
영화는 그 시대의 풍경화라는 말이 있다.
극심한 취업난은 지방대학 출신의 능력있고, 장학생으로 석사학위까지 있지만
편의점 알바를 하여야 하는 우리의 낯익은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 주었다.
쥐꼬리만한 기성직장인이 취업에 목을 매는 젊은 아가씨에게 동침을 요구하는
낯이 부끄러운 치부 또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의 화려한 경제성적표의 양지, 그 뒤편에는 어둡고 습기찬 그늘도 짙은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파이란"이란 뛰어난 서정미에 많이 미치지 못하였다.
각본에도 무리한 설정이 자주 있어, 연출에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졌다.
그렇지만 완성도는 상당히 높은 관중들이 즐길만한 영화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