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平驛(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沙平驛(사평역)에서 - 詩 : 곽재구, 작곡 : 유종화, 낭송 : 박종화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요, 우리는 지금
싸륵싸륵 눈이 내리는 밤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갈망도 잊은 채, 깃발처럼 펄럭이고 싶은 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가슴 속에 숨죽여 소리없이 차곡차근 쌓아놓았던 언어들이
방향을 잃고 막차를 기다리는 심경으로 주저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리운 것들의 이름을 부르며 톱밥난로에 한줌의 눈물을 던져넣는 일은 아닐 텐데...
세상아, 갈테면 갈라! 차마 이리 외치지 못하는 것은
저희가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오래앓은 기침소리처럼 아픈 사람들 곁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순간 순간 최선을 생각합니다.
네 손이 닿는 지경까지라도 온기를 담을 방법을 생각합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읽고 듣습니다.
사평역은 세상에 없는 간이역입니다.
화순읍에서 고흥 방면으로 가는 국도 제15호선을 따라 15km를 가면 사평리에 이르는데,
정확히는 광주광역시와 인접한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에 소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기차역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평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3등 완행열차가 바쁠 것도 없이 쉬엄쉬엄 쉬어가는 오래 묵은 시골 간이역입니다.
고여오는 슬픔을 안고 사람을 말없이 사랑하는
그렇게 삶을 지속하는 욕심없는 사람들이 기침소리와
한 줌의 톱밥으로 삶을 나누고 버티어 주며 뭔가 기다리는 공간입니다.
단풍잎 같은 차창을 달고 올 우리들의 나라,
뼈를 깍는 추위도 가림없이 덮어주는 눈밭같은 나라,
그 나라를 어쩌면 아주 많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아침 기운이 내어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내 몫의 일을 찾아갑니다.
- 2007.12.22. 편집자 한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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