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는 주님과 동행하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기본’ 세상적 가치 좇지않는 능동적 신앙인 양성에 목회가치 둬야 말씀을 붙잡고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개혁
칠순을 목전에 둔 노(老) 목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인터뷰 도중 눈시울은 수시로 붉어졌다. 목회 말년을 보내고 있는 목사에게 무엇이 그토록 눈물샘을 자극시켰을까.
이번 <목회자 인터뷰>의 주인공은 최광렬 목사(군산 개복교회)다. 최광렬 목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하는데, 회개의 눈물이 나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한다. ‘말씀과기도훈련원’을 이끌며 누구보다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려 발버둥치고 있고, 그것도 60대 후반으로 목회를 마무리하고 있는 목사일진대, 무엇 때문에 회개를 외치고 눈물을 쏟게 할까?
최 목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이란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을 하나님과 자신이 잘 안다고 강조하는 최 목사.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고,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안식년을 받아 한동안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려 칩거에 들어갔다. 휴대전화마저 해지시켰다. 세상 것, 실적, 사람의 유익을 떨치고 남은 목회를 주님 앞에서 부끄럼 없이 하기 위해서다. 부단한 자기부인과 인내가 필요한 원초적인 영성을 올곧게 붙잡으려는 노 목회자의 고뇌는 종교소비주의에 편승해 유행과 성장을 좇아가는 그릇된 조류에서 큰 울림을 던져준다.
최광렬 목사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기자에게 느닷없이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하나님은 나와 교제하시기를 원하는데, 기자님은 얼마나 구원의 감격을 갖고 삽니까? 거룩에 대한 사명감은 있습니까?” 이 질문이 비단 인터뷰어로 앉은 기자에게만 던진 것이었을까? 이 기사를 읽는 독자, 아니 위기상황에 놓인 한국교회에 대한 질문이요, 함께 대답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목회사역에 비중을 두는 부분은. =믿음의 근본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우리는 그 말씀에 반응해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에 가장 큰 비중을 갖고 목회하고 있다. 이것이 믿음의 행위이기에 목회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사역 면면을 보면 실제로 ‘말씀’과 ‘기도’라는 베이직(basic)한 사역에 남다른 비중을 두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역을 펼치고 있나.
=‘경건생활·주간성경공부’를 매주 발행해 주보와 함께 나눠준다. 매일 2~3페이지 정도의 성경을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차례 식사 때마다 정독하고, 말씀 가운데서 기도제목을 하나씩 찾아서 기도하게 한다. 이를 ‘영의 양식 먹기’라 표현한다. 모든 성도가 말씀을 정독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건생활’을 위한 페이퍼 두 장씩 나눠준다. 이는 한 주간 ‘요절암송’과 ‘찬송’, ‘정시기도’, ‘내 기도’ 등을 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경건에 이르는 연단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시간을 정해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야말로 생명력이 샘솟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를 생명처럼 여기며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 나는 굳게 믿어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하루 세 차례 만나고, 그 말씀을 근거로 기도하고, 그 다음으로 교회 공동체적인 기도를 하는 등 무시로 기도하는 거다. 일상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깐 찬송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또한 기도할 때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분이기에 기도하는 시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말씀과 기도와 찬송, 이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하고, 좋은 도구요 방편이지요. 그래서 말씀과 기도가 교회의 기본이지만, 가장 바르게 신앙 안에 사는 비결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집중하고 강조하고 있다. ▲교회 구성원들이 교회가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기 원하는 추세다. 그런 가운데 베이직한 사역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교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붙잡는 것은 절대 필수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하셨다. 영의 양식 먹기, 기도하기, 경건생활하기를 충족하게 되면 어떤 환경에 들어가더라도 확실한 기준과 기쁨과 사명을 알게 된다. 그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게 하기 때문에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 ▲ 칠순을 바라보는 최광렬 목사는 아직도 하나님의 종노릇 제대로 못해 주님 앞에 서는 것이 겁난다는 목회자다. 누구보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과 동행을 외치고 있지만, 세속적 가치를 떨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래서 최 목사의 일상에는 늘 눈물이 있다. |
▲말씀과 기도는 말 그대로 기본이다. 이것만 강조하면 식상해하지는 않나. =당연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애들한테 공부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너무 강조하면 반발해요. 우리 교인들이 그런 형편이에요. 이제 그만하세요.”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 이 말을 설교시간을 통해 교인들에게 전했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가 목회하는 동안에는 계속 강조할 것이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 했다.
아마 성도들도 답답해하거나 반발할 것이다. 제 아내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연히 교인들도 다른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다. 그럴지라도 나는 그 입맛을 맞추기 위해 있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교인들로 순종하게 하려고 있는 사람이기에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답답해도 기본이 안 되면 다른 것은 다 아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그렇다고 믿어요.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다 풀어질 것을 믿고 나가고 있다. 경건생활하게 되면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경건생활 그 자체가 유익하고 복되다.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경건의 능력이 흘러가는 것을 체험한다.
교인들의 문화적인 욕구는 세상이 발달하면 더 강해진다. 그러나 나는 교회가 그것을 대리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 교회는 교인들을 주님과 동행하도록 하게 해 그들의 삶의 공간에서 문화를 선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삶 속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문화를 능동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럴 능력이 없어 세상 문화에 휩쓸려 간다. 이것이 불행이다. 삶 속에서 말씀과 기도에 기초한 문화를 선도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요, 목회의 가치다. ▲대리만족이라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 =비본질적인 훈련과 프로그램이 신앙인 양 치부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신앙은 결국 삶 속에서 경건의 능력과 신앙의 문화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를 통해 대리만족하려 한다. 종교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소비주의는 한국교회의 불행이다. 그래서 개교회 중심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절대로 개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교회밖에 모르게 된다. 여기서 대형교회가 생기게 됐다.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하는 믿음이 확실하게 서있다면, 내 교회가 세워져 갈 때 세워지지 못한 교회에 관심을 갖고 아파하고 함께 갈 수 있도록 섬기고 도와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는 없다. 종교소비주의의 대표적인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교인들도 교회 안에서는 신앙이고, 교회 밖은 그저 생활로 여겨 세상적 가치와 흐름대로 살아가버린다. 그래서 자기 삶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로 삼아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만든 인생들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고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창조주의 뜻이다. 그런데 종교소비주의 생활에 그치면 하나님을 따라가고 동행하는 것은 관심 밖의 일이 되어 버린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 있게 살려고 세상 사람과 같이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서 버린다. 이런 현상이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이며, 종말의 현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종교소비주의가 낳은 두 번째 불행이고, 슬픈 일이다.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쉽게 갈수도 있을텐데. =목회를 하다보면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것을 충족시키면 육신적으로 내게 오는 유익이 크게 다가온다. 개복교회 담임, 누구나 탐내는 자리 아닌가? 그러나 그동안 나는 금송아지 만드는 목회자였다.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을 섬기게 하는 목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답을 구했다. 제대로 종노릇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아론이 모세에게 지시받아 일한 것처럼 나 역시 잘한다는 목회자 흉내 내며 목회한 것을 회개하고, 모세처럼 하나님과 늘 교통하고 동행하는 종이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1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말씀, 기도, 예배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는데, 왜 이러지라고 따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침 하셨다. ‘일방통행’. 그랬다. 그동안 설교하려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정보를 얻으려고 말씀 앞에 섰지, 말씀으로 나를 만나고 고치시고 이끄시며 나의 변화를 위해서 서지 않았다는 깨우침을 주셨다. 기도 역시 청구서 청구하듯이 기도했지, 말씀으로 오는 하나님께 반응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방통행을 벗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구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게 됐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었다. ▲현재 말씀과 기도 사역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방식인가. =아직은 걸음마 정도에 불과하다. 이 사역은 주님 주신 꿈이다. 정년과 상관없이 여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붓다가 부르심 받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말씀기도훈련원’이라는 하나의 틀을 만들었다.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 말씀과 기도라는 훈련 방식을 퍼트리려 하고 있다.
말씀기도훈련은 이미 작년부터 시작했다. 격월로 3박 4일간 진행한다. 이제는 이런 훈련을 지역마다 돌아가며 실시할 계획을 하고 있다. 시군 단위로 2~5명의 목회자로 한정해 훈련을 시키려 한다. 구체적인 계획을 올해 세울 것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어 들려고 한다. ▲말씀기도훈련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은. =시작 동기를 설명하려면 너무 길다. 총신 졸업을 하고 개복교회 부교역자로 6년간 목회를 배우다가, 익산의 청복교회로 가서 담임목회를 15년 했다. 저를 지도해주셨던 고 김종석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2001년도에 개복교회 후임으로 부임했다. 개복교회가 갖는 위치가 있었기에 주변 목회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 내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들어왔다. “그래! 내가 부교역자일 때 정말 열심히 했지. 담임목회도 열심히 했고. 그러니까 인정을 받아 이 교회에 오게 된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주님은 버리지 않으셨다. 어느 날 기도 중에 마태복음 7장 22절과 23절 말씀을 연속으로 깨닫게 하셨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나를 모른다하시면 난 어떻게 되지?” 그날을 위해 오늘 내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주님이 ‘모른다’,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시면 나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신앙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후 3년간 개인적으로 고민과 기도를 거듭한 끝에 주님 주신 은혜로 ‘목회자성경통독기도회(목성회)’라는 것을 시작했다. 우리 교회 기도원에서 매월 1회 3박 4일로 성경을 1독하면서 기도하는 목회자 모임을 가졌다. 내겐 아주 큰 은혜였다. 목성회는 내게 생명과도 같다는 말을 하게 됐다. 그런 목성회가 2012년부터 중단되었는데, 그해 5월에 방광암 판정을 받았다. 생명이라고 말하던 일을 중단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자는 아내의 권유를 뿌리치고 기도원에 올랐다 40일 동안 기도하던 중 귀한 은혜를 받았다.
먼저, 말씀으로 기도하는 은혜가 있었다. 골방에 들어갔는데 “성경을 펴고 한절씩 읽어가며 기도하라”는 성령의 강한 주문이 있었다. 한 절을 읽고 기도하고, 또 한 절을 읽고 기도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기도가 단편적이고, 그 폭이 좁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렇게 깊고 넓은 기도는 처음이었다. 정말 황홀했고, 감사했다.
다음으로, 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귀하다는 생각을 주셨다. 주의 종 된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삼고, 경건생활에 이르도록 연단하게 훈련시키는 것이 더 귀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주셨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기도하면서 ‘말씀기도훈련’에 관한 기대감으로 흥분되기 시작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세 차례 정독하고, 이 말씀을 붙잡고 하루 한 시간 이상 기도한다면 그 영성은 어떻게 될까? 그런 자들이 시군 단위로 공동체로 모여 함께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 벅찼다. 그래서 이 사역을 기도하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훈련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 계획인가. =과거 목성회를 공짜로 해보니 질서가 없었다. 자기들 마음대로였다. 돈을 들여야 제대로 훈련받겠다 생각했다. 훈련을 받을 때 제대로 받게 하자는 생각에, 아무리 적어도 30만원 이상 받자고 했다. 그리고 성경이 신앙과 삶에 정답임을 믿는 자, 1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영의 양식으로 꾸준히 읽으며 하루 1시간씩 기도하는 자, 교회는 공동체로서 시군 안에서 함께 훈련 받는 사람들 2~5명이 주 1회 만나서 같이 공동으로 기도하기로 서약하는 사람에게 훈련시키자는 아이디어를 갖게 됐다.
가슴이 뛰었다. 많은 숫자가 아니지만 시군 단위로 아주 작은 소그룹들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매일 같은 성경본문을 읽고 기도하는 일들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이 나라를 어떻게 역사하실까 하는 기대감으로 흥분되고 황홀했다. 그 기대감을 갖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명성, 실력, 능력이 없는데 세 가지 서약과 거금의 회비를 내고 훈련받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때 엘리야를 생각나게 해 주셨다. 능력 지식 명성 가지고 하나님 일 할 것처럼 들뜨기도 하고 낙심한 것에 회개했다. 주님 일하시는데 그저 기도하고 따라갈 뿐이며, 비난과 실패 받아도 좋다는 고백을 하게 하셨다. 그렇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작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지금 40~50명 정도 참석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확대해 각 지역에 직접 가서 훈련할 예정이다. 그래서 매뉴얼을 만드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 ▲개복교회 이전에 담임목회 했던 교회가 부흥했다. 소위 잘 나가고 안정적인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겼던 교회에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부흥을 이뤘다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난하게 목회하고 있었다. 예배당 건축도 무난하게 끝냈다. 그러나 입당하면서 IMF가 터졌다. 20억 정도 빚이 있었는데 정신이 없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도들의 협력으로 3년 만에 빚을 갚았다. 거기에 더해 300평 땅도 샀다. 당시 절약헌금을 했다. 교회를 위해 삶을 절약하자 했다. 교통비, 식비 줄여 헌금하자고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부채를 해결했다. 주님의 은혜였다.
입당하면서 ‘기도훈련용사’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기도 중에 개척을 생각하게 하셨다. 교회 개척 여부를 두고 아내와 줄다리기를 하던 중에 개복교회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내 실력을 감안해도 그렇고, 시골 출신이라 큰 교회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개척하려했다. 하지만 내가 청탁하거나 꿈을 꿔온 것도 아니었고, 더욱이 남들처럼 정치력도, 실력도, 능력도 없는데 개복교회의 부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아내의 말에 공감해 개복교회 오게 됐다.
지금도 개척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여기로 부르셨는가 생각해보면 전에 있던 교회에서 이 일(말씀기도사역)을 하는 것과 개복교회에서 하는 것과는 차이가 분명 있다. 이 일을 위해 개복교회에 부르심을 받았다 생각한다. ▲이전 교회와 비교해 보면, 사역이 많이 단순화됐다. 규모가 있는 교회를 이끌려면 시스템과 프로그램은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시스템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잘 정리된 교회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없으니 교인들이 답답해 하는 눈치다. 내가 생각해도 답답한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한국교회 최대 약점이 말씀이 지식화되면서 영적교만에 빠지게 됐고, 바리새인적인 모습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교회 성장과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랜 경험이나 지식, 방법론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를 이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느껴지는 상황이었기에 배척을 당하더라도 이 일만은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머리와 능력이 커지고 있다. 정말로 인간들이 이제는 바벨탑을 쌓을 능력이 됐다. 이때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세상과 이성의 종이 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 것이다.
적극적인 사고나 긍정적 사고, 인간 이성에 의해 개발되고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장악하거나 이끌어서는 안 된다. 오직 믿음, 성령의 동행하심으로 주님의 교회는 굳게 서야 한다고 확신한다. ▲목사님의 경우 성령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받는 은혜는. =말씀과 기도의 삶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경건생활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 믿는다. 성령론에서 이단이 많이 나온다. 성령님은 말씀을 기록되게 하셨고, 육신을 입고 오셨고, 구원 역사를 함께 이루셨다. 보혜사이기 때문에 말씀 붙잡고 사는 자에게 성령이 오셔서 동행해 주신다. 그저 기도만 한다고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허점이 많이 나타난다. 수없는 육신의 한계와 자기라는 견고한 진과 굳은 마음 때문에 부족하다. 그리스도 본받으려 나가는 것뿐이다. ▲수시로 기도원에 들어가 칩거한다고 들었다.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다보니 많은 분들이 제가 말씀과 기도 속에 사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족할 만큼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 주님 앞에 부끄러울 뿐이다.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리지 아니하면 죽은 목숨이다. 주 안에서 살고 주님과 함께 일하기 위해 기도원에 들어가 몰입하고 싶기 때문이다. ▲목회자로서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목사란 무엇인가.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다.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통해서 목사의 정체성을 말해야 정답이겠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일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종이면 주님의 말씀에 죽고 살아야 한다. 거기에 푹 빠져야 한다. 그러나 육신의 한계로 쉽게 무너진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하나님 없는 자에게는 자기개발과 긍정 사고만큼 중요한 것 없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면 된다.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성령님,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시는 성령께 나를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목사들의 숙제다. ▲121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다. 오랜 역사의 교회가 갖는 강점과 단점이 있을텐데. =보편적으로 강점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안정감이 장점인 반면 단점이다. 역사가 깊어진 만큼 주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세워져야 하는데, 유전과 전통이 체질화 되어버리는 모습이 있다.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이 질문에 먼저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위한 질문이다. 교회 대리자로서 나는 어떻게 서있는가라는 주님의 질문이 느껴져 두렵다. ▲교회가 화석화 되지 않고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교회라고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기에, 세상적인 문화나 세상이 추구하는 목표가 교회 안에 유입이 된다. 그러나 교회가 거기에 발맞춰 가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교회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종교일 뿐이다. ▲최근 ‘이것이 기독교다’는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는데, 어떤 목적인가. =지난 3월에 집회를 했는데, 신앙의 기초가 튼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나타는 신앙고백을 토대로 기독교의 본질을 설교하고 있다. 물론 시리즈 마지막 정점에는 성경을 강조할 것이다.
교리나 신학을 부정하거나, 터부시하는 것이 아니다. 교리나 신학이 성경 위에 올라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강을 건널 때 배를 이용하고, 목적지에 가기 위해 차를 이용한다. 배나 차는 하나의 방편이기에 그것에 집념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을 붙잡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주인 되신 주님의 말씀에 붙잡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고 강조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거기서 나온 것이라 결말을 지을 것이다. ▲시리즈 설교를 통해 말씀 하시고 싶은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믿고 성경대로 사는 것이 기독교다. ▲그 기준에서 지금의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이라 보는가. =예수님의 자리에 교황이 앉은 천주교를 박차고, 탄생한 것이 개혁교회다. 그런 개혁주의 교회가 500년이 지난 현재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된 것은 슬픈 현실이다. 왜 이리 처참하게 됐는가? 하나님 말씀을 지식화만 했지, 체질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무엇이 개혁이냐는 문제를 두고 고민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원죄를 갖고 태어난 우리이기에, 세상 기준에 맞지 않은 말씀대로 살기 어려운 존재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능력이 없기에 성령님께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국교회를 두고 얼마든지 비판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말하는대로 삶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외식하는 자다. 이 외식 앞에서 주님이 두려운 것이다. 주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은 말씀을 붙잡고 살고,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성경지식은 날로 더해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무능하다. 성령께서 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이 일하시기 위해 말씀과 기도를 붙잡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침체원인을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했다는 말인데, 말씀과 기도 외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자기의 시간과 공간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에 영향을 받는다. 세상의 흐름에 편승하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잡고, 체면 등의 이유로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그렇기에 누가 그것을 정죄할 것인가? 정죄할 만큼 누구도 바로 선 사람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눈의 들보에 대해 기도하고 빼놓을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달라고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 이후 남의 티끌이 벗어지도록 기도해 줘야 한다. 먼저 느낀 사람이 중보자로 서고, 가슴치고 기도해야 한다. 느헤미야처럼 회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실적과 성과를 중요 가치로 삼는 것 또한 한국교회 문제로 보고 있다. 성장주의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성과와 성공은 세상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요소다. 자본주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성과다. 미흡하면 도태된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이것이 체질화 되어 버린 상황에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성장 기류에서 가장 많이 누린 기성세대가 비판 없이 외국의 잘나가는 교회를 벤치마킹해 한국에 뿌린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에 큰 찔림이 있었다. ▲목회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겠나. =23살부터 전도사를 해서 40년이 넘었다. 82년도에 목사안수 받았다. 목회는 하나님의 종노릇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 목회다. 목회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종노릇 잘했다는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 땅에서는 실적을 보고 훌륭함을 말하지만, 주님 앞에서 듣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목회 말년, 목회자로서 어떤 심정인가. =주님 앞에 설 날이 멀지 않았는데, 우리 주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제일 겁난다. 60 이전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남의 이야기 같았는데,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다. 명예와 정욕, 재물욕 등은 젊으나 늙으나 똑같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세상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떨쳐낼 능력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겁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그래서 5월부터 안식년을 갖는다. 더 처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기 위해서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간구할 것이다. ▲세상이 왜 기독교를 배척한다고 보나. =우리 사회가 갖는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은 한국교회가 정체성을 잃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생명의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는데, 한국교회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물론 이단과 잘못된 모습으로 인해 배타성을 갖는 이유도 있다. 중요한 것은 비난과 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존귀한 자로 세운 것에 대해 감사를 해야 하고, 그러지 못한 것에 회개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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