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 자체를 상품화시키는 매스컴의 세뇌와, 그에 편승하여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는 슬리밍 센터를 바라보노라면 바야흐로 몸을 학대하는 시절에 접어든 듯하다.
쭉 뻗은 다리와 늘씬한 몸매가 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버린 듯 한 젊은 층의 무분별한 다이어트, 질세라 귀동냥한 정보(옳고 그름도 따져보지 않은 채)를 성전(聖典)처럼 떠받드는 중년 여성까지, 노년은 노년대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바람에, 몸이 죽어나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그래서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몸을 화두로 해서 잠시 얘기를 해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몸은 몸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도 될 만큼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자체 조절 능력을 가진 대상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고도의 조절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되어도 금방 신호를 보낸다.
설사를 한다, 기침을 한다, 열이 난다, 토한다 등의 증세가 나타나면 우리는 병이 났다고 인식한다. 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증세를 없애는 쪽으로만 신경을 쓴다.
그러나 위의 증세들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몸에 해로운 것이 들어왔거나, 생겼다고 판단될 때, 그것을 내보내기 위해서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해로운 것이 호흡기 가까이 있으면 콧물을 흘려서 씻겨나가도록 하고, 좀 더 깊은 곳이면 재채기를 해서 그 자극으로 밀려나가도록 하고, 몸속 깊이 있으면 항문 쪽으로 내보내기 위해 설사를 하게 된다.
간혹 설사가 병원에 가도 낫지 않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설사가 오래가니 걱정이 되겠지만, 이때 몸에서 해로운 것을 내보내기 위해서 하는 설사라면 보름 가까이 설사를 해도 기운이 빠지지 않는다. 몸의 조절력이 떨어져서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설사로 나가는 것이라면 이틀만 되어도 배가 접히고 기운이 빠지게 된다.
보름째 설사가 멎지 않는 것을 한방 처방 중에서 하제에 속하는 처방을 먹였더니 설사가 멎었다.
하제는 설사를 하게 하는 약인데, 하제를 멎고 설사가 멎었다는 건 놀랍지 않은가.
몸에서 나갈 게 나가고나니 자연 설사가 멎었던 것이다.
체온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
세균과 곰팡이를 망라해서 그 균의 종류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나 가는가.
그 균들이 몸에 붙어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데, 잘 낫지 않고 재발 잘하는 무좀이나 습진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균들은 온도와 습도 영양 상태가 맞지 않으면 피부에 기생해서 살수가 없는데, 균들의 적정 온도가 다 다르다. 더운 곳을 좋아하는 균은 추워서 살수가 없고, 찬 곳을 좋아하는 균은 더워서 살수가 없는 온도를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 우리 체온이 딱 그 온도이다. 적정 체온과 습도만 유지되면 무좀이나 습진에 걸리지 않는 이치가 그래서 이다. 36.5도. 그냥 발음하기는 쉽지만 그 온도가 얼마나 정교한 과학적 수치인지 알고 나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한두 가지 언급으로 몸의 신비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몸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비스럽고 존경심이 생길 만한 대상이다.
몸은 필요한 성분은 절대 몸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은 배설물과 분비물뿐이기 때문에, 몸의 상태를 알기 위해선 배설물과 분비물이 중요한 정보원이 된다.
변을 예로 들면, 변이 굵고 냄새가 많이 나면 체질이 열이 많고, 신진 대사가 왕성한 편이고, 변이 변비 기운이 있으면서 염소 똥처럼 동글동글하고 토막토막 끊어지면 아랫배가 너무 차서 장이 연동운동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고, 변이 가늘게 나오면 장의 기력이 떨어져서 연동운동이 잘 안 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변의 모양이 다르면 치료법도 달라야 한다.
양약을 전공한 내가 환자들에게 약을 지어주면서, 양약의 한계를 절감한 후 한방 공부를 시작했다.
양약은 거의 대증요법이므로 특히 만성병은 본인은 괴롭지만, 약 기운만 떨어지면 다시 아픈 것이 문제였다. 대증요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한방 공부에서 나는 부수적인 것을 많이 얻었다.
현대 의학은 철저히 공격제로 작용한다.
병이 나면 어떤 균이 들어왔는가를 밝혀내서 그 균을 공격해서 살균하는 것을 근간으로 해서 생겨난 의학이다.
균에 해로울 정도면 인체엔들 해롭지 않을까.
그런데 한방은 균은 거의 무시한다. 균이 들어왔을 때, 면역계(몸)의 어디가 구멍이 나서 면역계가 작동하지 못했는가에서 출발한다. 공격이 아닌 방어체계를 근간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 한방이다.
따라서 한방과 현대 의학은 출발점이 정반대 위치이다.
한방은 공격제가 아니기 때문에, 처방과 체질만 맞는다면 약에서 오는 해악이 거의 없다.
현대 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에, 현대 의학이 훨씬 우수하다고 주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의학이 상호보완적 관계로 가야한다고 본다.
방어 체계적 차원에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의학적 상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치료를 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요즘, 의사가 아니면서 체질을 교정해주거나 난치병을 치료했다는 곳이 많이 있다.
사술로 일반인을 현혹시키는 곳도 있겠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나름으로 완벽한 이론을 가지고 있는 곳도 많다. 의학적 지식은 모르지만, 몸이 원하는 조건을 맞춰줌으로써 체력을 돌아오게 하고, 체력이 돌아오면 면역능력은 자연 돌아오니, 병원에서 치료하지 못한 병을 이런 곳에서 치료했다는 것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고 본다.
입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소화 과정을 거쳐서 흡수되는 과정을 상수 로로 보고, 배설하는 과정을 하수 로로 볼 때, 이미 오염된 먹을거리와 지나친 육식 때문에 상수로부터 오염이 되었으니 하수로의 오염은 좀 심할까.
하수로가 오염된 상태에서 배설 기능에 문제가 생겨, 그 오염원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니 그것이 다시 몸으로 흡수가 되어 자가 중독증까지 일어나는 형국이다.
의학은 모르지만, 상수 로와 하수 로를 정비함으로써 몸을 살려내는 일은 가능하기 때문에
그런 곳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의학계에서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방은 인체를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고,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처럼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존재로 본다. 따라서 한방 공부를 하다보면 시선이 몸에서 환경으로, 주변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까지 확대된다.
언젠가 주차장의 입구로 기어 나온 지네가 차에 깔려 납작해진 것을 본 일이 있다.
차에 깔리면서 강한 햇살에 곧바로 말라버려서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지네가 검은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붉은 색 몸에 검은 색 머리, 금빛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있을 때의 완벽한 모습을 간직한 미라였다.
그렇게 완벽에 가까운 몸에서 영(靈)이 하나 빠져나가자 몸이 장난감과 진배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람의 몸이라 한들 저와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몸에 영이 깃들어 일체를 이뤘을 때, 그 존재는 비로소 놀랄 만한 자체의 조절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을 지네에게서 배우고 돌아섰다.
몸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존재다.
몸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몸이 외적으로 어떻게 보이는가, 타인의 눈에 얼마나 늘씬하게 비치는가 하는 것보다 내적으로 숨겨진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영(靈)과 육(肉)이 어우러져 돌아가는 완벽한 기관을 들여다보노라면, 내부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몸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망가뜨려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와 교통하는 입구라고 생각한다.
(몸에 대한 얘기가 너무 방대하고, 한방과 현대 의학의 얘기도 마찬가지여서, 모자란 재주로 얘기하느라 횡설수설 되어버린 점 양해를 구합니다.)
첫댓글 아하, 양약을 전공하셨다니... 그래서 그렇게 잘 아시는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
절대로 횡설수설이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햇답니다. 특히 한의학과 양의학이 '상호보완적 관계'였으면...하는 말엔 빨간펜으로 밑줄그려가며 팍팍 힘을 싣고싶습니다.
상호보완관계 란 말씀에선 저도 찬성이지요 지금도 서로 앙숙인듯 하는말 많이 들어요 잘 봤습니다 서인님^^*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한 번 보았다고 알 수는 없는 영역이지만, 이 또한 서로가 가진 기운을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서인님! 나랑 꼭 같은 증세가 있어서 웃었어요. 뭣 땜에 이런 일이 잦은지 알았다구요.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