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네(1)
서면 영광도서 뒷편 이면도로에 나서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면 부전 시장을 만날 수 있다. 식막한 도시의 지나치는 행인들 속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접하며 잠시 멀미를 앓다 이곳으로 들어서면 문득 사람이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도 꿈틀거리고, 수족관 속의 생선도 꿈틀거리고, 리어카에 수북하게 쌓아 놓은 단감과 감귤도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심 한 가운데에 있을 때는 지나치는 사람들이 모두 낯설어 보였는데, 이곳 시장 사람들은 거리감이 전혀 없이 정겨운 이웃처럼 느껴진다. 생선 비린내가 그렇고, 과일들의 싱그러운 낯짝이 그렇고, 격식이 없는 구수한 사투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힌쪽으로 밀어 붙여서 그러나보다.
저, 생선가게의 풍경을 곰곰히 되새겨 보라. 가운데 있는 여자는 어머니인 듯 보이고, 그 옆의 젊은 여자는 딸, 그리고 맨 오른쪽의 남자는 아들 쯤 되어 보인다. 저들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 보라. 문득 쌩 떽쥐베리의 문학적 화두가 떠오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신성이 다 깃들어 있다고 했다. 다만 그 신성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떨 때 그 신성이 밖으로 드러나는가. 인간다운 행동을 했을 때 그 신성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의 안에는 베토벤이 있고, 모짜르트가 있고, 톨스토이가 있다고 했다. 다만 궁색하게 살아가는 일의 쪼달림 때문에, 혹은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때문에 내재해 있는 그러한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금, 저 세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 보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살아가는 일에 몰두하여 다른 삿된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저 순진한 표정을 보라.
나는 지금 한 여자의 뒤를 따른다. 여인은 시장에 찬거리를 사러 나들이를 나온 모양이다. 시장을 한 두어 바퀴 돌고나면 저 허전한 가방이 일상을 퐁요롭게 할 물건들로 가득 차리라. 문득 그 여인의 뒷모습에서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환상을 발견한다. 내 어머님도 한 사십 여 년을 자갈치 난전에서 고기 장사를 하셨다. 일제 강점기 때 큰아버지의 희생으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아버지는 지식인의 유약함 때문에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셨고, 그럴 때마다 국문도 깨우치지 못한 어머니이 소매를 걷어 붙이고 시장 바닥으로 나섰다. 그 억척스러움으로 두 아들을 키웠다. 94세로 돌아가실 무렵에는 치매 때문에 큰아들인 나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 어머님의 몸에서는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풍겼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길거리에서 모이를 살피고 있다. 사람 기운에 길들여진 탓일까. 아니면 먹이를 찾는 일의 분주함과 성가심 때문에 인기척을 애써 모른 체 하는 것일까. 하기야 그 어느 누구인들 비둘기 한 마리의 존재가 성가셔 한낮에 하릴 없이 심술을 부리겠는가. 지금 저 비들기를 모이를 찾다 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비둘기를 보고 있으려니 문득 십수 년 전 겨울의 일이 떠오른다. 부산역 건너편 언덕받이의 C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이다. 숙직을 할 때면 야간 경비원이 밖으로 나가 굴뚝을 뒤져 비둘기를 잡아 오곤 했다. 이글 이글 달아오른 난로 위에 호일을 깔아놓고 비들기 고기를 먹던 일이 떠오른다. 문득 비둘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통 안에 웬 스포츠 센터일까. 말하자면 일종의 무도장이다. 60대 이상의 남여 노인들이 수시로 들락거린다. 몇 천 원의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면 몇 시간은 족히 지루박이며 탱고, 차차차 같은 춤을 추며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곳이 없다고 가정해 보라. 이 많은 노인들이 모두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용두산 공원의 벤치에 앉아 약 먹은 병아리처럼 해바라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남포등 지하상가의 쉽터에 우두커니 앉아 지나치는 행인들을 무심하게 바라만 볼 것인가. 이런 곳이 있으니 배우자를 잃고 홀로 외로움을 벗하는 사람들이 잠시 잠시 만나 흥겨운 리듬에 한나절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이 일대의 식당은 한낮에도 성업중이다. 음식값이나 안주 값이 싸서 몇 천원으로 목을 축이고 술잔을 기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시장을 나오다 웬 노인과 마주친다. 노인은 파지와 고물을 수집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렇게 파지와 고물을 팔아, 그 돈을 어디에다 쓸까. 손자 손녀의 용돈을 줄 정도면 호사한 일상일 터이고, 겨우 겨우 호구지책으로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로 빈궁한 삶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생활과 경제에 있어서 여유로워야 한다. 젊어서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청춘을 송두리째 바치고, 나이 들어서는 빈 껍데기만 남아 자식들에게서조차 버림 받는다면...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시장통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영광도서 부근으로 걸음을 옮긴다. 영광도서 부근에는 공터가 하나 있다. 이것은 고된 걸음을 옮기던 몇몇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늘 이곳에서 서성이는 단골들도 솔찮게 볼 수 있다. 지금 저 나무 아레에는 노숙자 두 사람이 앉아 허기를 달래고 있다. 오른쪽의 늙은 여인은 컵 라면으로 하루의 피곤함과 살아가는 일의 신산스러움을 달래고 있다. 왼쪽에서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는 늙은 남자는 대낮부터 술타령이다. 늘 저렇게 술에 절어 힘들게 걸어왔던 과거를 잊고, 햇살 속에 부유하는 풍요로운 시간들은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서러워 한 잔 막걸리로 이 모든 것을 잊으려 하나보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젊은 여자의 활기찬 걸음과는 무척 대조적인 픙경이다. 아, 그런데도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늦가을의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빌딩 안에서는 혼곤한 졸음과 여유로움이 넘쳐나고 있으리라.
가객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이제 해그늘이 내리고 엷은 어둠이 도심 속 건물들의 귀틍이를 야금 야금 갉어 먹고, 어둠이 점령군처럼 골목으로 진주해 오면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 집으로 가는가? 쌩 떽쥐베리가 <어린 왕자>에서 일찌기 그런 철학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집에는 우리들이 길들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인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또 그는 <야간비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상에서 수천 피트 이상 되는 높이의 밤하늘을 날고 있는 야간 비행사의 절대고독! 그러다가 문득 비행사는 저 아래 어느 마을에서 깜박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에 잠긴다. 그 불빛은 자신에게 이렇게 답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곧장 달려가 당신을 구할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모두는 튼튼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첫댓글 수천 피트 이상 되는 높이의 밤하늘을 날고 있는 김문홍 야간 비행사의 절대고독!- 저 멀리 서울 사직골 불빛은 이렇게 답한답니다. 선생님 마음 잘 알고 있어요. 외로워 마세요.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어요.
ㅎㅎㅎ...쌩 떽쥐베리 그 사람, 참 멋진 사람이에요.
그리해도 번잡함보다는 '외롬' 이. 꼬마장미 예쁨.
김문홍님,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앗~~
그 골목길 선생님의 글을 대하니 그 길을 문득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처음 사진은 그림 보다 멋집니다.
삶이 묻어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