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의 ‘사랑의 힘’
때로는 선생이라는 내 직업이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별 생각없이 한 말이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거나, 어떤 때는 그들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난 스승의 날 병희에게서 온 편지에 “선생님에 힘입어 저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문관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제게 선생님이 ‘졸업하면 뭐하니?’ 넌 좋은 선생이 될 텐데.‘라고 말씀 하셨지요., 그래서 전 선생님이 되었습니다.”라고 쓰고 있었다.
좋은 선생이 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병희이지만, 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지난 주 청첩장을 들고 찾아온 민우는 병약하다고 부모님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 하셨죠.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오래 전 영문학 개론 시간에 내가 브라우닝 시를 가르치면서 결론적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오
그녀의 미소 때문에--- 그녀의 모습--- 그녀의
부드러운 말씨--- 그리고 내 맘에 꼭 들고
힘들 때 편안함을 주는 그녀의 생각 때문에
’그녀를 사랑해‘ 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나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 변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랑은 그렇게 잃을 수도 있는 법
내 빰에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픈 인연 때문에 사랑하지도 말아주세요.
당신의 위안 오래 받으면 눈물을 잊어버리고
그러면 당신 사랑도 떠나갈테죠,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사랑의 영원함으로 당신 사랑오래오래 지니도록.
민우가 자신의 청첩장에 인쇄한 이 시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이야기로 꼽히는 로버트 부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베릿 브라우닝의 열애의 기록으로서, 마흔 살의 노처녀이자 장애자이엇던 에리자베스 베릿이 당시로서는 무명 시인이었던 여섯 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쓴 연시이다.
현재는 문학사적 위치가 남편의 명성에 가려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남편보다 훨씬 유명한 워즈워드를 뒤이어 계관시인의 후보로 꼽히는 시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기가 뛰어나서 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얄 한 살 때 ’마라톤 전쟁‘이라는 네 권 짜리 서사시를 발표하였다.,
유복한 가정, 아름답고 전우너적인 환경 속에서 시재(詩才)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베릿의 소녀 시절은 행복했다. 그러다 열 다섯 살 되던 해에 그녀는 말에 안장을 얹다가 척추를 다치고 , 다시 몇 년 후에는 가슴의 동맥이 터져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1844년에 출판된 시집 ’시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젊은 시인 부라우닝은 1845년 1월 10일에 지금은 아주 유명한 편지글인, 다음의 글을 보냈다.
“베릿 양, 당신의 시를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합니다. 당신의 시는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 시를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그해 봄, 그는 그녀를 방문하고 그후 그들이 결혼할 때까지 약 2년 동안 나눈 연서만 해도 책 두 권의 분량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이미 딸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다. 두 연인은 부라우닝의 친구 한 명과 엘리자베스의 하녀 만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엘리자베스의 건강을 위해 기후가 따뜻한 이태리로 간다.
그곳에서 브라우닝 부부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사랑의 힘은 생명의 힘까지 북돋아서 베릿은 1949년에 아들을 순산했다. 15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후 1861년 6월 29일에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아마도 민우를 가르칠 때 내가 이런 부라우닝의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해주었나 보다. 사랑의 힘을 믿는 민우의 앞날에 행복과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나는 결혼 축하 카드에 에리자베스 부라우닝의 또 다른 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를 적어 주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방법을 곱아 볼가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 만큼, 넓이 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첫댓글 장영희 교수는 우리가 잘 알듯이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묘하게도 가슴이 울컥해지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여성들에게 흔히 보이는 감성주의만인 것도 아닙니다 그의 글은 문학에 깊은 소양이 없으면 결코 쓸 수 앖는 글 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올립니다. 여기에 올리는 아유러면, 어쩌면, 아니 진짜로 내가 그의 글을 깊이 읽기 위해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