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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하나로 갑질하고 변화에 저항하는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게 부끄럽다는 것을 모르는 대통령의 온갖 우행과 기행, 만행으로 인해 국민으로서 내가 대신 부끄러웠는데, 이젠 노인회 회장 김호일이란 인물의 언행으로 인해 노인으로서 내가 대신 부끄럽다. 남이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려고 격한 말을 쏟아부었다면 또 모를까, 정치적인 행사에서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공개적으로 한 발언에 무얼 그리 벼락같이 화를 내는 ‘퍼포먼스’를 펼쳐야만 했을까. 더구나 그 ‘퍼포먼스’란 것이, 사과하러 온 인물의 사진을 준비했다가 그 사진을 때리는 폭력적이고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름 민주시민의 양식을 잃지 않고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늙어가려고 노력 중인 노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보상과 기대가 엇나갈 때 파탄 나는 갑을 권력관계
나는 웬만한 인간관계는 권력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본다. 부부간 관계, 자식과 부모 간의 관계, 아주 가까운 친구 관계 등을 제외한 일반적인 사람 관계는 누가 더 많은 권력을 행사하느냐는 갑-을 관계라 보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갑과 을이 서로 무엇을 주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이 내 취미의 하나다. 때때로 부부간, 자식 부모 간에도 그런 권력관계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갑은 을에게 돈과 안전(보호)을 주고 을의 충성과 헌신을 기대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늘 엇박자가 난다는 것이다. 즉 갑이나 을이나 때때로 자기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적다는 느낌을 갖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한계점에 이를 때 갑을 관계가 바뀌거나 파탄이 나는 것이다.
내 (개똥) 권력관은 개인 간 관계를 관찰하는 데에 머물고 있지만 이를 사회 모든 조직 간, 혹은 세대 간에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즉 노인세대와 청년세대를 갑을 권력관계로 분석해 보면 어떨까? 나는 민주당 혁신위원회 김은경 위원장의 둘째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인지, 2학년 때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라고 엄마에게 질문하고, 자기가 생각할 때는 “평균 여명을 얼마라고 보았을 때 자기 나이부터 평균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하게 해야 한다”고 부연 설명한 것이 바로 그 갑을 권력관계에 근접한 논지라고 본다.
2000년 2월 18일 당시 한나라당 김호일 의원이 당무회의 직후 서둘러 집무실로 향하는 하순봉 사무총장을 주먹과 발길질로 난타하고 있다. 김 의원이 청년당원의 제지를 뚫고 달아나는 하 총장을 붙잡아 목을 조르고 왼손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한 뒤 오른발로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있다. 한국일보 손용석 기자 〈"공천장 내놔" 낙천 분풀이 폭력〉 기사에서 인용.
3일 용산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김호일 회장이 노인폄하 발언 사과를 위해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과 면담 중 위원장의 뺨 대신 사진을 때리고 있다. 2023.8.3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말이 ‘되게 합리적’이라는 김은경 위원장의 평가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박사 학위자에겐 100표를 더 주고 석사 학위자에겐 10표를 더 줘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자산 10억 단위로 1표씩 더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봇물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학 2년생의 논지와는 정반대로, 노인들은 경험이 많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표를 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1인1표제가 확립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문제는 결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저 중학 2년짜리 철부지의 궁금증일 뿐이다. 나 역시 중학 2년짜리 아이와 다른 식으로 동조하는 심정이었는지, 한 사석에서 “18세까지 투표권을 안 주는 똑같은 논리로 100-18, 82세부터는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과감한 농담을 던져 비난과 웃음을 동시에 산 적이 있다.
수구언론이 부추긴 노인세대의 갑질
그렇게 받아들이면 될 이야기였다. 더구나 김 위원장은 1인1표제 아래에서 미래세대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투표장에 젊은 분들이 나와야 의사가 표시된다”는 탁월한 결론으로 자신의 발언을 마무리 짓지 않았는가. 노인의 선거권을 차별하자고 한 적도 없고 노인 폄하를 의도하는 취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김호일 회장이 발끈한 것이야말로 노인세대의 대표적 갑질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수구언론이 그들과 같이 늙어가는 노인세대의 갑질을 부추긴 결과이기도 하다. 갑을 관계의 또 하나 특징은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늘 갑이 그 의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을을 위협하고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는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상수(장유유서)로 노인세대는 나이를 먹었다는 것 자체로 늘 갑 행세를 했고 변화에 저항해 왔다.
문득 지난 2월 칠순을 맞아 내 SNS에 올린 글이 떠오른다.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란 제목의 글에서 나는 “오늘은 내 칠순 생일이다. 회갑 때도, 지공(65세) 때도 별로 세월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칠순의 감회는 확실히 다르다”면서 “사실 칠순이 별 기념하거나 축하할 일도 아니다. 그저 이젠 진짜 늙었다는 증명인 것이다. 요즘처럼 칠십대가 통으로 욕먹는 세태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토로했다.
이어 “칠십대는 어느 정도 세상일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從心) 점점 더 너그러워질 나이인데 오히려 강퍅하고 욕심부리고 아집만 내세우는 세대가 돼버렸다. 욕먹어도 싸다.(…) 앞으로 십 년을 살든 이십 년(?)을 살든 (…) 죽을 때까지 정신건강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말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또한 탐욕 아집 오만 뻔뻔함… 내 주변의 숱한 칠십대처럼 살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 이 자들은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내가 그들을 감화시켜 새사람 만들 힘도 없으므로 그저 이런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가급적 건강한 후배들과만 히히덕거리며 욜드(Young Old)족으로 살고자 한다.
말하자면 칠순에 새삼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까? 만사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고개 바짝 치켜들면 망하는 건 골프와 선거뿐이 아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입이 근질거려도 겸손, 또 겸손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죽음 앞에서도 겸손해져 ‘이젠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도 들겠지…'라고 내 남은 인생의 방향을 정리한 바 있다.
절대로 노인회에 가입해서는 안 되겠다, 탐욕 아집 오만 뻔뻔함에 폭력성까지 겸비했으니…
출처 : [강기석 칼럼] 노인이 부끄럽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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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의 폭력성을 새삼 느낍니다.
혀설의 무시무시함도요.
아름답게 늙어가야 하고
생로병사는 필연이고요.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舌是斬身刀)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요,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니, 입을 막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어느 곳에 있으나 편안할 것이다
.’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속담 ‘일언기출 사마난추’(一言旣出 駟馬難追)는
“이미 내뱉은 한마디는 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로도 쫓아갈 수가 없다” 는 뜻이다.
‘입’(口)은 모든 화근(禍根)의 진원이다.
출처 : 경북도민일보(http://www.hidomin.com)
302호 노인네가 생각나네…
노인 정치인들 새만금에 집단 수용소만들어서 살게해야할듯유.. 텐트 ⛺️ 만 주고... 평균온도 45도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