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다면 현재를 살라고 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라고들 한다. 실제로 다년 간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며 계속해서 괴로워하는 ‘곱씹기(rumination)’나 높은 확률로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 대해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고민하는 행위 모두 슬픔과 불안 등의 부정적 정서와 스트레스 수준을 높이며 불면증을 불러오는 등 행복과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걱정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복잡한 삶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현재를 살 수 있을까.
마음은 탈출의 귀재다. 역마살이라도 낀 것마냥 몸이 존재하는 시공간을 넘어 시도 때도 없이 과거로, 미래로 탈출을 시도한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또는 한창 치열하게 이야기가 오고가는 회의 도중에도 혼자만의 세상에 빠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말 실수를 한 기억, 오늘 아침 출근 길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넘어진 기억 등을 떠올리며 “그때 진짜 하.. 너무 부끄러웠어“라고 하면서 몸은 카페에, 회의실에 있지만 정신만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한다.
또는 “이따가 뭐 먹지? 그 일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내일 약속 있었지 참” 같이 작은 일들부터 승진, 이직,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이 먼 미래에 대해 떠올리는 등 몇 분 사이에도 과거와 미래를 정신 없이 넘나든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정신이 탈출한 상태에서는 당장 눈 앞에서 격렬한 대화가 오가도 아무 것도 듣지 못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눈 앞의 사람이 나를 향해 한참 얘기했어도 아무 것도 듣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생각해??” 라는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
몸은 거기에 있었지만 나는, 내 마음과 정신, 주의는 거기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흔히 ‘멍 때린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마음이 고요하게 비어있는 상태라기보다 반대로 지나치게 부산스러워서 잠시 기능정지가 오는 상태에 가깝다.
우리 정신이 얼마나 정신 없는지 체험해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단 3분 정도 생각을 멈춰보도록 하자. 3분은 커녕 30초도 마음을 비우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생각을 멈추라고? 어떻게 하지? 어 밖에서 새 소리 들린다. 아 종아리 가려워. 생각을 멈춘다는 게 가능한 일이야? 그런데 왜 멈추라는 거지? 생각보다 어려운데. 어 맛있는 냄새 등등 생각을 멈추려고 애써보면 반대로 마음이 평소에 얼마나 정신없이 바쁜지 깨닫게 된다. 단지 평소에는 눈치채지 못할 뿐. 우리 마음은 대체로 부산한 편이다.
잠에 쉽게 들지 못하는 것 역시 눈만 감으면 머리 속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체험하게 되는 것이 한 가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각종 생각과 걱정, 앞으로의 계획 등등을 떠올리다보면 차분하게 가라앉아야 할 마음이 붕 뜨고 불안과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신체적으로도 각성수준이 높아진다. 분명 졸렸던 것 같은데 어느덧 눈이 말똥말똥 떠지고 하나도 졸리지 않은 상태가 된다.
여기까지만 하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지만 우리 마음은 생각에 대한 생각, 감정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문제다. ①걱정을 해서 ②잠이 달아나고 ③달아난 잠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잠이 점점 사라지는데 큰일이야. 조금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게 되면 어떡하지? 내일 중요한 일정들이 있는데 완전 최악이겠지?” 또는 “나는 왜 이렇게 침대에만 누우면 생각이 많아질까? 스트레스도 너무 쉽게 받는 것 같아. 남들은 잘만 잔다는데 예민한 내가 정말 싫어” 같이 1차적인 걱정과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자신의 정서적, 신체적 반응에 대해 또 다시 생각과 평가를 함으로써 2차로 추가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만다. 물론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나가며 3차, 4차까지 스트레스를 더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현실은 평온한데도 무엇보다 내 마음이 시끄러워서 삶이, 자기 자신이 버거운 사람들이 적지 않다. 때문에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고 하는 정신을 가급적 조용히 현재에 머물게끔 만드는 법과 그 효과에 대한 연구들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1차에서 훌쩍 4차까지 가는 생각을 멈추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바로 지금의 내 상태, 감정, 생각들에 대해 평가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관련해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춥고 비오는 날 잔뜩 젖어서 덜덜 떨고 있는 새를 보고 정말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 적어도 이 새는 비에 젖어서 춥다는 것 외에 추가적인 생각들—축축하고 차가운게 너무 싫어. 최악이야. 진짜 너무 짜증나. 비는 도대체 왜 오는 거야. 날개 언제 말리지? 새로 사는 거 너무 싫다—같이 인간이라면 구구절절 늘어놓을 생각들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고 했다.
순간 1차적인 불행만 느끼면 그만인 새가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와 달리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온한 상황에서도 여러가지 가정을 해 가며 겪지 않아도 되는 불행을 스스로 늘려가는 동물이다.
이미 잔뜩 불쾌한 축축함에 대해 자꾸 다시 떠올리며 괴로움을 늘려가지 않는 새처럼,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이나 감정들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되 ‘쓸데 없는 해석’을 끼워넣지 말라는 것이다. 비가 온다, 축축하다, 힘들다 정도에서 멈추면 되지 굳이 이 상황이 싫은 이유를 수십가지 떠올리며 불행 또한 배로 늘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최근 이런 평가하지 않기를 실제로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편두통으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와중에 문득 지금 이 괴로움이 온전히 두통에 의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심하게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물론 짜증과 통증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만 이 둘은 분명 별개이다. 곰곰히 따져보니 나는 단순히 머리가 아픈 것 외에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고 짜증내고 지금보다 더 통증이 심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워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두통이 조금만 밀려와도 덜컥 불안해하며 신경 쓰는 탓에 결과적으로 더 큰 두통을 얻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다. 신체적으로 밀려오는 통증과 나의 감정적 반응(짜증, 화, 두려움)은 별개이며 신체적인 고통이 반드시 마음의 고통이 될 필요는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느끼는 통증이 곧 나인 것은 아니라는 말처럼 감각까지 통제하지는 못하더라도 감각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게도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괴로움이 현실과 별개로 내가 내리는 평가와 판단들에 의해 생긴다는 사실과 내가 겪는 어려움이 곧 나인 것은 아니라는 점 기억해보자.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