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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8.2.25.) 말씀/ 빌립보서 2:5-11,마태복음 27:46
하나님의 마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삼성삼프린턴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잘 한다는 의미는 열심히 섬기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믿음 안에서 평안히 안심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쉽고 간단한 대답이라면 하나님 말씀 잘 순종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마음을 알면 저절로 사랑도 울어나오게 되고, 순종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르면 나름대로 열심히 하다가 속썩이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도 그렇지만 마음을 안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 합니다. 빌립보서 2:5-1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믿는다고 열정만을 가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먼저 그 마음을 알고 마음을 닮고 품고 일치 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한밤의 음악편지를 띄우며 색소폰을 연주하다보니 전에 몰랐던 노래들을 알게 되고, 편지를 쓰면서 가수와 그 노래 배경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저도 그렇지만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내용을 알고 보니 더욱 노래가 마음에 새롭게 다가옵니다” 하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서유석이의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래를 연주하고 음악편지를 띄우게 되었는데 오래전에도 불러보곤 했지만 이번에 한밤의 음악편지를 띄우면서 곡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알게 되니 형식적인 관계를 벗어나서 노래를 깊이 이해하며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모님이 글을 읽고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세상 가요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끌어내시는 목사님은 참 묵상자 이십니다” 알면 깊은 의미가 새겨지고, 더 감동이 되고, 영적인 새로운 세계까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사를 보면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기어이 부숴버리는, 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처럼 ...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처럼 조그만 손으로 장난하고 내 마음이 고민에 잠겨있는 돌보지 않는 나의 여인아. 이렇게 노래가 이어지고, 그리고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반복 됩니다. 사실은 대부분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리듬이 흥겨워서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입니다. 알고보니 '아름다운 사람'이란 이 노래는 서유석이 시집 온 형수의 아름다움에 취해 떠오른 악상에 헷세의 시를 가사로 붙여서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세계적 문학가 헷세의 사랑과 철학적 고뇌가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헷세의 시를 한번 보면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사람(Die Schone) /헤르만 헤세 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 안고서 기어이 부셔버리고 다음날엔 벌써 그것을 준 사람조차 잊고 마는 아이들같이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같이 조그만 손으로 장난을 하고 내 마음이 고뇌에 떠는 것을 돌보지 않는다. 서유석 노래와 거의 비슷합니다. 시 내용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최고의 마음이 담긴 사랑을 보냈는데 상대방은 그 마음을 모르고 아이들이 장난감을 받고서 처음에 좋아하며 가지고 놀다가 부서버리고, 그 다음 날에는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는 아이들 같은 상대방을 생각하며... 고뇌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모르니 사랑이 아픈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 고뇌가 따르는 것입니다.
좀 전에 질문한 것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마음을 아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간에 사랑도 그렇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비결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노래 부른 사람의 어떤 사람인가 알고, 그 노래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될 때 노래의미가 더 잘 새겨지고 들어오듯이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어질 때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가는 길을 힘들어도 기쁨이 되고 행복이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표현되는 말씀들이 많습니다. 스바냐 3: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얼만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너 아니면 죽기까지 짝 사랑의 수준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미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심판하셔도 되는 데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약속하시고,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구릅들로 보호하여 지지키십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을 부르시고 선지자를 세우시고 구원의 역사를 준비하며 펼쳐 가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거역하고 반역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면서 끝없이 사랑의 손을 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은 또 보내십니다. 로마서 10:20-21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마태복음 23:37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침내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 아들이니 공경하겠지 하지만 포도원 일꾼들은 상속자라 하며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세상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에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하나님은 죽음 앞에 아들을 외면하십니다. 마태복음 27:46에 버림 받은 하나님의 아들의 고뇌가 나타 납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십자가의 주님의 기도는 거역하고 잊어버리고 대적하는 인생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 하실 수 없기에 대신 아들을 죽음에 내놓고 외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부르짖음에 무응답으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산나 외치던 군중들은 돌아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항상 거역하며 불평불만하며 살아온 인생들이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마음을 모르면 평생 철따구니 없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비석을 세우고, 제사를 걸 하게 차린다 해도 부모의 마음을 모르고 형제들이 재산문제로 싸우고 다툰다면 그것은 효가 될 수 없습니다. 비싼 음식 물건을 사다드려도 부모의 마음을 알고 합해야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속 자식들도 무모의 마음을 다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도 자식 낳고 길러봐야 안다”라는 말을 합니다. 부모가되고 그 과정을 겪어볼 때 조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식 낳고 살아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설에 루디아가 전복 장조림을 사가지고 왔다 갔습니다. 사돈은 해마다 아주 질 좋은 소고기를 사서 보냅니다. 이야기 저얘기 하다가 추석 선물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무엇을 살까 고심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담아서 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운전사에게도 물어봤다고 합니다. “기사 아저씨 부모님께 선물을 하려면 무엇인 좋은가요?” 그랬더니 이미 그 마음만으로도 효하는 겁니다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물이라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값이 아니라 그 안에 마음이 담겨있기에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필요할 때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감동을 주고, 그 마음을 알게 되면 더욱 가까워지게 됩니다. 물론 선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만 말입니다. 마음이 통하면 일단 인정이 되고 나아가서는 계산을 떠난 신뢰와 친밀한 관계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 다음에 왕을 세울 때 왜 이새의 일곱 아들 중에서 가장 끄트머리 막내 다윗을 택하셨겠습니까? 행전 13:22-23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마음이 합한 그를 통해서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여러문, 마음이 합하지 않는데 큰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 예수님을 세우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중심의 마음을 보시는 분 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합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호6:6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러면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써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아무리 작아도 마음이 담긴 것을 보면 감동이 됩니다. 마음이 없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형식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힘든 것은 마음을 담으려면 생각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때론 고뇌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대충 대강대강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고뇌하시는 이유는 마음을 담으시기 때문 인 것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헤세의 시에도 그런 사랑을 주는 사람의 고뇌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처음에 장난감을 받고서 바라보고 얼싸 안고 좋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돌보지 않고 함부로 취급하다가 기어이 부셔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날엔 벌써 그것을 준 사람조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다 똑같지만 전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 발로 밟아버리고, 선물 준 장갑에 매직 칠 해서 버리고...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같이 조그만 손으로 장난을 하고 내 마음이 고뇌에 떠는 것을 돌보지 않는다.” 가장 소중한 선물인 마음을 몰라주는 아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랑하고 포기 하지 않기에 대신 고뇌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색소폰으로 이 노래를 연주를 하면서 내내 이 시와 노래 가사를 통해서 세상에 가장 소중한 사랑을 내어주셨지만,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기어이 부숴 버리고 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고뇌를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랑의 선물인데 사랑받는 대상인 인간은 그 가치와 준 이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사랑을 준이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쉽게 잊어버립니다. 주는 이와 받는 이의 마음은 그렇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인간은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기에 끊임 없이 보채고 칭얼거리고 깨 부스고 나장판을 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어린아이 같은 우리를 양육하시며 품어주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의 나의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사람아... 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아이들 같으면서도 날마다 살아가는 것은 이런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신앙 성장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일... 그 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신앙도 조금씩 성장하면서 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철들면 정말 변하고, 달라지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신앙도 달라지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평생 떼쓰며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날도 마음을 모르는 자식들 때문에 고뇌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해야할 일들이 많겠지만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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