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얼어붙은 경제상황은 움직이기를 만만찮게 만든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시원하게 새로 뚫린 중부내륙고속도를 타고 중원의 땅 충주로 발걸음을 돌려 옛 고구려 왕국의 부활을 경험해보자.
고구려 역사기행 도중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신라와 백제의 유적까지 골고루 볼 수 있다는 건 충주만이 줄 수 있는 덤이다.
고구려 역사기행은 국보 제250호로 지정된 '중원고구려비'부터 시작한다. 가금면 용전리 입석삼거리 작은 비각 속에 있는 비는 언뜻 보면 초라하다. 이름값을 하는 만큼의 규모가 아니어서다. 비 높이가 144㎝, 폭이 55㎝. 광개토대왕비(높이 6.39m)를 축소해 놓은 닮은꼴이지만 비각 주위로는 울타리조차 없다. 비석 4면에 새겨진 400여 글자도 닳아서 알아보기 어렵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비석이 왜 국보로 지정될 만큼 중요할까.
이 비는 확인된 비석 중 한반도의 유일한 고구려 비석이다. 삼국시대의 지도를 바꿀 만한 계기가 됐다. 이 비로 인해 비로소 고구려의 영역이 한강 부근에서 충주지역까지 내려왔다. 고구려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기념비로 장수왕의 남하정책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문자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79년 고구려비로 밝혀지기 전까지 대장간 건물을 받치는 기둥과 빨래판 등으로 쓰이며 2천여년 세월을 견뎌왔다.
장미산성 가는 길은 입석삼거리에서 원주`제천 방향으로 승용차로 5분 정도만 가면 된다. 왼쪽에 장미산 마을이 나타나고 봉학사 표지판을 따라 1.2㎞ 산길을 더 들어간다. 봉학사 뒤편은 나지막한 야산. 이런 곳에 무슨 산성이 있는가 의아해 하며 5분 정도만 올라가면 전망이 탁 트인다. 충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탄금대 지역을 바라보면 경치만으로도 오를 만한 곳이다.
장미산 정상 부근을 에둘러 쌓은 산성은 대부분 무너져 내린 상태다. 때문에 고구려 산성이라는 의미를 담지않는다면 볼품없어 보이기도 한다. 일부분 복원작업을 했지만 2천940여m에 달하는 산성 대부분은 무너진 돌무더기 그대로 방치돼있어 아쉬움을 준다. 남아있는 산성을 살펴보면 돌 하나를 중심으로 6개의 돌이 맞닿아있는 '6합구조'다. 성을 튼튼하게 쌓기 위한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다. 그런데도 조사에서는 백제유물이 많이 발견됐다. 처음에 백제가 성을 쌓았다가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한 이후 다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장미산성은 충주지역 삼국의 숨결이 고스란히 서려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마애불상군도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금면 봉황리 내동마을 입구 봉황천 다리를 지나 오른쪽 제방을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로 보이는 산 중턱 계단을 타고 오르면 바위에 양각된 마애불을 만난다. 가파른 돌계단과 철제계단을 올라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면 은은한 미소의 부처가 여행자를 맞는다. 전문가들은 걸치고 있는 옷과 좌대 등이 고구려풍이라고 한다.
세월을 견디다 못해 오른쪽 팔 부분이 온전치 못하다. 얼굴윤곽도 바람에 많이 깎여나갔다. 여래좌상 얼굴 둘레로 5기의 화불이 새겨져 있는 것도 특이하다. 충주시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이 마애불상군은 국내 불상조각 가운데 비교적 빠른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고구려 장인이 조각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고구려 유적은 아니지만 중원탑평리 칠층석탑은 시간을 내서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충주시민들은 중앙탑이라고 부른다.
높이 14.5m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며 높다. 우리나라 중앙에 위치한다고 해 중앙탑으로 불린다. 중원고구려비와 충주박물관이 코앞에 있다. 남한강 옆에 있어 강의 범람으로 주변이 침식돼 탑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
문화유산해설사인 박선예씨는 "하늘을 배경으로 탑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르지만 해가 질 무렵 중앙계단 뒤쪽 대각선에서 볼 때가 가장 아름답다"라며 포인트를 짚어준다. 공원 입구에 문화유산해설사들이 상주하는 사무실이 있다. 이들을 찾으면 충주문화유적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친절하게 얻을 수 있다.
'충주 관광문화유적 투어'(시티투어)를 이용하면 충주 주변의 명소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어 편리하다. 참가비는 국립공원입장료를 제외하고 무료. 매주 일요일 정기적으로 운영되며 문화유산해설사의 강좌도 제공된다.
문의=충주시 문화관광과 충주전통문화회(043-850-5177).
◇찾아가는 길
대구에서 가는 당일코스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IC에서 내려 봉황리 마애불상군을 먼저 들르고 장미산성-점심-중원고구려비-중앙탑-충주박물관-탄금대 순으로 코스를 짜는 것이 좋다. 점심은 중앙탑 부근에서 도토리묵밥으로 해결하는 게 시간상으로 유리하다. 대구로 돌아올 때는 충주시내를 거쳐 충주IC를 이용하면 된다. 서대구IC에서 출발하면 휴식시간을 포함해 2시간이면 충주에 도착한다.
◇맛집
도토리묵밥은 이 지방 향토 먹을거리 중의 하나다. 묵을 가늘고 길게 썰어 뜨거운 국물에 신김치, 김을 얹어 밥을 말아먹는다. 독특한 맛으로도, 한끼 식사 양으로도 괜찮다. 충주 시내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으며 중앙탑공원 입구 장수네집(043-855-3456)이 깔끔하다. 한 그릇 5천원. 해장용으로는 올갱이국이 좋다. 시래기를 넣어 끓인 올갱이 국은 속풀이용으로 그만이다.
충주댐 부근의 민물비빔회도 이 지역 향토 음식이다. 댐 부근 그린가든 등에서 맛볼 수 있다. 민물회 1㎏이면 두 사람용으로 너끈하다. 회따로 야채 따로 나오는데 각종 야채에다 다진 마늘, 초장, 콩가루를 넣고 비벼 먹는다. 고소하고 향긋한 게 맛있다. 다소 비싼 게 흠. 요즘 쏘가리는 맛볼 수 없고 산천어 1㎏에 3만5천 원, 송어 1만8천 원, 향어 1만5천 원이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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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봉황리 마애석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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