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진, 그가 이번에 또 일을 쳤다. 민경진의 실제 모델이던 한국천문연구원의 황정아 박사(31). 세계 3대 인명 연감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09년판에 그의 이름이 오른다. 30대에 접어들자마자 세계적인 우주과학자 반열에 오른 것. 대덕밸리 한국천문연구원으로 황정아 박사를 찾아갔더니 “너무 어린 나이에 생긴 일이라 인사 받기가 민망하다”고 말한다.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가 한국천문연구원에 들어온 게 지난해 12월 1일. 지원자 중에서도 최연소였던 이 연구원의 막내다.
어떤 업적을 냈기에 어린 나이에 세계적인 우주과학자가 되었는지 묻자 석사와 박사 논문을 내민다. 〈극지방에서 고에너지 전자 검출을 위한 Solid-State Telescope 개발〉, 〈상대론적 전자들의 동역학:지구 자기권에서 씨앗 전자와 파동-입자간 상호작용〉. 설상가상 박사 논문은 영어로 썼다! 연구 분야를 좀 쉽게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우주환경감시실’로 이끈다. 세계의 인공위성과 레이더들이 관측한 데이터로 실시간 분석하는 우주환경 모니터링 시스템이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다. 우주환경 변화에 민감한 통신회사나 항공사, 공군과 긴밀하게 의사소통하면서 일한다고.
“태양 표면에는 흑점이라는 검은 반점들이 있습니다. 작은 게 지구만 하고, 크면 지구 10배 정도 되는 크기죠. 이 흑점들 때문에 태양이 끊임없이 폭발하는데, 이때 엄청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게 우리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전 세계에서 쏘아 올린 통신, 방송, 기상 등 실용 위성들은 적도상공 고도 3만5786km의 정지궤도를 돌고 있는데, 태양 폭발로 고에너지 입자가 100배씩 증가하는 등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위성들이 타격을 받으면, 통신 두절 등 지구 생활에 직접 피해를 줍니다. 제 연구는 이런 우주환경의 변화가 나타나는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예측해 피해를 막는 것이지요. 기상재해를 막는 일기예보와 비슷한 일이라 할 수 있어요.”
인공위성의 우주과학 실험용 탑재체를 제작할 때 |
정지궤도에서 고에너지 입자들의 변화를 분석한 그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여자 우주과학자라기에 ‘별 보는 소녀’를 연상했다고 했더니 “저는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라 실리적인 사람입니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지금 연구하는 것도 우주의 근원을 밝히는 게 아닌, 실제 삶과 관련 있는 다이내믹한 일이라 재미있다고. 그는 어떻게 과학자, 그것도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었을까? 세계적인 물리학자 파인만처럼 어릴 적부터 부모가 과학적 호기심을 심어 주었을까?
“어린 시절 여수에서 살았는데 아버지는 중졸로 막노동을 하셨고, 어머니는 고졸로 장사를 하셨어요. 부모님은 성실하시고 절약정신이 강했지요. 그러나 남동생이나 저에게 뭐가 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은 없어요. 저는 주로 혼자 지냈는데, 그때 이리저리 미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학원은커녕 참고서 한 권 산 적 없이 선생님이 준 ‘교사용 문제집’을 가지고 공부했던 그는 언제나 1등이었다. 아무리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한 집 딸이었어도 선생님 눈에는 ‘최고’여서 항상 칭찬을 받았다. 친구들은 어릴 적 그를 ‘책 좋아하는 아이’로 기억한다. 책 많은 친구 집은 아무리 멀어도 찾아가 책을 잔뜩 빌려 와 읽었다.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장원이었고, 외고를 나와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중2 때 전남교육청의 과학 영재교실에 들어가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여수 각 중학교의 전교 1등들만 모여 배웠는데, 박사 학위를 가진 선생님들로부터 수학, 과학을 배우니 재미도 있고 앞서 간다는 생각에 뿌듯했지요.”
전남 나주의 과학고로 진학한 후에는 “내 의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똑똑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게 너무 기뻤다”고 한다. 아침 6시면 일어나 운동장 세 바퀴를 뛰었는데, 그는 항상 맨 앞에서 달렸다. 그때는 떠오르는 태양조차 사랑스럽게 보였다고. 고등학교 때는 생명공학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생물반에 들어갔는데, 화학경시대회에도 나갈 정도로 전반적인 성적도 뛰어났다. 2년 후 카이스트 입학. 카이스트에서는 1학년 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자신의 전공을 찾아가는데, 그는 자신이 제일 자신 없다고 생각했던 물리학을 택했다. 제일 똑똑한 아이들이 물리학을 하는 것을 보고 “노력하면 어디까지 될 수 있는지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 과학기술위성 1호 제작에 참여
물리학으로 전공을 정한 다음에도 광섬유, 카오스, 핵물리, 우주물리, 반도체 등 20개 랩을 돌아가며 체험하고, 삼성이나 현대 등 기업체 연구소에서 계절학기를 이용한 현장실습을 하며 진로를 모색했다. 그러다 대학원 때 국내 첫 천문ㆍ우주과학 실험용 위성인 과학기술위성1호(우리별4호)를 만드는 민경욱 교수팀에 합류한 것. 드라마 속 ‘인공위성센터에 파견된 물리학도 민경진’이 그때 그의 모습이다. 실제 머리를 백색으로 탈색한 후 형광빛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다녔을 정도로 괴짜였다. 1997년부터 인공위성이 발사된 2003년 9월까지 그는 이 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막내로, 우주과학 실험용 탑재체 4개 중 하나를 맡아서 제작했다.
“우주과학 실험실에 들어가는 데 경쟁이 심했거든요. 기계를 깎고 납땜질하는 일이라 힘 좋은 남자를 선호했을 텐데, 제가 면접 때 공격적인 질문을 해 대는 것을 보고 근성이 엿보여 뽑았다고 하시더군요.”
그가 제작에 참여한 위성이 러시아에서 우주로 쏘아올려질 때 모니터 화면으로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신기했다”고 한다.
“내가 납땜질하고 본드 붙인 자국이 그대로 있을 텐데. 탑재체 PCB 전자보드에 ‘Designed by Junga Hwang’이라고 금색으로 새겨 넣었습니다. 한때는 저의 자랑이었죠.”
그는 인공위성센터 시절에 대해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그 시절을 겪으며 우주환경 분석이라는 연구 방향이 정해졌고, 인공위성을 제작까지 해본 몇 안 되는 우주과학자가 됐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던 그는 “적성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길러지기도 하는 것 같다”고 한다. 특별히 길이 정해져 있었다기보다 새로운 일, 어려워 보이는 일, 아무도 안 한 일, 남들이 “그거 해봤자 무슨 소용 있겠어?”라는 일을 보면 신이 나서 도전해 왔다고. 여자 혼자여서, 막내여서 힘들었다고 하는 대신 “그러면 재미있지 않아요?”라고 한다. 과학고, 카이스트 등 공부하는 내내 학비를 거의 내지 않아 ‘나라가 공부시킨 셈’이라는 그는 “공부를 안 하거나 일을 쉬고 있으면 나라에 죄짓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뿐 아니라 외교관도, 법관도 되고 싶었다는 그. 대신 하나뿐인 남동생이 검사가 되겠다며 법대를 다니고 있는데, 올해 사법시험 1차를 통과했다.
“카이스트 1학년 때 만난 첫사랑과 결혼했다”는 그는 30개월 된 딸이 있는 엄마이기도 하다. 남편은 경영학을 전공한 회계사로 서울 여의도에서 일하고 있어 주말부부로 생활한다. 남편이 다른 분야에서 일하기에 세상 보는 폭이 넓고 도움 받을 일도 많아 좋다고 한다.
사진 : 문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