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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이 보는 걱정스러운 시조단
김 영 애
시조가 정형시라는 정도만 알고 시조를 배워보겠다고 들어선 지가 10여 년이다. 시력(詩歷) 50-60년 이상의 대선배가 활동하시는 상황에서 아직은 신인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결코 길지 못한 시력과 시조 이론에 대한 지식도 없으면서 감히 시조단을 향해 걱정스럽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외람되기 짝이 없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오래 젖어있는 사람보다 신인이니까 눈에 선 것들이 더 잘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신인의 눈에 비춰진 시조단의 문제는 무엇일까 정도로 봐 주면 좋겠다.
우리 문단은 긴 세월을 뿌리문학으로 커 온 시조의 위치를 명확히 정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에 받은 어느 문학지의 원고 청탁에 장르를 시. 시조. 수필 등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 문학지는 시와 시조를 병기함으로써 시를 자유시라고 보고 있음을 나타냈다. 그런데 어느 지방 신문사에서 게시한 문학상 공모 안내에는 응모분야에 시조가 없었다. 시조를 시에 포함한다는 말인지, 시조를 제외한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전자이든 후자이든 시조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전자라면 그들은 시조를 시에 포함한다는 말이며 후자라면 문학상에서 시조를 배제하겠다는 말이니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아마 이 신문사도 시조를 배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렇게 우리문단은 주최하는 사람에 따라 시조를 시조로 표기 하거나, 시조를 시에 포함하거나, 시조를 배제하는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런 우리의 문단이 걱정스럽다.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 백일장에서도 시조를 응모분야에 넣는 행사는 극히 드물다. 한국문인협회에서 구분한 장르에 엄연히 시조가 따로 있으나 문학 활동에서는 시조가 범국민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시조인에 의해서만 시조 짓기 행사를 치러 명맥을 유지하는 게 시조인 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사람에 따라 시조의 위치를 흔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루 빨리 시조의 자리를 찾게 해서 모든 문학행사에서 시조는 우선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독립적으로 표기되어야 한다고 본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아직도 시조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문학행사에서 시조가 빠지는 홀대를 받는 원인을 되짚어 들어가 보면 시조에 응모할 인구가 적다는 탓이고, 시조인구가 적은 원인은 각 급 학교에서 시조를 다루지 않은 탓이고, 다루지 않은 이유는 교과서에 시조가 없기 때문이다. 중등학교에서 겨우 몇 편의 시조가 있을 뿐이고 초등에서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교과서에는 왜 시조가 이토록 귀할까? 미안하지만 당국자들이 시조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책임 있는 자들이 우리 것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으며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조계승의 임무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렇게 지내 온 교육계는 깜짝 놀랄 현실로 돌아왔다. 필자가 시조집을 출간했다는 소문을 듣고 주변 사람이 내게 물었다. “시는 뭐고 시조는 뭡니까? 시랑 시조랑 어떻게 달라요?” 하는 것이다. 그는 50대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시조를 짓지는 못해도 국민으로서 시조는 정형시라는 정도와 시는 서양에서 들어 온 것이고 시조는 우리 것이란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대학을 나오고도 그걸 모르는 현실이 정말인가 싶게 놀라웠다. 백일장에서 시조가 빠져도 교과서에서 시조가 없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시조시인도 많으며 알고는 있으나 걱정이나 한탄만 할 뿐 해결하려고 뛰는 시조시인도 아직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시조의 정형성을 시조시인들이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정작 심각한 문제는 우리 시조시인들에게 있다. 시조는 3장 6구 12음보 43자이다. 우리글의 품사의 특성상 부득이 한 두 자가 필요한 경우가 있어 45자까지를 허용한다는 학설이 지배적인데 이를 다 알면서도 음수율을 지키지 않고 심지어는 50자가 훨씬 넘게 쓰는 시조시인도 있다. 어느 문학지의 기고문에서 현대시조는 현대의 생각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종장 첫 음보만 제외하고는 자유분방하게 쓰면 될 일이지 갑갑한 틀에 꼭 맞추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글을 읽고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이것이 서로의 학설로 굳어져서 대립 아닌 대립처럼 서로의 생각을 고수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왜 시조를 형식이 있는 시, 정형시라고 하겠는가?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이 시조니까 시조를 쓰려면 틀을 지켜야하는 것은 시조시인으로서 상식이다. 현대시조는 시조의 형식을 바꾸어 쉽게 쓴 게 아니라 현대에 쓰여 지고 현대의 생각을 담은 것이 현대시조이다. 시대적으로 쓰여 진 그때그때가 현대시조였고 세월이 바뀌고 먼 과거가 되면 옛 시조가 되는 것이다. 담긴 내용은 달라져도 담는 그릇은 그대로 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형식을 바꾸면 정형의 파괴가 된다. 이것을 걱정하는 시조인 들은 그런 작품을 일러 파격시조라고 하는데 엄밀히 따져 보면 파격시조가 아니라 그냥 자유시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시조의 정형은 축구에서 규칙이다. 규칙이 있는 것은 반드시 규칙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 시조도 쓰려면 정해진 틀에 맞게 써야 한다. 43자 내지 45자인 시조를 예닐곱 자 씩 더 쓰는 것은 마치 바둑에서 몇 점 미리 두는 것과 같이 시시하게 생각된다. 정해진 숫자 안에서 내 생각을 모두 펴야 하고, 사물을 노래하자면 어렵고 힘들어서 가끔은 서너 자 풀어쓰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으나 고심 끝에 규칙을 지켜 완성하고 나면 절창에 미치지 못해도 그 희열은 정말 대단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파격을 일삼는 시조를 쓰는 분들 가운데는 시조단에서 명성이 있고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후진까지 정형을 무시한 시인으로 양성하는 것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시 같은 시조가 우수작품으로 문학상을 받거나 좋은 작품으로 소개 되는 것도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수상작이나 좋은 시조의 평가 기준은 정형을 지켰느냐가 제일의 관건이 되어야 하고, 그다음이 시적 표현이여야 할 것이다. 우리 시조단이 파격된 시조를 보고 ‘그것은 시조가 아니라 자유시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와 저명한 분의 작품이니까 그냥 좋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못 마땅하며 자유시를 왜 좋은 시조라고 읽고 대접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시조의 명맥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자유시 같은 시조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시조와 시의 뚜렷한 차이를 허물면서 시조의 쇠락을 가져올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예에 ’시와 시조가 어떻게 달라요?’ 하고 묻던 말이 시와 시조를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니고 이러한 시조단의 실정을 뜨끔하게 비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의 시조를 말하자면 일본의 하이쿠를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정형시는 하이쿠이다. 역시 3장으로서 5.7.5 모두 17자의 정형시다. 자수를 지키는 것도 필수이지만 17자 속에 반드시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季語) 와 감탄사 같은, 글을 끊어 읽는 장치의 절자(切字)를 넣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시조는 정형만 요구할 뿐 내용에 대한 제약은 없으니 훨씬 자유로운 셈이다. 그러니 자 수가 모자라 시조가 어렵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이쿠도 처음에는 5.7.5로 매기는 노래와 7.7로 받는 連歌로 이어지는 노래였는데 매기는 노래 5.7.5만 떼어서 하나의 시가로 정착시켰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도 계어(季語)가 없거나 자수가 빠지는 작품도 나오지만 그것을 하이쿠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수를 정확히 지킨 것만 하이쿠라고 인정하는 그들의 단결 때문에 하이쿠의 특성이 명확해서 하이쿠를 쓰는 세계인들이 1000만 명이나 이른다는 말을 우리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파격을 시조로 인정하는 우리로서 생각할 부분이 많은 말이다. 우리조차 설왕설래하는 시조의 정형을 외국인이 어떻게 배우려 하겠는가?
하이쿠의 문학적 가치는 알 바 없으되 지도층이 의견을 모아 통일된 시안을 결정하고 전 국민이 따른다는 것은 부럽고 그 결과 세계인들에게 하이쿠를 하나의 모양으로 내놓았다는 그네들의 지략이 부럽기만 하다.
아직도 시조에 관계되는 용어가 통일되지 못하고 분분한 의견이 난무하는 것도 문제이다. 시조를 쓰는 사람을 일러 시조시인이라 불러야하는지 시조인 이라 불러야 하는지를 두고 원로 시인들께서 토론하시는 걸 보고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으며 시조의 꽃은 단시조인데 왜 각종 문학상은 연시조가 독차지 되는지 그것도 신인으로서 참 의아스럽다. 시조계의 뜻있는 단체와 몇몇 어르신들이 시조를 유네스코에 등재해 보겠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 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분들의 수고가 참으로 눈물겹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들의 꿈이지만 아래의 문제들이 유네스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등재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한국인에 의해 창작되는 모든 시조가 43자 내지 45자가 아니어서 시조의 정형을 정의 할 수 없다.
둘째, 시조가 특정 계층에서만 즉, 극히 일부에 의해서만 창작되는 것으로서는 한국의 대중 문학이라 인정 할 수 없다.
셋째, 시조가 아닌 것을 시조로 인정하는 풍토로는 시조의 특성을 살릴 수 없다.
유네스코 등재 조건은 가장 한국적이어야 한다. 정형을 벗어나서 자유시와 흡사한 것이 한국적이라고 우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이런 문제가 선결되어야 유네스코등재가 쉬울 것이라 내다본다.
시조단의 문제는 시조시인들이 해결해야 한다.
지켜보면서 답답했던 것을 신인이라 핑계 대며 감히 시조단의 원로님들께 건의를 드린다. 시조의 교과서수록을 위해 수고하시는 일 외에도 분분한 의견이 존재하는 시조단의 문제를 하루 속히 해결해 모든 시조시인들이 거부감 없이 공유할 수 있는 규정을 범 시인적으로, 학술적으로 한목소리가 되게 정리해 주시기 바란다. 말하자면 시조는 시에 포함이냐, 독립이냐. 단시조 한 수는 몇 자까지냐. 45자가 넘는 시조는 시조냐 자유시냐. 시조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시조시인인가 시조인 인가? 시조가 표기 된 데서는 시가 자유시이지만, 시조 표기가 없는 데서 시는 무엇을 가리키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디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숙고해야 될 것이다.
생각을 달리하는 시조시인들이 나라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형식과 명칭, 용어에 대한 통일을 천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갑론을박을 잠재우고 모든 국민이 정형으로 시조를 쓸 때 시조인구의 저변확대와 시조의 독창성이 인정되고 시조가 민족의 뿌리문학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것에 유형적으로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따른 생활 잡기가 있으며 무형적으로는 생활풍습이 있고 정신적으로는 우리의 가락과 시조가 있다. 모든 우리의 것은 우리가 지키고 보존하고 계승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그러나 서양문물의 급격한 유입으로 유형적인 우리의 것이 편의상이나 편리성 때문에 계량되고 개선되고 더러는 소멸되기도 했다. 생활 풍습도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세태에 따라 편의상 더러는 생략되거나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급변하는 세태에서 효율성을 위해 물질의 변화는 허용할 수 있고, 때로는 불가피하게 수용해야하는 것도 있지만 끝까지 변질되어서는 안 되고 소멸되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 우리들의 정신적 문화이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글로 우리 정서를 나타낸 우리의 문학 곧 시조이다. 시조는 우리의 뿌리 문학이면서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며 우리 민족이 만들어 낸 독특한 정형시이며 무형 문화재이다. 그래서 시조는 저고리 동정의 넓이가 넓어지다 좁아지다 하듯이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정형시를 가진 민족은 중국, 일본, 유럽, 한국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만이 정형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똑똑한 후손들이 있는 민족만이 그 원형을 자자손손 물려줄 것이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력
한맥문학 수필등단(2005). 시조문학 등단(2007) 월간 신문예 자유시 등단(2013)
활동: 월하시조문학회회장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영주시조문학회 회장, 여성시조문학회이사. 영주 시민신문 논설위원. 시조문우회부회장,
저서: 『초승달에 걸린 반지』 『별이 되는 꽃』, 『쪽빛 하늘 한 조각』.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
수상: 한국시조협회문학상. 한국시조문학상. 외 다수
첫댓글 많이 배웁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조시인이 모두 공감하는 글입니다.
즐겁게 감상합니다. 잘 지적하셨습니다. '글의 시조'는 '넓은 의미에서의 시'에 속합니다. 모든 행사(편집, 출판 포함)를 주관하는 측에서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시조시인들만의 시조놀이"... 혹 (사)한국시조시인협회 카페에 가입하셨으면, 그기도 이 글 좀 올려주십시오! 참고로 이미 세계적 정형시로 자리잡은 일본의 하이쿠가 시사하는 바 큽니다. 저는 주로 일반 문단에 참여하여, 그기서 평가하는 '시조와 시조시인' 등의 기준과 흐름 등을 객관적 차원에서 자주 듣는 편입니다.
시조의 중요성과 정형성을 말씀하시는 님의 주장에 적극 동감입니다.
주변환경이 어렵더라도 뜻을 모아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합니다.함께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