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6월 말쯤으로 생각 난다.
그 당시 나는 형님이 경영하는 섬유회사에 근무 했다.
1,2차 오일 쇼크 이후 찾아온 호경기라 생산량은 불어나는데 그에 맞는 자제수급이 여의치 않아 일부 화공약품은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으니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을때 이다.
그 날도 오전에 부산의 화공약품 수입상으로 부터 과산화수소(일명 과수)가 도착했으니 빨리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고 오후 1시경 부산행 새마을 열차를 탔다.
내자리는 창측인데 통로측에 젊은 처녀가 앉아 있어서 오늘은 좀 괜찮은 이웃이 있구나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앉았다.
한참을 무료하게 가다가 경산을 지날쯤 옆을 보니 주간한국이 앞등받이에 꽂혀 있길래
"미안 합니다만 신문 좀 빌려 볼까요"
하니 아무말 없이 내어 주는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도 여행을 자주 하지만 심문을 사보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것이 절약이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언제든지 볼수 있고 빌려봐도 된다는 마음과 집에가면 언제든지 신문이 있다는 느긋한 마음이기 때문인것 같다.
그러나 신문을 뺀 그자리에서 나는 "교육학"이라는 대학교재를 발견하고 옆에 앉은 젊은 여자에 대해서 한껏 높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물론 신문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옆에 있는 젊은 여자는 아마 대학생일거야,그리고 막 기말 시험을 끝내고 집엘 가는 길일거야,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약간 핼쓱한것이 시험에서 고생좀 했는것 같은 인상이네(헬쓱한 이유는 마지막에 알수 있지만),
여러가지로 상상하면서도 나는 말주변이 신통치를 않아서 먼저 말은 건네지 못하고 있는데 기차가 구포역을 지나고 있을때
"아저씨 미안하지만 선반위의 가방 좀 내려 주실래요?"하지 않는가.
"아! 네..."하면서 통로쪽으로 나가서 선반위의 가방을 내렸다.
"고맙습니다"하며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참 교양이 있는 여학생이구나 생각했다.
가방은 그 당시로는 그리 흔하지 않는,어쩌면 상류층의 상징인 샘소나이트 수트케이스였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을 다니고 있지만 지금도 샘소나이트 가방은 없다.
그러니 이 여학생은 아마 부자집 딸 일거라고 생각했다.
그 여학생을 안쪽으로 앉으라 하고 나는 통로 쪽으로 앉으면서
"집이 부산인가 보지요?"
"네,그런데 아저씨는...?"
"네, 나는 대구라예, 볼일이 있어서 급히 부산엘 오는 길이라예"
나는 묻지도 않는 말을 하였다. 아마 긴장을 풀기 위해서 그랬던것 같다.
부산역에 도착하여 내릴때 나는
"이 가방 꽤나 무거운데 내가 들어 드리지요"하면서 가방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출찰구를로 걸어나오면서
"여기서 중앙동을 갈려면 어떻게 가지요?"
나는 화공약품상들이 밀집해 있는 중앙동을 여러번 가 보았기에 눈감고도 갈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아,네, 저하고 같은 방향이니 택시타고 가면서 내리시면 됩니다"한다.
"아,그래요 .댁은 어디신데요?"
"네, 송도 입니다."
송도는 신혼여행때 살짝 들려서 회 몇점 먹고 왔던 기억밖에 없지만 그 곳은 부자들이 사는 고급주택들이 있을거라고 그리고 이 여학생집도 송도 언덕배기에 있는 부자집일거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가는택시안에서
"부산은 한두번 와 봤지만 구경할거리가 뭐 괜찮은것 없십니꺼?"
이것 또한 너무 의도적인 질문을 했다.아니 질문이라기 보다는 끼있는질문을 무의식중에 했다고 할수 있다.
"네,좋은곳 많이 있죠, 언제 볼일 끝납니까?" 생각지도 않는 대답에
"한두시간후면 끝나죠. 그리큰 일은 아니라서..."
"아, 그러세요. 끝나시거던 연락해 주세요. 이거 제 전화 번홉니다."
하면서 수첩 메모지를 찢어서 전화번호를 적어 주지 않는가.
그러던중에 택시가 중앙동에 도착하여 메모를 얼른 받아들고 내리면서 택시비를 낼려고 하니 자기가 내겠다고한다.
역시 부자집 처녀는 뭔가는 달라 하고 생각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화공약품상회에 들러갔다.
"어, 이상무,뭐 기분좋은 일 있어요. 콧노래까지 하는걸 보니."
"응, 그냥..."
두사람의 일이란 돈주고 물건 사는일이라 한시간 이내에 끝이 났다.
"이 상무, 요 앞 자갈치가서 대낮이지만 한잔 해 야지?"
"엉, 잠깐 어데 전화 할때가 한군데 있어서 ..."
하면서 그 처녀로 부터 받었던 메모지를 보고 전화를 돌렸다.
"여보세요, 송도지요? * * *씨 좀 부탁 합니다"
전화속의 나이든 여자는 아마 그 처녀의 엄마 같은 목소리로 송도라고 대답하고 * *야 하면서 딸을 부르는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다가 상냥한 목소리의 그처녀가
"네, 전화 바꿔습니다."
"아까, 저...."하니
"아저씨네요, 일찍 일이 끝나셨네요. 지금 어디 계세요?"한다.
"어엉, 지금 중앙동인데..."하니
"그러세요, 그러면 제가 그쪽으로 나가지요"한다
"아니, 그보다 내가 그쪽으로 갈께. 어디로 가면 되지?"
벌써 반말이 되었다.그리고 복잡한 시내 보다는 무드있는 해변의 송도가 좋을거라고 생각해서 였다.
처녀가 시내로 나오겠다는 몇번의 이야기도 나의 고집으로 꺽고 송도 어느곳으로 가야할지를 묻는데,
"천일집으로 오세요, 송도 윗길로요."한다.
뭔가는 숫자 맞춤이 삐끄러지는감을 얼른 느낄수 있었다.
천일집이라니? 뭐 하는집일까? 식당일까? 아니면 술 집일까?
아마 식당 아니면 술 집일거야 하면서 부모가 하는업이니 크게 신경쓸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리로 갈려고 마음을 정했다.
"김 사장님, 오늘 술은 못 하겠고 어디 좀 다녀올때가 있는데..."
"어딘데..."
"응,송돈덴, 송도 웃길로 오라는구먼, 거기가 부자집 많은동넨가요?"
"뭐! 송도 웃길?....흐흐흐...이상무!취향이 그 쪽이야?"
"와, 뭐 잘못된나요?"
그러나 직감적으로 뭔가는 이상하다는 감을 잡을수 있었다.
"이상무, 아직도 않가봤어?
"어데를요?"
"정말 몰라?"
"완월동 말야! 이제 알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