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민음사, 2008
신문에서 철학자 강신주 님이 소개한 이 책 이야기를 읽고 얼른 이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도서관에 없어서 시내 서점으로 달려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코너에서 읽었습니다.
19세기 파리에 살았던 시인 '보들레르'는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자신 앞에 왔을 때 아무 말 없이 그를 두들겨 팼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구타에 거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 거지도 대들며 시인과 뒤엉켰습니다.
보들레르의 이런 행동은 거지를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봤기 때문이랍니다.
"평등함을 증명해 주는 자만이 남과 동등하며,
자유를 정복할 줄 아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가치가 있다." 272쪽
돈을 구걸하는 이와 주는 이. 이 불평등한 관계를 바꾸기 위해 시인은 온몸을 던진 겁니다.
그는 거지를 향한 값싼 동정 대신 이렇게 주먹을 주고받음으로써,
이제 서로 동등한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구걸하면서 한없이 나약하고 비굴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던 거지도
갑작스러운 낯선 행인의 주먹세례에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갑자기 - 오, 기적이다! 오, 자기 이론의 훌륭함을 증명한 철학자의 즐거움이 이렇겠지! - 이 송장이나 다를 바 없는 늙은이가, 그처럼 형편없이 망가진 기계에서 결코 가능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런 힘으로, 몸을 뒤집어 벌떡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늙어빠진 불한당은 내가 좋은 징조로 생각하는 증오에 타는 시선을 보이며 나에게 덤벼들어 내 눈을 때려 멍들게 하고, 이를 네 개나 부러뜨리고, 내가 사용했던 나뭇가지로 나를 석고처럼 사정없이 후려쳤다. 273쪽
시인은 그걸 의도한 겁니다.
자기 삶을 사는 모습, 자기 본성에 충실한 모습,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었던 겁니다.
시인은 넘어진 몸을 일으키며 이제 거지에게 다가가
당신 삶을 위해 필요한 이 돈을 받아달라 오히려 '부탁'했습니다.
이제 서로 아는 사이, 동등한 인격적 관계가 되었으므로 이 일을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나의 과감한 치료법으로 나는 그에게 자존심과 생기를 되찾아 준 것이다. 274쪽
괴이하게 들리는 이 이야기가 우리 사회복지사에게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140여 년 전 살았던 시인도 누군가를 도울 때 그와 인격적 관계, 동등한 관계를 생각합니다.
사람 돕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회복지사는 보들레르처럼
그런 관계를 위해 온몸을 던질 수 있을까요?
우리 현장에서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은 생각처럼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 관해 당사자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일이 수월하게 이뤄질 뿐 아니라
이로써 당사자를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아니 더 낮은 곳에서 당사자를 섬기는 구체적 행위가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일입니다.
시인처럼 주먹을 날려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 그런데 유명한 시인들은 산문시를 왜 이렇게 어렵게 쓸까요?
인문학도 배운 사람만이 누리는 사치라 생각할까요?
사회 약자를 대상으로 쓴 시이지만, 정작 그들은 자기를 표현하거나 이해하려는 글을
읽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저는 어린이 시를 좋아합니다.
읽기도 편하고, 이해도 쉽고, 소박하고, 꾸미지 않고, 무엇보다 놀라운 상상력!
첫댓글 고맙습니다.
재미있네요 선생님.^^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이었겠지만, 알고 보면 시인의 뜻이 참 귀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