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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연인 오드리를 추억하다
봄, 봄이다! 여기저기에 막 피려 하는 꽃봉오리들이 내게 눈길을 마구 던진다. 산수유, 목련, 벚꽃, 개나리… 순위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가 다 사랑스럽다. 출근길 무엇에 홀린 듯 꽃봉오리를 한참 들여다보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되어 버렸다. 왜 저 꽃봉오리들을 좋아하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내 느낌만으로 그들에게 이끌렸기에 논리적인 설명은 거의 불가능하다.
봄꽃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아기의 작은 손과 발, 소녀의 해맑은 웃음, 후리지아의 향기와 수선화의 도도한 아름다움, 산들바람, 꿈과 사랑이라는 단어, 꽃보다 남자의 김 범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는 딱히 시원스레 대지 못한다.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들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좋은 것이다. 내가 막연히 좋아하는 대상 중에 오드리 헵번을 빼놓을 수는 없다. 나는 그녀가 '그냥' 좋다.
내가 오드리 헵번을 TV에서 본 게 정확히 몇 살 때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고생 때가 아니었을까. 그 당시 컬러TV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흑백영화가 방영되기라도 하면 그 묘한 매력에 빠져 TV 앞에서 헤어나오질 못했었다. 그녀의 출세작이자 대부분의 사람에게 각인된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본 그때의 감동, 아니 충격의 후유증을 나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앓고 있다. 내 북로그의 프로필 사진도, 블로그에 스크랩해 놓은 '오드리 헵번이 마지막 크리스마스 이브에 두 아들에게 남긴 말'도,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깔아 놓은 12장의 슬라이드 사진도 모두가 오드리 헵번인 걸 보면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막연하게 좋기만 하다.
그녀에 대한 목마름은 나를 책으로 이끌었다. 미공개 사진 70여 컷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이미 고인이 된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행복, 성공, 아름다움, 사랑, 가정, 우정, 삶, 스타일, 일 등으로 구분하여 '사랑받는 여자의 10가지 자기관리법'이라는 솔깃한 부주제에 담아낸 이 책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굳이 부주제의 달콤함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그녀에 대한 책을 한 권 소장하고 싶었고, 아름다운 외모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영혼을 닮고 싶었다. 워너비 오드리(Wannabe Audrey)는 이 책의 제목이다. wannabe란 '(인기인, 연예인 등의) 열렬한 팬, (인기인 등을) 닮고자 하는 사람, 열망하는, 동경하는, 되고 싶어하는'이란 뜻이다. 그녀를 닮고 싶어 책을 펼쳐들었다. 그녀가 곁에서 속삭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게 멘토가 되어 주었고 깊은 인상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살아온 환경은 내 예상보다 순탄치만은 않았다. 귀족 태생의 어머니와 재혼한 아버지 사이에서 오드리는 태어났다. 오드리는 평범한 소녀였고 발레교습을 받으며 제2의 안나 파블로바가 되기를 꿈꾸는 소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 무렵, 열한 살의 오드리는 전쟁을 피해 싱글맘이 된 엄마와 함께 네덜란드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5년간 독일군의 억류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다. 죽음, 가난, 위험, 전쟁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유니세프 선행 홍보대사로 그녀를 이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리나를 꿈꾸었던 그녀는 돈이 필요했기에 21살의 나이에 뮤지컬 등 여러 쇼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고, 우연히 각본가와 감독의 눈에 띄어 브로드웨이 연극과 할리우드 영화에 동시 출연계약을 맺게 된다. 그녀는 신인 여배우로서 <운디네>로 토니상을 받았고, <로마의 휴일>로 오스카상을 동시에 거머쥐면서 세계 영화팬의 주목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배우가 되려고 탄탄히 연기수업을 받고 있던 배우지망생이 아니었다. 그녀의 근면함과 지치지 않는 노력, 연기에 대한 삶과 열정이 그 부족한 빈자리를 채워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일에 대한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 특히 아들 숀에 대한 모성애보다 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드리는 여러 해 동안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와 그녀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하는 세상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다가 할리우드를 떠나 스위스 집으로 돌아갔고 이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은하와 고현정이 영화계를 떠날 때 많이 섭섭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팬들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에 나는 박수를 보내게 된다. 나 또한 일보다는 가족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해 좀 더 알아보면, 1929년 벨기에 출생, 17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49킬로그램의 몸무게, 커다란 갈색 눈동자와 오똑한 콧날이 매력적인, 가슴이 작고 발이 큰 게 스스로 콤플렉스였던 그녀,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째 7살 연하의 로버트 월더스와의 만남, 디자이너 지방시와의 인연으로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헵번 스타일의 의상을 유행시켰던 그녀는 평소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당당하게 연기를 완벽히 소화해냈다고 한다. 유럽적인 기품과 우아함이 자연스레 묻어나던 그녀를 나는 너무나도 사랑했고 아직도 못 잊어 그리워하고 있다.
그녀를 회상하면 제일 먼저 유니세프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유니세프 선행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 건 59세였다고 한다. 젊었을 때보다 더 말라 야윈듯한 모습, 얼굴 곳곳에 주름이 깊게 진 그녀가 아랑곳없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TV에서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의 두 아들만을 사랑하지 않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빈곤한 삶을 사는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젊은 날의 모습보다 내 눈에는 더 아름다워보였다. 6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몇 년의 세월을 터키, 남아메리카, 중미, 수난, 방글라데시, 베트남, 소말리아를 돌며 그들이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세계에 알리고 자선기금을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그녀를 책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녀처럼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 위한 10가지 자기관리법을 배우며 나는 그녀를 하나둘 알아갔다. 그냥, 막연히 좋아했던 그녀를 차츰 알게 되자 그녀에 대한 나의 느낌은 더 각별해진 것 같다. 창가에 앉아 기타를 치며 Moon Liver를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봄꽃처럼 떠나간 오드리, 그 향기로운 발자취는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겨두었다. 오드리는 정말로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만큼이나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만났다. 그녀가 걸어간 향기로운 봄 길을 나도 따라 걷고 싶어졌다.
책 속 밑줄 긋기
와인잔을 앞에 두고 세상을 보라 그것이 바로 장밋빛 인생이다. - 오드리 헵번 (5쪽)
가진 것 없이도 크나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 모든 것을 갖고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행복의 길에 이르는 해답을 구하고 있다. 만일 행복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사는 곳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달려 있다면? 어쩌면 우리게에 필요한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비춰줄 장미빛 안경인지도 모른다. (15쪽)
"하루를 골라라. 그리고 철저하게 그날을 즐겨라. 다가오는 날도, 사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과거는 현재에 감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 안달복달할 필요는 없다. 나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느라 현재의 어느 한순간도 망치고 싶지 않다." (18족)
"성공이란 당신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고, 당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고, 당신이 그 일을 하는 방식을 좋아하는 것이다." - 마야 안젤루, 시인 (47쪽)
"마음이 그냥 부서져버린다. 그게 다다. 하지만 남을 비난할 수도,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언젠가 다시 나를 아껴줄 누군가를 찾을 행운을 바라는 수밖에." (94쪽)
희망에 찬 목소리로 오드리는 우리에게 말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곧 우리 믿음대로 될 테니까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 일은 유니세프를 도와 아이들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어린이들이 우리 바람대로 건강하게 자라나 생산적인 시민으로서, 그들의 나라를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진실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오드리가 세상과 나누었던 그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어주길, 그리고 그녀의 삶이 우리를 고양시키길 바란다. -멜리사 헬스턴 (7쪽)
2009. 03. 23 Written by Das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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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료출처 : http://booklog.kyobobook.co.kr/dasomdream 이제 책 읽는 것도 조금 줄여야 될 것 같아요. 공부가 자꾸 제자리걸음이니 큰일입니다. '책 속 밑줄긋기'가 공부하시는 데 힘이 되시길 바라며 올려봅니다. ^^;;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