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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신의 기호(symbol), 십자가
십자가를 뜻하는 라틴어 크룩스(crux)는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의 번역이다. 그러나
'막대기'가 '목발'을 의미하지 않는것처럼 헬라어 스타우로스는 크룩스를 의미하지 않는다.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는 주로 곧은 말뚝 혹은 기둥을 의미 하며, 가로 질러놓은 두토막
의 재목을 의미하지않는다. 예를들면, '울타리의 막대'(호메로스의 Odyssey 14:11), '성채의
버팀대'(크세노폰 Xenophon, Anababsis V. 2.21), '토대(土臺)의 버팀대'(헤로도토스Herod
otus, Hist. V. 6)등을 들수 있다.
이와같이 스타우로스는 고전 헬라어 전체에서 말뚝이나 기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가 널리퍼진 뒤에야 헬라어 스타우로스는 십자가를 뜻하게 되었다)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에서도 예수가 매달린 형벌의 도구를 '스타우로스'로 표기하고 있다.
고대 세계에 있어서 말뚝이나 나무에 매다는 처형은 페르시아, 앗수르, 페니키아, 이집트인 등
의 관습이었고, 후에 페르시아인과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전달 되었다고 한
다. 당시에 사형수들에게는 말뚝에 묶어놓고 손과 발에 못을 박거나, 아니면 말뚝에 묶어놓고
창으로 찔러서 사형을 집행했다.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십자가와 가장 유사한것은 T자 형 말뚝
일 것이다. 예수는 十자 형태의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다. 나무기둥에 매달려 죽었다!
'이중유산: 성경과 대영박물관'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헬라어로 신약의 십자가에 해당하는 단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아는것은 충격적인 일일지
모른다. '십자가'로 번역된 단어는 언제나 '기둥' 혹은 '곧은 말뚝'을 뜻하는 헬라 단어 '스타우
로스'다.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집트와 콘스탄티누스로부터 유
래한 것이다." [Norman S Prescott / Dual Heritage:The Bible and the British Museum / Od
hams Books]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카타콤(지하묘지)의 벽에는 공작, 비둘기, 물고기가 그려졌
을 뿐이었고 그 외의 유적에서도 十자모양의 십자가 유적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초대교회신자
들은 십자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형벌의 도구로 쓰인 말뚝에 관심을 가
지지 않았던 것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십자가를 널리 퍼트린 장본인은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는 점이다. 그
는 꿈에서 본 십자가를 군대의 방패에 표시한뒤 승리했다. 그런데 이미 로마의 군인들 사이에
서 유행했던 미트라교에서도 군인들의 이마에 X를 표시하면 전투에서 죽지않는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다시 말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갑자기 태양신의 기호(symbol)를 들고 나타나서 십자가 경배를 조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십자가가 기독교 예술 전면에 등장했으며 공경화 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뒤에는
태양신과 태양신 숭배자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십자가에 대해서 '두산세계대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고대민족 사이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쓰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바빌로니아인(人)이나 칼데아인은 하늘의 신인 아누(Anu)의 상징으
로서 등변십자가(그리스식 십자가)를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은 영생의 상징으로서 바퀴가
달린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또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폴론신(神)이 십자형의 홀(笏)을 가지고
있고, 게르만신화에서는 토르신(神)이 십자 모양의 해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만자(卍字:범어로 Zrivatsa:갈고리형 십자가)'가 사용되었고, 힌두교에
서는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가 가네사(ganesa)라 불리는 남성적 원리를 상징
하였으며, 그 변형인 왼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인 사우바스티카(sauvastika)는 칼
리(kali)라 불리는 여성적 원리를 상징하였다.
그밖에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인, 페니키아인, 에트루리아인, 로마인, 갈리아 지방이나 브리
타니아의 켈트족,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페루 등지의 주민 사이에 널리 종교적 의의를 가지고
사용 되어 왔다. 그 때문에 일부 학자는 십자가를 남근(男根)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십자가 cross항목]
십자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지방에서부터 시작된 태양 숭배의 표시로서 그것이 앗시리아, 페
르시아, 이집트,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래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Horus)의 사제들이 입는 사제복에는 장미 모양의 말타 십자가
(Maltese cross)들이 둘러져 있는데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사제복도 동일하다. 장미(the Rose)
는 오로라(Aurora: 세미라미스의 다른 이름)와 태양신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 빛의 부활과 생명
의 갱신을 가져다 주는 동녘(Dawn)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장미가 십자가와 결합한 말타 십자가는 영원한 새벽의 동녘(the Dawn of Eternal Life)을 의미 하면서
모든 민족들이 소망하는 구원자를 상징하고 있다. 이 말타 십자가는 오늘날 로마 카톨릭의 주교단(Bishop's
committee)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인쇄물에 찍히는 출판허가(Imprimatur)
의 상징이기도 하다. (로마 카톨릭이 승인하는 모든 성경들에는 이 출판 허가표시가 붙게 되어 있는데,
개신교 용으로 나올 때는 변형된 도안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빌론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기 위하여 십자가의 네 끝에 세 개의 잎사귀 모양을 첨가한 십자
가도 있었는데 그것을 세 잎(trefoil)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로마 카톨릭의 십자가는 네 끝에 세
개의 원을 첨가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태양신의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Albert
Pike/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또, 이집트의 토쓰(Thoth) 신의 손에 들고 있는 앵크(Ankh) 혹은 안사타 십자가(Crux Ansata)
는 생명(life)과 성(sex)을 상징하며, 십자가 위의 둥근 원은 태양신을 상징한다.[Funk & Wag
nalls/ The College Standard Dictionary, 286, P.1168]
특히 신좌(Master's Seat)위의 안사타 십자가 위에 새겨진 'INRI'라는 글자는 고대 현인들이
자연의 위대한 비밀과 연관지어 "모든 자연이 불에 의해 새롭게 된다"(Igne Natura Renovatur
Integra)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Albert Pike/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
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 P.291]
여기서 불은 태양신 숭배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조로아스터교에도 불은 태양과 관련이 있음),
스토아 철학자들은 '불'을 우주의 근본 원리라 하여 '로고스'라고 불렀다.
그런데 중세시대의 성화속의 십자가 상 위에서도 'INRI'라고 표시된 그림이 많다. 카톨릭측에
서는 "나자렛 예수는 유대인들의 왕이다"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라고 주
장하고 있지만 의혹을 불러일으킬뿐이다. (참고삼아 또 다른 주장을 설명하자면, 이그나티우
스 로욜라가 이 INRI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 "경건치 않은 이교도 통치자들을 멸절시켜
라." Iustum Necare Reges Impios. 이것은 로마 카톨릭을 비꼬는 내용인 듯하다)
T(타우)와 P(로우)를 결합한 모노그램은 이집트의 태양신 오시리스(Osiris)의 상징이며 오시리
스의 지팡이(the Staff of Osiris)라고도 부른다. 고대 갈대아어와 이집트어의 T는 십자가와 병
행 되었는데, 이집트인들은 그들의신 카노부스(Canobus)의 상징으로 T자 모양의 십자가와
十자 모양의 십자가를 구분없이 사용했다.
그리고 이집트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파라오의 사진을 보면 모두가 도리깨와 꼬부라진 지팡이
를 X자로 가슴에 얹고 있다. 이는 하늘의 위대한 힘을 나타내는 파라오의 상징이며, 오시리스
신의 은덕의 표시이다.
인도의 바쉬나바스(Vashnavas)는 T자 모양의 십자가를 신성시 할 뿐 아니라 삼각형과 역삼각
형이 겹쳐진 모양과 갈고리 십자가등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다.[Albert Pike / Morals And Dog
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Washington, D. C.' Ho
use of the temple, 1966]
바알종교의 비밀입교식 때에 세례를 받는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 표시를 하였고 [Tertullian/ D
e praescript. Haeret. cap. 40, vol. ii. / P.54], 심지어는 어린이를 제물로 바칠 때에도 가슴
을 십자 모양으로 도려내어 심장을 드러냈다고 한다. 십자가는 이같은 인신제물의 상징으로도
사용 되었다. 또한 바빌론의 십자가는 '생명과 지식의 나무'(the tree of life and knowledge)
로도 불려졌다.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와도 연관성이 있는 듯하며, 십자가를 나무와 잎
사귀에 연관시킴으로써 십자가를 치유와 주술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저의도 있었다. [Alexa
nder Hislop / 두 개의 바빌론 / P.200~201]
고대 영국의 드루이드교에서는 오크 나무를 잘라 십자 모양으로 만들고 그것을 신성시했고 자
신들의 사원도 십자 모양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인도의 크리슈나(Chrishna)가 화살에 맞아 죽
은 곳도 십자형의 나무 위에서였다. [Albert Pike /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ry, / P.290]
X자 모양의 십자가는 창조적 지혜 혹은 로고스(Logos)를 상징하는데, 플라톤은 최고의 신 다
음가는 힘(the next Power to the Supreme God)을 우주 안에서 X로 상징한다고 말했다. [Alb
ert Pike / Morals And Dogma Of The Ancient And Accepted Scottish Rite Of Freemasona
ry/ Washington, D. C., House of the temple, 1966 / P.291~292]
기독교의 상징으로 쓰이는 XP 모노그램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부터 유래했다. 콘스
탄티누스 황제가 막센티우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꿈속에서 "이 표시에 의하여 너는 정복할 것
이다"라는 말과 함께 십자가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병사들의 투구와 방
패에 그 상징을 새겨 넣도록 명령한 뒤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로마의 군인들에게 밀의종교로써 널리 퍼져있던 미트라(Mithras)교에서는 신자에 해당
되는 군인들의 이마 위에 X자 모양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십자가는 BC 100~44년에 살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주화에 처음 나오고,
시저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가 BC 20년에 만든 주화에도 나온다. 콘스탄티누스가 발행한
주화에도 동전 앞면에는 태양신, 동전 뒤에는 십자가를 그려 넣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십자가의 가장 흔한 모양은 두 나뭇조각이 종목(縱木)의 한 중간에
서 교차한 것이다. 횡목(橫木)과 종목이 같은 길이인 경우를 그리스식 십자가(Greek Cross)라
고 부르고, 횡목이 짧고 종목의 아래쪽이 긴 것을 라틴식 십자가(Latin Cross)라고 부른다.
또 변형된 모습으로는 종목이 횡목 위로 돌출하지 않은 안토니우스 십자가(crux commissa)나,
두 나무가 비스듬히 교차하고 있는 안드레아 십자가(crux decussata), 죄표(罪標)와 발판을
나타내는 이중십자가(crux gemina) 등이 있다. '부활절과 그 관습'이라는 책에서는 부활절을
언급하면서 십자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십자가는 첫 성금요일에 있었던 사건들을 통해 영원한 의미를 얻기 오래 전부터 이교도들의
상징물이었으며,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서도 빵과 과자에 때때로 십자 무늬를 새겼
다." [Christina Hole / Easter and Its Customs / M. Barrows and Co.]
카톨릭이 X와 P를 결합한 모양을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교황이 지팡
이를 들고 다니는 것 등은 이교도의 영향 아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AD 4세기를 전후로 해서, 초대교회는 이방종교의 풍습을 하나둘씩 흡수해 나기기 시작했다.
특히 기독교에 끼친 영향력으로 볼때 바울이 기독교의 제1 창건자라면, 콘스탄티누스는 기독
교의 제2 창건자라고 평가 할수 있다. 그의 영향력 아래 크리스마스, 십자가, 일요일, 삼위일
체등의 온갖 교리와 풍습들이 기독교와 뒤섞이게 되었으니 말이다.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 경배를 조장할 그 무렵, 황제의 모후(母后) 헬레나는 주교(主敎) 마카
리우스와 함께 나선 성지순례에서 예수가 태어난 동굴과 예수의 무덤을 발견했다. 뿐만 아니
라 예수가 매달린 진품(眞品) 십자가도 발견했다! 모세의 언약궤를 발견했다는 영화속의 인디
애나존스 박사를 뺨치고도 남을만한 업적이다. 믿거나 말거나.....
▶ 예수 그리스도 酒님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를 분석함에 있어서 포도나무와 포도주를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실제로 4복음서에서 '포도'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면 포도나무와 포도주로 검색되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셀수가 없을 정도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말라", 라는 유명한
비유를 비롯해 최후의 만찬에서 까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는다.
포도원 일꾼에 대한 예수의 비유도 두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늦게 도착한 포도원의 일꾼도 같
은 급료를 받는다는 마태복음 20장의 내용이다. 또 하나의 포도원 일꾼 비유는 마태 복음 21
장에 등장한다. 포도원의 지주가 포도즙 짜는 장치를 해놓고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떠나갔다. 수확철이 되자 주인은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으나 소작인들이 종을 살해 했
다. 그러자 주인은 아들을 보냈는데 소작인들은 포도원의 상속자인 아들 마져 살해했다는 이
야기다. 여기서 말한 포도원의 주인은 곧 신(神)이고 살해당한 아들은 예수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
나니" [요한복음 15:5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
인의 친구로다 하니" [누가복음 7:34]
예수는 스스로를 '포도나무', '포도원 주인의 아들', '포도주는 나의 피'라고 말한다. 복음서에
는 왜 이렇게 포도나무와 포도주가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
포도주를 논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을수 없는 것이 바로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이다.
로마에서는 박카스(Bacchus)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신화속의 디오니소스(Dionysos)는 포도
나무, 포도주를 관장하는 술의 신이다.
아테네의 민주제가 시작되는 BC 6세기경, 디오니소스 축제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제가 주관하는 행렬,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노래와 춤에 이어 5~6일간에 걸친 축제의 마
지막 날 연극이 공연 되었다. 이것이 극장의 시초가 되었으며, 여기서 공연된 디오니소스의 연
극이 비극(悲劇)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디오니소스 신화는 각지로 퍼져 나갔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BC 405년경 무대에서 상연되었다는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희곡 바카이(Bacchae)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디오니소스 축제는
본능적이고 사람을 끝없이 취하게 하는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신과 인간여자 세멜레(Semele) 사이에서 태어난 반쪽의 신(半人半神)이
다. 디오니소스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서, 새의 뼈속에, 사자 뼈속에, 당나귀 뼈속에 한 번씩
넣었다 뺏다. 그 나뭇가지를 낙소스라는 섬에 심게 되는데, 이 나무가 최초의 포도나무가 되었
고 여기서 최초의 포도주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인도에까지 여행을 하면서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담그는 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신앙을 전파했다.
요한복음 2장에 등장하는 가나에 혼인잔치에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는 손님이 아니라 잔치를
주도하는 사람들처럼 묘사되어 있다. 포도주가 부족하다고 다그치는 마리아에게 예수는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라며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계속 고집을 부리자 결국 예수
는 물로 포도주를 바꾸는 초능력을 행사한다. 마리아와 예수는 그 집의 하인들을 자신의 하인
들 다루듯 명령을 내리고 있으며, 포도주를 만든것이 예수가 행한 최초의 초능력이다. 결혼 잔
치에 참석한 두 명의 손님들이 음식장만의 책임을 졌다는것은 아이러니이다. 그것은 주인의
책임이 아닌가?
게다가 이 포도주의 맛이 훌륭하자 손님들은 신랑을 불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칭찬
받은 신랑이 누구라고 명확히 나와 있지않고 애매모호 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학자들
은 이 결혼잔치의 신랑은 다름아닌 예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요한복음의 애
매모호함은 다름아닌 영지주의적인 색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서 기독교인을 신부로 표현하고 예수를 신랑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이 가
나의 혼인잔치는 하나의 영지주의적인 상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와의 신성한 결혼식을 거쳐 '포도밭'(Ampelos), '포도나무'(Staphylo
s), '술 마시는 사람'(Oinopion)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을 낳는다. 따라서 예수가 행한 최초의
초능력은 결혼식에 참석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일일수 밖에 없다. (다른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
소스의 아들이 4명으로 나온다. 여기서도 아들의 이름이 술과 관련되어 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 포도주를 관장하며 모든 속박으로 부터의 해방키는 도취와 쾌락의 신
이다. 마이나데스(mainades)라고 불리는 이 종교의 여성 추종자들은 사슴가죽옷을 입고 담쟁
이 덩굴관을 쓴 차림으로 제례 때 외치는 소리인 '에우오이!'(Euoi)를 소리치며 열광적인 입신
(入神)상태에 들어갔다. 그들은 티아시(성스러운 무리)를 이루어 티르소이(회향나무 가지에
포도덩굴의 잎을 엮어 매고 끝을 담쟁이덩굴로 장식한 것)를 흔들면서 피리와 팀파니의 반주
에 맞추어 장작불 옆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춤을 추었다.
최후의 만찬때 제자들은 예수의 피와 육체를 상징하는 포도주와 빵을 받아 먹었다.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 숭배자들은 디오니소스가 제물로 바치는 짐승의 몸으로 화한다는 믿음에서
'날고기 먹기'축제에 탐닉했다. 신화속에서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질투심 때문에 양으
로 변신 했던적이 있으며, 그 외에도 동물로 변신한 적이 여러번 있다.
'날고기 먹기'(omophagia)축제에서 디오니소스교도들은 제물로 바쳐진 살아있는 동물을 '브
로미오스'(외치는 자), '타우로케로스'(소의 뿔을 지닌 자), '타우로프로소포스'(소의 얼굴을 한
자)라는 이름으로 찬양하며 디오니소스의 현신(現身)으로 여겼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고 만
취된 상태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디오니소스(?)를 갈기갈기 찢어 죽인뒤, 피가 뚝뚝
흐르는 상태의 날고기로 먹으며 열광했다.
보수적인 그리스인들에게 디오니소스교를 따르는 무리들의 이러한 광란적 일탈행위는 혐오스
러운 것이었다. 급기야 마이나데스가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악소문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저스틴의 변증서에 따르면 초대교회 사람들도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악소
문에 시달렸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하늘의 신과 인간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의 역설적인 이중
성을 암시한다. 하늘로 상징되는 불사의 존재, 그리고 땅으로 상징되는 사멸하는 존재간의 모
순적인 화해가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디오니소스의 이중성을 인간 실존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반
쪽신(半人半神)으로 태어난 디오니소스의 운명은 이미 비극(悲劇)을 예고하고 있었다. 다른
신(神)들과 다르게, 디오니소스는 자신이 신(神)임을 증명하면서 끝없는 방랑생활을 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비롯하여 그를 적대하는 신들과 왕들에게 죽임과 박해를 받았으나 디오니
소스는 다시 부활한다. 니체는 세상을 아폴론(Apollo)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누
었다. 제우스의 또 다른 아들인 아폴론은 절제된 태도와 엄격한 성격을 가진다. 그에 반해 디
오니소스는 무절제하고 방종한 인간과 흡사해 보인다. 태양의 신 아폴론은 태양빛이 작렬하는
정오처럼 강렬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술잔을 들고 나타나는 몽환적인 달의 모습이다.
디오니소스를 표현한 그림들에 거의 함께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를 뒤따르던 신도들이었
다. 이 신도들은 도시국가라는 틀과 관련된 여러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다. 신과 인간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격, 귀족과 하층민 간의 간격, 여성에 대한 차별, 도덕
적 인습...등등의 아폴론적 질서로부터 단번에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신이 디오니소스라고
할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교도들의 입신(入神)상태를 뜻하는 '엑스타시스'(ekstasis)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속박당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디오니소스 신도가 되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세속적 굴레에서 벗어나 철저
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특히, 한(恨) 많은 여인들과 평민들이 온갖 질곡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탈(逸脫)속에서 환희를 맛보게 된 것이다. 격식에서 벗어난 여자들은 모처럼 자유롭게 뛰놀
면서 춤도 추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자유로운 디오니소스 신앙에 열광했고, 그 때문에 그리스
남성들은 디오니소스를 혐오했다.
예수의 삶 또한 디오니소스와 같이 포도주로 귀결된다. 4복음서 모두 십자가에서 매달린 예수
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신 포도주를 먹이자, 다음 순간 바로 사망했다고 일치되게 기록한다.
학자들의 따르면 당시 십자가 형을 받은 사람은 며칠동안 고통스러운 상태로 생존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예수가 몇시간만에 사망한것도 이례적이지만, 포도주를 먹자마자 사망했다
는것도 의아스럽다. 신포도주는 탈진해 있는 사람에게 힘이 나게 해준다고 한다. 이것은 오류
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먹자마자 바로 죽었다면 신포도주에 무엇인가 약을
탄것이 아닌가?"하는 의문도 제기한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수는 포도주의 신이므로
그의 최후도 포도주로 귀결해야 했을것이다!
당시 유대사회의 하층민들은 로마의 식민통치와 숱한 전쟁으로 피폐해졌다. 거기에 숨막히는
유대율법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죄어왔다. 헬라사상과 이방종교의 영향아래 상당수의 유대인
들은 숨막히는 유대율법에서 해방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야말로
율법조항으로부터의 일탈(逸脫)을 강하게 꿈꿨을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을 위한 유대인 디오
니소스가 필요했다. 그렇게해서 등장한 예수는 유대인들의 진정한 酒님이었다. ("酒님이시여,
내잔을 가득 채우소서...")
▶ 영지주의를 내포한 신약성경
영지주의(Gnosticism)란 말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Gnosis)에서 비롯된 단어이
다. 이 단어를 아람어로는 만다(manda)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종교적이고 복합적인 의미
때문에 보통 그노시스라고 흔히 부른다.
그노시스라는 말의 뜻은 이 세상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깨달아 얻을수 없는 초자연적인 지혜,
지식 또는 형이상학적 지식을 말하며 근본적으로는 하늘에 감추인 영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이 사상은 1~2세기 헬레니즘 시대에 로마, 그리스, 소아시아, 유대땅, 이집트 등지에 널리 퍼져 있던
사상으로 기독교의 탄생의 밑거름을 제공했으나, 나중에는 기독교의 이단으로 배척받아 소멸 되었다.
오늘날의 성직자들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에서 파생된 이단이라고 함부로 규정짓고 있지만 그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고, 조로아스터와 동방의
밀교에서 유래되었으며 기독교의 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영지주의는 이미 조로아스터
교, 바벨론 종교, 유대교, 헬레니즘 철학과 종교, 그리고 기독교 등과 관련되어 있는 나라들을
광범위하게 포함하고 있었다.[R.M.Grant / Gnosticism and Early Christianity /New York: Ha
rper & Row Publishers, 1966]
20세기 초 신약학자 빌헬름 부셋(Wilhelm Bousset)은 영지주의의 시초를 고대 바벨론과 페르
시아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했다.
"영지주의는 무엇보다도 그 자체에 뿌리를 둔 전(前) 기독교 운동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자
체 용어로 이해되어야지 기독교의 가지나 부산물로 이해 되어서는 안된다."[W.Bousset/ Kyri
os Christos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6]
부셋의 이러한 견해는 타당하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미 기독교가 등장하기 이전에 유대
교의 영지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영지주의는 단순히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서
파생된 분파로 이해 되어서는 안된다. 부셋의 견해에 대하여 언어학자 리챠드 라이첸슈타인은
동의하였으며, 더 나아가 영지주의가 고대 이란계 종교에서 비롯되었고 조로아스터교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1945년 낙 함마디(Nag Hammadi)에서 복음의 초기 형태를
포함한 여러 문서들의 발견으로 초대교회가 영지주의에서부터 비롯되었거나, 그 영향을 강하
게 받았다는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낙 함마디에서 발견된 52개의 본문들 가운데 일부가 기독교 복음의 초기 형태를 대표한다는
사실로보아, 초대교회가 낙 함마디 발견물들 이전에 오늘날의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다양한 신앙 형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W.Bauer / Orthodoxy and Heresy in
Earliest Christianity /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1]
로빈슨(J.M.Robinson)은 '낙 함마디 문서와 사해 문서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에서, 영지
주의란 기독교 이전에 이미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광범위한 종교 현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기독교 이전에 등장했던 유대교 영지주의를 주목했다! [J.M.Robinson / Trajectories Throug
h Early Christianity / Philadelphia: Muhlenberg, 1971]
그렇다면 오늘날의 신약성경에는 영지주의의 흔적을 찾을수 있을까?
영지주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것은 바로 요한복음이다. 오늘날 예수의 행적을 나타
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4복음서라 지칭하고 있다. 이중, 학자들은 요한복음을 제외
한 나머지 3복음서를 공관복음서로 지칭하고 요한복음서를 경외시 하고 있다. 4복음서 중 요
한복음에서 예수의 행적이 크게 차이가 나고,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영지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고 여기기 때문이다.
두산세계대백과는 요한복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4복음 중 가장 뒤늦게 성립되었다.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마태오, 마르코, 루가 등의 복음
서)와는 내용적으로는 거의 공통된 데가 적으며 '요한신학(神學)'이라고 할 만큼 그노시스파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요한의 복음서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항목]
몇 가지 예를 들자면, 공관복음의 주제는 천국에 있다고 본다면 요한복음은 영생과 생명에
그 주제가 있다.
공관복음은 미래적인 종말을 강조한데 반해 요한복음은 현재적인 종말을 강조하고 있다.
또, 공관복음은 율법논쟁이나 윤리적인 삶을 강조하는데 반해서 요한복음은 상대적으로 율법논쟁,
윤리적인 삶의 교훈이 약하며 교회와 회당에 대한 확고하게 다른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선생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비밀을 알려주
는 유일한 계시자로 제시 된다.
특히, 공관복음에서는 이원론적인 개념을 쉽게찾아볼 수 없는데, 요한복음에서는 '빛과 어둠', '참과 거짓',
'생명과 죽음', '영과 육', '사랑과 미움', '은혜와 율법', '믿음과 불신', '구원과 심판' 등 이원론적인 개념들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기록된 '말씀'의 원래 헬라어는 로고스(logos)이다. 이 단어는 다분히 영
지적인 사상, 또는 헬라적인 사상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
rakleitos.BC 540?~BC 480?)는 "만물은 하나의 로고스에 의하여 지배되고, 이 로고스를 인식하는 것
안에 지혜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로고스 개념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어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영지주의 분파에서 크게 퍼진
사상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Alexandros of Alexandreia.250 ?~328)는'로고스'의 영원성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사상을 계승하여 아리우스와 격한 논쟁을 하기도 했다.
숨겨진성서의 저자는 요한복음의 로고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4복음서의 말씀 또는 로고스는,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를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와 연결, 로고스를
초월적 존재인 하느님을 아는 수단으로 만든 알렉산드리아의 필로(기원전 20년경~기원후 40년)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유명한 성서 구절에서도 그리스화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의 중개를 통하여
당시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의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1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 P.13]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가 말한 천국의 이미지는 오늘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
와 상당히 다르다. 누가복음 20장, 마가복음 12장, 마태복음 22장에는 예수에게 곤란한 질문
을 던져 함정에 걸리게 하려는 사두개파들이 등장한다.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파 사람이 유
대 율법에 관련되어 예수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유대율법에 따르면 자식을 낳지 못하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어느 7형제가 차례로 죽음을 당하면서 형수는 동생들에게 차례로 되물림(?) 되었다. 그런데
부활의 때가 오면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사두개파의 이 질문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술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질문은 오늘
날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이혼과 재
혼은 널리 행해지고 있고, 배우자를 정말로 사랑했어도 죽음으로 인한 사별(死別)로 인해 재혼
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들이 천국에 간다면 누구의 아내와 남편이 된단 말인가?
예수는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대답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
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
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누가복
음 20장 34~36절]
목사들은 설교를 통해서 바리새파의 세금질문을 자주 언급하지만 사두개파의 질문은 애써 회
피한다. 기껏해야 "사두개파들은 율법문제로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는 등의 간단한
언급만 할뿐 깊이 파고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내세관(來
世觀)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흔히 천국에 가서 부모님과 가족들이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것을 상상한다. 그리
고 그런 내세관이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예수의 말에 따르자면 인간세상의 가
족관계는 천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관계의 가장 기본인것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인데 천
국에서는 그런 관계가 없다. 부부관계가 없으니 자녀 관계, 부모관계 같은 것도 있을턱이 없다
. 다만 천사와 동등할 뿐이다. (예수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지만 천국에서는 남녀간의 성구분
도 없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것 같다.)
천국에 가서도 살아 있을때와 마찬가지로 고추와 젖가슴을 달고, 니 마누라니 내 마누라니 하
면서 아등바등 영생을 누릴것이라고 생각하는 유치찬란한 기독교인들의 내세관과 예수의 내
세관은 맥을 달리한다.
누가복음 21장 5절에서 예수는 화려하게 장식된 성전을 가르켜 전부 무너질 것이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리고 예수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
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
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장 5~6절]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주여,주여...", "아멘!!!"을 부르짖는 한국의 기독교인이야 말로
예수의 경멸 대상이다. 예수는 당시 유대교의 성전중심 종교행위를 경멸했다.
그리고 바울은 "내안의 그리스도" [골로새서 1장 29절], "그리스도가 내 속에 나타냈다." [갈
라디아서 1장 16절],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로새서 1장 27절]를 가르킨다. 바울 자신
과 그를 따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후서 3장 18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 구절이 뜻 전달이 잘 안되기에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옮기면 "우
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번역 되어 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
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
이니." [로마서 6장 3~6절]
십자가에 못박힌것은 예수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옛사람(옛날 자아)도 함께 못박혔고 무덤속
에 장사 지내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
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6장 1~6절]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바울의 말이다. 회개, 하나님에 대한 신
앙, 세례, 부활, 심판... 이 모든것을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버려야 할 초보적 교리이
다! 성숙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초보적 교리에서 맴도는 사람들은 예수를 두번 십자
가에 매다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남긴 말중에는 영지주의 문서인 도마복음과 유사한 말도 등장한다. 앞서 소개했듯이
도마복음은 초창기에 등장한 Q문서중의 하나로 추측되는 문서이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장 9절]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손으로 만져 본적 없고, 사
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을 주겠노라." [도마복음 17절]
바울은 구약의 율법을 가르켜 저주라고 폄하하고 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
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장 10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
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갈라디아서 3장 19~20절]
바울은 율법을 저주라고 말하며, 그것은 중보(중재자)가 내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중보가 모세
라고 생각할 기독교인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보는 한쪽에만 속한 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다. 중보를 모세라고 해석한다면 모세는 선과 악의 편 모두에 서게 되는것이다. 모순일수 밖에
없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영지주의 교리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약 자체를 부정하
며, 모세의 율법을 가르켜 저주라고 폄하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대인의 여호와는 '데미우르
고스'(Demiurgus)이며 불완전한 하급신이다.
그런데, 바울은 반영지주의자이며, 그의 서신중에는 영지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부분이 많이 등
장한다고 반론을 제기 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을것이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
라" [디모데전서 6장 20절]
위의 구절에 등장하는 '지식'의 헬라어 원문은 '그노시스'(Gnosis)이다. 여기서 바울은 그노시스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을 살펴보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서 1장9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장 3절]
여기서도 '지식'의 헬라어 원문은 '그노시스'(Gnosis)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
노시스를 얻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 [골로새서 2장 2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 성경구절은 잘못된 오역(誤譯)이다.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에는 "하나님 비밀의
지식 그리스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위의 '지식'도 '그노시스'이다. 바울은 예수가 그노시스라고
말하고 있다!
그노시스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예수가 그노시스라는 말을 남긴 바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앞서 필자는 '신화를 벗겨낸 예수'라는 글에서 두얼굴의 예수를 언급한바 있다. 예수는 자기가
남긴 말도 지키지 않고, 심지어 예수의 말이 또 다른 예수의 말과 대치된다.
복음서의 경우에는 전해 내려오는 예수의 전승들이 문서화 되는 과정에서 그 문제가 발생 했겠지만,
바울 서신의 경우에는 후대의 반영지적인 성향을 가진 교인들의 손을 거쳐서 그 문제가 발생했으리라
고 본다. 사도행전 같은 경우에는 사도들에 대해 내려오는 여러 전승이 문서화 된것이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사도행전 9장 7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사도
행전 22장 9절]
둘 다 같은 장면에 대한 설명인데,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9장에서는 소리만 듣고 아무것
도 보지못했다고 했지만, 22장에서는 빛은 보면서도 소리는 듣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사도행전 안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것이다.
어쨋든, 바울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이어지는 글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 하고, 이번에는 세례요
한과 엘리야에 얽힌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최후의 심판전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기독교인들은 생각하지만, 예수가 직접 자신이 재림한다
는 말은 한적이 없고 단지 자신의 부활만을 예언했을 뿐이다. 더욱이 구약속에서 종말의 시기
에 재림할 사람은 엘리야라고 말한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
기 4장 5절]
그런데 신약에 엘리야가 등장한다. 예수는 세례요한을 가르켜 엘리야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내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줄 깨달으니라" [마태복음 17장 12~1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
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하는 것이 요한까지
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1장 11~15절]
즉, 예수는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부활이라고 말한 것이다. (반면에 요한복음 1장21절에는 세
례요한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한다.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의 말은 우리를 정말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세례요한이 정녕 엘리야라면
그것은 재림이라기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
고 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
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누가복음 9장 18~19절]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고 질문을 하자, 군중들은 예
수를 가르켜 엘리야나 옛 선지자중에 하나가 살아났다는 식으로 평가 한다고 제자들은 대답한
다. 예수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 민중들도 이미 윤회(輪廻)를 믿고 있었음을 강하게 암
시하는 대목이 아닐까?
기독교 성경속에서 윤회(輪廻)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아마도 황당하게 들릴지
도 모르겠다. 윤회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불교인데, 불교는 기독교와 동떨어진 종교처럼 인
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는 인도의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교다.
이슬람 세계가 중세유럽과 원한관계로 돌아서기 전에는, 인도와 페르시아의 사상이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간에게 영향을 미쳤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이미 인도에도 퍼져
나가서 불경에도 배화교를 믿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미트라는 인도의 오래된 경전에도 등장한
다.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는 짜라투스트라, 붓다, 예수의 가르침을 혼합하여 로마와
인도, 그리고 중국에까지 영향력을 뻗어갔다. 카톨릭의 성자중에는 붓다를 흉내낸 가짜 인물
이 끼워져 있다. 두산세계대백과는 윤회를 설명하면서 그리스 등지에서도 윤회사상이 있었음
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부분적이기는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말한 이가 상당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
이라고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윤회 輪廻 항목]
사실, 인도,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가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고대사회의 사상가들은 영혼
의 존재와 윤회를 믿었다.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 아시리아, 페르시아, 고대 영국에 살던 켈트
족의 드루이드교도, 프랑스, 스칸디나비아의 부족들도 이 개념을 믿었다.
특히 주목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바로 서양철학의 한 뿌리인 그리스의 플라톤(BC 427~347)도
자신의 여러 저서에서 인간영혼의 존재와 윤회전생(輪廻轉生)에 대해 가르침을 남겼다는 점이
다. 두산세계대백과는 플라톤의 저서 파이드로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들 주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철학자의 정의(定義), 방법의 문제, 로고스(言語)의 문제, 영혼
의 윤회와 불사(不死)의 설명 등도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파이드로스 Phaidros항목]
그리스의 플라톤, 피타고라스, 플루타크 등을 비롯하여, 서양의 대표적 지성들 가운데에는
자신이 윤회론을 믿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혔던 인물들이 의외로 많다.
로마의 시인이었던 에니우스는 카르마와 환생의 개념을 로마사람들에게 소개했고, 로마의 대
시인 베르길리우스(BC 70~19: 영어식 발음 '버질')도 자신의 작품 속에서 환생을 설명했다.
AD 2세기경 로마에 최초의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던 순교자 저스틴(Justinus)은 환생을 가르
쳤고, 그리스의 신학자 오리겐(Origenes)과 성히에로니무스(St. Hieronimus), 성 아우구스티
누스(St.Augustinus),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도 환생설을 가르쳤다. 당시 서로마
제국에서는 오리겐의 윤회설이 널리 퍼져 있었고, 여러 기독교 영지주의파들과 마니교도들도
윤회설을 가르쳤다.
그러나 개인적인 노력과 발전으로 영혼의 구원이 가능하다면 교회와 황제의 권위가 무너진다
는 정치적 우려에 따라 윤회를 가리키던 당시의 용어인 선재론(先在論)의 개념이 교회신학에
서 삭제 되었다.
AD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280?~337)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신약에 실
려 있던 윤회에 대한 언급들을 없애기로 결정하여, 서기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이후 모든 복
음서에서 환생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완전히 삭제해 버렸다. 6세기경 동로마 제국의 폭군 유스
티니아누스(Justinianus)황제는 독단적으로 윤회설을 이단이라고 결정하고, 553년에 콘스탄
티노플 공의회를 소집하여 환생사상을 가르쳤던 오리겐의 추종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황
제와 그의 아내는 윤회사상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을 신격화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김영우/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 정신 세계사]
현재의 기독교에서는 영혼 유전설(Traucianism .카톨릭과 루터교)과 영혼창조설(Creationis
m. 칼빈 장로교)로 나뉜다. 전자에 따르면 영혼은 부모로부터 유전한다고 하고, 후자는 잉태
시 신이 영혼을 별도로 창조한다는 주장이다. 두가지 모두 선재성(先在性)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구약속에서도 영혼의 선재성이 내포되어 있는 구절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
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예레미야 1장 4절~5절]
또, 욥기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
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그렇
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거친 터를 수
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
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못
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이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기 3장 11절~19절]
시험받은 욥이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몹시 후회하는 대목이다. '공동번역판'의 동구절
을 보면 더 뜻이 확실해 진다.
"나 지금 누워서 안식을 누릴 터인데. 잠들어 쉬고 있을 터인데. 저 허물어진 성터에 궁궐을 세
웠던 지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나란히! 황금을 자랑하고 은으로 집을 채웠던 성주들과 나란히!
나는 어찌하여 낙태되어 묻힌 핏덩이가 되지 못하였는가? 빛도 보지 못한 벌거숭이가 되지 못
하였는가? 그 곳은 악당들이 설치지 못하고 삶에 지친 자들도 쉴 수 있는 곳, 포로들도 함께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노예를 부리는 자들의 욕설도 들리지 않는 곳,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
이 없고 종들이 주인의 손아귀에서 풀려나는 곳." [욥기 3장 13~19절 / 공동번역판]
욥이 말하고 있는 태어나기 전의 세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彼岸)의 세계같이 느껴진다.
외경속에서는 더욱더 노골적으로 영혼의 선재성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또 하나의 창세기
인 '하가다'의 인간의 영혼에 관한 대목을 보자.
"천사가 지적받은 영혼을 데리고 온다. 영혼은 하느님의 현존앞에 나타나자 허리를 굽혀절하
고 바닥에 엎드린다. 그 순간 하느님이 이 정자 속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영혼이 입을 열
어 '오오, 온 세상의 주님. 당신이 나를 창조한 이래 나의 거처로 지정한 세상에 대해서 만족합
니다. 나는 거룩하고 순수하며 당신 영혼의 일부인데, 왜 불경한 정자속에 들어가라고 하는 겁
니까?'라고 탄원한다....(중략)....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때가 되면, 그 천사가 나타나서 '나를
알아 보겠는가?' 라고 묻는다. 사람이 '그래요, 그렇지만 왜 다른날 오지않고 오늘 오는 겁니까?'라고
대답한다. 천사가 '네가 이 세상을 떠날때가 되어서 데리러 온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이 통곡을
시작하고 그 울음 소리가 세상 끝까지 들리지만, 수탉을 제외하고 그 어떠한 피조물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1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 P.89~92]
신은 인간의 영혼을 불러 정자속에 들어가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명령하고 있고 인간은 태어나
기 싫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난후 죽음이 다가오면 다시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한다. 이 외경에서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신과 함께 피안, 또는 천국과 같은 곳에서 이미 존재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영지주의의 사상이 어떤것인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영지주의는 단일한 사상체계
가 아니기 때문에 한가지로 요약할수는 없지만 그 전체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二元論)은 두 가지의 상반되는 원리, 즉' 빛과 어두움'의 신화적 이원
론이 '정신과 물질'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물질의 세계는 악의 원리에 지
배되기 때문에, 신(神)에 의하여 지배되는 정신의 세계와는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우주관을 물려받은 영지주의자들 역시, 물질과 육신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며, 처음부터 악하게 창조 되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과 육체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주
장했다. 구원이란 바로 물질의 세계, 즉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과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상 영지주의자들이 극단적인 이원론자라는 점만 빼면, 기독교 자체도 이원론에서 태생되
었다는것을 부정할수 없다. 즉, 종말론 이라는것 자체가 이 세상에 대한 강한 부정(否定)이자
비관적(悲觀的)인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급한 신(Demiurgus: 제작자라는 뜻)에 의해 창조된 물질세계는 무질서에 의한 싸움
과 타락 등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모세에게 율법을 내려준 여호와는 중재자에 지나지 않는다
는 것이다.
마르시온과 같은 상당수의 영지주의자들은 신약의 신과 구약의 신을 구별하여 동일하지 않은
신으로 보았다. 즉, 구약의 신은 분노하고(노아의 방주) 추방하고(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
와) 저주하는(이방인 살해)신인데 반해, 신약의 신은 스스로를 낮추어 세상으로 온 고급신, 완
전신으로 보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그들은 구약의 신은 저급한 신(데미우르고스)라 하여 신인동형적
(신과 인간이 비슷하다는 식)인 사관과 신관에서 바라보았다.
따라서 상당수의 영지주의자들이 구약성경을 부정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부정했다. 모세의 율법을
거부한것은 자칭(自稱) 정통파 기독교도 마찬가지 였으나, 자칭 정통파는 구약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당시 영지주의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에게만 전해졌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에
게도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육체적 인간, 정신적 인간, 영적 인간이 그것이다.
육체적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영적 인간만이 구원될 수 있다. 정신적 인간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노시스와 예수를 본받는 실천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요한복
음 17장 3절에서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라는 요한복음의 말이라 든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테오필루스 등이 말한것 처럼 "참
된 그리스도교인은 그노시스를 지닌 사람들이다"라는 설명이 단적인 예이다.
영지주의자 마르시온이 교회를 세운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학파에 지나지
않았다.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만 그노시스가 전수 되었던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여러
단계의 그노시스가 존재했는데, 각 차원에는 모두 중개자가 있어 이 중개자를 통하여 상급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자칭 정통파'들은 교
리의 초보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그노시스를 전수 받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마르시온의 교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 때문에, 대가리 숫자가 많은
'자칭 정통파'에 밀릴수 밖에 없었다. 자칭 정통파 기독교로부터 배척된 영지주의는 3세기경에
는 쇠퇴의 조짐을 보였으나, 중세시대에도 카타리파와, 보고밀파와 같이 그 명맥을 계속 이어
가며 등장했고 자칭 정통파 기독교의 골칫거리가 되어갔다.
▶ 예수 바라바
영(靈)과 육체(肉體)를 이원적(二元的)으로 대립시켜 놓았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가 취한 육
체는 진짜 육체가 아니라 환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요 교리인 가현설(doceti
sm)은 영지주의 문헌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존하는 복음서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마태복음 27장 17절의 헬라어 사본에서 빌라도는 '예수 바라바'와 '예수 그리스도'중에 누구를
석방시켜 주겠냐고 외친다.
대부분의 성경번역본 에서는 '예수 바라바'의 이름에서 '예수'라는 단어를 빼버리고 그냥 '바라
바'로 번역했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된 공동번역판은 그대로 번역했다!
"마침 그 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빌라도는 모여든 군중에게 '누구를 놓
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라는 예수냐? 그리스도라는 예수냐?' 하고 물었다." [마태오의 복음
서 27장 16~17절 / 공동번역판]
공동번역판이 얼마나 훌륭한 번역본 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구절이다.
일부작가들은 이 구절을 제시하면서 '예수 바라바'는 '예수의 아들'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서에 남아있는 영지주의 교리의 흔적에 불과하다.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
더라." [마태복음 27장 32절]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끌고 갔던 구레네(Cyrene)의 시몬은 일반적으로 기독
교인들에게 숭고한 희생정신의 표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성경 구절에 따
르면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다. '억지로'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엥가류산'(hjggavre
usan)은 페르시아에서 전령이 목적지로 가기 위해 강제로 말(馬)을 차출 하는것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도 시몬은 강제로 붙잡혀 십자가를 끌고 갔다
고 기록하고 있다.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
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누가복음 23장 26절]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가복음 15장 21절]
세 복음서 모두 구레네의 시몬이 우연히 지나다가 강제로 붙잡혀 십자가를 끌고 갔다고 언급
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마태복음 27장 31절 이후의 헬라어 사본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언급 되지 않는다. 34절의 '예수께'는 헬라어 사본에 의하면 '그 에게' 이고, 35절의 '예수를
십자가에'도 헬라어 사본에는 '그를 십자가에'로 기록 되어 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였던 바
실리데스(Basilides)는 예수가 아니라 구레네 시몬이 도중에 바뀌치기 당해 십자가에 매달렸
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현대의 성경 번역본들은 영지주의의 흔적을 말소하기 위함인지 '그'를
'예수'로 바꿔 번역해 버렸다.
사실 이같이 애매모호한 내용이 성경에 존재하는 것은 영지주의의 흔적이다.
영지주의 문헌에서는 예수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하거나, 예수는 십자
가에 못박혔으나 고통을 당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한행전'에는 나무(십자가)에 매달렸으나 매달리지 않은 예수,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는 예
수가 언급되어 있다. '베드로 계시록'에는 예수와 닮은 자가 나무에 매달려 기뻐하며 웃는다.
'위대한 세트 신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십자가를 짊어졌던 시몬과 가시 면류관을 쓴 또 다
른 시몬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는 높은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비웃는다. 이슬람교의 코란에
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작가들은 예수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십자가 처형을 당했고, 예수 자신은 살아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지주의의 교리를 상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숨겨진 성서의 저자는 '요한행전'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그노시스파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장 영신적인 의미를 띄는 부분은 그리스도가 지상에 나타난 일에 관한 묘사이다. '십자가
신비의 드러냄'은 예수의 수난에 관한 발렌티니아누스의 그노시스파 개념으로 보인다. '그리
스도가 지상에 나타남'에서 그리스도가 한때는 육체를 가진 존재였다가 다른 때에는 육체가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요한이 몸을 만지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그노시스파의 대표적인 세계관
인 이원론을 본다. 그리스도는 자기가 밖으로 보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는 고통을 당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리스도는 '나는 십자가 위에 있는 그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말은 유령 예수가 십자
가에 못박혔다고 하는 그노시스파와 도체투스파의 개념을 확인해 준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2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 P.309~310]
두산세계대백과는 가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가현설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도케오(...처럼 보인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고대사회
의 영지주의(靈智主義) 이단(異端)의 특징을 나타낸다. 도케티즘을 제일 먼저 말한 바실리데
스(120년경)는 '그리스도는 고난받지 않고 구레내 시몬이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도록 강요받고 그 순간 시몬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진 나머지 다른 사람이 그를 그리스도
로 알고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예수 자신은 구레내 시몬의 모습을 취하시고 거기 계시며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을 비웃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적 사상구조 때문에, 다른 한편 이들은 자기들의 구원관 때문에 그렇게 주장한다. 이들
은 구원하는 능력을 신적인 빛이 이 세상 속으로 유출해 들어오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구원자는 빛으로 나타나는 분인데, 참인간의 육체를 가질 수 없으며 생기를 주는 영이
다. 따라서 이들은 그리스도교 구원자에 대한 가르침의 근본인 성육신을 부인한다. 이런 도케
티즘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무
시한 신학에서 계속 나타난다. 영지주의의 경우 역사 속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가 무시되어
버리고 나아가 역사 속에서 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도 결국 허무한 것으로 돌아가 버린
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가현설 Doketismus 항목]
즉,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 예수를 믿지 않았다.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고통받지 않은 예수'를
언급하고 있는 '요한행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등장한다.
"또 한번은 우리가, 즉 그분의 제자 전부가 제네사렛의 집에서 자고 있을때, 나는 옷을 입은채
로 혼자서 그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분이 먼저 내게 '요한아, 잠들어라.'라고 말하는 소리
를 들었다. 그래서 자는 체했다. 그랬더니 그분과 같이 다른 사람이 내려와서 주님에게 '예수,
네가 선택한 사람들이 아직 너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러자 주
님이 그 사람에게 '네 말이 맞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윌
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2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 P.321]
'피스티스 소피아'라는 영지주의 문헌에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령이 네 위에 내려오기 전, 그러니까 네가 어렸을 적의 일이다. 네가 요셉과 함께 포도밭에
있을때, 성령이 높은 곳에서 내려와 집안에 있는 나에게 왔는데, 너를 닮아서 나는 성령을 알
아보지 못하고는 네가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성령이 나에게 '내 형제 예수는 어디 있습니까?
만나 보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유령이 와서 유혹하
려는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성령을 잡아서 집안에 있는 침대 다리에 묶어 놓고는 밭에
있는 너와 요셉을 찾았다.....(중략).....침대에 묶여 있던 사람이 풀려나자 너를 껴안고 입을 맞
추었다. 너도 그 사람에게 입을 맞추었는데, 너희둘이 하나가 되었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
겨진성서 2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 P.147]
바로 이러한 내용들은 영지주의자들의 교리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는 영지주의의 이런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또 영(靈)과 물질을 이원적(二元的)으로 대립시켜 놓고 그리스도가 취한 육신은 참 육신이 아
니고 가짜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을 그리스도 가현설(假現說:Docetism)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영(靈)의 힘으로 육체를 벗어나 영화(靈化)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그노시스파 Gnosticism 항목]
대다수의 영지주의자들은 육체적 예수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며,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
도의 영이 잠시 사람의 육체를 빌렸다고 생각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공통된 점이 있다면 육
체적 예수는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당하지 않았으며, 예수와 닮은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려 웃고 있는것이다.
예수의 제자였던 도마의 이름은 아람어로 '쌍둥이'를 의미한다. 요한복음 20장 24절에는 "디
두모라 하는 도마"라는 말이 등장한다. 여기서 도마는 아람어이고 디두모라는 말은 헬라어이
다. 그리고 두개의 뜻은 똑같이 '쌍둥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영지주의 문헌
인 '도마 복음' 서두에서 저자는 '디디모스 유다 도마'임을 미리 언급하고 있다. 도마가 누구의
쌍둥이인지 애매모호하다.
"여기 나오는 토마스는 쌍둥이 유다스, 특히 시리아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쌍둥이 형제이며
사도라고 믿는 그 토마스이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1권 / 이동진역 / 문학수첩 / P.309]
시리아 교회에서 도마를 예수의 쌍둥이로 여기고 있듯이 초대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도마는 예
수의 쌍둥이로 여겨졌다. '옹호자 도마의 책'이라는 영지주의 문헌에서도 예수는 도마에게 자
신의 쌍둥이 형제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의 저자는 이러한 관계를 다이몬(daimon)과 에이돌론(eidolon)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즉, 초월적 자아와 현세적 자아의 관계를 영지주의적으로 상징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신화다'의 저자는 다이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다이몬이라는
단어보다는 성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예컨데 필자가 6장에서 언급한
'귀신들림'이라는 글을 상기하도록) 하지만, 성령이라고 하면 기독교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개념을 떠올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표현하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영지주의자들에게 예수는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다
른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예수의 몸은 보통 육신 이었는데 침례 시에 그리스도의 영이 내려
와 메시야의 직분을 수행하다가 십자가에서 떠났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파에서는 그리스도가
공적인 사역을 하는 동안 잠정적으로 사람 육체를 빌려 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이 바로 예수신화를 창조해낸 장본인일 가능성이 크다.
예수 이야기는 단지 그들의 종교적 교리를 담기위해 만든 신화일뿐인데, 나중에 등장한 '자칭
정통파'들이 이들을 적대시 하고 성경의 내용을 날조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현재의 기독교도 마찬가지 이다. '예수 바라바'를 그냥 '바라바'로 번역해 버리고, 십자가에 매
달리는 자가 시몬인지 예수인지 애매모호한 구절을 '예수'라고 바꿔 번역했다. 기독교는 아직
까지도 복음서에 남겨진 영지주의의 흔적을 말소하기 위해 이제는 번역이라는 방법으로 고의
적인 오역을 저지르는 것이다.
▶ 마리아 여신!
어째서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야만 했는가? 이왕 인간의 몸을 입고 와서, 인간처럼 음식
을 섭취하고, 주어진 순리대로 죽음을 맞이할 인간의 육신을 입을것이라면, 어째서 그렇게 부조리한
출생을 해야만 했는가?
사실, 기독교가 생겨날 무렵에 동정녀 잉태는 당시 지중해 문화권속에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 신화속 에서도 디오니소스, 페르세우스, 미노스, 아스클레피오스, 밀레투스,
헤라클레스,외 수많은 신들이 아버지인 신(神)과 인간의 여자사이에서 탄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제우스는 다나이(Danae)를 태양빛의 형태로 방문함으로써 임신시켰고, 이쉬타르(Istar)에게
바쳐진 비둘기 형태로 그녀를 임신 시킨다. (성령을 비둘기의 형태로 표현한 신약성경과 연상
된다.) 이런 신화들은 하늘(신,영혼,남성)과 땅(물질,육체,여성)의 만남을 의미한다고 여겨진
다. 즉, 동물적인 육체와 신과 같은 영혼을 가진 인간의 고뇌를 상징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동정녀 잉태'는 신화속의 신의 아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이름을 떨쳤던 임금들과 유명
인들에 대해서도 초자연적인 출생신화가 따라 다녔다. 짜라투스투라 역시 동정녀에 의해 출생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그가 예언한 메시아 역시 동정녀에게서 출생 한다고 한다.
'편모슬하에서 자란 과부의 아들'이란 당시 활약했던 예언자들의 공통적인 자격조건이기도 했
는데, 바알 신전의 여사제는 신전을 다녀가는 남자들의 아이를 잉태하여 신의 아이라고 주장
해 왔다. 성스러운 동정녀는 이쉬타르 아세라의 여사제들의 칭호였는데 그 칭호는 신체적 동
정을 의미하지 않았고 단순히 결혼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당시 이쉬타르 여사제들은 다산 의식과 신탁을 수행하면서 제법 짭짤한 매춘 사업도 벌였다.
그리스 신전에도 논다니라는 사제들이 있었는데, 이 단어는 중세시대 서양에서 매춘부를 일컫는
단어로 통했다.
이들 역시 이쉬타르의 여사제 처럼 선택받은 자들에 한하여 매춘을 행했다.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영웅에게 논다니가 가슴을 풀어 헤치고 나와서 맞아 주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이야
기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의 매춘부들과는 양상이 다르다. 당시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으로 성스러
운 행위 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여사제들의 아이들은 춤과 노래를 배우
며 예언자로서의 길을 가게 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러한 여사제들의 아이들을 바툴(bathur)
이라고 불렀다.
이런 문화적 배경아래에서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하면서 알마(almah=젊은 여인)를
파르테노스(parthenos=처녀)로 번역했고 초대 기독교는 70인역을 재빠르게 차용해 버렸다. 물론, 필자는
복음서의 성모 마리아가 신전의 창부였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예수의 동정녀 출생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않되기 때문에 서두에 먼저 말해 둔것이다.
한편 첼수스(Celsus)와 같은 이교도 철학자들은 기독교인들의 동정녀 출생 신화를 공공연히
비난하기도 했다. 첼수스는 무사이오스(Musaeus), 오르페우스(Orpheus), 멜라니페(Melanip
pe), 아우게(Auge), 페레시데스(Pherecydes) 그리고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와 피타고라스도
이러한 동정녀 탄생의 교리들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가 이런 교리를 표절했다고 비방했던 것
이다.
첼수스의 신랄한 비난에 유세비우스와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은 예수를 이교도 신들과 비교
하거나 강하게 대비시키면서, 만일 예수가 거짓이라면 미트라와 헤라클레스도 그렇다고 주장
했다. 이 시기 동안, 초기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이교도적 뿌리에 매달려 있었고 어째서 자신들
의 신이 미트라, 디오니소스, 혹은 기타 그리스나 로마 신들과 동등하게 간주되지 말아야 하는
지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돋보기를 들고 복음서를 분석해 보면, 예수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존재도 신
화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마리아에게서 그 유명한 '오이디
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를 발견할수 있다는 점이다.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속
에 등장하는 인물로 프로이트(Sigmund Freud) 정신분석학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름이다.
(여성의 경우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이다. 엘렉트라도 그리스 신화에 유래한다)
오시리스(Osiris)는 이집트어의 우시르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으로 오시리스 신화의 중심 테마
는 죽음과 부활이다. 수확기에 죽고 곡식의 배아와 더불어 부활한다고 믿어지는 오시리스는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 받았다. 또한, 오시리스는 해마다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나일강이나,
해질 무렵에 암흑 속으로 가라 앉았다가 새벽에 다시 빛나는 태양의 빛을 상징했다.
오시리스 신은 동생인 세트 신의 손에 죽는다.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 여신은 조
각난 남편의 사체를 수습하여 마법을 사용해서 처녀 상태로 호루스를 잉태한다. 그리고 아기
호루스는 세트의 복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일강 삼각주의 갈대 숲에 숨겨졌다가 성장해서
세트에게 복수를 하게된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중인 BC 1300년(제 18왕조말에서 제 19왕조초)경의 데디아의 삼신상에
서 알수 있듯이, 오시리스-이시스-호루스의 3신숭배는 고대이집트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대
이집트에서 널리 행해진 삼신숭배는 후에 삼위일체설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에드먼드 리치는 그의 저서 '성서의 구조 인류학'에서 구약에서 부터 신약에 이르기 까지 등장하는
성경의 근친관계를 이집트의 오시리스-이시스-호루스 신화의 모티브로 분석을 한 바 있
다. [에드먼드 리치 /성서의 구조 인류학/ 신인철역 / 한길사]
즉,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누이이자 아내이고, 아들 호루스에게 이시스는 어머니이자 고모가
된다. 게다가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현세적인 부활이다!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호루스와 동
일시 했고, 파라오가 죽으면 저승에서 오시리스가 된다고 믿었다)
이 관계는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아브라함의 누이이며, 그 아들인 이삭도 자신의 아내인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하는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의 아내 요게벳은 그
의 고모이다. (아므람은 아버지의 누이와 결혼했다)
호루스가 세트의 손길을 피해 갈대밭에 숨겨 졌듯이, 모세는 어머니의 손에 의해 갈대밭에 버
려졌다. 모세가 파라오의 공주에 의해 구해질 때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은 모세의 누이였다. 5장
에서도 언급했듯이 모세와 유사한 출생설화를 공유하는 아카드의 사르곤 출생신화도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다. 신과 인간의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해서 갈대밭에 버려진 사르곤은 이쉬타
르 여신의 밑에서 성장 했다가 나중의 이쉬타르의 애인(愛人)이 된다. 여기서 이쉬타르는 어머
니와 아내의 역할이 뒤섞여 있다.
복음서에는 베다니의 동생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성모 마리아 등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한
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당시 매우 흔하다고는 해도,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여성들의 이름이 전
부 마리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가복음10장 38~42절에는 베다니의 마리아가 등장한다. 혼자서 일을 하던 마르다는 동생
마리아가 예수의 설교를 들으며 일을 하지 않자 불평을 터트린다. 그러자 예수는 마르다를 다
그치면서 마리아를 칭찬하고 있다. 베다니의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시 될수도 있지만
, 같은 누가복음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따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베다니의 일화보다 앞부분에 해당되는 누가복음 8장 2절 에서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따라 다녔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24장 10절에서 또 한번 등장한다. (그러나 양식비평에
따르면 마리아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초대교회의 여러전승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문서화 되었다고
볼수도 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오누이가 등장한다. (누가복음에는 나사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가 나사로의 초상집에 도착하자 마르다는 예수에게 뛰쳐간다. 그리고 마르다는
다시 동생 마리아에게 돌아가 귓속말로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라고 일러주자,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예수에게 달려갔다.[요한복음 11장 28~29절]
그후, 베다니의 마리아는 향유를 갖고 와서 예수의 발을 씻겨준다. [요한복음 12장 3절] 요한
복음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따로 언급되어 등장한다. [요한복음 20:18 / 요한복음 19:25 /
요한복음 20:1]
그럼, 베다니의 마리아에 이어서 또 다른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를 살펴보자.
일부 학자들은 예수의 아내가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사실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도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간의 알수 없는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복음서에 따
르면 막달라에 대한 예수의 태도도 독특하고 우선적이었으며, 그녀는 예수 사역의 말기에 그
를 따르는 여인의 맨앞에 서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
한 점은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것도 막달라 마리아였다는 점이다!
전승에 의하면 그녀는 창녀로 알려져 있지만 복음서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누가복음에
는 일곱귀신 들렸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녀를 타락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것은 종교의
식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들면 이쉬타르(Ishtar) 또는 아스타르테(Astarte)의 제사의
식은 일곱 단계의 입회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출신인 갈릴리의 미그달(Migdarl) 또는 막
달라(Magdala)라는 곳은 제사용 비둘기가 사육 되었던 곳 이었는데 비둘기는 이쉬타르의 거
룩한 상징 이었다.
특히 나그하마디에서 발견된 마리아 복음서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은 비밀
을 막달라 마리아 에게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 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이여, 우리는 주께서 당신을 다른 여자보다 더 사랑하셨음을 알고 있읍니다. 당신이 기억하
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말해 주십시오. 당신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말씀을 모릅니다"
후에, 베드로는 분개하여 다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가 실제로 한 여인과 몰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우리에게는 비밀로 하였는가? 우리는 돌이
켜 그녀에게 모든 것을 들어야 하는가? 그는 우리보다 그녀를 더 좋아 하셨는가?"
그러고 훨씬 후에 제자 중 하나가 베드로에게 대답한다.
"확실히 주께서 그녀를 대단히 잘 알고 계시네. 그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신 것은 그 때
문이지" [In Robinson , J/ Nag Hammadi Livery in English / The Gospel of Mary. P.472]
이외에도 빌립복음서에는 예수가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자 다른 제자들이 질투했다는 이야
기도 있다.
"그리고 주의 동료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녀를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더
사랑하셔서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기도 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그로인하여 기분이 상했으며 불
만을 표시했다. 그들은 그에게 '왜 당신은 우리 모두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십니까?' 라고 말했
다.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왜 나는 너희를 그녀처럼 사랑하지 않느냐?'라고 하
셨다." [In Robinson , J / Nag Hammadi Livery in English / The Gospel of Philip P.138]
'예수는 결혼했는가?'라는 책의 저자에 따르면 위의 구절에 나오는 동료(companion)라는 단
어는 배우자(spouse)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라 주장하기도 했다. [William E. Phipps/ Was Jes
us Married? / P.136]
그러나 좀더 살펴보자면, 막달라 마리아 뿐이 아니라 다른 마리아들에게도 주목하지 않을수
없다.
"주와 함께 언제나 동행하던 세사람이 있었다. 곧 모친 마리아와 그녀의 누이와 예수의 동료라
고 불리운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이다".[In Robinson , J / Nag Hammadi Livery in English /
The Gospel of Philip P.135]
예수의 동행자로 성모 마리아, 마리아의 누이, 막달라 마리아가 제시되고 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여러 마리아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늙은 히브리여인은 음경끝의 살갗을 집어들어 항아리에 보관했다. 노파에게는 주정뱅이 아들
이 있었다. 그 아들에게 '이 항아리는 동전3백닢을 준다고 해도 절대로 팔아 먹지 마라'고 했다
그런데 이 항아리를 죄인 마리아가 가지고 와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머리와 두 발에 기름을
쏟아 붓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준것이다." [윌리스 반스토운 / 숨겨진성서 제2권/ 이
동진 역 / 문학수첩 P.65]
아기예수의 할례를 묘사한 위의 외경에 따르면, 예수의 양피를 보관한 항아리가 죄인 마리아의
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 외경속에서 죄인 마리아는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를 뒤섞어 놓은듯 하다. 예수와 이 여자의 관계는 이미 특별하게 운명 지어졌다고 볼수
있겠다.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가 뒤섞여 있는 이 외경은 어쩌면 의미심장한 단서
를 우리에게 남겨 주는것일지 모른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마리아들은 예수와 무슨관계일까?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고 아들의 십자가 처형에 입회 했다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는 여자
는 일관해서 막달라 마리아이다! 4복음서의 예수부활 부분에서 일치된 점이 있다면 부활의 목
격자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이다. 그중에 가장 노골적인것은 바로
마태복음이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마태복음 28장 1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마태복음 27장 61절]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는 표현으로 막달라 마리아를 중심으로 다른 마
리아들을 하나로 묶어 버린다.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여성들의 이름이 전부 마리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와 마리아들간의 알듯 모를 듯한 관계를 신화적인 모티브로 바라본
다면 모든것이 확실해 진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러 마리아들은 모두 성모 마리아의 변이(變
異)들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서 속의 마리아들은 신화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수 있다.
모세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죽음에 입회하고, 누이는 부활에 입회한다. 예수 이야기에서 성모
마리아는 죽음에 입회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에 입회한다. 또 다른 마리아인 베다니의 마
리아도 예수와 막역한 관계로 그려지고 있다. 이 모든 마리아들은 바로 이시스 여신의 구조적
변형일수 있다. 예수와 관련된 중요한 여성들의 이름이 전부 마리아라는 것은 그것이 의미하
는바가 매우 크다.
이들 모두 이시스 여신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부활에 연관 되고 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오빠의 부활을 목격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 부활을 증언하는 주된 목격자가 되고,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탄생 시킨다. 어머니, 아내, 누이의 이미지가 뒤섞인 이시스와 이쉬타르의 이미지가 각각의 마리아로
변이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성모 마리아의 모티브가 된것은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유물들이 암시적
으로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집트는 물론, 로마의 지하무덤과 팔레스타인에는 동정모 이시스
의 품에 안긴 아기 호루스의 그림과 석상들이 무수히 발견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이
마돈나와 아기의 원형이 되었다고 말한다. 두산세계대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고 이시스의 아들로서의 '유아(幼兒) 호루스'는 아기 예수의 원형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호루스 Horus항목]
개신교인들이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하늘황후 운운하며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를 비난하는것
을 볼때 참으로 가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마리아는 분명 신화속의 여신(女神)이요 하늘
황후임이 분명하다. 마리아는 처녀 상태로 신의 아들을 낳았으며,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로 순환(循環)하여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신화(神話)속의 여신(女神)이다!
▶ 환상속의 예수
우리는 흔히 예수가 먼저 세상에 오고 바울이 그의 가르침을 전파 한 줄 알고 있지만, 예수 신
화파에서는 그 거꾸로를 주장한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속의 예수는 영지주의
적인 사도들이 메시아를 전파하고 난후에 등장한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
약의 예수는 바울(Paul)과 후대 교부들의 필요에 의해 상징적인 인물로 재구성과 재포장을 통
해 만들졌을 가능성이 높다.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예수의 12 제자는 어떻게 된것일까? 신약성경은 이들의 행적을 완
전 무시 하고 있다. 자칭 정통파 기독교측에서 정경으로 채택 하기를 거부한 외경들에 간간이
그 들의 행적과 말로가 기록 되어있다.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너무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배척된 문서들이다. 오늘날의 정경에서도 베드로를 제외하고 예수의 12제자들은 그다지 두각
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육체적 예수를 만난적이 없는 바울이 기독교를 널리 전파했으며,
신약성경의 상당부분은 바울서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약 속의 바울 사상은 철학자 칸트(Kant),피히테(Fichte), 셸링(Schelling)등에 의해 구별되어
지기 시작했고, 에른스트 카제만(Ernest Kasemann)같은 신학자들이 나타나, 기존 기독교 교단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의심을 품기에 이른다.
빌헬름 네슬(Wilhelm Nestle)은 "기독교는 바울에 관한 종교다. 기독교는 예수의 복음을 예수에 관한
복음으로 대치해 놓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신약은 바울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원시 기독교 교리에
떠돌아 다니는 예수설화를 종합 했거나 아니면, 바울이라는 사람이 기독교를 창조한 장본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제임스 로빈슨(James M. Robinson)이나 헬뭇 쾨스터(Helmut Koester)가 신학적으로 정립했다.
우선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계기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다마스커스로 기
독교인들을 핍박하러 가는길에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고 말하는 예수의 말과 환상을 경험하
고 전도 활동을 시작 했다고 한다.
바울이 예수를 알지 못했음은 그의 서신속에서도 잘 알수가 있다.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 했을
때에도 그가 예수의 생가나 그의 무덤, 또는 골고다 언덕을 순례 했다는 기록이 없다. 게다가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는 서로 엇갈린 내용을 담고 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예수의
환상을 접한후 예루살렘에 가서 바나바의 소개로 제자들을 만난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 바
울은 개종후에 삼년동안 예루살렘에 방문한 적이 없으며 베드로와 야고보외에는 만난 제자가
없다고 한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
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쌔,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갈라디아서 1장 17~20절]
바울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어느쪽이 진실일까?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
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1장18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 전서 15장 20절]
바울은 예수가 죽은자 가운데 처음으로 부활한 자라고 언급했는데, 예수가 부활시킨 나사로와
마태 복음27장 52절에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했을때 무덤들이 열리며 한 떼의 성자들이 살아
나왔다는것을 모르는 것일까?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12장 16절]
바울은 변절자들을 경고 하면서 구약성경에서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판 에서를 예로 든
다. 변절자에 대한 비유로는 은 30냥에 예수를 판 가롯 유다가 훨씬 더 적격이 아닐까? 왜 십
수년전의 배반자 가롯 유다는 무시한 채 비유로써 적절하지 않은 구약 시대로 올라 가는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며 하
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 / 공동번역판]
바울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킨 주기도문도 몰랐을까? (개역한글판에는 어떻게 빌어야 할
지로 번역되어서 뜻이 퇴색해져 있다. 공동번역판과 표준새번역은 '기도'라고 번역되어져 있
다.) 또한, 예수는 즐겨 자기 자신을 인자라고 호칭했는데, 바울 서신에서는 그 단어가 나타나
질 않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권력자에게 굴복할 것을 명령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
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
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장 1~2절]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
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서 13장 4절]
또한 바울은 노예제도에 대해서도 인정을 하고 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로새서 3장 22절]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
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디모데전서 6장 1~2절]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장 9~10절]
위에서 언급된 권력자에 대한 굴종과 노예제도에 대한 인정 구절은 공동번역판과 영어성경을
보면 더욱더 노골적이다.(개역한글판은 애매모호한 번역으로 부끄러운 성경구절을 감춰버리
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권력은 하늘에서 나는 것이니 권력자에게 굴복하라"는 로마서 13장 1~5절의 바울의
말은 중세시대 왕권신수설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시절 목사
들이 악용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는데 오용했던 문제의 구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빌레몬서 1장 13~19절에 따르면 기독교인 빌레몬의 종인 오네시모가 도망쳐 나와 바
울을 찾아갔다고 한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던터라 "그가 잠시 동안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 그를 영원
히 그대의 사람으로 만드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제
가 대신 갚아 드리겠읍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빌레몬에게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노예제도에
순응하고 권력자에게 순응하라고 한 바울의 말은 예수의 가르침과 같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
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 찌니
라," [누가복음 22장 25~26절]
위의 개역한글판의 내용이 하도 엉망으로 번역이 되어있으므로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올린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왕들은 강제로 백성을 다스린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백성의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중에서 제일 높은 사람은 제일 낮은 사람처럼 처신해야 하고 지배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처신해야 한다." [루가복음 22장 25~26절 / 공동번역판]
그리고 1 세기 당시 미신과 분파가 횡행 하고 많은 이적들이 주장되고 있던 풍토에서도, 서신
문헌들에는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고 기록 한 곳이 전혀 없다. 그토록 유행 했고, 4 복음서에도
숱 하게 기록된 병 고침의 기적, 귀신 쫓아 내기 등에 일체 침묵 한다.
또한 바울과 대립했던 예수의 직접적 제자인 베드로 역시 의문점이 있다.
베드로의 이름이 유래된 것은 예수가 시몬에게 "너의 이름을 베드로라 하라. 네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한것에서 유래되었다고 복음서는 기록 하고 있다. 이후로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 기
초로 여겨지고 카톨릭의 초대 교황으로 추대 되었다.
이것은 베드로 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반석을 의미 하는데서 유래 되었는데 조금 이상한 이야
기 이다. 당시의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람어(바빌론 유배 후 사용된 페르시아 언어)를 사용했는
데, 예수가 실존했다면 당연히 아람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예수는 어째서 일자 무식인 제자에
게 지식층 언어였던 그리스어로 이름을 지어 주었는가? (아람어로 반석이라는 단어는 '게바'이다)
어쨋든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는 예수의 위임 선포가 정말 있었다면, 어째서 1 세기의 문
서들에서 그 인용이 발견되지 않는가?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사도 간의 치열한 교권다툼 때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 구절이야 말로, 사도로써 베드로의 권위와 정통성 확립에 결정적
증거가 아닌가? 베드로 전서와 후서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고, 100 여년 넘도록 마태 복음이
쓰여 질 때까지,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라고 쓰여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의 12 제자가 아니고,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chist)는 구
원의 비밀을 보여 주는 영지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Rudolf Bultmann)도
12 제자 얘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후에 만들어져 낸 것 이라고 서술 했다. 도마 복음의 예
수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예수는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린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
이 크다.
당시 유대 사회는 몹시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요구 하고 있었다.
구세주 사상이 유행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사회의 혼란상이었다. 거듭되
는 전쟁과, 유대사회에 끊임없이 유입되는 이교도 사상속에서 이교도의 신이 유대교 경전(구약)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예수이다.
여기 저기에서 자칭 메시아들이 나타나고, 구약에 능통한 여러 사도들이 독립적으로 종파를
만들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세를 키우기 위해 경쟁 했다. 바울도 그런
사도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구약 성경을 연구 통달한 영지주의자들이 여기저
기서 나타나 구원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 했을것이다. 즉, 예수의 12 제자와 무관
한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광범위한 곳에서 그리스도를 이미 증거 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과 경쟁관계에 있던 아볼로라는 사도가 가장 좋은 예라고 할수 있겠다. 그는 요한의 세례
까지 밖에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로 인정 받았으며, 경전(=구약)의 구절들을 인용
해가며, 예수를 정확히 증거 한다고 서술 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
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
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
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
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일러라." [사도행전 18장 24~28절]
위에서 인용한 개역한글판은 애매모호하고 문맥상 아볼로를 약간 깍는듯한 이상한 번역을 했
다. 공동번역판을 보면 아볼로에 대해 칭찬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다시
인용하겠다.
"한편 에페소에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와 있었는데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구변이 좋고
성서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열성을 다하여 전도하며, 예수에 관한 일들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었
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는 것을 들은 브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에페소의 교우들은 아폴로가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그를 격려하며 아카이아의 신도들에게 그를 환영해 달라는 편지
를 써 보냈다. 아폴로는 아카이아에 도착하여 이미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도가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가 성서를 근거로 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떳떳하게 증명하여 유다인
들을 여지없이 논박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8장 24~28절 / 공동번역판]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도로 인정받고 예수를 정확히 가르친단 말인가? 또
한 아폴로는 유대인에게 구약성경을 인용해서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거한다. 아볼로에 대한 사
도행전의 기록은 기독교 탄생 배경의 의문을 말끔히 씻어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 4절에서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라며 교단분열에 대해 한탄할
만큼, 아볼로는 베드로와 바울에 맞먹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사도중의 하나이다. 고린도전
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나는 씨를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라고 말할정도다. 도데체 요
한의 세례밖에 모른다면 사도로써 자격 미달이 아닌가?
사도행전 18장 24절에 따르면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학문연구소와 그 부속 대(大)도서관을 설립하여 문헌
학(文獻學)과 자연과학이 융성한 학문의 도시이다. 70인역의 구약성경이 만들어진 곳도 이곳
이다. 특히,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시대에 이르러서 신플라톤 철학이 융성하고 그노시스 사상이
형성되고 발전된 곳이기도 하다.
바울의 출신이라는 다소(Tarsus)는 BC 1세기에 미트라 종교 의식이 행해졌다는 실리시아(Cili
cia)의 인접도시이다. 사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시의 이런 문화적인 배경을 놓쳐서
는 않될것이다. 알란 시걸(Alan Segal)은 바울의 서신들이 일반적으로 야기하는 당혹감을 다
음과 같이 진술한다.
"바울은 헬레니즘적 유대교의 견해들, 유대 신비주의와 묵시문학, 그리고 신생 랍비주의뿐만
아니라 그리스적 수사학에도 익숙하다." [Alan F. Segal / Paul the Convert : The Apostolate
and Apostasy of Saul the Pharisee/ Yale University Press]
앞서 필자가 구약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예수의 일대기에 끼워맞춘 것을 지적한바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유대교 영지주의자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초대교회의 교인중 상당수는 그리스도의 물리적 존재의 실재를 부인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딘밀만(Dean Milma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노시스 파는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것,
혹은 그가 죽었다는 것 자체를 부인했다." 그리고 독일의 유명한 교회사가인 모세임(Mosheim)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 기독교의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니라 형상, 환상, 기적 속의 인물
, 실재가 아닌 신화였다."
모든것을 종합해 볼때 당시 사도들이 설파하고 다닌것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속의 예
수이다!
보수적인 신학계에서는 공관복음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빠르다는 마가복음의 기록연대를 A
D 70년경이라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신학자들의 주장대로 4복음서들이 AD 100년 이내로 모
두 형성 되었다면, 왜 90년과 130년 사이의 초기의 기독교 교부의 글들 중 그 어떤 문서도, 공
관복음서들 중 하나라도 언급하거나 인용하지 않았을까?
AD 90 년경 로마교회의 교부 클레멘트(Clement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는 다른 사람이
다)의 이름으로 저작된 많은 글들이 있다. 그의 첫째 서신을 제외한 다른 것 들은 보수주의 신
학자들 조차도 위작이라 인정하는데,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도 예수의 흔적을 찾을수 없다. 그
리고 클레멘트 1서 25장에 따르면, 부활에 대해 논하는데 예수는 간데없고, 난데없이 전설의
불사조(phoenix) 이야기를 꺼내며 부활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불사조 신화는 부활의 정당성을
설명 하는데 후기의 터툴리안 및 다른 교부들도 사용 하고 있다.
AD 150년대에 순교자 저스틴(Justin)은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 파이어스(Antonius Pius)에게
변증서(Apology)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미트라교(Mithraism)와 기독
교 의식이 유사하다고 여기는 로마인에게, 저스틴은 68장으로 되어 있는 이책에서 61장에서
67장까지를 예배와 관련된 부분으로 할애하며 기독교를 위해 진땀을 빼고 변론 하고 있다.
예배의식에 대해 설명하는 변증론 67장에서 '사도들의 기억들'(memoirs of the Apostles)을
읽고 예배의식을 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복음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수도 없는데, 이들이 예
배에 사용했다는 것은 단편적인 구전 전승들로 추측된다.
AD 4세기경의 유세비우스(Eusebius)교부는 현재 분실된 125년 무렵에 파피아스(Papias)교
부가 기록했다는 문서를 재인용 했다. 그의 인용에 따르자면, 파피아스(Papias)교부가 마태와
마가에 의해 쓰여진 두 편의 문서를 언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파피아스 교부는 두 문
서가 이야기 형식이 아닌것 처럼(도마복음서 처럼) 말하며, 그나마 "장로(연장자, 원로)에게
전해 들은 것"이라며 자신은 그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유세비우스가 옛날편지에서 재인용한 '마가'와 '누가'의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
한다는 점으로 보아, 후대의 주석가들은 그 문서가 오늘날의 공관복음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게다가 교단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직책에 있었던 교부(敎父)라
는 사람이, 그 유명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소장하고 있지 않고 다른사람에게 전해 들었다
는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따라서 오늘날의 복음서들은 사도들과 초대교부들이 활동하던 시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을것
이라고 추측한다. 다만, 예수와 사도들에 대한 구전 전승과, 복음서의 초기형태에 해당되는 단
편적인 문서들이 초대교인들에게 떠돌아 다녔을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교정, 편집,
흡수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進化) 했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헬뭇(Helmut Koester) 같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복음서처럼 보이는 재료들에 대한 초기의 '암시들'은 마치 복음서들이 문서화된 공관 복음서
라는 항구로 자신들의 항로를 발견하기위해 표류하고 있는 표현의 선박 같다." [Helmut Koest
er / Ancient Christian Gospels: Their History and Development]
즉, 헬뭇 쾨스터같은 신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Q문서나 도마복음 같이 구약의 잠언과 같은
형태의 '지혜의 말씀'(예수어록 모음집)과, 초대교회에서 떠돌던 예수에 대한 구전 전승과, 복
음서가 등장하기 전에 만들어진 다른형태의 여러문서들이 존재했고, 이것들이 나중에 4복음
서로 진화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이교도들의 신화도 한몫했다고 확신
한다)
이제 여태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예수가 어떻게 가공되고 만들어졌는지 필자가 시나리오를 작
성해 보겠다.
① 짜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종교를 창립하고,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 메시아, 종말론, 구원론,
묵시문학등이 주변지역으로 급속히 전파됨. 바빌론 유수이후 유대인들도 조로아스터교의 영
향을 받게됨.
② 점성학에 의거해서 물고기좌의 시대가 도래할것이라는 예측이 등장함.
③ 시리아,그리스,로마제국의 침략을 받은 유대인들은 급속하게 헬라화가 진행됨.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부터 메시아 사상을 내포한 수많은 유대 묵시문학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함. 이때,
에세네파와 같은 유대교 영지주의자들도 등장하기 시작함.
④ 미트라교가 조로아스터교를 흡수하고 중근동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기시작. 이 종교는 고
대부터 내려왔던 동지축제, 춘분축제 등을 흡수하고, 그리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디오
니소스 의식과 헬라철학도 흡수해버린 괴물종교가 됨.
⑤ 정치적 혼돈속에서 디아스포라화 된 유대사회에, 사도라고 불리는 자들이 유대땅에 구세주
가 왔었다고 선포하고 다님. 예수에 대해 거의 아는것이 없는 사람들이(ex: 아볼로, 바울) 구약
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며 예수를 증거함. (이들이 증거한 예수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환상속의 예수일 가능성이 큼)
⑥ 바울을 비롯한 여러 사도들이 사망한 이후, 바울서신과 사도들의 편지들이 기록되고 정리
되기 시작함. 또, 그동안 짧은 경구로서만 전해지던 예수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문서화 되기 시
작함.(Q문서)
⑦ 시간이 흐르면서 토요일 안식일 같은 유대습성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한 초대교회는, 서
서히 헬레니즘 문화권의 태양신 신화를 차용하기 시작함. 이때쯤 전승으로 내려온 단편적인
예수이야기와 Q문서등을 통합한 복음서들이 하나둘씩 등장함. 헬라 철학자 첼수스를 비롯한
여러사람들이 기독교가 헬레니즘 문화의 신들을 표절했다고 비난하기도 함.
⑧ 예수신화의 창조자이며 그 신화의 의미를 알고있는 영지주의자들이 이단으로 배척받음. 광
신적인 자칭 정통파들은 숫자가 많았지만 영지주의자들은 소수였기에 밀려나기 시작함.
⑨ 정치적으로 혼란기에 있던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 태양신 숭배자였
던 그의 영향력 아래 기독교는 일요일, 삼위일체설, 크리스마스, 부활절, 십자가등을 마구잡이
로 흡수함. 결국, 예수는 미트라를 흡수한 또 하나의 괴물이 되버림. 영지주의자들은 반체제적
인 자유사상가들 이었기 때문에 정치와 손을 잡은 자칭 정통파 기독교에게 완전히 밀려나 버림.
이것이 우리가 얻어낸 예수 신화론의 결론이다.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바울이 기독교의 제1창립자
라면 콘스탄티누스 기독교의 제2창립자라고 평가 할만한 인물이다.
AD 331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유세비우스에게 소실되어 없어진 성경들을 수집하도록
명령한다. 그때, 성경 편찬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 상당부분의 성경이 첨가, 삭제 또는 개
정되었다. 현존하는 5천개의 초기 신약성경 사본 중 4세기 이전의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의 변형 독본들의 대부분이 이때에 만들어졌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의 예수상(相)은 이때 쯤 완성의 단계에 도달했다고 볼수 있다.
니케아 공의회 1년 후에 콘스탄티누스는 영지주의적 기독교 저서들은 물론이고, 예수에 대해
언급하는 이교도 저자들의 책도 몰수하고 소멸시킬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는 또한 교회에 고
정된 수입이 할당되도록 조치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주교를 라테란궁에 취임시켰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단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허구속의 가공의 인물일 따름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수 있는 것이 부처가 기독교의 성자로 둔갑한 일이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이 붓다를 중세 시대의 성 여호사밧의 성격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다. 중세기
독교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이 유명한 사례는 카톨릭 성자인 발라암과 여호사밧
(라틴명은 요아삽 또는 요사팟)의 이야기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한 왕자가 어떤 인도 왕국의 승계자로 태어났다. 왕자가 탄생하자 나라안의 예언자들이 왕위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데 문득 한 현자가 나타나서, 그왕자는 위대
해지긴 하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개종자로서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자를 보
호하고, 또 왕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위해 그의 부친은 그를 왕궁안에 가뒀다. 어느
날 잠시 왕궁밖을 나갔다가 왕자는 절름발이와 장님을 목격하고는 인생의 어두운면을 알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있었다. 어느날 이 수도자가 변장을 한 채
왕자 여호사밧을 찾아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부친은 귀신쫓는 마술이나 미녀들을 이용
해 왕자를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 였다. 성장한 여호사밧은 왕궁
을 떠나 수도자 발라암과 함께 광야에서 수행을 했으며, 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각색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일이다.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붓다의 탄생, 유년지, 그리고 출가에 맞춰 이야기의 뼈대를 맞추었다.
또 네장면의 목격, 여러가지 유혹들, 광야에서의 고행 기간 등 모두가 붓다의 이야기의 한토막
이다." [파드마삼바바 / 티벳 死者의 書 / 류시화 편역 / 정신세계사 / P.52]
당시에 동서양으로 뻗어나간 마니교(Manichaeism)에 의해 부처의 이야기가 서양에도 어느정
도 알려져 있었다. 시중에 떠도는 부처의 일대기를 적당히 각색하여 기독교의 성자(聖者)로 둔
갑시킨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카톨릭 성자중에 전설속의 허구인물이거나, 실존인물에 허구의 일대기를 갖다 붙였거나
, 심지어 이교도의 성자를 기독교 성자로 둔갑시킨 예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빌라도 총독 까지 성자(聖者)로 둔갑시키고 날조문서를 만들어 내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의 교인과 교부들이었다. 바로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창조해낸 사람들의 손아귀에 있던 성경
이 시간이 흘러 현재 여러분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것이다.
예수라는 인물이 정말로 실존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고있는 복음서속의 예수와
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것이다. 복음서속의 예수는 환상속의 예수이다! 그가 실존했던지 아니
면 실존하지 않았던 허구의 존재이던 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서속의 예수는 로마
제국 당시 중근동과 지중해 일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구세주 전설과 헬라철학에 의해 덧붙여지
고 가공된 인물이라는 점은 피할수 없다! (신화를 걷어내면 유대 혁명가같은 예수가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