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여러분.
더위가 한풀 가시는 계절입니다. 이대로 진행되면 완전 가을이 되겠죠.
없는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고 감상문을 썼습니다.
저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요. 업무에서 숨 좀 틔우고 살아야죠.
도서명: 시리, 나는 누구지?
저자: 셈 치타
* 이 도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아이프리 도서관에 데이지 형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참고로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출력서비스 신청하면 점자책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 4권이고, 도서출판 점자 프린트기로 확끈하고 확실하게 잘 뽑아드립니다!
* 소개글 서평
🫢 “헐~ 야, 쉬리야. 너 소설에 나오는데?”
위의 대사는 내가 이 소설 제목을 처음 귀로 들은 순간 한 말이다. 그랬더니 옆에 둔 아이폰에서 이런 답이 들려왔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을까요?” 👩💼
뭔가, 그렇게 똑똑하다는 인공지능 AI의 현 주소가 이렇다는 걸 실감하게 된 일화였다. 연수든 교육이든 업데이트든, 뭐가 됐건 좀 더 받아야겠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제목에 호기심이 생겨서 이 도서 《시리, 나는 누구지?》를 읽기로 했다. 전혀 생소한 작가명이지만 그런 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 👩⚕️ 📱
《시리, 나는 누구지?》 - 눈 떠보니 병원, 있는 거라곤 미아가 된 나
소설은 주인공이 병원에서 의식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머리에 큰 타격을 입고 실려와 이틀만에 깨어났다는데, 그런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비단 그 기억뿐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살고, 어떤 이들과 교류하며,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등 그 모든 신상이, 개인사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기억상실!
화사한 칵테일 드레스에 머리에는 반짝반짝한 티아라, 미니 클러치에는 아이폰과 열쇠만 들어 있을 뿐이다. 신분증도, 지갑조차도 없다. 내가 누구인지 추측할 단서가 희박하다. 과연 그녀는 누구일까? 파티에 초대받은 모델? 어느 나라의 공주? 상류층 아가씨? 패션 업계 종사자?
심지어 누구 물어볼 사람도 없다. 가족은 병원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건지 걱정을 안 하는 건지, 친구는 관계가 소원한 건지, 대판 싸운 건지, 스스로는 뭘 하다가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그녀는 아이폰에 대고 이렇게 묻는다. “시리, 내 이름이 뭐야?”라고.
그리고 아이폰에서는 이런 답변이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멋쟁이. 당신의 이름은 미아입니다.”
인공지능 AI의 대답에 힘입어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알았다. 좀 더 근사한 이름이 아닌 건 아쉽지만, 뭔가 문제에 대한 타개책이 보이는 것 같다. 전화번호 주소록을 통해 가족과 친구 등 인간관계도 알게 됐다. 그런데 반응이 하나같이 다 왜 이러지?
엄마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없는 번호’라는 알림이 떴다. 유일한 친구인 것 같은 사람은 화를 내며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녀의 사회생활은 대체 어떤 지경이길래?
미아는 다시 아이폰에 매달린다. 그녀에게 남은 단서는 휴대폰 연락처와 통화기록, 인스타그램 속 사진과 메시지, 팔로워들뿐이기에. 그리고 마침내 아이폰 인스타그램에서 굉장한 실마리를 발견한다.
“보고 싶어, 자기야.”
💸 인기 초콜릿을 출시하는 사업가인 억만장자 JP(자크 피에르)가 남자친구인 것 같다. 그리고 분홍색과 하늘색 건물이 나란히 놓인, 일명 사랑스러운 우리집 사진도 찾아낸다. 때마침 전송된 메시지에 추측은 거의 확신이 되어 간다. 오, 미아 자신은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들떴던 것도 잠시였다.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남자친구 집의 열쇠를 소지한 것으로 보면 제법 친밀한 사이 내지는 최소 동거 정도는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집에 남아 있는 자신의 흔적은 칫솔 하나뿐이다. 더구나 그는 대체 미아가 병원에 실려 갈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내가 ‘골드러시’의 주인이라네요. 인터넷에 따르면요.”
결국 미아는 남자친구 JP의 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청년 맥스와 함께 아이폰을 샅샅이 뒤져 의심스러운 과거를 되짚기 시작한다. 추적할수록 SNS 속에 남겨진 그녀는 몽땅 거짓말 같다. 하지만 그만큼 믿고 싶은 현실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속 ‘나’의 모습은 그 정도로 화려하다. 부유한 남자친구를 두었고, 요트를 소유한 부자에, 잘 나가는 데이팅 앱을 만든 CEO이기까지 하다.
벅차지만 믿고 싶은, 꿈만 같은 상황을 앞에 두고 미아는 다른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 헤맨다. 바로 누가 그녀를 다치게 했느냐는 것. 아니, 죽이려 했느냐는 것. 미술관 파티에서 누군가 미아를 밀었다. 그녀는 큐피트 얼음 조각상 화살촉에 머리를 찍히고, 의식을 잃었으며, 기억을 날렸다. 미아는 그 일이 사고 같지 않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과연 미아는 누구일까? SNS상의 미아는 정말 그녀가 맞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녀는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을 수 있을까? 미아를 해친 혹은 어쩌다 보니 다치게 한, 아니면 죽이려 한 인물은 누구일까? 정말로 ‘나’는 누구지?
🎭 💃 📱
‘Who am i?’로 시작된 자아 찾기 - 《시리, 나는 누구지?》
기억 상실에 빠진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플롯은 더는 참신하지 않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너무 자주 나와서 이제는 흔하다. 때로는 대충 이쯤 기억상실증 각이 나온다고 스포가 예언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억상실증은 작가로서도 쓰기 조심스러운 소재가 된 지 오래일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언제고 한 번은 써보고 싶은 소재이기도 하다. 잘만 버무리면 식상이 아닌 개성이 되는 법 아니겠는가.
소설 《시리, 나는 누구지?》 역시 식상한 소재를 잘 살려서 괜찮게 재활용한 작품이다. 자칫 뻔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아이폰과 인스타그램 등의 소재를 활용해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려냈다.
미아는 맥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경영 중인 데이팅 앱 CEO로서 활동한다. 맥스가 때마침 직장을 잃었기에 그를 비서 겸 부사장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 기억은 깡글이 날렸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기억을 잃기 전의 그녀가 받았던 의뢰와 관련된 이들에게서 하나하나 메시지가 온다.
우선, 인스타 활동으로 유명한 속옷 모델 줄스는 하프를 연주할 줄 아는 공주님 같은 여성과 데이트를 원한다. 취향이 참 로맨스 판타지스러운 것 같다.
뱀 문신이 인상적인 코브라는 일전 데이트한 상대와 또 만다고 싶다고 강짜를 부린다. 질이 매우 좋지 않을 것 같은 코브라는 나중에 마약 관련 범죄자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원하는 상대인 크리스털은 미아와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인다. 기억을 잃기 전 유일하게 3분 넘는 통화를 한 인물이지만, 병원에서 친구인 줄 알고 통화했던 당시 화를 내며 통화 종료를 당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크리스털은 미아가 소개해준 남자친구 후보 코브라가 너무 저질이라서 그녀와 싸운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크게 싸운 걸까?
한편 미아는 꿈과 기대에 부풀어 자신의 은행 계좌를 확인한다. 유명 데이팅 앱을 운영 및 관리하는 CEO이니 자금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까. 💳💰
그런데 이게 웬걸? 통장은 텅장이 되어 있었다. 파산이었다. 자신이 쓸 돈은커녕 직원으로 고용한 맥스의 월급을 챙겨줄 돈도 없다. 누군가 기억을 잃기 전에 미아의 뒤통수를 후려친 뒤 카드나 뭐 그런 걸 강탈해 돈을 인출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알고 봤더니, 그녀는 성공은 했지만 자금 사정은 부실한 CEO인 걸까?
우연히 만난 노숙자 돈이 그녀를 무료급식소에서 봤다는 얘기를 하고, 어쩌다 떠올린 과거의 파편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돈을 요구하는 장면이다. 미아의 과거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든다.
혼란은 시카고에 출장 중이었던 남자친구, 그러니까 아마도 남자친구일 것으로 추정되는 JP가 돌아오면서 절정을 찍는다. 미아는 아직 그에게 기억상실을 고백하지 않았다. Jp의 요청으로 공항에 마중을 나가게 되었지만, 대화 끝에 심장이 쿵 떨어질 것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신이 마침내 자기 삶을 공유할 준비가 됐다니 너무 기뻐.”
원래는 슬쩍 미아 자신의 집이 어딘지 떠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그녀는 남자친구 JP에게까지 자신의 진짜 삶을 공유하지 않았다. 과거의 미아는 그랬다. SNS의 그녀는 진짜일까, 거짓일까?
사진 설명: 엄청 맛있는 타코 맛집 ‘와코타코’에서 산 타코 세트. 복숭아 아이스티, 토핑 풍성한 타코, 토리토스 같은 칩 과자로 구성
💖 숙명여자대학교 인근 청파동에 위치함
《시리, 나는 누구지?》 - Siri, don't know, 완벽한 설정 컷과 필터 뒤에 숨은 무보정 무편집의 ‘나’를!
“당신 삶이 실제로는 거지 같은데, 플로리다에 사는 어떤 여자가 당신 사진을 좋아한들 무슨 상관이겠어요? 나는 사람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블로그의 포스팅, 어떤 카페의 글, 페이스북의 사진 등 SNS를 보다 보면 세상에는 온통 행복한 사람 천지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아니면 자금이 넉넉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국내 여행 가기도 힘든데 외국 여행 갔다 왔다는 글은 뭐가 그리 많은지. 나는 월차는 많아도 일에 치여서 휴가 내기 쉽지 않은데, 어디 좋은 축제 다녀왔다는 사진은 왜 그리도 많은지.
가끔 아등바등 하면서 사는 내가 좀, 상대적으로 박탈감 비슷한 걸 느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까, 느꼈다는 게 아니라,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만 했다는 거다. SNS가 온전히 진실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청해서 땅 파고 들어갈 일은 없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 우리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 보여줘도 되는 것, 그런 것들이 온전한 진실이 될 수는 없으니까.
소설은 모니터 너머, 사진 너머의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폰 AI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을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나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책 중후반부에서 마침내 미아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녀의 인생은 꿈처럼 달콤 로맨틱 억만장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등바등 막장 스트릿 로드 무비였다.
하나, 그녀는 기업의 CEO가 아니었고, 골드러시 데이팅 앱도 거짓이었다.
미아는 스트립 클럽에서 일했다. 예약을 받는 일이었다. 골드러시 앱은 데이팅 서비스가 아닌 스트립 클럽 여자들, 그리고 미아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한 억만장자 남자를 낚는 용도였다.
둘, 미아는 파산한 것도 모자라 부정수표 발행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남자친구와도 거짓을 기반으로 접근해 만난 관계였다.
골드러시 데이팅 서비스에 가입한 억만장자 사업가 자크 피에르에게 적당한 상대 대신 미아 자신을 매칭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녀의 친구 크리스털은 공주님이 아닌 스트립 댄서였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더니, 이 상황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온 세상에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완벽한 플랫폼 인스타그램은 이 소설에서 미아 자신조차도 속이는 도구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녀는 거의 속아 넘어갈 뻔했다.
그러나 미아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나서 회피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JP의 권유와 사랑 고백 대신 그의 핑크색 집을 박차고 나와 스트립 클럽 골드러시로 향한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기 위해 이른바 ‘정직해지기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그 와중에도 인스타그램 사진 업로드에 진심인 점이 미아다운 모습이다.
단지, 그 게시물과 사진은 과거 그녀가 올리곤 하던 완벽하고 환상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게 다르다. 설정 컷이나 연출도 아니요, 필터도 일절 쓰지 않았다.
좀 못난이처럼 나왔지만, 화장도 없는 쌩얼이지만,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무보정 무편집의 ‘나’를 담았다.
🩷 그럼에도 게시글에는 여러 댓글이 달렸다. 보정이 없고 필터가 없고 편집이 없어도, 아름답거나 환상적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녀에게 격려를 하고 응원을 했다.
작가 셈 치타는 그런 과정을 통해 건강한 SNS소통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도 기왕이면 예쁜 사진, 잘 나온 사진을 게시하고 싶다. 좋고 행복한, 자랑하고 싶은, 요컨대 꿇리지 않은 일상만 보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해피엔딩 드라마가 아니라는 게 현실이고 사실이다. 결정적으로 나는 사진 포토샵이나 편집 같은 거에 재주가 없다.
그런 것들은 내게 시각적 기능을 요구해서리. 👩🦯
그래서 소설의 여주 미아처럼 굳이 노력할 필요 없이 무보정 무편집의 ‘나’를 등록하는 중이다.
소설에서 말하지 않는가. 이게 건강한 SNS 소통이라고.
책의 마지막에서 미아는 추억이 깃든 타코 트럭에서 남자친구를 기다린다. 뒤늦게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댓글을 단 남자친구를.
얼핏 보면 거절 고백 같은 이 말에 담긴 함의는 사실 사랑 고백이다. 미아와 맥스, 둘만이 공유한 시간에서 나오는.
외국 소설답게 성적인 묘사 등이 좀 낯을 민망하게 만들긴 하지만, 그 부분만 제외한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분위기 있고 우아한 바와 칵테일 대신 좀 후지고 번잡한 타코 트럭을 택한 용기 있는 선택에 박수~
PS. 내가 괜히 타코 사진을 올린 게 아니란 말씀!
첫댓글 피곤에 지친 현대인은 한반쯤 모든기억을 리셋하고 픈 욕망을 가지고 있을것 같다.
지금의 나 자신을 뒤돌아 보는 여유아닌 여유가 된다. 탁월한 선택의 서평에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