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과 藝術 그리고 悔恨의 歷程
~해안 류상덕 친구가 남겨주고 간 글~
저녁 노을이 곱다. 지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타는 빛깔인가?
바라보는 석양이 더 찬란한 이 시간에 서서 문득 *한메 성용제*선생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노을도 사라지고 노을에 빛나던 숲이며 산 들 모두가 어둠속에 사라지리라. 그렇게 우리의 인생도 흘러가 사라질 것이리라.
강둑을 무심히 걷고 있는데 연산홍 빨간 꽃잎이 물 위에 떠내러가는 것을 보고 ^내 한 생애가 꽃등처럼 불을 켜고 떠나고 있다^라는 어느 시인의 詩가 생각 난다.
그렇다 64년의 세월을 거느리고 교단을 정리하는 *한메 선생*도 젊음을 보석처럼 간직하면서 이제 떠나려 한다.
그러나 그 동안 쌓아 올린 보람의 결실들은 한권의 화보 속에
꽃등처름 빛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선생은 1938년 11월 27일 경북 상주시 모동면 이동리 산간 벽촌에서 태어났다.
봄이면 진달래 꽃이 유독 아름다웠고, 겨울이면 참나무 숲을 일으키며 산천을 흔들던 혹독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그는 가난도 외면한체 건강하게 성장하였다.
^시간의 낭비는 인생 전체의 낭비^라는 좌우명을 새기며 6ㆍ25동란 중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상주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어려운 가정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하고 2년 후 다시 김천중학교에 진학하여 독학을 하다 싶이하면서 학교를 마쳤다.
어린 시절에는 괴로움이 그를 압도했지만 선생이되겠다는 굳은 일념으로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끝내었다.
그때 나이 약년 20세 청년 교사의 꿈이 시작되는 시발점인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선생의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는 것은 그의 청소년적 신념과 고난을 이겨내는 강인한 인간적 면모를 높이 받들기 위함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소중한 친구로 모시는 선생과의 만남은 가정교사를 하던 사범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체육 숙제로 화보를 모아 괘도를 만드는 것이였는데 선생과 나는 우연의 일치가 되어 공동 제작하게 되었다.
서문시장에 가서 유엔군이 쓰다 버린 책자를 사서 사진을 오려 붙이고 설명을 적고하여 몇장의 괘도를 만들어 전시함에 크게 칭찬을 받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선생의 성실함과 꾸임이 없는 인정 그리고 너그럽게 베푸는 배려에 대하여 존경하게 되었다.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가난에 찌들리면서도 여유로웠고 홀대에 대하서도 감사의 마음으로 풀어버리는 마음 가짐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1958년 어느 가을날 선생과 나는 각각 다른 시간제 가정교사 생활을 했는데 가르침만큼 지도비가 적어 하숙비가 모자라 둘이 같이 하숙집에서 쫒겨 나온 일이 있었다.
(봉산동 대봉파출소 뒷골목집)
어두운 가로수 길을 걸으며 갈곳 없어 헤매는 각박한 아픔을 우리는 서로 웃으며 손을 맞주 잡았던 그 때의 체온이 아직도 따뜻하게 전해 온다.
이미 지나간 살의 흔적이지만 40여년 동안 교사,교감,교육전문직,교장을 두루 거치면서 남다른 사랑으로 교육에 헌신한 선생의 그림자가 오늘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많은 표창장과 훈장이 말해주듯 선생의 한 생애는 살아 있는 교육자의 한표상이요.
이 시대의 스승상이다.
참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인생의 흐름은 큰 강물이라고 했다.
높은 절벽이나 바위등이 있어도 넉넉히 쓸어안고 그러다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믈결과 같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뜻이다.
선생인 세상을 가슴에 품으며 흘러가는 강물 같은 몸짓으로 유유히 흘러왔고 또다시 새로운 흐름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한메 성용제 *선생의 자랑스러움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부딪침이다.
어느 한곳에 편안과 한가로움에 젖어들 만한데 그렇지를 못한다.
교직생활에서 추구한 학습자료 개발과 수업지도 개선에 대한 끝임 없는 연구 태도가 그런것이고 장학사가 되어서도 현장장학지도 방법 개선을 위한 노력이 또한 그런 자세에서 생선된 것이라고 보면 과언일까?
교장으로 승진되어 호율적인 학교경영을 실행하여 전국적으로 우수학교의 표본이 된 일들도 정체하지 않고 나아가는 새로운 도전의식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선생에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하다.
그런데도 또 다른 세계인 예술의 경지를 갖추고 있어서 다시 한번 선생의 보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국사진촬영대회에서 13회의 입상 실적과 2001년 대한민국 정수미술사진대전 공모전에서 특상의 영예를 차지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 해 주고 있다.
그 동안에 푸른바다 백사장을 찾아 창작한 사진작품들이며 백두산을 비롯한 산수작픔은
높은산 깊은 계곡에 흘러 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긴 인간의 참모습을 표출한 작품들 속에서 선생의 섬세한 예술적 감성을 찾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제 한국사진작가 협회 회원으로 역량을 나타내고 있어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진예술에 있어서 표현성의 리얼리티를 강하게 들어내는 것은 현재성이며 이 현재성이 수용자로 하여금 표현된 세계로의 감정이입을 촉발하는 요인이 된다.
달리 말하면 대리 체험적 수용 의식이라 말할 수 있다.
가령 전쟁사진에서 받은 강한 충격의 사진을 보는 수용자가 전쟁 사진의 상황 속에 말려 들어가 실제와 비슷한 상황의 쳬험을 하는데서 느낌의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선생의 작품 중에서 갯벌을 배경으로 한 화면 구성은 어떠한가?
새벽의 조명을 받은 어촌 서민들의 애환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요.
삶의 밑바닥에서 질기게 몸부님치는 민초들의 소리없는 외침이 아니겠는가?
그런가 하면 지리산 적막한 계곡을 물들인 만추의 가을풍경이나 힘줄선 짐승처럼 일어서서 하얀 눈을 등에 덮고 겨울을 빛내는 설경을 통해 잃었던 향수와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게 됨은 선생의 예술성에 몰입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감동을 주는 사진작품들이다.
수많은 작품들을 가상하며 지면이 허락하지 않아 줄이게 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일몰의 바다를 펼쳐 놓고 머언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 본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어둠이 묻어내릴 것이고 파도 소리만 드높이 울려올 것이다.
그렇듯 인생도 순리에 따라 저물어 가는 것이고 보면 교단을 물러서는 *한메 성용제 *선생의 지난 업적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그가 쌓아 올린 셔월의 탑은 영원히 금빛햇살로 뻗어날 것이고 사진예술로 형상화한 자연과 전통과 서민들의 생활상이 화보집으로 정리되어 소중하게 평가된 것이고 보면 현장을 이별하는 선생의 뒷모습이 오히려 자랑스럽고 여유로워진다.
마지막으로 선생의 사진작품과 어울려 멋진 표지를 꾸몄던 필자의 시 한구절을 적으며 무딘 글을 맺는다.
몸체로 우는 법을 갈대숲이 일러준다.
비울만큼 비우면서 살았지만 또 남아서
깨어저 부서지는 절규 강물 위에 반짝인다.
이대로 흘러갈 뿐 구불구불 돌아 가자.
부딪치면 살 찢이고 절망만이 남더라도 말없이 숨을 죽이는 노을빛에 타게 하자
-강둑에서.
해안류상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