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부터 두꺼운 철심을 박은 포클레인이 우두두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연신 구럼비 바위를 깨트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과 탈법으로 기만과 거짓말로 점철된 해군기지 사업을 당장 중단하라!” 트위터 @dopeheadzo‘우두두두두두두’ 들리기도 했고, ‘탁탁탁탁’ 들리기도 했다. 해군이 제주군사기지 공사를 재개해 구럼비 해안 너럭바위를 깨는 소리가 들리자 중덕 삼거리에 있던 강정마을 주민, 평화운동가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구럼비 부서지는 소리가 펜스를 넘어 이들 가슴을 쳤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잣말을 하며 애달픔을 감추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문규현 신부님 등과 함께 미사를 올리고, 공사 현장 정문까지 행진했고, 트위터, 페이스북 각종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전 세계인에게 알렸다.
동시에 사람들은 최대한 구럼비로 다가가 역사와 평화가, 민중의 삶이 깨지는 현장을 기록했다. ‘현장을 남기고, 알리고, 행동해야 한다!’
기를 쓰고 구럼비로 가려는 사람들과 낚시하는 경찰이 있는 곳
공사 현장 정문에서 100배를 올리던 한 평화운동가는 촬영조차 어려울 정도로 경찰병력에 에워싸였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 여기 저기 삼삼오오 모여 불안해하면서도 ‘불법’ 공사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 지 토론이 한창이다.
일단 기자든 평화운동가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최대한 구럼비쪽으로 다가가 너럭바위가 어떻게 깨지는 지, 농성장과 주민과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평화의 상징물들은 그대로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강정포구로 가거나 강정천을 따라 중덕 해안가로 갔다. 어떤 이는 기지 반대 주민대책위 고권일 위원장이 농성을 했던 10미터 높이의 망루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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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천, 멀리 중덕 바다가 보인다. 오른쪽에 해군기기사업단이 있고, 더 오른쪽에 기지가 들어설 예정이 구럼비가 있다. 바다까지 나가도, 구럼비까지는 거리가 제법 돼 굴삭기도 손가락 하나 정도 크기도 보이며, 해군의 감시로 갈 수 없다. |
경찰은 기지 사업단에서 내려다보며 감시했고, 2~3명 씩 짝지어 돌아다니며 경비를 섰다. 경찰병력이 투입되면서 마지막으로 쳐지지 않은 중덕 삼거리까지 펜스와 철조망을 둘러쳤고, 거리를 두고 또 철조망으로 둘러쳐 구럼비 근처에 가지 못하게 해 놨다.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은 구럼비로 몸을 옮겼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구럼비에서 짐을 가져와야 한다고요. 제 일거리가 거기 있어요. 꼭 필요한 거니까 경찰을 대동해서라도 갈께요”
기지사업단 앞에서 평화운동가 Y씨와 해군 사이에 실랑이를 벌어졌다. 기지 공사가 재개되고, 경찰이 경비를 강화하면서 중덕 해안가에 놔둔 개인 짐조차 가져올 수 없었다. 해군은 개인 짐을 가져오는 것조차 ‘차라리 마을회에 부탁하는 게 훨씬 빠를 것’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일부 주민, 평화운동가들의 개인 짐은 중덕 해안가 농성장에 있다. 비명 소리와 해군기지 반대 목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아비규환이었던 2일 새벽, 이들은 펜스 설치를 막기 위해 양치할 겨를도 없이 맨 몸으로 달려왔다. 쌍용차, 유성기업처럼 경찰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기지 공사장으로부터 주민들을 ‘차단’시키겠다던 조현오 경찰청장은 그 말이 무색하게 경찰병력을 투입해 연행 작전을 병행했다.
7일 오후 마을회와 해군기지사단 측이 면담해 가까스로 개일 짐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 조차 막혔다. 애초 5일 오후 2시 짐을 가져오도록 조치한다던 경찰은 오후 4시경 이틀 뒤인 7일로 변경한다고 했다. 평화운동가 한 명당 경찰 한 명이 동행한다는 조건이 붙었고, 1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짐을 가지러갔다 구럼비에 들어가겠다고 항의하자 다시 막혔다. 평화운동가들은 주저앉았다.
“경찰이 내 짐 가져다주지 말고, 내가 들어가서 짐도 가지고 나오고, 구럼비 깨지는 거 한 번이라도 봐야겠어요. 들어가게 해 주세요, 차라리 잡아가세요”
중덕 삼거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또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이 출입을 차단하면서 ‘서문’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했지만 ‘서문’이 어디냐는 질문에 육지에서 온 경찰들도 길을 몰라 앵무새처럼 ‘서문’이라고만 말했다.
때문에 이제는 갈 수 없는 구럼비. 개인 짐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텐트 농성장과 농성 물품, 사진 전시관, 바람으로부터 악귀를 걸러준다는 ‘드림 캐쳐’, 각종 조형물 등 평화와 해방을 향한 열망이 가득한 곳이었던 만큼 정부는 철저히 통제했다. 기지 사업단 정문 옆 펜스에 출입 가능 차량 번호가 펜으로 가득 적혀 있었고, ‘국책사업’ 임에도 ‘국민’은 차단된 채 배제와 차별이 만연한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 그곳에서 경찰은 낚시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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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군기지 사업단 정문에는 출입 가능 차량 번호가 가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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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 하는 경찰들. 주변을 감시하다 낚시꾼들에게 발을 돌리는 경찰인 줄 알았는데, 낚시꾼, 경찰복을 입은 사람 모두 자신들을 '경찰'이라고 소개했다. |
펄럭이는 태극기와 시멘트 덩어리, 울부짖는 주민들
멀리 구럼비 일대엔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만든 농성장, 각종 전시물이 있었던 사진 전시관, ‘할망물 식당’ 외형이 그대로 있고, 해군과 경찰이 그곳에 앉아 쉬는 모습도 보인다. 할망물 식당은 특히 인기였는데, 평화활동가들과 주민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 주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구럼비 바위 사이로 용천수가 흘러나와 할망물을 만들었고, 제주도민들은 이 물을 정안수로 올려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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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평화운동가들은 일명 '사진전시관'에서 작품을 만들며 올레꾼 등에게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해야 한다고 알리는 일들을 했다. [자료사진] |
할망물 식당과 연행된 주민 김 모 씨의 숙소 등은 6월 지어졌는데, 역시 해군의 공사 재개 때문이다. 지난 6월 9일, 20일 해군이 오탁방지막이 설치되지도 않았는데, 준설공사를 재개한다고 하자 이는 불법이라며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이 싸워 막았다. 또, 마지막으로 쳐지지 않은 중덕 삼거리에 펜스를 치고 공사를 재개하려고 하자 민노당 현애자 의원 등 야5당과 주민들이 나서 쇠사슬 농성을 해 막았다.
“해군이 진입로 만든다고 길 닦으려고 돌 갖다 놓고 했는데 우리가 그 돌로 조형물 만들고, 공사를 위한 진입로를 만들지 못하게 막았죠. 그때 굴삭기로 땅 파려던 걸 몸으로 막고, 그곳에 식당을 아예 한 가운데 세우는 등 투쟁의 공간을 계속 확보해 나갔죠. 삼발이 등을 바다에 투하시키기 위한 길인데, 지금 해군이 삼발이 등을 만들어도 쌓아놓을 공간이 없으니까 빨리 공사를 강행한 것도 있어요. 화순항에 만들어 놓은 케이슨도 두 개 만들고 멈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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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럼비로 진입로를 닦아 공사를 강행하려 하자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막았다. 진입로 공사가 중단된 흔적. 주민들은 바로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었고, 비닐하우스에 차양막을 씌워 할망매 식당 등을 만들어 '투쟁 공간을 확보'해 나갔다. [자료사진] |
예상했던 대로 해군은 경찰 강제진압이 끝난 지난 5일 공사부지 정지작업과 함께 방파제 축조를 위한 준비 작업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해군은 방파제 건설 전 항만 접안시설의 기초가 되는 콘크리트 구조물인 케이슨(caisson)을 화순항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해 골재를 반입, 공사용 진입도로를 닦고 있다. 케이슨 높이는 약 20∼30미터로 바다 속에 넣으면 건물 7∼10층과 맞먹는 규모다.
시공사인 삼성건설은 화순항에서 케이슨을 제작한 뒤 플로팅도크(floating dock, 반잠수식 바지선)에 싣고 뱃길로 약 16㎞ 떨어진 암벽공사 현장까지 이동, 미리 정리된 바닷속에 진수시키는 공법을 사용한단다. 속이 텅 빈 케이슨을 바다 속에 빠뜨려 모래 등 골자재로 안에 채워 블록 쌓는 것처럼 일렬 배치해 임시부두와 적출장을 조성하는 것으로, 오탁방지막 설치, 바다 바닥 평탄화를 위한 작업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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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방산 아래 화순항. 이곳에서 거대한 콘트리트 구조물인 케이슨이 제작되고 있다. 해군과 삼성은 케이슨을 중덕 해안가로 옮겨 빠뜨려 기지 건설을 위한 방파제 등을 만든다(위 사진 2개). 또 화순항에 방파제에 쌓을 삼발이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아래 사진). [자료사진] |
공사가 재개되면서 마을의 땅, ‘농로’는 그대로 보이지만 문화재 발굴터가 위험해 보인다. 해군은 문화재 발굴터 인근에 조립식 사무실을 설립하고 태극기를 꽂아 놨다. 그곳에서 농로를 따라 2~3분 걸어가면 유적 발굴터가 있다. 삼발이 등 시멘트 덩어리가 쌓여져 있던 붉은발 말똥개가 서식하던 습지도 보이지 않고, 붉은발 말똥개 이식 작업이 끝났는지, 맹꽁이는 잘 살고 있는지, 아니면 습지조차 시멘트 덩어리와 골자재로 채워졌는지 알 수가 없다.
펜스가 가로막아 확 트인 구럼비로 가지 못해 답답하다는 주민들, 구럼비가 탁탁탁탁 깨지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것 같다는 그들이 울부짖고 있다.
“농로는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내 놔서 만든 마을 땅인데 김태환 도지사가 팔아먹었어. 마을 사람들이 땅 기증해서 초등학교 세웠는데, 교육부 소관이 되었다가 국가에서 팔아먹는 경우랑 똑같은 거지. 근데 저것들이 해군기지 만든다고, 또 길 만든다고 저 지랄이야. 아이고 어떻게 미치겠네. 구럼비랑 저것들 다 어떻게. 저거 공사 막아야 하는 데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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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전시관 뒤로 사업단 사무실이 들어섰고, 태극기가 펄럭인다. 국책사업임에도 국민이 '빨갱이'가 되고, 국민이 들어갈 수 없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