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 ‘실험’도 국제협약 위반이다
미국은 1972년 4월 10일 체결된 생물무기 금지협약[세균무기(생물무기) 및 독소무기의 개발, 생산 및 비축의 금지와 그 폐기에 관한 협약, BWC]의 당사국이자 제소국이다. 미국은 1979년 소련스베르들로프스크 지방에서 수천명이 숨지는 사고에 대해서 위 협약 위반으로 UN 안보리에 제소한 적이 있고(The Sverdlovsk case), 탄저균 유출로 인한 사망이라는 조사결과를 제소된 당사국이 받아들이게 했다. 생물무기금지협약은 “인류 전체를 위하여, 세균성(생물성) 물체와 독소물질이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것을 결의”한 전 지구적 협약이다. 미군이 현재 주한미군기지를 비롯한 ‘실험실’에서 군사적 목적의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생물무기금지협약에서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과거 미국이 제소해서 문제를 삼았던 소련의 케이스도 ‘실험실’에서 유출된 것이 문제였지 이를 전쟁에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즉 미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탄저균 실험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협약 위반이다.
소련 스베르들로프스크 탄저균 사건을 다룬 MBC TV ‘서프라이즈’ 장면ⓒ방송 캡처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탄저균으로 공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들여온 탄저균 포자로 자신의 집 실험실에서 몰래 배양 실험을 하고, ‘언젠가, 누군가가’ 공격하였을 때 그것이 탄저균인지 빨리 찾기 위해서 배양된 탄저균을 공기 중에 산포하여 포집하는 훈련을 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 생화학무기법(화학무기‧생물무기의 금지와 특정화학물질‧생물작용제 등의 제조‧수출입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은 ‘생물무기’를 ‘생물작용제 또는 독소’로 정의하고 있다. 즉 탄저균은 그 자체로 ‘생물무기’인 것이다. 이런 생물무기를 배양하거나 보유, 지원 또는 권유한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리고 제조 목적과 제조량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따라서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누군가가 미군이 평택 오산공군기지에서 한 행위를 하였다면 중형이 불가피한 것이다.
배달사고가 아니라 국제범죄다
그 프레임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모르겠지만(아마 주한미군의 보도자료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이 사건은 배달 ‘사고’로 알려졌다. 비활성화된 상태의 탄저균 샘플을 들여와서 자신들의 실험실 규약에 따라 오산 공군기지 훈련 실험실 요원들이 훈련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단지 활성화된 탄저균 샘플이 들어온 게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고’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적어도 2013년 6월부터는 ‘포자형태의 액체상태로 포장’된 탄저균 샘플이 매우 정확하게 원래 목적지인 오산공군기지 내로 배달되어 왔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져야 하며, 앞으로도 계속 배달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대답을 들어야 한다. 미군 스스로 이야기한 바는 없지만 한국의 장관들은 나서서 ‘방어적 목적’, ‘평화적 목적’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은 문언적으로 양립할 수 없고, 방어적 목적이라면 모든 나라가 탄저균을 배양해서 훈련하는 게 허용된다는 말인지, 어불성설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탄저균은 ‘실험’ 자체가 문제이다.
해당 법위반 사항에 대해서 주한미군 사령관 등을 고발했다. 순식간에 국민고발단 8,704명이 모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적어도 탄저균 관련해서 미군으로부터 제조, 수입, 보유량 신고를 받은 바가 없다고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회신을 보냈으니 법 위반은 피할 수 없다. 주한미군의 범죄행위가, 특히 주한미군이 조직적으로 행한 범죄행위가, 번번이 소파(SOFA) 상의 형사재판권 규정 때문에 좌절된 적이 있지만 일단 기소하면 우리 법원이 판단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검사는 고발 사건에 대해서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으리라는 국민고발단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게다가 미군 당국 누구도 지금까지 한국민들에게 사과한 적도 없다.
탄저균 불법반입실험 규탄 시민사회대책회의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에 대한 고발장 접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양지웅 기자
한국정부는 미국을 제소하라
미 국방부 대변인은 2015년 6월 12일 일본에도 탄저균이 배달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지금은 살아있던 죽어있던 일본에는 탄저균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서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무척 두렵다. 한미합동위원회에서 ‘탄저균 사건’이 안건으로 채택되고 합동조사단을 꾸린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아주 정확하게 탄저균 샘플이 오산공군기지로 반입되었던’ 사건에 대해서는 얼마나 조사될지 미지수이다. 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미래’를 위해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것이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행위라는 것을 밝히는 일은 너무 중요하다. 한국정부는 미국을 생물무기금지협약 위반국으로 제소하라. 탄저균으로 군사 훈련을 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는 주권자인 국민의 목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