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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롬 15:33절
제 목 : 마귀는 어떻게 침입하는가?
일 시 : 2024. 6. 16.
롬15:33/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우리는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싸움은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사도 바울도 그 싸움을 경험했고,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그래서 롬7: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으며, 롬7:19-24/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보면 그의 거듭난 영, 즉 속 사람은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법 말씀을 지키기를 원하지만 그의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나타나서 선을 행하려는 마음의 법과 싸워 육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선을 추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자꾸만 죄를 짓고 싶어하고 마귀를 쫓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심각한 갈등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호소하며 절규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심각한 갈등과 절규가 있어야 하며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면서 몸부림쳤던 갈등과도 같습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하게 될 처절하고 치가 떨리는 죽음의 고통을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십자가를 져야 하고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겟세마네의 동산에서 겪었던 갈등과 고민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26: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심적인 고통 즉 자기와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나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갈등과 고민과 몸부림이 없이는 결코 주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전쟁의 최전선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이 거쳐 왔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거쳐 왔던 그 싸움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고민과 갈등과 몸부림과 딜레마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그 마지막에 깨닫는 진리가 있습니다. 롬7: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했으며,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신을 해방했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내 속에 있는 죄성을 가지고 고소하고 고발하고 정죄하더라고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의 죄성과 부족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영원하신 승리자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죽음과 절망의 문턱에 도달해 보아야지 이와 같은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저절로 고백을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고후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렇습니다. 승리의 확신과 감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갈등과 마귀의 유혹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68:19-21/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20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하나님이시라 사망에서 벗어남은 주 여호와로 말미암거니와 21 그의 원수들의 머리 곧 죄를 짓고 다니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뜨리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감사와 찬양과 고백과 기쁨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죽음의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다.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성장 통을 겪어야지 어른이 되듯이 고난의 긴 터널을 통과해야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들을 다시 요약합니다. 모든 사람은 두 주인 즉 하나님과 마귀 중에 한 주인을 섬기고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든지 아니면 악한 마귀를 따르고 섬기든지 둘 중에 한 주인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롬6:16절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누구의 말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내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선하고 의롭게 되어 복을 받게 되고, 반대로 악한 자 마귀의 말과 유혹에 순종하면 마귀의 종이 되어서 죄와 사망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여기에서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되면 의롭고 선하게 되어 이 땅에서 복을 받아 건강하고 형통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마귀의 말과 유혹에 넘어가면 결국은 죄의 종과 마귀의 종이 되어서 악하게 살다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지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벧전5: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중요한 것은 삼킬 자라는 단어의 정확한 원어의 뜻은 (삼킬 수 있는 자)를 찾아다닌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아무나 삼키는 것이 아니라 삼킬 수 있는 자를 삼킵니다. 진리의 지식과 성경말씀과 영적전쟁에 대해서 무시한 사람들을 삼키려고 찾아다닙니다. 따라서 마귀는 우리의 협조가 없이는 우리를 삼키거나(혹은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마귀는 자신에게 협조하는 자를 삼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귀에게 협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그것은 잘못된 말과 행동입니다.
즉 다음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하는 자입니다. 약3: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자신을 삼키고 멸망시키도록 마귀에게 협조하는 말과 행동이란 바로 시기와 다툼(싸움)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나쁘게 말하고 그리고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바로 마귀에게 자신을 삼키고 멸망시켜 달라고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또한 사람들과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근신하라 깨어라고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는 말은 과거 로마의 군인들이 초소에서 근무할 때 술에 취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근무를 서거나 졸면서 근무를 섰기 때문에 그와는 반대로 술에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근무를 서라는 뜻이며 그것처럼 그렇게 우리도 맑은 정신으로 깨어서 마귀가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좋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다투고 싸울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싸움은 영적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결코 사람과 다투고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마귀가 침입해 오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경험을 해 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저는 여러번 그런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집이나 교실이나 은행이나 어떤 공간에 들어갔을 때 그 공간의 분위기가 매우 차갑고 싸늘하다는 것은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싸늘하고 차갑다는 느낌,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공간과 그 장소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싸웠거나 다투었기 때문에 그런 차가운 기운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느 공간에 들어갔는데 굉장히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들어갔을 때 따뜻하고 포근하고 무엇인가 기분이 좋은 느낌이 든다면 거기에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들어갔는데 차갑게 느껴지거나 안 좋은 느낌을 받는다면 거기에는 악한 영 마귀가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장소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장소의 분위기가 싸늘하고 차답다는 것은 마귀가 거기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고, 어떤 장소의 분위기가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기분이 좋게 느껴진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어떤 장소의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서로 다투거나 싸우거나 비난하는 것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은 마귀가 그 장소에 그리고 자신 속에 침입하도록 문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2. 분을 내고 화를 내면서 심하게 다툴 때 마귀는 침입해 들어옵니다.
성경 엡4:26-27/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마귀가 침투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자기자신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사람들과 화를 내거나 분노할 때 분노의 감정을 통해서 침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들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화를 내면서 싸우고 나면 반드시 감기나 몸에 다른 질병들이 찾아와서 심하게 아프게 된 일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나 분노와 화를 내는 것을 안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3. 남의 말하기를 좋아할 때 마귀는 침입해 들어옵니다.
잠18:8,26:22/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고 했습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란 다른 사람을 헐뜯고 흉을 보거나 중상모략 하는 말을 좋아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잘 요리된 특별한 음식과 같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며 즐거워합니다. 이러한 악한 중상모략에 대한 욕망은 마치 음식을 앞에 둔 허기진 사람의 식욕과 같아서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타락한 본성을 만족시키기까지 채우려 합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중상모략 즉 비난의 말을 하게 되면 거기에 있는 대부분이 사람들도 함께 동참해서 나쁘게 말하거나 비난하거나 험담하게 됩니다. 바로 그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는 말씀은 별식을 먹는 모습을 묘사한 표현으로 사람들이 중상모략을 즐기고자 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타락한 본성은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 몰려드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중상모략 하는 말을 하게 되면 마귀는 그 사람 속에 들어와서 집을 짓고 살게 되고 때가 되면 몸 속에 여러 가지의 질병을 유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항상 평안과 기쁨과 감사가 있고 삶이 즐겁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 즉 복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벧전 3:8-11/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복을 비는 것입니다.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복을 받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입술에 나쁜 것을 가지고 오는 악하고 나쁜 말은 금하고 축복이 흘러나오도록 복된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화평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바로 이런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시기와 다툼과 온갖 안 좋은 것들을 일으키는 원인은 우리의 눈과 귀가 그런 것들을 보고 듣는 것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시101:3/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에 유혹받을 수도 없습니다. 시119:101/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을 시기나 다툼이나 분열이나 우리 사회가 오락으로 여기고 있는 다른 모든 부정적인 것들에 문을 열지 않는다면 마귀는 우리에게 들어갈 틈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시편 1:1-3/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의 특징 두 가지입니다. 1) 첫 번째는 악인들의 꾀(생각)을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생활방식)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들(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2) 두 번째로 오직 여호와의 율법(성경말씀)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아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느 단체와 어떤 공동체에 속하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내가 속해 있는 사람들을 본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며 지혜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련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잠13:20/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함께 생활할 때 항상 좋은 것들과 복된 것들과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본받아서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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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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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나누십시오.
1. 마귀가 사람들에게 침입해 들어오는 세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1.잘못된 말과 행동, 분을 내고 화를 내면서 심하게 다투게 될때, 남의 말하기를 좋아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