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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롬 14:1-12절
제 목 :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2
일 시 : 2025. 2. 19.
로마서 14:1-12/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지난 주의 말씀은 로마교회 안에 있는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믿음의 강하고 약하다는 것은 하나님이나 성경말씀을 믿고 따르는 부분에서의 약함이나 강함이 아니라 단순히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한 확신의 부족이나 강함에 대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부분에서의 부족은 분명히 회개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지만 음식을 먹는 문제와 예배 드리는 날에 대한 확신의 부족은 비판의 대상도 아니고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대상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기 때문이고, 또한 사람을 비판하고 멸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고유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관한 문제와 예배드리는 날에 관한 문제는 사람과 의논하고 종교적인 규례에 영향을 받을 것이 아니라 각자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 여쭈어 보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감동과 주님의 음성을 듣고 결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만이 모든 믿는 자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기 때문에 사람의 비판과 멸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에 말씀 드린 내용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 7절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일어난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로마교회 성도들이 취해야할 생활원리들을 소극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으로 구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소극적인 생활원리 중 첫 번째는 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법과 반대되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와 대조되는 세상적인 즐거움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위해서 자는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는 불신자의 삶과는 정반대의 삶입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의 역사는 자신의 잘못된 욕망과 욕심을 이루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불신자의 잘못되고 악한 삶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었고(고전6:19-20)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2) 성도의 소극적인 생활원리 중 두 번째는 성도는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라는 말씀의 뜻은 성도의 삶은 죽음까지도 자신에 의하여 주관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달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를 위해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빌1:20-2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삶의 원리들을 권면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주를 위한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삶을 살았습니다.
2. 8절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8절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성도의 내적인 삶의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삶과 죽음에 있어서 궁극적인 표준이 되십니다. 이 말씀은 앞 절에서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과 대조되는 삶이며, 또한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핏 값으로 산 것이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성도가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살거나 자신을 스스로 주장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왜 음식과 절기의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죽고 사는 문제까지 끌어 드려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일상의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출발해야 하며 또한 청지기라는 사명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3. 9절에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8절 말씀을 확증해 주는 표현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죽은 자의 주가 되시기 위해서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은 산 자의 주가 되기 위해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예수님의 신성(神性)과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救世主)되심을 입증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만물의 주인되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4.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1)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3절에서의 책망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① 먼저 믿음이 연약한 형제에 대한 언급으로 채소만 먹는 자들이 고기를 먹는 자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비판하느냐 라는 단어는 의문문으로 책망에 대한 좀더 강한 표현입니다. 즉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믿음이 강한 자를 비판하기 때문에 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너희가 무슨 권리와 근거로 그들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가? 하면서 연약한자들이 강한 자들을 비판하기에 앞서서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를 돌아보도록 깨우치고 있습니다. ② 두 번째는 믿음이 강한 자들에 대한 언급으로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업신여겼습니다. 즉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고기도 먹고 채소도 먹는 자들이 채소만 먹는 자들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업신여기느냐? 라는 단어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멸시하는 태도에 해당되며 동시에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교만한 태도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의 두 가지 태도 모두는 어느 쪽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온당치 못한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하여 믿음이 강한 자나 연약한 자 모두가 서로간에 판단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래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즉 진정한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심판대란 베마티 라고 하는데 운동경기에서 심판이 서 있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장소에 서있는 심판은 경기도중에 규칙을 어기는 사람을 보면 즉시로 그들의 자격을 박탈하여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도록 할 뿐 아니라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는 상을 주었습니다(고전9:24-27). 따라서 우리 각자는 그 날에(심판 날에) 자기가 행한 대로 하나님께 직고하며 선악간에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남을 판단하거나 업신여기는 행위를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11-12절).
5. 11절에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1) 11절 말씀은 사45:23과 사49:18을 결합시킨 혼합형 문장입니다.
즉 구약성경의 권위있는 가르침을 인용하여 자기의 교훈이 성경말씀과 하나님으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2)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선지서에서 자주 나타나는 관용구로서, 반드시 성취될 중요한 진리를 선언할 때 쓰는 표현으로 신약성경에서 주님께서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이루어질 일을 강조할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요3:3,5,11,5:19,24,25)라는 관용구와 같은 표현입니다.
3)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남을 업신여기고 판단하는 행위는(10절)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심판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며, 따라서 형제를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위에 반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우상숭배의 올무에 빠지는 행위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백하리라고 했는데 자백하다 란 인정하다, 자백하다, 찬양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최후에는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숨김없이 자백한다는 의미와 함께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내용에 대해 모든 인류가 주께 찬양하며 경배하고 복종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6. 12절에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했습니다.
1)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앞에서 언급한 10절의 말씀을 반복한 것입니다. 각 사람이란 어느 쪽도 배제(排除)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즉 강한 자나 연약한 자, 즉 판단하는 자나 판단받는 자나 양쪽 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자기 일이란 자기가 판단하는 형제의 일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일에 관해서 하나님께 직고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란 사람들이 아는 모든 것을 다 아시되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 직고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고하리라란 장부에 적힌 대로 세밀히 보고하다, 회계하다, 계산하다 라는 뜻으로 심판의 철저성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예외없이 각각 자기가 행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자백할 뿐만 아니라 계산해야 한다는 진리를 각 단어마다(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강조하면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일이나 믿음이 약한 자가 믿음이 강한 자를 비판하는 양자 모두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은 우리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권한을 침범하지 말고 우리 각자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각자가 자신이 행한 일을 하나님께 직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비교하여 비판하거나 멸시하지 말고 오직 모든 사람들의 행위를 감찰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인생을 반석 위에 아름답게 세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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