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 전동성당<하>
전쟁 화재 수난 딛고 시민 휴식처로 자리
오래된 건축물은 그 세월만큼 다양한 흔적을 갖고 있다.
때론 그 흔적이 '전설'이 되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에 우뚝 서 100여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주 전동성당도 세월의 흔적만큼 모습을 달리해 왔고, 성당을 찾았던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탄식과 슬픔을 간직해 오고 있다.
프랑스인 마리아 앙리에트가 봉헌한 전동성당 종은 1915년 8월24일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갖고 종탑에 설치됐다. 경향잡지(제9권)는 당시 종 축복식 광경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주교께서는 80여명 교우에게 견진성사를 주시고 이어 성체강복을 하신 후에 종을 달아 삼종을 치니 소리 기묘하고 웅장하야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지라 여러 교우들이 흔히하고 용약하야 일제히 삼종을 외우고 이제부터는 이곳에 귀막힘과 같이 지내던 외교인들도 성교회 소리에 많이 감화하야 천주의 영광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도 또한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종이 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1942년 일제가 전동성당 종을 공출하려 하자, 당시 보좌였던 오기선 신부가 "만일 적이 공습했을 때 전기나 통신이 끊어지게 되면 성당 종을 쳐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고, 또 매일 울리던 종이 울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안해 할 것"이라고 말해 위기를 모면했다. 나바위와 수류성당을 비롯해 전주 시내 개신교회의 종은 모두 공출당했으나 오 신부의 임기응변으로 전동성당 종만 공출을 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매주일 오전 10시30분 교중미사 때만 전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1937년 4월13일 전주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된 전동성당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트럭 정비소로 사용하기 위해 제대와 성당 내부를 파괴해 첫 수난을 겪었다. 이후 전동성당은 1988년 10월에 일단의 괴한에 의해 방화사건이 발생, 성당 동편 2층 회랑이 전소되는 두번째 수난을 당했다.
이 방화사건은 지금도 미궁에 빠져 있지만 전동성당은 당시 전북지역 민주화의 성지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던 곳이어서 지금도 시민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짓이라고 믿고 있다.
전동성당은 한국전쟁 이후 1955년 공산군에 의해 파괴된 십자가의 길 14처 복구 공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러차례 보수 공사를 해왔다. 1973년에는 성당 마룻바닥을 철거하고 인조석으로 개조를 했으며, 1975년에는 유리창을 개수하기도 했다.
1988년 화재사건 이후 제22대 본당주임 으로 부임한 김봉희(현 치명자산 성지 주임) 신부는 1992년부터 대대적 전동성당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성당 바닥은 대리석으로, 부식된 벽돌은 새 벽돌로 교체됐다. 성당 양측 벽면 18개의 창문은 유리화로 단장했고, 화재로 전소됐던 2층 회랑을 복원했다. 또 지난해에는 담을 허물고 그 자리를 꽃길로 조성해 시민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전동성당 양측 벽면 18개 창 가운데 신자석을 감싸고 있는 12개의 색유리창은 전주교구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창에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중 전주 숲정이와 서천교에서 순교한 한원서(베드로)·손선지(베드로)·이명서(베드로)·정문호(바르톨로메오)·조화서(베드로)·조윤호(요셉)·정원지(베드로) 7명의 성인과 본당 주보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권상연(야고보), 1801년 순교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유관검, 그리고 동정부부 순교자인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 본당 초대주임 보두네 신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 제대 주위에는 예수의 탄생과 수난·부활·승천·성령강림·성모승천을 보여주는 색유리가 설치돼 있다.
성심여자중·고등학교와 접한 성당 왼편 담장 쪽에는 한국 천주교회 첫 순교자인 윤지충·권상연의 순교 동상이 서 있다. 1993년 3월에 건립된 이 순교상은 윤지충이 십자가를 들고 서 있고, 권상연이 목에 칼을 차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방주 모양의 좌대 위에 설치돼 있다. 이 순교상은 마르코 조각실에서 제작했다.
성당 정문에서 오른쪽 꽃담에는 '한국 천주교 순교 1번지'라고 새겨진 선돌이 있다. 이 순교비에 새겨진 글은 전주교구 가톨릭 미술가회 지도신부인 현유복 (호성동본당 주임) 신부가 썼다. 또 성당 왼편에 대리석으로 제작된 '유항검과 동정부부 순교상'은 황등석재에서 제작한 것이다.
성당 마당 안쪽에는 1977년에 봉헌된 루르드 성모 동굴 성모상이 있으며, 성당 뒷편에는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에서 제작한 '피에타상'이 안치돼 있다.
또 1992년에 지하 103m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로 만든 급수대는 신자들로부터 '치명생수'라고 불리면서 사랑받고 있다.
(사진설명)
1. 전당성당 새 제대(앞쪽)와 옛제대. 옛 제대 양편에는 한국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광 안에 모셔져 있고, 그 양편으로 천사상이 제대 복사를 서듯이 합장한 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2. 성당 마당 한켠에 설치돼 있는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권상연 순교상이 전동성당이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3. 성당 뒷편 마당에 설치돼 있는 피에타 상. 성당 뒷쪽까지 자세히 둘러보는 순례자들이 많지 않아 다녀가는 사람들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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