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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 / 갈라디아서 6 :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우리가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다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십자가 하나에서 답을 얻고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또 우리교회의 출발도 언제나 십자가에서 출발하여 십자가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어디를 갔다가도 다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우리는 주님을 이곳에서 만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기독교의 힘은, 우리 성도들의 힘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교회가 2천년 동안 내려 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세상의 모든 힘과 능력이 다 무너져도 연약한 교회가 오늘날까지 지탱해 온 것은 어떤 재정적으로 든든한 배경이 있어서, 권력이 있어서 내려 온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총이,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시고 또한 앞으로도 새새 무궁토록 십자가의 깃발이 있는 곳, 십자가를 자랑하고 높이는 곳에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십자가 앞에 새로운 은혜를 받고, 바로 서고, 십자가를 바로 바라보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나아갈 때 여러분의 앞길은 분명히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구원을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우리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면서까지 우리를 살리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흐름입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성경 전체를 모릅니다. 십자가는 바로 온 인류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흘리는 피가 우리 인류의 죄를 사하고, 채찍 맞으심과 고통이 우리 인류를 모든 죄의 고통에서 건져주시고, 죽음에서 건져주시고, 마귀에게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다시 살아나신 이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은혜 안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나는 자랑할 것이 이제는 하나도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이 하나만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개인적인 자기자랑을 하려고 했으면,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자랑할 것이 많이 있지만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나서는 오직십자가만 자랑하기로 했다고 고백합니다.
요사이는 모두 자기 피알(Public Relations 위기관리 및 정보관리, 이미지 관리능력 등) 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피알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 해서 피알이라고 합니다. 하여튼 많이 알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도 얼마나 많이 알리려고 하는지 그래서 만나서 대화를 하려고 하면 자기자랑이 60퍼센트고 남 비판하는 것이 40퍼센트라고 합니다. 분석을 해 보면 내 자랑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다음에는 100퍼센트 예수님만 자랑하고, 나는 나를 자랑하지 않고 나를 피알하지 않아도 주님이 나를 피알 해주시기 때문에 만물이 나를 도와줄 줄로 믿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전능하신 주님이 나를 피알할 때,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나는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한 것 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입니다. 이 흉악한 죄인을 건져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만을 이웃과 세계만방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진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을 자꾸 드러내어 자랑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내 할 일은 주님만 높이는 겁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 이상 죽지 않습니다. 나의 무거운 짐, 우주보다도 무거운 죄의 짐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으므로 내가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시므로 우리가 웃으며 기쁨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교인이란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합니다. 거기서 모두 출발합니다. 항상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여기에 나온 것도 십자가의 은혜 때문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 가는 것도 십자가의 은혜이고 천국문은 십자가의 키로 열려지는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했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고통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늘 사랑하며 삽시다. 감사하며 삽시다. 십자가로 옷 입고 십자가를 자랑하며 삽시다. 십자가를 증거하며 삽시다. 십자가를 찬양하며 살아갑시다. 내 의식과 의지와 삶은 모두 십자가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승리합니다. 어떤 환난을 당해도 십자가를 놓고 보면 다 참을 수가 있고,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십자가를 놓고 보면 억울한 일도 없어지는 겁니다. 불평불만도 물론 없어집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겁니다. 항상 어디를 터치해도 우린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입니다.
농구 선수는 농구 근육이 발달해서 농구 외에는 다른 것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근육이 농구근육이이서 그렇습니다. 축구선수는 축구 근육이, 야구 선수는 야구 근육이 발달해서 다른 것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지난번 세계적인 골프 선수가 농구하러 왔다가 농구가 잘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골프 근육이 발달해서 다른 게 잘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십자가의 근육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의지, 십자가의 논리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이 항상 감사하고 기쁨으로 사는 것은 늘 십자가를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주님을 늘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노 크로스, 노 크리스천 십자가 없으면 교인이 아닙니다. 안 믿는 교인보다 더 나쁜 것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교인이 제일 문제입니다. 양쪽에서 양쪽 다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문젭니다. 인류역사에 제일 문제가 되었던 사람은 교인 아닌 교인, 십자가 없는 교인인 것입니다.
진화론의 다윈이란 사람이 교인이지 않습니까? 신은 죽었다는 니이체가 교인이지 않습니까? 공산주의자 스탈린, 교인이지 않습니까? 히틀러, 교인이었습니다. 김일성, 교인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 받지 아니한 사람, 거듭나지 않은 교인은 하나님 앞에도 버림받고, 모두에게 버림받는 것입니다. 참 교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참 알곡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는 분이야 말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십자가 보혈의 피가 있는 사람입니다. 자녀가 뭐가 다릅니까? 피가 있는 것이 자녀입니다. 그 피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주님은 나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는 겁니다. 성도의 교제가 중요합니다. 혈연의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죄악 세상 이김으로 거룩한 길 가는 하늘나라 즐거움이 매일 새롭도다.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 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266장)
우리는 예수님의 그 은혜, 늘 울어도 눈물로도 갚을 수 없는 놀라운 은혜, 저는 요즈음 눈물이 좀 많아졌습니다. 제가 가난해서 운 것이 아니고, 제가 병들어서 운 것도 아닙니다. 제가 어떤 환난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고난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운 것입니다. 이 은혜가 너무 커서, 저는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간 것도 아닙니다. 이 보혈의 은혜로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주님 앞에 나아왔을 뿐입니다. 나를 왜? 어떻게 해서 불러 주셨을까?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느라 주님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한 그 고통과 죽으심을 생각할 때 절로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몇 번이나 저를 살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 言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경부 고속도로를 닦을 때 많은 분이,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이 공사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부상자도 수 천 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길이 닦인 겁니다. 며칠 걸려서 가는 길을, 몇 시간 만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수고한 분들의 피가 그 도로에 있어서 가능한 겁니다. 이 죄인들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누가 열었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우리 힘으로 그냥 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영원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보혈을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여기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하지 않아야합니다. 겸손해야합니다. 이 길을 감사해야합니다. 십자가의 길, 이 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도 주일날에는 백악관에서 예배를 안 드립니다. 역대 대통령 모두가 백악관에서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나가는 교회가 워싱턴 국회의사당 옆에 따로 있어요. 경호가 우리보다 열 배나 더 어렵지만 반드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열어주신 이 엄청난 축복의 길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리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를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요 창조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요 우리에게도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특별한 것 아닌 것 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줄 믿으셔야 합니다. 아무데서나 예배드리는 미련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피로 값 주고 세우신 주님의 존전으로 나와야합니다. 나를 부르시고 내가 임직 받은 교회가 나의 예배처소입니다.
십자가는 이 하나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습니다. 저주, 하나님 앞에 빚진 것, 원수 맺은 것, 온갖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이 세상에 승리할 수 없는 모든 장애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두가 다 제거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이 이제 십자가와 함께 열려지고 행복의 길이 열려지고 건강의 길이 열려지고 축복의 길이 열려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십자가가 가는 길은 십자가의 의미로 동서남북의 길이 다 열리는 것입니다. 이 저주의 십자가가 유럽 여러나라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기가 되었어요. 전 세계의 선진국들이 다 십자가를 국기로 사용하는 겁니다. 왜?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사통팔달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여러분의 가는 길을 열어 주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참 자유는 십자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평안은 십자가로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걸어가는 자는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는 승리입니다. 십자가와 함께 가는 길에 주님이 여러분을 지켜줄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길이 열렸습니다. 사람에겐 두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법대로 심판을 받는 길이고, 하나는 용서함을 받아 사면 복귀되어서 완전히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법대로 하면 다 심판을 받기 때문에 심판을 아들에게 맡겨 심판을 받게 하고, 우리를 사면 복귀시킨 것입니다. 모두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래서 은혜의 종교입니다. 자격 없는 분도 교회에 나오면 살게 되는 겁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겁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저주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갑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제가 편히 쉬리니 원수 마귀 손 못 대고 환난 풍파 없도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제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주소서♬ 386장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십자가 그늘 아래 있는 한 어떤 환난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길이 열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이는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보혈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자랑을 못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은혜의 단비가 내려서 잘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으면 못 될 사람은 없습니다. 안 될 사람은 없습니다. 대구에 제가 다니던 교회에 점을 보다가 집사가 된 분이 있는데 그가 전에 어떤 분의 사주팔자를 보는데 저 사람은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망할 사람인데, 입고 다니는 것과 그 환경, 팔자가 너무 좋아서 이상하다 그가 배운 것 하고 너무 다르다싶어 그 사람 가는 대로 따라 갔더니 너무 좋은 집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문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마크가 붙었더래요. 그래서 이 분이 다 때려치우고 예수를 믿었다고 하는 겁니다. 망할 사람도 망하지 않습니다. 사주팔자도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바꾸어 버리는 겁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그래서 기독교는 모든 것이 반대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하고 넘어지는 것을 일으키고 저주에서 생명으로 일으켜주시는 겁니다.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그늘 앞에 늘 나와야 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그늘에 쉬러 나오는 것입니다.
시골에 보면 여름철 더울 때 마을에 하나 있는 정자나무 그늘에 모든 동민들이 다 모여서 낮잠을 잡니다. 그늘이 그들을 쉬게 지켜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그늘로 온 인류를 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에 뭐하러 나오느냐? 쉬러 나오는 겁니다. 내 영혼이 쉼을 얻는 것입니다. 찬송가 415장은 노래하기를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빛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 곳 찾았네.’이 세상 어디에도 쉼이 없는 우리 성도들, 우리는 잘되어도 좋고 못 되어도 좋고 항상 예수 안에서 쉼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안식을 회복하는 교회가 제 목회 비전입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병든 영혼들이 구름떼처럼 벌떼처럼 찾아와 쉼을 얻고 안식을 얻고, 인생에 실패한 자들이 다시 힘을 얻어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헬라어로는카오카오마이(καυχαομαι) 십자가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높인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갑니다. 예수 믿는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은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자랑합니다. 나는 예수 믿습니다, 나는 집사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닙니다. 식당에서도 기도하고 언제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손가락질 할까봐 그런 걸 드러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너희가 사람 앞에서 나를 숨기면 나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너를 숨기겠다고 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람 앞에서 높이지 않으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내가 너를 높이지 않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높임을 받기 원하십니까? 사람 앞에서 교인임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한 큰 건설회사 사장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그 회사에 제일 말단에 들어갔을 때 그 회사는 건설 할 때마다 돼지머리 갖다 놓고 절하고 그랬는데 자기 혼자만 안 했답니다. 자기는 그 회사의 과장도 될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따로 서 있었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찍혔대요. 모두들 너는 이제 죽었다 너는 이 회사에서 끝났다 그랬는데 부사장이 되고 마지막 사장이 되어 이제는 우리 회사에서 제사 지내는 것 싹 없앴다고 했습니다. 내가 끝난 것이 아니라 돼지머리가 끝났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거기에 절하는 사람이 올라갈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나는 히브리인이다. 라고 자신을 밝히고 애굽 병사를 쳐 죽이고 도망자가 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애굽의 바로와 비교할 수 없는 온 인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바벨론에 붙들려가서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절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그는 풀무불에 던져지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것때문에 오히려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담대하게 십자가만 붙들면 최후승리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높여 줄 수 있는 길을 만드십시오. 하나님이 마음껏 여러분을 축복할 수 있도록 십자가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예수님을 높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도 생명을 버렸는데 제가 부끄러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형틀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사도들은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이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이 지신 십자가, 생명의 십자가라고 증거 할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형틀이 온 인류의 구원의 기쁜소식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2차 대전 전에는 유대인들이 세계에 미움을 얼마나 받았습니까? 수백만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이 하나같이 차고 다니는 배지가 있었는데 그것이 다윗의 별이었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직장 잃고 그것 때문에 쫓겨났지만 그 별을 떼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붙들려가서 잔인하게 죽어도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녔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틀러의 군대가 행진할 때 다윗의 별을 단 사람은 한 쪽 코너에 몰려서 발로 채이고 그럴 때 어머니가 자녀에게 말했답니다. 얘야, 다윗의 별은 저 세속적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란다. 다윗의 별이 빛날 때가 꼭 온단다, 네가 다윗의 별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에 대해 낙심하지 마라. 오늘날 그 다윗의 별이 온 세계에 빛나는 축복의 별이 되었습니다. 힘 있게 달려든 히틀러의 군대는 모두 망했고,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녔던 사람은 승리했습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잠시 잠간 지나갑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달고 다니는 사람, 십자가를 증거 하는 사람은 때로 멸시 천대도 오고 핍박도 오고 고난도 오겠지만 주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건져줍니다. 자유케 합니다. 우리 안에 평화를 심어줍니다. 십자가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얼마나 증오심이 많은지 800마리의 맹수가 우리 안에 있다고 합니다. 미움과 악한 마음이 있습니다. 맹수 같은 난폭함, 뱀 같은 잔인함이 우리 안에 꽉 차 있습니다. 남이 잘 안 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의 잘못을 폭로하고 이게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증오심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미움을, 낙심과 좌절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가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거기에서 진정한 자유 함을 얻는 것입니다.
요즈음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운동이 한창입니다. 충격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의혹에 이어 더불어 민주당 민병두 의원의 성추행 사건에 이은 국회의원 사퇴, 청주대 연극영화과 연기인 조민기교수의 자살 등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도 한 때 내부고발자로 인해 기업이 파탄에 이른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녹을 먹던 변호사가 폭로했습니다. 가톨릭은 신부이고 기독교는 목사인데 목사의 할일 중 가장 큰일은 사람을 구원하는, 영혼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처받는데서 일어나 낙심된 사람을 위로해 주어 일어나게 하고 가정을 회복하고 모든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어서 새 힘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인도하여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 소생하게 하는 일을 목회자가 하는 겁니다. 주의 종은, 교인들의 비밀을 떠날 때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겁니다. 절대로 폭로하면 안 됩니다. 남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교인도 그래야 믿고 상담을 합니다. 저도 비밀을 몇 가지가지고 있습니다. 저를 찾아와 상담합니다. 때로는 전화로 상담를 해 옵니다. 기도 부탁을 하기도 하고 기도가 응답되어 감사해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비밀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말해 봐요? 그러면 안 됩니다. 목사는 지켜주어야 되는 겁니다. 끝까지 지켜주어야 하는 겁니다.
뒤믈린이라는 프랑스의 신부가 있었습니다. 1899년이니까 옛날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이 하루는 어디에 간 사이에 교인 한 분이 건축헌금을 하려고 신부님을 만나러 왔는데 신부가 없어요. 돈을 한 아름 안고 있는데 그 때 경비원이 와 가지고 돈을 빼앗으려고 망치로 때려서 기도하는 그 분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 망치를 신부의 서랍에 갖다 넣었습니다. 뒤믈린 신부가 오니까 그 사람이 상담합니다. 고해성사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유혹을 받아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냐고, 신부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후 경찰이 와서 수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오니까 그 사람은 마음이 변했어요. 자기가 죗값을 받는다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신부가 그렇게 죽였습니다. 라고해서 그 신부는 억울한 누명을 덮어쓰고 유배를 갑니다. 말만하면 되지만 신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 사람이 내게 고백한 건데, 고해성사한 건데 그는 비밀을 지켜주었습니다. 교인들이 다 떠납니다. 신부가 저럴 수가 있냐? 저 죽일 놈의 신부! 하고 다 떠났지만 그러나 그는 말없이 태연하게 떠나갔습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사람이 임종을 맞이해서 회개합니다. 사실은 제가 나쁜 놈이라고, 제가 그 때 신부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그래서 신부는 돌아와서 다시 사제의 일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성경 구약과 신약에 보면 이름이 동일한 두 의로운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구약의 요셉은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집사로 있을 때 날마다 그를 유혹하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왔지만 그 여인은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다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였나이다. 자기 아내가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으며, 신약의 요셉 또한 마리아의 정혼자로서 마리아가 임신했을 때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제가 훌륭한 목회자는 아니고 제가 전교인을 위해 죽을 수는 없지만 만약에 한 교인의 어려움이 있다면 목사는 당연히 그래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의 양을 위해서 고생하고 십자가를 지고 유배당하고... 성직자는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목사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우리나라도 이제 이만하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나라인데 자꾸 들추어내고 전부 다 폭로해 버리면 뭐가 되겠습니까? 직원은 기업을 폭로하여 사장을 쫒아내고 자식은 아버지를 폭로해 아버지를 쫓아내고 부인은 남편을 폭로하고 남편은 부인을 폭로하고 그러면 이 나라가 뭐가 되겠습니까? 적어도 믿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변호사이고 성직자들인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 안에 십자가가 없는 사람입니다. 공산주의사회는 폭로하는 사회입니다. 전부 남을 비판하고. 인민재판하고... 이제 우리나라는 십자가의 은혜로 무장한 성도들이 나가서 평화의 사도가 되고 화목케 하고 좋은 나라 만드는데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그건 제 잘못이라고, 제가 나쁜 놈이라고, 우리 모두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가면 가정에도 교회에도 이 나라 이 민족이 십자가 그늘 아래서 샬롬을 이루고 놀라운 은혜가 임하리라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사랑의 주님~ 우리 모두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악한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하며 이 세상의 저주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