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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간증 스크랩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미류나무 추천 0 조회 1,751 08.11.16 10:33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이병석 목사 에스겔서 설교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에스겔 16:5~7

오늘의 본문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에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9월10일 통계청에서 ?2007년 사망 및 사망원인 통계결과?를 발표를 했다.

   그 자료에 보면 한국 작년 총 사망자 수는 244,874명 하루 평균 671명이다.

    이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 분석으로 들어가면?

      1위 암(27.6% =67,561명)     2위 뇌혈관질환(12%=29,277명)    3위 심장질환(8.8%=21,494명)

      4위 자살(5%=12,174명)       5위 당뇨(4.6%=12,172명)             6위 자동차사고(3.1%=7,604명)

작년의 자살을 하루 평균으로 보면? 33.35명이 자살을 했다.

   이 자살률의 변화를 보면 1997년 8위, 2006년 5위, 2007년 4위로 상승을 했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지금까지 헝가리가 1등을 했는데 이제 한국이 1등이 되었다.

   이런 자살왕국이라는 오명 속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탈렌트 최진실씨가 지난 10월2일 욕탕에서 또 자살을 했다.

       안재환씨가 자살을 한 충격이 국민들의 뇌리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자살을 하여 죽은 것이다.

   이들의 자살은 한국에서 내노라 하며 인기를 누리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보통의 시민들을 더 충격으로

    빠지게 하였다.

  한국 최초의 신여성으로 불리면서 ?사의찬미?를 부르며 인기 절정을 달리던 가수 윤심덕씨가

  사랑하는 애인 김우진과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을 슬퍼하면서 현해탄 에서 투신자살을 한 것을 시작으로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이 쭉 이어져 왔다.

     95년 가수 김성재씨가(동물마취제), 96년에 가수 서지원씨가(신경안정제 과다복용),

     96년 가수 김광석찌가(목), 05년 이은주씨가(목), 07년 유니(목),

     07년 정다빈(목), 08년 안재환(연탄가스), 또 최진실씨가(목)을 메달아 자살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중

     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씨가 한결같이 교회를 다녔다는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그리고 진실하게 교회를 다니고 주님을 확실히 믿었는지는 우리가 알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이들의 장례식을 교회의 목사님들이 치루었다는 것이다.

 이번 최진실씨는 서울강남중앙침례교회를 다녔는데 다닌지는 약 4년 정도 된단다.

    이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남편 조성민씨와의 불화를 계기로 이 교회를 오래 다닌 이모의 전도로 다니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주님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나의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슬픔 중에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외치고 기도 했을 

               이들인데 이들이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6절)

   하나님은 피투성이가 된 우리들이라도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살아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어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예의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그 몸을 십자가에서 찢기시기까지 하며 우리를 살려 놓았습니다.

    ○주님은 감당치 못할 수치와 멸시를 당하기까지 하면서 우리를 살려 놓았습니다.

    ○주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잃으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런데 믿음 없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이 생명 구원을 스스로 허물어 버립니다.

 그것이 최악으로 자살이라는 하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주님은 자기의 몸을 완전히 찢기시고, 뼈가 꺾여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 자기의 몸이 불구가 되었다고, 자기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의 수치도 당하시지 않을 완벽한 분임에도 온갖 수치를

                다 당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 좀 부끄럽다고, 좀 수치스럽다고 극단적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

    ○주님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잃으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여 놓았는데..

              ? 자기의 것 잃어 버렸다고, 망했다고, 실패했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어리석음들.....

    ○주님의 십자가상은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아무도 그와 함께 하는 자가 없는 외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 같은 그런 외톨이었다.

             ? 죽을찌언정 따르겠다고 했던 베드로와 제자들도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그 철저히 혼자되심을 극복하고 십자가를 지셨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 혼자라고,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이해 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성경은 조금도 자살을 미화시키지 않습니다.

  성경은 자살을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살인으로 봅니다.

      우리는 살인자를 증오합니다. 미워합니다.

        살인자 중에서도 어떤 살인자를 더 미워하고 더 증오스럽게 보는가?

              멀리 있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아니고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더 미워합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고........

                       (부모를 죽이든지, 아들을 살해 한다든지..... 형제를 죽인다든지 할 때....)

성경은 자살자를 이 살인자 보다도 더 증오하고 있습니다.

    이 자살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죽인 것 보다도 더 가까운 바로 자기 자신을 죽였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죄입니다.

          세상은 자살을 심리적이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이해를 할려고 하지만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자살은 명백하게 인간의 죄로부터 기인 합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욕심으로부터 나오게 되어 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성경상에서 최초로 자살을 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힘들게 살은 사람도 아닙니다. 빚에 쪼들린 사람도 아닙니다.

         당시는 최고의 사람이었다. 당시는 최고의 부러움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사울 임금입니다.

         사울 임금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도망하다가 자살을 하고

         그것을 보고 있던 병기든 소년도 자살을 합니다.

             ? 이 때는 아직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완전히 패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자살하였다.

        그가 자살하는 명분을 이렇게 말한다.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는 완전히 패하지도 않았는데도 실망하고 낙심하고, 지례 짐작하여 자살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본 병기 든 소년도 같이 자살을 하였다.

다음으로 다윗 시대에 아히도벨이라고 하는 모략가였다.

        그는 원래 다윗의 제1 책략가였는데 압살롬과 연결하여 다윗을 반역하였는데 후새의 책략으로

          자기의 계획이 무산되어지자 고향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목메어 자살을 한다.(삼하17:23)

그리고 이어지는 자살은 우리가 잘 아는 가룟 유다의 자살이다.

  사탄은 이미 그 마음에 들어갔고,

        그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고 결국은 예수를 팔았다.

        그리고 사탄은 그 가룟 유다를 다 이용해 먹고는 자살을 하게 한 것이다.

        이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울 임금에게는? 내가 사울을 임금으로 세운 것을 후회 하노라

                   아히도벨에게는? 시편 41:9에서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가룟 유다에게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마26:24)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극적인 반전의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이 바로 빌립보의 간수였다.

      감옥의 죄수들이 다 도망을 간 줄 알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 자살이나 해 버리자!

       그것이 빌립보 간수의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상태로 들어가서 본다면 빌립보 간수의 그 생각에 충분이 공감이 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우리가 인정해 주고 공감해 줄 수가 없습니다

            ?칼을 빼어 자살하려 하거늘?-?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그리고 그 자살을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빌립보 간수의 그 시점을 다시 줄여 본다면?

        ?간수여 자살을 하지 말고 주 예수를 믿으라?가 되는 것이다.

복음과 자살은 결코 연결 되어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받은 성도와 자살을 결코 연결 되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은 절대로 자살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 중에 힘들다고 자살한 사람의 예는 하나도 없다.

   초대교회의 그 극심한 핍박속에서도 신앙을 지킬려고 순교는 했으면 했지 자살은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결코 성도를 생명으로 이끌지 자살로 이끌지 않는다.

     자살의 속삭임은 모두가 사탄의 속삭임이다.

     자살 사이트는 모두가 사탄이 개설한 사이트다.

     악성 댓글을 달고 그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 모두가 사탄의 소행이다.

                     그 속삭임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자살은 구원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인간의 최고의 악이다.

    앞에서 살인자를 언급했었는데 살인자는 살인을 했어도 그래도 그 살인한 행위에 대해서 나중에라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가 있지만

    자기 자신을 죽인 자살자는 그 회개의 기회마저도 완전히 막아버린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자살은 마지막 도피의 방법이 아니라 최악의 도피의 방법이다.

      사람들은 자살을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도피의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도피의 방법은 그를 해방하는 도피의 방법이 아니라 그를 영원한 형벌,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들이는 도피의 방법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금 후에 하나님이 자기에 향할 엄청난 큰 뜻이 있는지 어찌 아는가?

     지금은 자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할찌라도 그 지극히 어렵고 어려운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어찌 아는가?

     아니 이 고난과 고통이 지나고 난 뒤에 향하실 하나님의 분명한 위대한 뜻이 분명히 있다...

   오늘 말씀5절에서

      ?너를 돌보는자 하나 없고, 불쌍히 여긴자 하나 없고, 몸이 천하게 여겨졌고, 들에 버려졌느니라?

   그래서 들에 버려져 피투성이가 된 이 사람(예루살렘)에게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피투성이라도 살아라?고 하신다. 지금은 분명 죽을 지경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피투성이의 시절이 지나고 어떻게 하시는가?

         9절이하 ?내가 물로 피를 씻어 없애고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패물로 채우고 목걸이를 걸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다?고 한다.

  복음송!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기대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분명히 유명한 이 연예인들을 통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있었을 것인데.....

        사탄은? ? 이제 막 믿기 시작하여 이 뜻을 채 알기도 전에 그 생명을 끊게 했다..

    그래서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그들의 사역을 앗아 갔다.

       바울은 고전 1:3~4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 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고 5절에서 하는 말씀이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시편 31편에 자기가 당하고 있던 한 때를 이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냅니다.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냅니다.

         내가 모든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합니다. 특히 내 이웃들에게 심히 당합니다.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나를 보는 자가 나를 피합니다.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죽은자를 마음에 두지 않은 같이 잊혀졌습니다.

        나는 깨진 그릇과 같습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31:14~15)

☞ 이 고비를 넘긴 다윗은 임금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주는 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생명 버림이 아니라 생명의 풍성함을 누려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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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11.16 19:51

    첫댓글 지금 항간에 죽은 고인들과 대화했다는 경험담이 떠돌아 다닙니다, 그것은 귀신들린 증상이며 하나님께서는 초혼행위를 아주 싫어하시며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현혹되지 않길 바랍니다. 죽은 자들이 세상사람에게 말을 걸 수는 결코 없습니다. 구원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는 마귀들의 역사에 결코 현혹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길, 하나님의 말씀처럼 살아 있기를,피투성이라도 살아있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믿음을 지키고 인내 합시다.

  • 08.11.16 20:05

    좋은 글 감사..스크랩해 갈께요..

  • 08.11.16 21:05

    죄송합니다만...<<주님은 자기의 몸을 완전히 찢기시고, 뼈가 꺾여서 우리를 구원하셨는데>>...부분에서 예수님의 뼈는 꺾이지 않았지 않나요? 뼈가 꺾였다는 부분이 불교에서도 쓰이고 나치주의 자들도 상징으로 사용했던 칠만자를 생각나게 해서요.. 칠만자의 뜻이 십자가를 꺾어버린다는 모욕의 뜻으로 알고 있어서요.

  • 작성자 08.11.17 13:40

    저도 그 부분은 읽다가 좀,,, 했어요,그래서 이 분 블로그 들어가서 수정부탁드렸어요. 맞는 지적입니다,그래도 다른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모자람이 없을 듯합니다.^^아마도 못박히시고를 너무 열심히 설교하시다 실수하신듯합니다.^^ 님의 지적은 훌륭합니다,하지만 이 설교또한 너무나 훌륭합니다

  • 08.11.17 21:22

    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꾸벅~ ♡

  • 08.12.23 11:08

    자살하려는 사람은 내 인생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죠. 즉 하나님을 못믿어서 힘들면 하나님 붙들고 도와달라고 울면서 기도하면 마음약하신 하나님이 오히려 기뻐하실텐데...

  • 10.08.06 19:02

    지금 내가 거지라도 하나님은 대기업회장으로 만들어주시고 지금 내가 이성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가장 멋진 이성으로부터열렬한 무한한 사랑받는 존재로 바꿔주시죠.그 놀라우신 위대하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금 비참한 처지에 있더라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할수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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