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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관련된 영적인 현상, 비과학적이라 생각하세요?[아미랑]
기고자/정현채 서울대의대 명예교수
입력 2024. 3. 27. 08:50
<홀가분한 죽음>
헬스조선DB
45세의 트럭운전기사인 A씨는 우발적인 사고를 당한 직후, 죽었다 살아나는 근사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크게 변합니다. 주중에 열심히 일한 뒤 주말에는 술 마시고 영화를 관람하는 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는 모르는 게 많다는 자각을 하며 공부를 시작합니다. ‘인간과 정신의 한계는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들면서 도서관에서 양자역학, 천체물리학 관련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합니다. 단 몇 분밖에 안 됐을 짧은 순간의 체험이 삶에 심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이지요.
전 세계에서 발간되는 107종의 의학 학술지 중 영향력 면에서 3위를 차지한 바 있는 ‘란셋(The Lancet)’에 2001년, ‘심장 정지 후 회생한 사람에서의 근사체험: 네덜란드에서의 전향적 연구’라는 제목의 근사체험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근사체험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많이 행해지지도 않은데다가, 대부분의 연구가 체험자를 뒤늦게 수소문해 이뤄지는 이른바 ‘후향적’ 연구이다 보니, 체험자의 기억에만 의존하는 한계가 있고 연구자의 선입견에 의해 오류가 개입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이 연구는 근사체험에 관한 최초의 ‘전향적’ 연구로서, 병원 관계자들이 철저한 사전 준비 작업을 거친 뒤, 심폐소생술의 성공 사례가 발생하면 곧바로 환자를 방문해 인터뷰를 시행했습니다. 후향적 연구보다 신뢰성이 훨씬 높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10개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은 직후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344명을 조사했습니다.
18%인 62명이 근사체험을 했다는 사실을 발표했고, 공통적인 요소를 열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 긍정적인 감정, 체외이탈 경험, 터널을 통과함, 밝은 빛과의 교신, 색깔을 관찰함, 천상의 풍경을 관찰함,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와의 만남, 자신의 생을 회고함,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입니다.
근사체험의 열 가지 체험요소 중 ‘밝은 빛과의 교신’의 경우, 발성기관을 통한 언어 소통이 아니라 생각이 즉각적으로 전달되고 이해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밝은 빛이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은 “다른 사람을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했으며 지혜를 쌓아 왔는가”와 같은 정신적인 것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생을 회고하는 체험에서는 살아오면서 겪었던 중요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며 순간순간을 다시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때 자신이 가해자로서 말이나 행동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괴롭혔던 경험에서는 피해자가 겪었을 참담함과 괴로움을 그대로 느끼고, 반대로 까맣게 잊고 있던 자신의 선한 의도나 행동을 다시 경험하는 순간에는 무한한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된다고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다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고로 눈을 다쳤을 경우 정말로 실명했는지의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를 동료 안과 교수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CT나 MRI 등 최신 진단 장비가 있어서 실명 여부 정도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제 전공분야인 소화기 질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속이 더부룩하거나 속이 쓰린 증상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기능성소화불량의 경우 위내시경 검사로 찾아낼 수 있는 병변도 전혀 없습니다. 이런 증상은 주관적인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거나 거짓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지요.
예를 들어 위장관 운동촉진제는 이런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처방하는데, 약제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기 위해 투약 후 증상이 호전되는 정도를 조사해 통계처리를 한 연구결과가 의학학술지에 실리기도 합니다. 즉,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증상을 주제로 한 연구가 과학학술지에 게재된다는 것입니다.
주관적인 증상만을 주제로 한 연구가, 전 세계 의학자들이 평생에 한 번 꼭 게재되길 바란다는 의학 학술지에 게재된 사례를 소개합니다. 창간 역사 200년이 넘는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346권 947쪽(2002년)에 ‘고춧가루가 사람의 위장관 증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논문이 실렸습니다.
기능성소화불량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 고춧가루에서 추출한 캡사이신을 섭취하는 환자군과 가짜인 위약을 섭취하는 대조군으로 나누어 진행된 실험입니다. 매운 음식은 위장에 좋지 않다는 통념과 다르게, 캡사이신을 5주일간 복용한 환자군이 위약을 섭취한 대조군에 비해 명치부 통증, 명치부 포만감, 구역 및 전반적인 증상에서 통계학적으로 의미 있게 호전된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고춧가루를 투여하는 의료진이나 이를 받아 복용하는 환자 양쪽 모두 어느 것이 진짜 고춧가루인지를 모르는 이중맹검법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누구의 편견도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제가 지금 이 연구를 소개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주관적인 ‘증상’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도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게재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통증, 포만감, 구역과 같은 주관적인 증상을 정말로 갖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런 연구에 참여한 피실험자가 거짓말을 했을 수 있다며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에 근사체험에 관한 연구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도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근사체험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연구는 미국 코네티컷대 심리학과 케네스 링 교수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는 근사체험 사례만을 모을 게 아니라,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통계 분석까지 진행합니다.
이어 1980년 ‘죽음에서의 삶: 근사체험에 대한 과학적 조사’라는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학자들을 주축으로 국제근사연구학회(IANDS)가 결성됐고, 40년 가까이 매년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학술지도 정기적으로 발간되고 있고요.
란셋 의학전문 학술지에 소개된 네덜란드의 연구에서 척도로 사용한 근사체험의 열 가지 요소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케네스 링 교수입니다. 미국 신장병학회지에 게재된 대만의 근사체험 연구에서도 이 열 가지 척도를 사용했는데, 연구대상이나 지역이 다르더라도 같은 척도를 사용하므로 연구 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근사체험에 대한 연구는 그 수가 많지 않고,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비를 얻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엄연히 의학의 한 분야로서 꾸준하게 발전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모를 뿐입니다. 삶과 그 이후를 잇는 죽음, 그 죽음 이후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240327085016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