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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하시며,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룹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26-30
형제 여러분, 26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27 마음속까지 살펴보시는 분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구원의 문은 왜 좁을까요? 널찍하게 만들면 될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구원의 길을 좁게 만드셨을까요? 정말 예수님께서 구원의 길을 좁게 만드신 것일까요?
우리는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어려움과 고통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다 보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싶어집니다.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 때로는 하느님께 불평만 합니다.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지,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슬픔이 온몸을 짓누르고, 어려움만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고통과 어려움이 지금 당장은 슬픔과 한탄으로 다가오지만, 결국에는 희망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을 점점 더 작고 들어가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곧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면서, 좋아하기보다는 싫어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보다는 모른 체하면서, 구원의 문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그 문을 좁아지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구원의 문을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더 좁히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넓히고 있습니까?(이찬우 다두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저는 매 미사 30분 전 고백성사를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외국인들이 찾아와 고백성사를 청하곤 합니다. 그분들은 미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고백성사만 보고 돌아갑니다. 처음엔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어로 고백성사를 듣는 것도 힘들었고, 우리 교우들이 아닌 분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마치 가족을 위해 차린 잔칫상에 외부인이 와서 음식을 먹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2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부족한 제 영어 실력을 다듬어 주시는 하느님의 배려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아무도 먹지 않으면 버릴 수밖에 없지만, 외부인이라도 와서 음식을 나눠 먹는다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돌아보면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주셨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먼저 찾고,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저는 다른 것을 찾곤 했습니다. 세상의 명예, 권력, 재물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 문의 끝은 허무와 후회인데 그걸 알면서도 그 문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에 자주 나오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바로 “Detour – 우회하시오”입니다. 원래는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는 표시입니다. 우회로는 시간이 더 걸리고 불편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야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무시하고 원래 길로 가려 하면 결국 돌아와야 하고, 때론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제 인생의 길목에서 이런 우회로를 경험했습니다. 30년 전, 미국에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젊고 자신만만했기에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시골 본당, 교구청, 청소년국, 그리고 안식년까지 다양한 우회로를 걷게 하셨습니다. 이때 떠오르는 말씀이 토마스 머튼의 고백입니다. “내가 걷는 길은 내가 정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길이다.” 우리는 종종 곧장 가고 싶어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아가게 하십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Detour’ 표지판을 보고 불평했습니다. “이 길은 내 시간을 빼앗는 길이야.” 하지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평생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시골 풍경과 들꽃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우회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우회로도 그렇습니다. 힘들고 불편한 길 같지만, 그 안에만 담긴 은총과 깨달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좁은 문”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 재물을 좇는 사람에게 그 문은 너무 답답하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며,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그 길이 좁지 않습니다. 맹인가수 이용복 씨의 노래 어린 시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 그리움 속에 살아 있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은 사실 하느님 나라와 닮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경쟁과 계산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는 특별한 능력이나 재력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와 사랑, 희생과 나눔, 믿음과 희망이 그 열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단순합니다. 좁고 험하지만, 누구나 갈 수 있는 길. 희생과 나눔, 사랑과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 우리 인생의 우회로마다 숨겨진 은총을 깨닫게 하시고, 좁은 문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걸어갈 용기를 주십시오. 십자가와 사랑으로 여신 하늘나라의 문에, 우리도 함께 들어가게 하소서.
<정의와 불의>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루카 13,26)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 13,27)
당신을 먹고 마셨으니
당신처럼 먹힘이
정의요
당신을 먹고 마셨으나
당신처럼 먹히지 않음이
불의겠지요
당신이 믿으셨으니
당신처럼 믿음이
정의요
당신은 믿으셨으나
당신처럼 믿지 않음이
불의겠지요
당신이 희망하셨으니
당신처럼 희망함이
정의요
당신은 희망하셨으나
당신처럼 희망하지 않음이
불의겠지요
당신이 사랑하셨으니
당신처럼 사랑함이
정의요
당신은 사랑하셨으나
당신처럼 사랑하지 않음이
불의겠지요
당신이 살리셨으니
당신처럼 살림이
정의요
당신은 살리셨으나
당신처럼 살리지 않음이
불의겠지요
오늘의 성인
성 나르치소(Narciss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215년경
같은이름 : 나르치수스, 나르키소,
나르키수스
그리스인인 성 나르키수스(또는 나르치소)는 연만한 나이에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되었지만, 어느 주교보다도 교구 내의 규율을 엄격히 실시하여 명성을 얻었지만, 예루살렘 회의에서 로마(Roma)의 관습들을 지지한 것 때문에 반대자들의 강력한 반란으로 주교좌를 물러나는 불운을 겪었다.
그 후 그는 몇 해 동안 사막의 은수자 생활을 하다가,예루살렘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주교좌로 복귀하였고, 성 알렉산데르를 보조자로 임명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나이가 116세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 콜만노 (Colman)
활동년도 : +632년경
신분 : 주교
지역 : 킬막두아그(Kilmacduagh)
같은 이름 : 콜만, 콜만누스, 콜먼
6세기 중엽 아일랜드의 킬타르탄(Kiltartan)에서 태어난 성 콜만누스(Colmannus, 또는 콜만노)는 클레어 카운티(Clare County) 산에서 독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계속해서 숨어 살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주교직을 부여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야생초와 물만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결국 굴복하여 킬막두아그의 초대주교가 되었다. 성 콜만누스는 수탉과 생쥐 그리고 파리를 기다리며 살았다고 하는데, 수탉은 그의 성무일도 시간을 알려주고 생쥐는 졸음을 쫓아주었으며 파리는 신호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0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복녀 키아라 바다노
년도 : (1971-1999)
지역 :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복녀 키아라 바다노"는 젊은 나이에 투병생활을 시작한 복녀 바다노는 자신의 고통을 희생으로 봉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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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저에게는 아직 심장이 있고 그렇기에 언제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는 1971 년에 이탈리아 사세노에서 태어나, 1990 년에 골육종이라는 암으로 사망하기까지 열 여덟 해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영웅적인 성덕으로 살았습니다.
9 세 때에 포콜라레 운동에 입문하여 포콜라레 운동의 창시자 키아라 루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합니다. 16 세 때 '골육종'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했으나 오히려 그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힘과 용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투병 생활중 키아라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십자가상의 수난을 나누고자 하는 원의와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자에서 진통제인 모르핀 투약을 거부했습니다:
“It reduces my lucidity and there’s only one thing I can do now: to offer my suffering to Jesus because I want to share as much as possible in his sufferings on the cross."
"그것[모르핀]은 저의 의식의 명료함을 감소시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저의 고통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가능한 많이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입원했던 투린의 병원 의사 안토니오 델로구는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Through her smile, and through her eyes full of light, she showed us that death doesn’t exist; only life exists."
"그녀의 미소를 통해서, 그리고 빛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을 통해서, 그녀는 우리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직 생명만 존재합니다."
그녀를 문병온 포콜라레 운동 친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At first we thought we’d visit her to keep her spirits up, but very soon we understood that, in fact, we were the ones who needed her. Her life was like a magnet drawing us to her."
"처음에 우리는 그녀의 사기를 붇돋아 주려고 병문안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곧 우리가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를 이끌어 들이는 자석과도 같았습니다."
Cardinal Saldarini heard about Chiara’s illness and visited her at the hospital. He asked her, “The light in your eyes is splendid. Where does it come from?” Chiara simply replied, “I try to love Jesus as much as I can."
또한 살다리니 추기경께서 키아라의 병을 전해 들으시고 병원을 방문하셨는데 키아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의 눈빛이 아주 반짝이는구나. 어디에서 그런 빛이 온 거니?" 키아라는 단순히 답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가능한 많이 사랑하려 노력합니다."
항암치료가 실패했음에도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f I had to choose between walking again and going to heaven, I wouldn’t hesitate. I would choose heaven."
"내가 만일 다시 걸을 수 있는 것과 하늘나라에 가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하늘나라를 택할 것입니다."
1989년 출혈로 거의 죽음에 이르렀을 때 복녀 키아라 루체바다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Don’t shed any tears for me. I’m going to Jesus. At my funeral, I don’t want people crying, but singing with all their hearts."
"저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아 주세요. 저는 예수님께로 갑니다. 저의 장례식에서 저는 사람들이 울기를 원치 않고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기를 바랍니다."
복녀 키아라 루체 바다노는 2010 년 9월 25일 시복되었고 축일은 10월 29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