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전북대윤리교육과를사랑하는사람들
 
 
 
카페 게시글
[민족과역사] 발표자료 [민족운동의 발전]-광주학생항일운동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가?
윤교07 김두레 추천 0 조회 205 07.12.29 23:05 댓글 47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첨부된 파일
댓글
  • 07.12.03 18:13

    첫댓글 3·1 운동 이후 일제는 한민족의 항일의식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문화정책을 펴 나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이전의 무력적 탄압에 비하여 너그러운 듯하나, 사실은 한민족의 반항정신을 소모시키는 가장 지능적인 통치방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제의 통치방법에 저항하는 학생들은 식민지 교육을 지양하고 한국인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라는 학생들의 요구에 대하여 학교에서는 요구조건의 수용 없이 학생들을 퇴학시켰고, 나아가 체포, 구속까지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각지의 학교에서 겪은 공통적인 고난이었습니다. 이러한 험악한 정세 하에서 광주 학생 항일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 07.12.03 18:13

    광주 학생 항일운동은 민족 차별을 철폐하고, 약소 민족의 해방, 일제의 타도, 식민지 교육 철폐 등에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운동은 또한 배우는 사람 즉 학생들에 의해 일어난 운동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호연지기의 정신을 발견하였습니다. 학생이 학문하는 자세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호연지기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담대하고 겁을 갖지 않는 자세인데, 이러한 자세는 일제의 압박과 폭력에 굴하지 않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힘과 연결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실천으로 부당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세에서 신자유주의와 제 2의 제국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07.12.08 22:13

    호연지기는 도의에 근거를 두고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부끄럼 없는 용기,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마음입니다. 그 시대의 학생들은 이러한 큰 마음이 있었기에 그런 항일운동을 전개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적절한 표현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07.12.03 20:16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 운동으로 손꼽히는 항일 운동입니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조센징이라고 하며 조선인을 낮추어 부르면서 여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시작하게 됩니다. 어쩌면 청년들 사이의 우발적인 충돌로 넘어갈 수도 있었을 사건을 일본경찰의 편파적인 조치 때문에 전국 규모로 확대하게 됩니다. 그 시기에 학생들이 일본경찰이 무서워 쉬쉬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 07.12.03 20:17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용기로 무장하여서 대항했습니다. 용기가 없었다면 감히 나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학생의 입장으로서 학교생활, 더 나아가 사회 속에서의 불합리한 것들을 발견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고 자신에게 돌아올 후환이 두렵다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시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정의를 위해 용기를 가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07.12.03 20:18

    바로 우리는 백절불굴(百折不屈)하는 정신을 길러야 합니다. 용기를 다시 생각하고 다짐하게 해 주신 발표. 잘 들었습니다.

  • 작성자 07.12.08 22:24

    어떠한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 정신과 자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과거 우리 민중들에게 이런 백절불굴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우리도 이러한 정신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07.12.03 20:48

    김두레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일 투쟁운동입니다. 한·일 학생 사이의 싸움이 도화선이 되어 광주의 2000여 명의 학생이 궐기하여, 점차 일반 시민들의 합세하여 광주학생시위의 여파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1953년부터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해 역사적 의미를 기념할 만큼, 이 운동은 3·1운동 이후의 가장 거센 항일운동으로, 일제 강점하 최대 규모의 학생항일 운동이었습니다. 처음에 개인 간의 감정적 충돌에서 시작한 것이 학교와 학교 사이의 충돌로 확대 되었고,

  • 07.12.03 20:49

    나아가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 간의 충돌로 발전하였습니다. 학교와 경찰에서는 달래고 탄압하는 양면정책을 써서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이는 우리 학생들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어 실패하였고, 오히려 광주의 신간회지부·청년단체·사회단체 등은 혼연일체가 되어 투쟁의 전국적 확대에 힘씁니다. 심지어 학생들을 항일독립운동의 전위대로 삼고자 하여, 광주 투쟁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활동을 개시하였습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민족 해방을 갈망했던 학생들의 불같은 의지와 투지, 그리고 학생투쟁에 앞장섰던 사람들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인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비약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 07.12.03 20:48

    이는 미래를 이끌어나갈 학생들이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하기 위해 구체적·실제적으로 행동하였던 사건으로, 우리도 이를 본받아 잘못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비판적인 자세로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 작성자 07.12.08 22:34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극심한 탄압을 통해 우리나라가 변화의 꿈조차 꿀 수 없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지식인들은 교육, 역사, 국어 등 여러 방면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도록 노력했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역사책을 발행하며 한글사전을 만든 것이 그 노력입니다. 우리도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올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 07.12.03 23:53

    광주 학생 항일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던 부분이 없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부끄러운 발표였습니다. 3.1운동 다음으로 최대의 민족 운동으로 손꼽히는 항일 운동인 이 운동을 알지 못했다는 것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이 운동은 학생들이 일으켰던 운동이라고 하니 다시 한 번 자각과 실천에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했겠습니다. 자각을 한다는 것은 가만히 있는 다고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이 그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한 정신능력을 함양하는 것과 깨닫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배

  • 07.12.03 21:44

    운 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배웠다고 하여 끝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바로 교육의 참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교육을 받고 있던 학생들이 불의에 참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려고 운동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겠습니다. 우리는 예비교사인 만큼 이렇게 중요한 교육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지식으로만 끝나는 교육이 아닌 몸소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겠습니다.

  • 작성자 07.12.08 22:46

    교육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몰랐을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하의 교육은 그 어떠한 시대의 교육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우리나라의 교육정책을 말살하고 자기들 식으로 자신들이 걸러낸 내용만 교육하도록 시켰습니다. 여기서만 보더라도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교사가 될 사람들로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 07.12.04 01:04

    학생항일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을 보고 부끄러움과 놀라움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요즘과는 달리 그들은 가장 학생다운 학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항상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며 단순히 지식이 아닌 실천하는 배움의 주체입니다. 이러한 학생의 정신과 역할이 학생항일운동에서 매우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잘못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당당하게 비판하고 후에 벌어질 보복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고 배울것이 많은 어떻게 보면 가장 낮은 입장인 그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이러한 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더이상 낮은 입장이 아니었고

  • 07.12.04 01:06

    오히려 일본의 압력에 타협하고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는 거만한 지식인, 지배층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3.1운동과 학생항일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낮은 입장이라고 평가받아 온 이들이 독립운동의 주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누구든지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은 학식이나 위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는 현대사회에서 헤쳐나가는 방법이 비단 정치인의 정책이 아니라 각각의 주체들 즉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서로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노력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07.12.04 14:42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의 우리의 학생 운동사의 시발점이자 일제의 문화 통치기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았던 학생들이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 그 이유는 아마 학문의 자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기 일제는 우리의 학생들에게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고 우리의 학생들을 일본인으로 만들고자 부단히 노력했었습니다. 그리고 갖은 협박과 회유를 통해서 친일파를 늘리려고 했지요.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학생들이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말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판적인 안목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았기에,

  • 07.12.04 14:42

    그런 민족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학문의 자립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항상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옳음을 향해 나아가고 진실을 추구하려고 할 때 비로소 학문의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자립은 올바른 역사인식의 밑거름이 되어 역사의 방향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 07.12.04 14:42

    그런 민족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학문의 자립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항상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옳음을 향해 나아가고 진실을 추구하려고 할 때 비로소 학문의 자립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문의 자립은 올바른 역사인식의 밑거름이 되어 역사의 방향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 07.12.04 17:06

    김두레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1920년대 세계는 극심한 경제공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경제공황의 여파로 일본은 극심한 식량부족에 허덕이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쌀 공출로 극심한 경제난으로 일제의 이러한 만행을 보며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습니다. 일본 학생이 한국 여학생을 희롱하는 사건이었지만 광주 학생운동은 단순히 학생운동이 아니었습니다. 1920대의 세계 대공황으로 말미암은 일제의 경제수탈에 대항한 항일운동이었으며 전국적으로 확산한 항일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불 같은 투지와 학생투쟁 지도본부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광주 학생 항일운동은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 07.12.04 17:06

    비약할 준비를 하게 되었지요. 이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안위와 미래만을 생각했다면 이런 운동은 전개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점점 커가면서 불의를 보아도 참고, 모든 것에 순응하려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듣고 저도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일제에 대한 항쟁의 큰 뜻으로 학생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 운동입니다. 사사로운 이익보다 함께 뜻으로 모아 극복하였던 이들의 정신을 본받아

  • 07.12.04 17:06

    저 또한 저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불의에 항거하는 자세와 용기를 기르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요즘같이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기에 이 발표를 들으면서 조선국민의 공동체 정신을 살펴볼 수 있었던 발표였습니다. 수고하셨어요.^^

  • 07.12.04 22:47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3.1 운동 이후 일본의 유화한 문화정책과 여학생 희롱사건 등을 보고 학생들은 일제의 만행에 분노하고 있었고 이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광주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된 항일 독립 운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용기 있는 항일 운동은 억압받는 시대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학생들의 노력과 의지에 기반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일제의 만행을 묵인하고 그들의 부당한 정책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이러한 민족해방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 07.12.04 22:48

    그 당시 세력이 강했던 일제에 대항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현실을 개혁하려는 노력은 지금 우리의 생활에서도 본받을만한 태도입니다. 우리도 용기를 가지고 부당한 것을 묵인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현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태도가 필요 합니다. 김두레 학우 발표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07.12.05 00:41

    두레두레 학우 발표 잘 들었습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학생들의 불같은 투지와 학생 투쟁 지도 본부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비약하였습니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단순한 학생 운동이 아닌 일제의 경제 수탈에 대항한 항일 운동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 상당수가 직접 청년, 노동, 농민 운동에 뛰어들어 민족 해방 운동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우리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의 또래들이 조국을 위해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겼습니다. 그들은 ‘왜 우리가 이런 시기를 맞이해야 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 07.12.05 11:51

    성인이 되기 전,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국심과 조국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해결해주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과 태도가 아닌, 자신들이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학생들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일반 국민들도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게 되어, 결국은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고 저는, 국민들이 깨어있어서 작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상실된 국권 회복을 위한 우리 민족들의 노력은, 식민지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끝까지

  • 07.12.05 00:41

    싸운다면 언젠가는 독립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열린 마음과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지 상태에 순응하고 아무리 우리가 발버둥 쳐봤자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며 포기하고 절망한다면, 우리는 끝까지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아무리 커다란 일본군의 벽이 있더라도 그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는 도전하는 정신과, 광복에 대한 열정으로 해볼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자는 굳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민족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07.12.05 01:17

    광주학생항일운동은 학생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우리 근대역사를 보면 학생이 주축이 된 운동이 많이 있습니다. 4.19혁명은 학생이 주축이 되어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룩해 냈습니다. 그리고 5.18광주민주항쟁 역시 학생들이 참여하여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도 우리나라의 앞날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이 그 당시 기성세대들도 하지 못했던 큰일을 할 수 있었던 점을 때 묻지 않은 정신에서 찾고 싶습니다.

  • 07.12.05 01:17

    우리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학생으로서 학문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우리가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처럼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불의에 당당히 맞설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우리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나 4.19혁명의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버렸던 학생들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 07.12.05 01:28

    발표를 듣는 내내 기세고 억세다고 불리는 광주 학생으로서 광주 항일 학생 운동에 자세히 아는 바가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또한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고 부당하지 않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주위의 시련 속에서도 바른 말과 행동을 하는 그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며 제 모습과 많이 비교하게 되었는데요. 시대적 어려움 속에서 더욱 빛나는 그들의 절개와 성숙함은 쉽게 형성되지 않았음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시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속에서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고 자기발전으로 연결했던 그들은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 07.12.05 01:28

    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안에서 무엇이든 배우려는 자세를 보며 자기 자신을 아끼고 나아가 우리 이웃,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을 절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받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실천으로 연결하여 실생활에 도움을 준 그들의 희생정신을 보며 우리가 배우는 학문의 진정성을 생각해봅니다.

  • 07.12.05 01:39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일본은 언론을 통제했습니다. 당시 신간회에서 이를 조사하여 사건의 진상을 전국에 알렸습니다. 이 운동은 3.1운동과는 달리 구호가 구체적이고 명확했습니다. 이 운동의 배후에는 운동을 체계화, 조직화했던 공산주의 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독부에서도 학생들을 조사할 때 공산주의자 여부와 비밀 결사에 가입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성격은 그들이 주장한 제국주의타파라는 구호에 있었습니다. 만약 오늘날 제2의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다면, 입시위주의 교육에 대한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으며 학교교육을 비판하고 전인교육을 주장할 것입니다.

  • 07.12.05 01:39

    당시에는 일제에 의한 민족성 소멸 위기에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 인간성 소멸의 위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참여하는 학생정신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면 학생정신을 학생 집단의 정치 참여도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약해졌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당시 민족해방 운동이 학생운동의 형태로 표현되었듯이 이 시대에도 우리의 관심은 여전히 사회와 민중에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 07.12.05 17:04

    광주 학생 항일운동에서 3.1 운동처럼 거족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점은 학생, 즉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에 자기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시대에 대한 불만과 불평등 교육에 반발을 일으킨 학생들이 깨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교육열이 더 높아지는 현재에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그런 혈기가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입시라는 틀에 갇혀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점을 볼 때 우리에게 잠재하는 혈기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07.12.05 20:31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일어난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독립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광주학생운동은 일본 학생이 한국 여학생에게 행한 모욕적인 언동이 발단이 되어 시위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54,000명의 학생이 참가한,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이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조선은 약자인 반면 일본은 강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일제에 대항하여 결집된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 07.12.05 20:59

    이런 엄청난 힘을 발휘하였던 광주학생운동의 원인은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충돌의 책임을 한국 학생들에게만 지웠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처사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의에 대항하고, 때론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론 그 용기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젊음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일을 단순하게 보지 못하고 두 번 세 번씩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 07.12.05 20:58

    그래서 ‘이것은 저것 때문에 안 될거야.’하는 생각에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물론 지금이 1분 1초가 중요한 시기이지만 때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키워야겠습니다. 그 도전이 실패를 불러오더라도 제 인생에서는 그 도전 자체가 큰 의미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07.12.05 21:50

    항일의식이 고취 되고 있던 상황 속에서 일본학생의 조선 여학생 희롱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광주학생항일운동! 당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적인 사회적 배경 속에서 조선인이 지어야 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젊은 혈기와 사회 부조리에 당당히 맞서려는 의식이 꽃피던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사회적 배경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겠지요. 학생들의 비판적이고 깨어있는 자세 속에서 우리의 항일의식은 더욱 타올랐고 결국 그러한 그들의 항일의식이 표출되어 나온 것이 바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07.12.05 21:50

    발표를 들으면서 젊은 피는 역사의 에너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끓어오르는 젊은 피들이 모여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과 그들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독립이라는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한 번 태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발표 준비하시느라 김두레 학우 수고하셨습니다.

  • 07.12.05 23:10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젊은이들이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광주의 학생들은 그 젊음의 정신을 항일운동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중심에 늙은이가 아닌 젊은이들이 버티고 있었기에 항일운동은 가능하였습니다. 젊음의 정신은 피 끓는 혈기와 왕성한 식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딱히 세련된 문자를 통해 젊음의 정신을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지금까지 토론하고 도출해 내고 많이 생각 해 보았던 여러 유익한 삶의 원리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학습자의 자세인 호연지기, 자신의 일은 자기가 처리해야 하는 의무감,

  • 07.12.05 23:10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는 실천의식, 발전의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과 사고력……. 모두 우리가 지녀야 할 젊음의 정신이 아닐까요? 학창시절, ‘어떻게 하면 술이나 한 모금 먹어볼까?, 무슨 핑계로 조퇴를 할까?’만을 고민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젊음의 정신과 그 향기를 퍼뜨렸던 광주학생항일운동의 학생들처럼 대학생인 지금부터는, 모두 ‘젊음’에 걸맞게 젊음의 정신을 가지고 행동해야겠습니다.

  • 07.12.05 23:44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식민지 교육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이 교육대상인 학생들의 운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교육이 단순히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전달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의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며, 이 당시 학생들은 깨어있는 의식으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교육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교육에 임했습니다. 한번이라도 제가 받고 있는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저는 현재의 학생들은 너무 수동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07.12.05 23:44

    또한 어린나이의 학생들이 부정한 것에 대해 저항하고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학문하는 태도, 사회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진지한 것인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07.12.05 23:54

    광주학생항일운동은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잘 보여 줍니다. 일제강점기에 감히 누가 들고 일어서지 못할때에 학생들은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이러한 원동력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즉, 실제로 학문을 사회에 적용시킬 수 있는 주체성이겠지요. 이 주체성은 얼마전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문은 무엇을 위한 학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닌 사회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학문은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같은 학생들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붕어빵같은 틀에서 사회인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07.12.05 23:55

    또한, 그들이 악조건에서도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훌륭합니다. 지금 시위를 하더라도 악조건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매우 유리합니다. 게다가, 여러 눈치는 이러한 용기마저도 수그러지게 만듭니다. 아, 이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최승호 시인의 ‘북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꼬챙이에 꿰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북어인 셈입니다. 시에서 말하는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광주항학생항일운동에서 목소리를 외치던 학생과 같은 학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07.12.08 14:58

    광주학생 항일운동의 시작은 한일 학생들 사이의 사소한 시비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일제강점기에 최대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3.1운동은 민족해방을 염원하던 시위였습니다. 반면, 광주학생 항일운동은 민족차별 철폐, 약소민족 해방, 일제 타도, 식민지 교육 철폐 등을 구호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광주학생 항일운동은 3.1운동보다 더 구체화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운동을 주도한 계층이 학생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 발표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과제와 공부를 귀찮다고 여기고, 사회,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관심이 없는 저에게 반

  • 07.12.06 18:11

    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지금의 저보다 어린 고등학생들이 깨어있는 자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사회의 문제에 대해 비판했다는 사실에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당시의 학생정신을 본받아 깨어있고 비판적인 사고와 행동력이 있는 학생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