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당시 미국 캔자스 주에서는 일명 ‘잔인한 밴더 가족’이 길가 여관을 운영했으며, 이 여관에서는 ‘환대보다 참사가 자행되었다.’
벤더 가족은 60세 가장인 존(대개 ‘늙은이 벤더’로 간략하게 거론되었다)과 ‘엄마(Ma)’로만 알려진 42세의 아내, 덩치가 크고 아둔한 27세의 아들 존, 케이트라는 이름의 딸로 이루어졌다. 20대 초반의 젊은 케이트는 처음부터 이들 가족의 두뇌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케이트는 붉은 머리로 남자를 유혹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녀는 얼굴이 불그스레한 남자 같이 생긴 여성이었고, ‘신앙 고백자 미스 케티 벤더’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열었으며 스스로 신앙 요법가를 자임했다.

영매술사 케이트 벤더
1870년 경 벤더 가족은 캔자스 주 라베트 카운티에 도착했으며, 기차가 지나는 체리베일이라는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남쪽의 곧게 뻗은 길가에 집을 지었다. 그 집은 통나무 상자처럼 생긴 방 하나밖에 없었다. 실내는 캔버스 천으로 절반을 나누어 한쪽은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썼으며, 다른 한쪽이 어설픈 여관이었다. 여관방에서 여행객은 따뜻한 음식이나 음료,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손님도 자신들이 요구한 것 이상을 제공받았다.
벤더 가족은 실제로 살인,강도 사업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유해 보이는 여행객이 나타나면 그는 식사 장소로 안내를 받았고, 캔버스 천을 등진 채 탁자에 앉았다. 저녁 식사 때 케이트가 즐거운 이야기를 펼쳐내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는 커튼 뒤쪽에서 큰 망치를 든 채 엿보고 있었다. 손님이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하고 커튼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기댈 경우 곧장 망치가 떨어졌고 손님의 뒤통수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체는 침실로 끌고 가 호주머니를 털고 옷을 벗긴 후 지하실로 통하는 구멍에 버려졌다. 지하실에서 시체는 목이 잘렸다. 그런 다음 나중에 초원에 매장되었다.

존 벤더의 살인도구
벤더 가족의 끔찍한 범행은 1873년 봄 윌리엄 요크라는 의사가 실종된 후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닥터 요크는 말을 타고 포트 스코트를 떠나 인디펜던스에 있는 고향집으로 향했는데, 그 후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요크의 동생이 이끄는 민병대는 그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했으며, 결국 그 도중에 벤더의 여관집을 발견했다. 벤더 가족은 실종된 닥터 요크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잡아뗐다. 그렇지만 벤더 가족은 자신들이 의심받을까봐 겁이 났고, 며칠 뒤 짐을 꾸려서 집을 버리고 달아난다. 벤더 가족이 종적을 감추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민병대는 그곳을 다시 찾아왔고 끔찍한 발견을 했다. 초지에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무덤 7곳이 있었고, 시체 8구가 나왔다. 요크를 포함한 성인 남자 7명과 18개월 된 여자 아기였다. 아기는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벤더 가족은 굳이 아기의 머리를 깨부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엉망이 되어버린 아기 아버지의 시체 구덩이에 아기를 던져 넣어 산 채로 매장시켰다.
분노한 민병대는 범인들을 찾아 평원을 샅샅이 뒤졌다. 벤더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 누구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다만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을 쓴 유명 작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벤더 가족을 쫓던 민병대에 속해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겪은 일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추적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무시무시하던 표정을 보고 그녀는 추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민병대는 벤더 가족을 사로잡아 서부 개척시대의 정의에 걸맞은 처벌을 내린 것이었다.

그 후 벤더 일가의 여관은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
첫댓글 로라의 아버지가 나오는 군요. 참 좋아하는 책인데..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