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얼빈’(2022. 문학동네)은 김훈의 최신작이다.
김훈은 1948년 서울 출생으로 장편소걸 <칼의 노래>, <달 너머로 달리는 말>,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산문집 <연필로 쓰기> 등이 있는 중견작가 이다.
이번에 발표한 소설 <하얼빈>의 줄거리를 출판사 서평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안중근을 다룬 기존의 도서들이 위인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는 데 주력한 것과 달리, 김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추어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간다.
이로써 『하얼빈』에는 안중근의 삶에서 가장 강렬했을 며칠간의 일들이 극적 긴장감을 지닌 채 선명하게 재구성된다.
구한말, 쇠약해져가는 조국을 바라보기만 할 수 없었던 청년들의 결기가 들끓고, 세상의 흐름에 맨몸으로 부딪친 민중들이 공허하게 스러지던 어두운 시대상도 김훈 특유의 단문으로 하드보일드하게 형상화된다.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안중근이 좇는 대의와 그가 느끼는 인간적인 두려움은 더욱 효과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과 타인의 희생을 불사하면서도,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며 천주교에서 세례 받은 신앙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수시로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은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되지 않았던 낯선 면모이다.
이 세상이 끝나는 먼 곳에서 빌렘이 기도를 드리고 있고, 그 반대쪽 먼 끝에서 이토가 흰 수염을 쓰다듬고 있고, 그 사이의 끝없는 벌판에 시체들이 가득 쌓여 있는 환영이 재 위에 떠올랐다.
시체들이 징검다리처럼 그 양극단을 연결시키고 있었다.……신부님은 여기에 계시렵니까?라는 말을 안중근은 참았다.(66~67쪽)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기로 결단하는 순간은 우연과 운명이 뒤섞여 빚어지는 전율로 가득하다.
암울한 미래에 고뇌하며 간도와 연해주 일대를 떠돌던 안중근의 하숙집으로 신문지 한 조각이 흘러드는데, 그 위에는 통감 공작 이토가 대한제국의 위상을 격하하고 일제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교묘히 연출한 순종 황제의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에 암시된 일제의 야욕을 감지한 안중근은 즉시 마음을 정하고 이토가 방문할 하얼빈을 향한 생애 마지막 여정에 오른다.
안중근은 곧바로 의병 활동을 함께했던 동지 우덕순을 찾아가고, 안중근을 맞은 우덕순 역시 안중근의 의중을 간파하고 두말없이 동행을 결정한다.
동일한 목적을 공유한 두 청년의 망설임 없는 의기투합이 간결한 대화를 통해 전달되며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우덕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은 엷게 얼굴에 번졌다.
-우습지만 그렇게 되었다. 겨누어 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총을 많이 쏘아보았는가?
-많이 쏘지는 않았다.
나는 사냥꾼이 아니지만 이토는 꿩보다 덩치가 크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나는 이토의 덩치가 너무 작아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웃음은 흐렸고 소리 끝이 어둠에 스몄다.(115쪽)
일본인 검찰관과 법관들이 거사를 단행한 안중근 일행을 조사하며 남긴 신문조서와 공판 기록 또한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소설의 현장감을 높인다.
극도로 정제된 공문서의 이면에서 인간사의 비극을 읽어내는 것은 김훈의 특기 중 하나이다.
일면 건조해 보이던 이 문서들은 소설의 맥락 속에 절묘하게 배치됨으로써 당시의 뜨거웠던 현장을 증거하는 절절한 기록으로 다시 읽힌다.
-그대는 안의 명령에 따른 것인가?
-아니다. 나는 안에게 명령을 받을 의무가 없다.
또 명령을 받을 의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명령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으로 한 것이다.
-이토 공은 고관高官으로 수행원과 경호원이 많은데, 그대는 암살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가?
-그것은 사람의 결심 하나로 되는 일이다.
결심이 확고하면 아무리 경호가 많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232쪽)
이러한 공술들은 소설적 각색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긴장되어 있고, 안중근과 우덕순의 답변은 단순하고 정확해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김훈은 이 기록들에서 유불리를 떠나 오직 스스로의 신념을 밝히기 위해 거침없이 발화되는 청춘의 언어를 읽는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짧은 생애를 바친 청년들의 모습이 동경심과 슬픔, 안타까움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에서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만큼이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와 한국 교회를 통솔하는 뮈텔 주교의 갈등이다.
일본 형법에 근거한 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죽음을 앞두고 신에게 죄를 고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빌렘은 그런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어주려 하고, 뮈텔은 한국에 겨우 자리 잡은 천주교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빌렘의 뜻에 반대한다.
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는 빌렘과, 교회의 안위를 위해 역설적으로 세속과 결탁한 뮈텔의 대치는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라는 갈등을 더하며 소설의 결을 더욱 풍부하게 일구어 낸다.
안중근과 마찬가지로 빌렘은 뮈텔의 권위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안중근을 만나러 감옥으로 간다.
이러한 빌렘의 용기는 안중근의 거칠었던 영혼을 평온한 안식으로 인도하는 명장면을 탄생시킨다.
안중근이 몸을 앞으로 굽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빌렘이 몸을 앞으로 굽히고 들었다. 안중근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사형수의 머리와 사제의 머리가 가까워졌다. 안중근의 목소리는 숨소리처럼 들렸다.
옥리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목소리가 끊기고,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빌렘은 침묵 속에서 안중근에게 고해성사를 베풀었다.(273~274쪽)
김훈이 그리는 안중근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온몸으로 길을 내며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안중근이 지녔던 젊음의 패기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환상은 그의 생명과 함께 부서져간다.
안중근이 부딪혔던 벽은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한 듯하다.
청년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고,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여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을 버릴 것을 요구받는다.
그렇기에 거대한 세상에 홀로 맞선 안중근의 생애는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과 탄식을 자아낸다.
책의 말미에 실린 ‘후기’에는 안중근의 사형이 집행된 후 남겨진 이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배반의 이합집산이 펼쳐진다.
안중근의 외로운 고투가 일으킨 변화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져간 비극을 담담하게 서술한 이 후일담 형식의 글은 소설 바깥의 현실과 맞닿으며 또 다른 울림을 준다.
『하얼빈』은 동양 평화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안중근을 비롯한 인물들이 선택한 길에 대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려 한 책 속 많은 이들의 모습은 각자가 만들어낸 명장면 속에서 순수하게 빛나고 있다.
소설 하얼빈을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이 나왔다. 소설보다 더 감동적이다.
조국 독립을 맹세하며 부르는 <장부가>이다.
“장부가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장부의 뜻 이루도록“
서른한 살 청춘을 조국을 위해 아낌없이 던진 청년 안중근의 애끓는 다짐이 느껴지는 가사이다.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는 아들에게 항소를 포기하라는 편지와 함께 수의를 손수 지어 보낸다. 편지의 일부분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독립윤동가이고 장군이며 의인이고 불멸의 영웅이다.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첫댓글 이 글은 '미래혁신포럼'에서 발표(3/23)할 자료입니다.
안중근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 아이의 가장이자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로 조국을 위해, 동양평화를 위해 거사를 단행한 그의 기개가 놀랍습니다.
아이구 동작이 빠릅니다.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