掛軸書画 趙孟頫 山水図 表具: 220x79cm, 本紙: 128x65 cm.
조맹부 [趙孟頫, 1254~1322]
元나라의 화가 ·서예가. 서예에서 王羲之의 전형에 복귀할 것을 주장
하고 그림에서는 당 ·북송의 화풍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림은 산수 ·화훼 ·죽석 ·인마 등에 모두 뛰어났고, 서예는 특히 해서,
초서의 품격이 높았으며, 당시 복고주의의 지도적 입장에 있었다.
字는 子昻. 號는 集賢, 松雪道人. 諡號는 文敏.
저장성[浙江省] 우싱현[吳興縣] 출생.
宋나라 종실 출신이며, 원나라 世祖에 발탁된 뒤 역대 황제를 섬겼고,
벼슬은 한림학사승지,榮祿大夫에 이르렀다. 사후에 魏國公에 추봉됨.
송나라 태조의 후손이면서도 원나라를 섬겨 영달하였으므로,
후세에 명분상의 비난을 면하지 못하였다.
당시의 대표적인 교양인으로서 정치 ·경제 ·詩書畵에 넓은 지식을
가졌으며, 특히 서화에 뛰어났다.
서예에서도 唐나라의 顔眞卿 이래로 송나라에서 성행하였던 서풍을
배격하고, 王羲之의 전형에 복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림에서는 南宋의 院體 화풍을 타파하고,
당 ·북송의 화풍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림은 산수 ·화훼 ·죽석 ·인마 등에 모두 뛰어났고, 서예는 특히 해서,
행서, 초서의 품격이 높았으며, 당시 복고주의 지도적 입장에 있었다.
그의 아내 管道昇은 墨竹에 뛰어났고, 아들 雍(仲穆)도
산수 ·화조 화가이며 서예에도 탁월하였다.
또 畵友, 門人이라 할 수 있는 錢選, 陳仲仁, 王淵 등이 있어,
우싱파[吳興派]라는 한 파를 이루었다.
그림으로 《중강첩장도(重江疊嶂圖)》 《사마도권(飼馬圖卷)》 등이,
글씨 유품으로는 《여중봉명본척독(與中峰明本尺牘)》 등이 있다.
서화와 시문에 뛰어나서 원나라의 四大家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에 《상서주(尙書注)》, 《송설재집(松雪齋集)》 등이 있다.
조맹부는 송태조 조광윤의 11세손이다. 그러나 그는 송을 붕괴시킨
원나라 세조의 부름을 받아들이고 관직에 나아간다. 이 일은 두고두고
그의 불명예가 되었다. 그는 변절자인가?
이민족의 통치 하에서도 최소한으로나마 중국 문화를 지속시키기
위해서 역사가 그를 필요로 했던 것일까?
원대의 학문과 書畵는 그리하여 그로부터 시작된다.
출사의 길이 원천 봉쇄된 원대 초의 문인들에게는 미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향리에 은거하면서 단지 옛 전통을 음미하며 르네상스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고주의를 가장 치열하게 실천한 사람은 오히려 관직에
있던 조맹부였다. 그는 문약했던 망국의 남송 문화를 극복하고 북송과
당, 그 이전의 예술 정신과 그 질박한 양식으로 회귀하고자 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영감과 새로운 힘을 발견한다. 중국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그는, 어쩌면 단순히 권력에 영합한 변절자가 아니라, 난세에
하수들이 산 속으로 은둔할 때 정말 고수는 '조정 속으로 은둔'한다고
하는 바로 그 '朝隱'을 실천했던 것일까?
조맹부는 한 획의 선으로 바위의 형상과 원근을 표현한다. 바위 곁을
흐르는 공기, 바위 속을 흐르는 시간이 새겨놓은 표면의 질감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바위를 생성시키는 자연의 힘과 화가의 정신을 표현하고,
육중한 암괴와 나무를 춤추게 한다. 선 속에 모든 것이 담긴다.
산수화의 일 획은 서예의 전통과 이어져 있다. 하루에 12,000자를 쓰기
도 했다던 서예의 대가 조맹부는 서예의 기법과 운율을 회화의 형상
속에 융합시켰던 것이다.
문인화의 書卷氣라는 것은 많은 독서뿐만 아니라 바로 이 서법의 단련
여부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하여 문인의 그림은 화공들처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는 것이다.
조맹부의 글과 그림
조맹부는 산수화 외에도 도석화 인물도 화조화 말 염소와 양 같은 여러
소재에 모두 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서예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을 이루었다.
안진경 이후 남송의 서법을 물리치고 왕희지의 전형으로 복귀할 것을
주장했던 그는 그의 호를 따서 松雪體라고 명명되는 서체로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
송설체가 원 명 청 그리고 고려와 조선에 미친 영향을 실로 지대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서예의 기법과 융합되었는데, 특히 난초와
대나무, 괴석의 그림에서 서법과 회화의 형상을 탁월하게 융합시켰다.
그는 왕유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송의 문동과 소동파로 이어진 문인화를
중흥시켰으며 그 중에서도 소위 매, 란, 국, 죽의 사군자는 그에게 와서
확실한 장르로 정립된다.
 제목 :
송설체
 출처 :
도서출판 예경
 설명 :
안평대군이 종이 바탕에 먹으로 쓴 송설체(1447), 44.6×38.7cm, 〈몽유도원도발문〉에서,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 소장
 관련항목 :
조맹부(趙孟頫)의 적벽부(赤壁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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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조맹부에 관한 풍부한 자료 고마워요, 잘 볼께요...그나저나 요즘 왜 서실에 잘 않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