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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엘리후의 변론
욥기서 32:1-22(구p.792) 찬송 90장 / 찬송 315장 20230219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욥기서 32장 말씀과 욥기서 33장에 있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욥기서 32장 말씀에는 욥의 또 다른 친구 “엘리후”라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하게 됩니다.
이 엘리후가 욥기서 32장-37장까지 자그마치 여섯장의 변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욥이 빌닷의 말을 끝으로 욥기서 26장-31장까지 6장을 내리 변론하게 되니까! 갑자기 엘리후가 나타나서 32장-37장까지 6장을 내리 변론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 변론입니다. 38장-42장까지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말씀하시게 됩니다.
여러분 이 엘리후라는 사람은 2절 말씀에 보시면,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엘리후의 아버지 바라겔이라는 이름의 뜻은 “바라크, 축복하다! 엘은 하나님,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아마 엘이후의 부모나 선조들은 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후라는 이름의 뜻도 “그분은 나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엘리후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욥과 그 친구들을 바라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후라는 사람은 6절에 설명을 하는 것처럼 욥의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변론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감히 나서지를 못하고 옆에서 욥과 친구들의 변론을 듣고 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욥의 세 친구들이 욥 한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욥에게 도리어 책망을 듣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하게 됩니다.
세 사람이 욥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하고 욥이 6장을 이야기기 하는데, 한마디 말도 못하는 것을 보고,
이 엘리후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혼자 32장 - 37장까지 6장에 걸쳐서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엘리후의 말을 들어 보면 구구절절 옳은 말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욥이 왜 이런 고난을 받게 되었는가? 의인의 고난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의 지식만 자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이 엘리후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먼저 오늘 이 욥기서 32장 말씀에는, 이 엘리후가 왜 나서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먼저 설명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2절 말씀에 보시면, 엘리후가 화가 났다고 말씀을 합니다.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리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라고 말씀을 시작을 합니다.
여러분 이 엘리후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좀 어리다 보니 선듯 나서지는 못하고 친구들과 욥의 변론을 듣고 만 있었는데, 욥을 봐도 마음에 안들고, 친구들을 봐도 마음에 안드는 겁니다.
욥을 이기지 못하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하고 또 혼자 의로운 척하는 욥을 보면서 화가 났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6절부터 이 엘리후는 욥의 이 세 친구들의 잘 못을 먼저 책망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6-7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엘리후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왔다가 다른 친구들 보다 나이가 어려서 양보를 해 준 것입니다. 이 세 명이 이야기를 하면 욥을 위로하기도 하고, 욥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답을 줄줄 알고 뒤에서 기다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 명의 친구들이 욥을 위로하는 것도 아니고, 욥의 죄를 밝히고 회개시키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책망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 답답해 진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말씀에 보시면, “어른들이 나서면 그 연륜이나 지혜로 가르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 속에는 영이 있고, 그 영 속에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을 깨닫게 하는데 나이가 많다고 다 이런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 말씀에 보시면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 말은 이 엘리후가 욥의 세 친구들을 책망하는 말 입니다.
어른이라고, 다 지혜로운게 아니구나! 나이가 많다고 다 옳은 것을 깨닫는게 아니구나! 하면서 책망을 하는 겁니다. 욥의 친구들에게는 기분 나쁜 말 일겁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에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엘리후가 욥의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합니다.
그래서 12절 말씀에 보시면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 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엘리후의 말은 욥이 친구 세 사람이 욥을 이기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다!” 라고 말 하면서, 욥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도 못하고, 만약 욥이 잘 못이 있다면, 하나님이 밝혀 내셔야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하나님 핑계를 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욥이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데도, 이 세 친구들은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더 기달 릴 수가 없어서 내가 말해야 되겠다! 하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엘리후는 지금 할 말이 많은 겁니다.
여러분 18절 말씀에 보시면, 자기의 마음을 비유로 설명을 합니다.
“내 속에 말이 가득하다”이렇게 말하면서, 마치 “내 배가 봉한 포도주 통 같고 또 터지게 된 가죽부대 같이 부풀어 올랐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가죽부대에 포도주를 넣으면 발효해서 부풀려지고 터지는 것처럼 내 속에 할 말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엘리후는 자기의 생각을 쏟아놓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엘리후라는 사람은 나이도 젊지만 그 성격이 당차고, 똑 소리가 날 정도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22절에 “나는 사람의 낮을 보지 안고,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22절에 “나는 사람에게 아첨하듯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당돌하게 말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욥기서 33장부터는 이 엘리후가 욥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 지적을 하고, 욥이 어떻게 해야 할 지 설명을 하기 시작합니다.
욥기서 33:1절 말씀에 보시면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하면서 내가 지금 말할 테니까 잘 듣고 대답을 해 봐라! 라는 말을 7절까지 하게 됩니다.
참 이 엘리후도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엘리후가 먼저 지적하는 것은 욥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라고 교만을 떨었다! 는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욥기서 33:8절 말씀에 보시면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 내 발을 차꼬에 채우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엘리후의 말은 욥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욥은“자기는 의롭고 순전하고 불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찾아내서 죄인 취급하고 원수처럼 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발에 차꼬를 채우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한다”라고 말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엘리후의 말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을 죄인 취급을 하시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람보다 훨씬 큰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네가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의로운 자를 죄인취급하겠는가? 사실은 네가 의롭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엘리후도 욥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욥기서 33:14절부터 보시면,
하나님께서 여러 번 말씀을 하셨을 건데, 욥이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지 못해서 못 알아들은 것이라! 고 책망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14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네가 허물이 있고, 죄를 지었다, 잘 못했다”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욥이 이런 하나님의 음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지금 책망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해도 못 알아들으면, 다른 방법으로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데, 꿈이나 환상으로 경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15절 말씀에 보시면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17-18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이 하나님께서 경고하는 방법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꿈이나 환상을 통해 경고를 했을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경고를 하시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17-18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그 이유를 설명을 합니다.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경고하시는 이유는 “잘 못된 것을 바로 잡고, 또 재앙을 당하지 않고 영혼이 타락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계속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재앙으로 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19절 말씀에 보시면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가 이렇게 재앙을 받는데, 병이 들어서 입 맛도 없고 음식을 먹지도 못해서 살이 빠지고 뼈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엘리후의 생각에는, 욥이 평소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경고나 메시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재앙을 당하기도 하고, 그래도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니까 또 병들어서 고통을 받게 된 것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엘리후가 욥에게 권면의 말씀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천사가 중보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아뢰면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여러분 23절 말씀을 한번 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은 욥에게 회개 하라! 는 것입니다.
네가 천사를 통해서라도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 너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엘리후는 이렇게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라고 말씀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26절 말씀에 보시면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27절 말씀에도 회복한 사람이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하게 될 것이라! 고 말씀을 합니다.
“그가(회개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또 회개하게 될 때 회복시키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라! 엘리후는 욥에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당당하게 욥에게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 듣고, 회개 할 것이 있으면 회개 하라고 지금 말 합니다. 만약 할 말이 없다면(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르쳐주겠다”라고 말 합니다.
여러분 32절 말씀에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라는 말은 회개하라! 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4절에 “만일 없으면, 회개할 것이 없다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만약 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입다물고 있으라! 네가 회개할 수 있도록 내가 지혜로 가르쳐 주겠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여러분 34장 말씀에 보시면, 욥이 악하다는 것을 계속 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엘리후는 세 명의 친구와는 다르다고 지금 말하지만 사실 말을 잘 들어보면 결국은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욥이 미련해서, 관심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못 알아들어서 그렇지, 하나님께서 욥의 죄를 여러 번 지적을 했을 것이라! 고 추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는 이 엘리후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욥이 죄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 실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논리를 말하고 지금 욥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욥기서 33장 말씀에 보시면,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 엘리후의 말이 욥을 위로하는 데는 실패 했지만 사실 오늘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우리 영혼을 살리기 위해 여러 번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꿈이나 환상을 통해 말씀을 하셨고 또 징계와 재앙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또 오늘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늘 깨닫게 하신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지혜로운 성도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나의 허물과 죄를 깨닫게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라면 우리 삶 속에 재앙이 반복 되는 것이 아니라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고, 지혜 입니다.
성도가 이런 회개의 삶을 살 때 그나마 우리 영.육이 회복되고, 또 은혜와 복을 받는 복 있는 자의 삶을 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엘리후의 말처럼 때로는 재앙으로 또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사람이나 환경을 통해 고통을 주시면서 우리 영혼을 깨우시고,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서 7:14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합니다.
“…만약 네 아들 솔로몬이 범죄하면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겠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막대기가 되고, 인생이 채찍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잠언서 19:29절 말씀에도 보시면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해서 예비 된 것이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돌아오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 준비가 되어 있지만,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자를 위해서는 채찍을 준비해 놓았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믿음이 있는 성도는 이런 재난이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게 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표가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하실 뿐 아니라 영육이 회복되는 은혜를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이게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일서 1:9절에도 보시면“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늘 새롭게 되는 게 은혜 입니다.
여러분 이 엘리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이 회개의 원리를 설명을 하고 있지만, 구약의 율법에 회개하는 자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시겠다고 계약서에 기록을 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은혜와 복이 오늘 이 시대에도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51:17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의지하며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멸시하지 않으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17-22절 말씀에 보시면,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지만 성령께서 우리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하는 것을 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으로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성도들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늘 회개하는 모습이 우리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성도에게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마음의 문을 열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는 하나님과 말씀을 함께 나누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시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늘 회개하는 삶을 살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고, 영.육을 회복시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