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년의 조건
“제가 왜 벌써 중년입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중년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40대가 늘었다. 이전보다 몸도 마음도 젊게 사는 팔팔한 40~50대들에게 중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은 따로 나이를 먹고 ‘늙음’을 규정짓는 기준도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늙었다고 생각하는 나이는 늘 내 나이로부터 일정하게 멀어져 올라갔다. 그러나 중년에서 ‘중’은 무게감(重)을 뜻하는 것이 아닌 삶의 중간(中)을 의미한다.
현재 평균수명이 80세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중년은 마흔 살 안팎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맞게 되는 중년의 시기는 흔히 인생의 ‘제2의 사춘기’라 불린다. 해고에 대한 불안, 승진경쟁, 자녀의 결혼, 노화에 대한 걱정 등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라면 일반적으로 많은 사회적·심리적 변화를 겪는 시기다.
별다른 준비 없이 맞이하는 중년.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강요받는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야속하게도 갖춰야 할 조건들은 하나둘 추가되고 있다.
창간 4주년 기념호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멋진 중년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살펴봤다.
영국 중년은 53세부터? 중년이 오는 10가지 신호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중년은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말하며 때로 50대까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고 풀이돼 있다. 하지만 최근 중년의 시작은 50세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견들도 많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100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단어의 개념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영국 ‘베네든 헬스’라는 연구기관에서 남녀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나이 드는 것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종전에 41세로 생각했던 중년의 기점이 53세부터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을 이끈 베네든 헬스의 폴 키난은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 등으로 인해 ‘노화’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있다”면서 “조사 대상자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중년’이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은 ‘중년’을 제대로 정의하기가 어렵다고 답했고 비슷한 비율로 중년은 나이나 신체적 상태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라는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결과 ‘중년’이 다가왔음을 진단할 수 있는 신호 10가지가 제시됐다.
1. 전자기기들의 작동 방법을 익히는 데 오래 걸린다.
2. 젊은이들이 얘기하는 화제에 대해 하나둘 뒤처진다.
3. 몸이 뻣뻣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4. 오후에 낮잠을 자야 한다.
5. 몸을 굽힐 때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6. 최신 음악밴드의 이름을 모른다.
7. 관절염 등 병에 대해 많이 얘기한다.
8. 시끄러운 술집을 싫어한다.
9. 체모가 굵어진다.
10. 경찰관이나 선생님, 의사가 젊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스타일링 헤어숍부터 바꿔라
세계에서 가장 스타일이 좋은 남자는 누구일까? 명확한 세계랭킹이 없어 답하기 힘든 질문이지만 저명한 패션디자이너들과 유력한 글로벌 패션지가 단골로 꼽는 인물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패션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와 존 바들렛의 패션디렉터 ‘닉 우스터’다. 국내에서도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패션계 두 거장은 깔끔한 비즈니스 캐주얼부터 파격적인 반전 스타일링을 소화하며 세계적인 대표 패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나이다. 스테파노 필라티는 우리 나이로 50세이고 닉 우스터는 56세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지닌 것도 아니다. 닉 우스터의 키는 168cm로 대한민국 남성 평균키에도 미치지 못한다.
작은 키와 불뚝 튀어나온 배를 위안 삼아 스타일을 파괴하는 남성들이 용서되는 시절은 지났다. 일반적인 중년임을 거부하는 노무족(NOMU ; No More Uncle)들이 늘어나며 이제는 미중년·꽃중년이라는 단어로 동네아저씨와 ‘계급’이 나뉘고 있다.
오빠와 아저씨를 결정짓는 신의 한 수
스타일링은 관심과 노력이다. 중년은 최고의 무기인 시간이 만들어주는 섹시함과 연륜이 있다. 이 두 가지가 패션에 묻어나면 상대를 움직인다. 그러나 중후함이 올드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청춘은 늙지 않는 마음이라 했던가.
귀찮다는 마음가짐이 오빠와 아저씨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임을 명심해야 한다. 외모로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진 시대이니 만큼 20대에도 아저씨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고 40대에도 오빠소리를 듣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중년 남성의 스타일링 포인트는 젊은 오빠지, 늙은 아저씨가 아니다.
스테파노 필라티
1. 헤어숍부터 바꿔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남자들은 헤어숍에 가면 대충, 깔끔하게, 어울리게란 말이 익숙해진다. 이는 남성 외모의 반 이상을 좌우한다는 헤어에 대한 테러에 가깝다. 여성만큼이나 남성의 헤어스타일이 페이스 이미지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익숙해진 그저 그런 헤어스타일은 어느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놀림감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맨날 가던 헤어숍에 가봐야 고만고만하게 잘라놓을 터, 새로운 곳에 가서 색다른 스타일을 제안 받아 도전해보자. 머리숱이 없다고 귀 근방부터 가르마를 타진 말자. 없는 건 없는 거고 머리는 짧을수록 생동감 있는 느낌을 줄 수 있다.
2. 남성은 안경으로 화장한다
여자들의 눈 화장만큼이나 중요한 건 남자들의 안경. 눈이 좋다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안경을 맞춰 쓰는 것이 엄청난 스타일의 반전을 가져올 수 있다. 액세서리가 많지 않은 남성에게 안경은 훌륭한 화장이자 액세서리다. 주름진 눈가를 타이트하게 보이도록 변화시키는 것, 분위기에 전체적으로 멋스러움을 더해주는 것도 안경이다.
안경은 얼굴형에 맞춰서 사야하며, 전반적인 얼굴과의 밸런스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이 크고 쌍꺼풀이 있는 이국적인 이목구비는 화려한 안경테보다 심플한 디자인을 선택하고 얼굴 전체에 포인트가 없는 편이라면 짙고 두꺼운 안경테를 고른다.
3. 남자의 어깨는 재킷이 만든다
남자의 힘 빠진 어깨만큼 나이를 느끼게 하는 것도 없다. 일상에서 어깨 펼 일이 별로 없다 해도 스타일을 위해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자. 당당하고 듬직한 어깨는 재킷이 만들어준다. 재킷만 어깨라인에 잘 맞춰 입어도 10년은 젊어 보일 수 있다.
중년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매장에 가보면 단추를 채우고 주먹이 열 개는 들어갈 것 같이 헐렁한 재킷을 흔히 권한다. 하지만 재킷은 편하라고 입는 옷이 아니다. 군복에서 유래된 슈트가 전쟁을 위한 옷이었다는 것을 미루어볼 때 치열한 전쟁터에서 딱 맞는 재킷만큼 나를 멋쟁이로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는 걸 기억하자.
4. 다리길이는 바지가 좌우한다
동양인은 다리가 길지 않다. 어차피 짧은 다리, 전체적으로 비율이 좋아 보이게 입는 것이 더 중요하다. 키가 작아도 비율이 좋아 보이는 스타일링을 통해 키는 커 보일 수 있다.
먼저 재킷은 엉덩이 끝선보다 살짝 위로 바지는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일자로 떨어지는 피트로 입는다. 길이는 구두 윗선에 살짝 닿을 정도가 좋다. 바지가 다리길이를 결정한다. 길이도 피트도 확인이 필요하다. 편하다고 헐렁한 바지에 허리띠로 조이는 것은 절대 금물. 키가 작고 왜소할수록 몸에 피트되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여성들이 스키니진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두꺼우면 당연히 짧아 보인다.
5. 스타일 고수는 상대방 구두부터 확인한다
가끔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오래된 가죽이 퍼진 수제비 같은 구두를 신은 중년 신사들을 만나게 된다. 관리하지 않은 신발은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고 해도 오래 버텨내기가 어렵다. 신발을 매일 신으면 가죽이 쉴 시간이 없어 쉽게 망가지기 때문이다.
가죽구두는 이틀에 한번 꼴로 번갈아가면서 신고, 흰 양말은 반드시 운동화에만 매치하자. 정장 바짓단 밑으로 비치는 흰색 양말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신의 센스를 의심하게 된다.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곳까지 신경 쓰자. 오빠다움은 철저한 디테일에 달렸다.
6. 주머니는 제발 좀 비우자
오빠와 아저씨의 차이는 성실함이라고 했다. 귀찮아서 못하겠다면 이미 마음도 아저씨! 손이 쏙 들어가는 주머니에 자동차 키, 지갑, 휴대전화를 넣고 다니면 얼마나 편한가. 나도 안다. 그러나 재킷에 두둑이 동전이며 휴대전화고 넣고 다닌다면 축 처지는 재킷이 보기에도 나쁘지만 옷도 금세 망가진다. 주머니는 지갑을 넣을 속주머니만 이용하고 나머지는 무늬라고 생각하라.
7. 과유불급, 조금은 모자르게
중년의 멋은 은은해야 한다. 멋은 부리는 게 아니라 나는 거다. ‘패션은 열정!’을 부르짖으며 어느 날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새빨간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타났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비싸고 화려한 액세서리가 아니어도 그 사람만의 품위와 멋이 나야 한다. 매일 하는 타이, 안주머니에서 나오는 작은 펜도 가진 사람의 멋이 되어야 한다. 철저히 자연스러워야 한다.
벨트와 구두 컬러를 맞추고 타이와 셔츠가 은은하게 어울리도록, 어쩌다 한 행커치프와 부토니에가 내 것처럼 잘 어울려야 한다. 어느 하나도 튀지 않으면서 어우러지게 말이다.
흔히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하지만 스타일의 완성은 철저한 자기다움이다. 너무나 쉽게 어디에나 쓰이는 댄디는 나다움의 극치, 그래서 누구나 따라하는 유행이 아닌 나만의 스타일인 것이다. 중년 남성의 매력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공의 아우라가 외적으로 발현되었을 때 나타난다. 파릇파릇 젊음이 부럽지 않은 이유, 그대가 멋있을 권리와 의무는 자기다움에 있다.
올 가을 중년을 위한 스타일링 제안
주중에는
은은한 가을 타이나 행거치프로 가을의 컬러를 표현해보자. 비즈니스 상황에서 누구나 입는 슈트를 감각적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일교차가 큰 요즘엔 아우터도 하나 필요하다. 트렌치코트로 가을 남자의 우수를 표현해보자. 그러나 트렌치코트를 구매할 때는 자신의 체형에 어울리는 길이와 컬러를 잘 고려해서 구매해야 한다. 반드시 여러 종류의 코트를 충분히 입어본 후 고른다.
주말에는
비즈니스캐주얼로 타이 없이 블레이저를 활용하면 훌륭한 주말 패션을 완성할 수 있다. 대신 분위기 있는 스카프를 추천한다. 스카프는 작은 아이템으로 더 없이 멋진 스타일링이 가능한 아이템이다.
주중 내내 위아래 한 벌의 슈트를 활용했으니 주말엔 재킷과 바지의 컬러를 바꿔서 세퍼레이트 슈트로 변화무쌍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몇 가지 옷으로도 여러 가지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 짙은 브라운 블레이저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중후한 인상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