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기도의 줄을 잘 잡으려면...
“그가 책을 받을 때 네 생물과 24명의 장로들이 각기 하프와 향이 가득 담긴 금대접을 들고 어린양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계 5:8).
오늘 이 말씀에서 기도와 함께 하프가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요? 기도할 때 경배와 찬양이 함께 드려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프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경배할 때 사용한 도구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장로들이 하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기도에 찬양이 결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기도와 찬양의 결합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라는 거지요.
기도는 말로 표현되는 의사소통의 한 통로지만,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흡입력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기도가 단순한 요청이나 간구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과 감사의 표현을 담아내는 매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 없이 기도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요, 이 말을 달리 하면 아무 감정 없이 기도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 감정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도 친밀해지려면 그 사람에 대한 지식이나 그 사람과 더 친해져야겠다는 의지 이전에 감정이 열려야 합니다. "나 너한테 감정 있다" 하는 건 뭔가 상대방과 나 사이에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채 깨어진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지정의에서 다른 게 다 채워져도 감정에 어색함이나 껄끄러움이 있으면 온전히 친밀해지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내게 "나 너한테 감정 있다" 하실 수도 있고, 나도 하나님께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한 기도의 초입에 하나님을 칭찬해드리고 높여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찬양을 올려드릴 때 내 감정이 열리면서 하나님 앞에 친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전뜰에 머물거나 성소에까지만 이르던 기도에서 지성소에까지 나아가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보통 기도의 순서가 감사 찬양, 회개, 중보, 간구인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 찬양으로 먼저 마음을 열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만든 내 죄들을 자복하고 나면, 기도의 본 내용으로 들어가 이웃과 나 자신을 위한 간구를 드리는 것이 더 수월해지고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특히 나의 감정을 만지시고 치유하시고 자유케 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감정이 어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식도, 활동이나 섬김도 많지만 상황따라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숙은 감정의 성숙과 통합니다. 쉽게 분노하지 않으며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감정의 성숙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인 기도를 통해 더 잘 빚어지기도 하는데, 감사 찬양으로 내 감정의 문이 열린 가운데 드려지는 지성소의 기도에 익숙해지면 감정을 성숙시켜가는 데도 큰 유익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찬양을 통해 하나님 앞에 먼저 우리의 감정을 충분히 열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프와 함께 향, 곧 성도들의 기도가 가득 담긴 금대접을 들고 성도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찬양과 기도가 함께 드려질 때 보좌에까지 이르는 온전한 예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찬양이 기도와 함께 드려진다는 것은 찬양 또한 기도에 속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의 실제 경험을 돌아봐도, 기도의 줄이 잘 잡히려면 찬양이 먼저 드려져야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와 같은 공동체 기도회에서는 찬양을 먼저 올려드리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개인 기도의 골방에서는 찬양을 당연시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그래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찬양을 중시해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인애하신 구세주여" 같은 찬송가나 "지극히 높은 주님의 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같은 복음성가를 개인 기도의 골방에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올려드리곤 하는데요, 이렇게 내가 입을 열기만 해도 콧등이 찡해질 만큼 특별한 감동을 주는 찬양 한 곡으로 그날의 골방 기도를 시작할 때 기도의 문이 더 쉽게 열리고, 마음의 중심 또한 더 잘 잡혀서 기도의 줄을 잡고 쭉 기도하기에 좋았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큰 감동과 기름 부으심을 느끼게 해주는 찬양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잉태되고 마침내 태어나는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찬양이 그만한 영적 무게를 가지려면 그만한 시간과 사연과 눈물이 필요합니다. 오래 묵은 자신만의 찬양들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데 꼭 필요한 비장의 무기고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찬양을 먼저 올려드리길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 없이, 그리고 감정이 실려 있는 중심이 드려지는 것 없이 내 의지로 내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로 곧장 들어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찬양의 불이 붙지 않으면 기도의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특별히 큰 감동을 주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드릴 때 기도가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예배할 마음이 없으면 기도할 마음도 없습니다. 기도만 하려는 이들은 하나님보다 늘상 자기 사정을 더 우선하기 쉽습니다.
기도를 하려면 기도가 잘 안 되지만 찬양을 하려면 기도가 절로 됩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며 그분을 높이고 기뻐하는 일은 기도보다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어려운 것은 그 쉬운 일을 넉넉하게 해낼 시간을 내는 일입니다. 기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나보다 하나님만 온전히 높이는 데 사용할 시간을 드리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한 시간 기도라면 30분, 두 시간 기도라면 한 시간은 기도 초입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경배하는 데 들일 마음이 있다면, 기도에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경배에 실패하니까 기도에 실패합니다. ‘오늘 개인 기도 시간에는 찬양만 드리고 기도를 끝내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그때부터 기도가 절로 열립니다.
본래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기도 또한 그냥 그 경배의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걸 모르거나 무시하면 맨날 중언부언 기도밖에 드릴 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기도에 재미가 없고 의무감이나 부담만 가득해집니다. 경배 없이는 누구도 기도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기도에도 욕심을 내면 기도가 잘 안 된다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기도는 우선 주님과 내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서로 만나는 일이지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수단인 것만은 아니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기도할 때 오히려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 게 기도하기에 좋습니다. 가만히 주의 아름다우심을 묵상하고 찬양하면 그 자리에 기도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기름 부음이 넘치는 좋은 찬양 하나의 가치가 정말 내 영혼을 살립니다. 경배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지를 모르면 이러한 찬양의 가치도 잘 모릅니다. 주를 예배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만 그 가치가 눈에 띄고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경배한 것밖에 없는데도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성령충만한 날로 보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도의 말을 뜨겁게 많이 드리는 기도에서 충만한 은혜를 맛보기도 합니다. 기도에는 특정 공식이 없습니다. 경배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전심으로 주를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찬양과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매번 같은 기도만 드릴 수 없게 됩니다. 새록새록 늘 새로운 찬양과 감사가 영혼의 중심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우리 마음의 지성소에는 같은 찬양, 같은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늘 새롭게 만날 기대감이 기도를 기도답게 만들어준다고 믿습니다.
실은 감사하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감사할 게 많으면 기도 또한 자연스럽습니다. 기도할 때 찬양하고 감사하고 그다음에 회개하고 이웃을 위해 중보하며 나를 위한 간구를 맨 나중에 두면 신학적으로 기도의 구조와 내용이 탄탄해집니다. 찬양하고 감사하기 싫어서 기도의 문을 내내 닫아두고 있을 뿐입니다.
정말 찬양과 감사만으로도 기도가 충분합니다. 주께 기도할 시간을 내는 데 인색한 사람들은 기도할 때조차 그 시간이 아까워 기도할 내용을 효과적으로 채우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분 곁에 친밀한 감정이 열린 가운데 마음으로 충분히 머무는 데 관심이 많으신데, 나는 마음 없이 사무적으로 '기도'라는 일을 처리하려 들기 쉽습니다.
신자들마저 다양한 세상 음악에 가려져서인지 찬양의 능력이 얼마나 실제적인지에 둔감합니다. 시험이나 낙망이 찾아들고, 하나님마저 야속하게 느껴질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찬양을 드려보십시오. 세상의 그 어떤 거창한 대책이나 사람의 어떤 좋은 말로도 풀 수 없는 마음의 짐이 순식간에 싹 다 덜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제목들을 속속들이 다 아시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십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까맣게 모르실 거라고 여기기라도 하는 듯 빚쟁이처럼 리스트만 들이대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리스트 이전에 우리의 마음을 얻기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찬양으로 감정이 열리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먼저 하나님께 예배로 드릴 수 있어야 기도가 제대로 드려진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해야 어떤 간구를 드리든 자녀로서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과 같은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에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오히려 진정으로 축복하며 그들이 강건케 되길 간구할 수 있고, 그들 또한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해 내 삶에 허락하신 축복의 통로라고 여겨 진심으로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찬양도 함께 드려져야 보좌에까지 이르는 향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내가 부르기만 해도 금방 은혜를 크게 받는 찬양을 먼저 올려드리는 것이 기도에 향을 더하는 가장 확실한 방편임을 기억하시고, 이제부터는 꼭 그대로 적용해보시길 바랍니다.
- 안환균, 온누리교회 전도통합팀 화요기도회 묵상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