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하여질 때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로 옮겼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나자렛의 성가정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시고 가족이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또한 해체된 가정과 위기를 겪는 가정에 주님께서 은총을 내리시어, 주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시기를 청합시다.
<아기는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졌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제23회 가정 성화 주간 담화
‘혼인적 사랑’ - ‘참된 어른’으로 초대 -
2023년 한 해를 마감하는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며 가정 성화 주간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 가정 성화 주간은 신앙 안에서 삶의 필수적인 터전이며 사랑의 ‘첫 학교’이자 ‘작은 교회’인 가정의 의미를 묵상하는 소중한 시기입니다.
사람은 두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한 번은 부모로부터의 생물학적 출생이고 다른 한 번은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정과 삶의 주체가 되는 어른으로의 출생입니다. 어려서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지만, 청년이 되면 부모에게서 벗어나 배우자를 만나고 자식을 낳으며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어른으로 성장한 청년은 ‘혼인적 사랑’을 통하여 하느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주역이 됩니다. ‘혼인적 사랑’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선물로 내어 주는 ‘자기 증여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혼인적 사랑’을 통해서 ‘참된 어른’이 되어 갑니다.
‘참된 어른’은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인내와 포용으로 젊은 세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참된 어른’은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겼던 가치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고, 이를 젊은 세대에 전달하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가치와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기성세대가 가정을 이루며 지켜 왔던 가치들을 통하여 기쁨에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 줄 때, 젊은이들은 그러한 삶을 이어 가고 싶은 마음을 절실히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참된 어른’으로 나아가는 데 적지 않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윤리적 사막화, 지나친 개인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세속적 성공만을 행복의 척도라 여기는 현세적 사조가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혼인적 사랑’의 가치가 폄하되고 그 존립조차 위협을 받습니다. ‘혼인적 사랑’의 상실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자신 안에 고립시킨 채 참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현실을 낳습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젊은이들이 ‘혼인적 사랑’의 실천으로 ‘참된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가정이 선사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내가 지키는 가정이 나를 지켜 줄 것이며, 자녀는 하느님의 축복이고, 육아는 행복하고 보람되어 고단한 삶 가운데에서도 큰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소상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지 느끼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워 주어야 합니다. ‘참된 어른’의 부활이 시급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참된 어른’이 되려면 삶의 ‘중심 이동’이 필요합니다. 곧 나 중심의 관점을 타인과 하느님, 생명 중심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몰입에서 벗어나 생명을 잉태하고 낳으며 양육하고 독립시키는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혼인과 출산은 나에게서 배우자와 아이에게로 중심을 이동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는 과정입니다. ‘중심 이동’은 그 자체로 나눔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소녀에서 어머니로, 소년에서 아버지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중심 이동’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관계에서도 하느님을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고정된 틀에 넣어 조종하거나 이용하려 하지 않고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를 뛰어넘어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23년 제3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담화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장 위대한 희망과 꿈은 일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의 대화와 관계 안에서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지금 이 자리, 돈과 재산,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소유’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방식을 보지 못합니다.” 교황의 이 말씀은 ‘혼인적 사랑’을 통한 ‘참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다른 이들과 대화와 관계 안에서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일깨웁니다. 우리는 앞 세대와 뒷 세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경청하는 가운데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혼인적 사랑’의 핵심, 곧 자신의 소유에 집착하기보다는 서로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기꺼이 선물로 내어 주는 ‘자기 증여의 사랑’을 배우며 실천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어른’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만 가능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의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의 발자취를 따르는 ‘혼인적 사랑’으로 성화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23년 12월 31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 위원회 위원장 이 성 효 주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