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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가을 속으로 – 내장산(도집봉,상왕봉,신선봉,까치봉,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
1. 까치봉 오르면서 바라본 조망, 멀리 가운데 왼쪽은 회문산, 그 오른쪽은 여분산
내장산은 호남정맥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로 전라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서래봉 ㆍ 불출봉 ㆍ 연지봉 ㆍ 주봉인 신선봉 ㆍ 문필봉 ㆍ 장군봉 등으로 이어지는 기암의 능선은 내장사를 중심
부에 두고 병풍처럼 펼쳐진다. 까치봉에서 서쪽 새재를 거쳐 동남쪽으로 휘어진 능선은 상왕봉 ㆍ 백학봉 ㆍ 사자봉
등을 주축으로 백암산을 이룬다.
1971년 서쪽의 입암산과 남쪽 백양산 지구를 합한 총면적 75.8킬로제곱미터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인 굴거리나무(제91호)와, 비자나무(제153호)가 자생하고 있다.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워 옛날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다. 백제 때 영은조사가 세운 내장사와 임진왜란 때 승병
들이 쌓았다는 동구리 골짜기의 내장산성이 있다.
―― 김형수, 『韓國400名山記』 ‘내장산(內藏山) 763.2m’ 개관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11월 9일(토), 금요무박, 맑음
▶ 산행인원 : 2명(악수, 아사비, 아사비 님은 산악회 버스에서 우연히 만났음)
▶ 산행코스 : 구암사,백학송전망대,도집봉,상왕봉,순창새재,소둥근재,신선봉,까치봉,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
벽련암,내장사,내장터미널
▶ 산행거리 : 도상 20.1km
▶ 산행시간 : 10시간(03 : 30 ~ 13 : 30)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23 : 40 – 양재역 1번 출구 전방 200m 앞 버스정류장
02 : 10 – 정읍휴게소
02 : 55 – 백양사 입구
03 : 30 – 구암사 입구, 산행시작
03 : 50 – 구암사(龜岩寺)
04 : 10 – 호남정맥 능선, 구암사 0.6km, 상왕봉 1.8km
04 : 40 – 도집봉(都集峰, 기린봉, 731.9m)
04 : 50 – 백암산(白岩山, 상왕봉 象王峰, 741.2m)
05 : 38 – 순창새재(505m)
05 : 53 – 소둥근재(430m)
06 : 44 – 내장산 주릉, 까치봉 0.3km, 신선봉 1.2km
07 : 13 – 신선봉(神仙峰, △763.5m), 휴식, 아침식사( ~ 07 : 30)
08 : 10 – 까치봉(715.8m), 연지봉 0.9km
08 : 34 – 연지봉(蓮池峰, 669.3m), 망해봉 0.5km, 휴식( ~ 08 : 45)
09 : 05 – 망해봉(望海峰, 679.3m), 불출봉 1.4km
10 : 10 – 불출봉(佛出峰, 622.2m), 서래봉 1.3km
11 : 00 – 서래봉(西來峰, 624.0m), 벽련암 1.1km, 휴식( ~ 11 : 30)
11 : 58 – 벽련암(碧蓮庵)
12 : 14 – 내장사 일주문
12 : 19 – 내장사(內藏寺)
13 : 30 – 내장터미널, 산행종료, 하산주 겸 점심( ~ 14 : 30), 버스출발
16 : 04 – 이인휴게소( ~ 16 : 18)
18 : 31 – 양재역
2. 산행지도(담양, 1/50,000)
▶ 구암사(龜岩寺)
내장산 가는 밤차에서 뜻밖에 반가운 악우를 만났다. 한동안 적조했던 아사비 님이다. 바로 옆자리다. 혼자 왔다고
한다. 오늘 무박산행 한시름 던다. 그래서다. 차중 한층 곤한 잠을 잔다.
미산 산행대장님은 내장산 산행의 3개 코스를 안내한다. 제1코스는 들머리가 백양사이고, 제2코스는 구암사, 제3코
스는 추령이다. 백양사 들머리는 고전적인 코스로 백암산(상왕봉)을 올라 내장산을 반 종주하고, 구암사 코스는
상왕봉을 기준할 때 백양사 코스(백학봉 경유할 때 4.1km)에 비해 거리가 짧을 뿐더러(3.3km) 산행초반의 오르막
이 비교적 수월하다. 제3코스 추령은 내장산 9봉을 종주하는 들머리다.
‘Every Body Every Mind’이다.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 일행들 또한 세 갈래로 나뉜다. 아사비 님과 나는
구암사 코스를 택한다. 날이 훤하다면 상계류 앞 연못에서 상계루와 그 뒤 백학봉을 반영(反影)까지 보는 추일 가경
때문에 백양사 코스를 택하겠지만, 캄캄한 밤중이라 무망한 노릇이다. 아마 소둥근재를 지나 내장산 까치봉까지는
어두울 것이라 그럴 바에는 가급적 부드러운 등로를 가는 게 상책이다.
구암사 코스는 절집 앞까지 포장한 대로인데 버스는 우리를 대가천 천변 도로에 내려준다. 해발 약 480m에 위치한
구암사까지 거리는 1km이다. 대체로 산 사면을 길게 도는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이다. 나로서는 처음 가는 코스다.
버스에 내릴 때는 안개가 자욱하였는데(운해였다) 차츰 고도를 높여 운해 위로 올라 하늘 우러르니 별들이 총총히
보인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저 북극성만 해도 약 430광년 떨어진 상상하기 어려운 거리인데, 최근에 미국의 천체
망원경은 250억 광년 떨어진 별까지 관측하였다고 한다.
밤중 산속이라 추울지 몰라 두툼한 겉옷을 껴입었다. 날이 푹하기도 하다. 땀난다. 산모퉁이 돌자 산중 멀리 불빛이
보인다. 구암사다. 개가 먼저 인기척 알아보고 짖어댄다. 새벽 염불소리이려니 한다. 구암사에 가까워지고 개는 절
밖으로 나와서 짖는다. 풀어놓았다. 백구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 백구는 대단한 산꾼이었다. 우리가 신선봉을 올랐
다 뒤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백구와 지근거리에서 오는 앳된 여자 등산객과 마주쳤기에 그녀에게 개 주인이냐고 물
었더니 아니라며 구암사 개라고 한다.
백암사 등산로는 구암사 절집 바깥에서 산속 소로로 이어진다. 구암사(龜岩寺)는 623년(백제 무왕 24) 숭제(崇濟)
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부근에 거북바위가 있어서 사찰 이름을 구암사라 했다고 전한다. 구암사 은행나무를 보지
못해 무척 아쉽다. 구암사의 은행나무는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가 구암사에 방문한 것을 기념하고 왕조의
번창을 염원하는 뜻에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나무의 높이는 36m이고 가슴둘레는 5m이며, 나이는 600년이 넘는다
고 한다.
구암사는 근대 불교 중흥의 중심지라고 한다.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고, 이곳에서 당대 지식인들의 모임이 잦았다
고 한다. 조용헌은 구암사의 위상을 ‘당시 불교계의 서울대학교’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만해 한용운(卍海 韓龍雲, 1879~1944)은 여름부터 봄까지 구암사에서 산 생활을 하며, 석전 박한영(石顚 朴漢永,
1870~1948)을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 다음은 만해 한용운의 「구암사 초추(初秋)」라는 한시다.
古寺秋來人自空 옛 절에 가을 드니 사람은 절로 마음을 비고
匏花高發月明中 박꽃만이 높지막이 밝은 달 아래에 피었다
霜前南峽楓林語 서리 앞둔 남쪽 언덕 단풍들의 속삭임
纔見三枝數葉紅 아직은 서너 가지 붉은 몇 잎
4. 일출 직전에 신선봉 가는 도중 전망바위에서, 왼쪽은 서래봉, 그 능선 내린 중간 가운데는 월영봉
5. 앞 오른쪽은 장군봉, 멀리 가운데는 회문산과 여분산
6. 중간 가운데는 또 다른 장군봉
8. 멀리 가운데는 고창 방장산, 그 앞 오른쪽은 입암산
9. 멀리 가운데는 회문산과 여분산
10. 멀리 가운데 오른쪽 흐릿한 산은 무등산
11. 앞 능선은 상왕봉에서 순창새재를 지나 온 길
12. 앞 오른쪽은 장군봉
▶ 백암산(白岩山, 상왕봉 象王峰, 741.2m)
능선 오르는 길이 무척 가파르다. 갈지자를 대자로 그리며 오른다. 긴다. 밤에도 산국은 피었다. 국향 맡아 힘 받는
다. 고개 들면 공제선 능선이 금방 오를 듯이 보여도 착시인지 양봉래 태산처럼 오른다.
구암사에서 겨우 0.6km를 올라 능선이다. 호남정맥 길이다. 호남정맥 마루금을 쫒기보다는 그 왼쪽으로 사면을
돌아 오르는 (이정표가 안내하는) 잘난 등로 따른다. 도계를 간다. 이제 오른발은 전라북도 땅을, 왼발은 전라남도
땅을 밟는다.
곧 백학봉에서 오르는 등로와 만나고 함께 간다. 날이 훤하다면 0.5km 떨어진 백학봉을 들를까 망설였을 텐데 아무
렇지 않게 갈림길을 지난다. 긴 한 피치 오른 720m봉에서는 잠시 주춤한다. 헤드램프 비춘 등로는 북진일 것 같은
데 지도를 자세히 살피면 왼쪽으로 직각 꺾는 서진이다. 백학송전망대를 지난다. 암반 틈 노송이 명품이다. 조망이
아깝다. 사방 캄캄하다. 등로는 부드럽다. 헤드램프를 광선검처럼 휘두르며 줄달음한다. 거벽 밑을 지난다. 어둠 속
이라 하늘 높이 가린 암벽이 장대한다.
암벽을 다 지나도록 아무런 표시가 없지만 틀림없이 이름난 바위일 것. 그랬다. 도집봉(都集峰)이다. 영구산(靈龜
山)이라고도 한다. 내장산국립공원 홈페이지의 코스별 지도에는 ‘기린봉’이라고 한다. 도집봉이 대체 무슨 뜻일까?
향토문화전자대전은 불교적 의미로 해석하면 관세음보살이 있는 산으로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8대
덕목이 모여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나로서는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도집봉을 약간 내렸다가 길게 오르면 백암산 상왕봉이다. 어둠 속에서도 정상 표지석과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
들이 줄섰다. 우리는 잠시 서성거리다 순창새재를 향한다. 등로 찾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사자봉으로 간다. 여러
눈으로 살펴 찾아낸다. 온 길 뒤돌아 4~5m 갔다가 북진하고 곧바로 북서진하여 내린다. 급전직하 한다. 밤이라
더욱 깊다. 골로 가듯 뚝뚝 떨어진다. 앞사람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미끄러진다.
워낙 가파르고 길게 내리기에 안부는 순창새재려니 했는데 터무니없었다. 봉봉을 오르고 내린다. 645.5m봉을 완만
하게 오르내린다. 내내 하늘 가린 숲길이다. 멀다. 순창새재(505m). ╋자 갈림길 안부로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순창
새재 위쪽 536.0m봉은 호남정맥에서 영산강과 동진강을 가르는 영산기맥이 분기한다. 지도에는 호남정맥인 내장
산 신선봉을 가기로 그 536.0m봉을 올라 일단 동진해야 하는데 이정표는 능선 마루금을 마다하고 골짜기로 갈 것
을 안내한다.
너덜 같은 골짜기 돌길이 지나기가 아주 고약하다. 더구나 어둠 속이다. 더듬더듬 길 찾는다. 헤드램프 불빛 닿는 데
는 길로 보여 엉뚱한 데를 헤매다 뒤돌아 나오기도 한다. 계류가 말랐기 망정이다. 어렵사리 소둥근재(430m)다.
소둥근재는 소지갱이, 소죽음재, 소죽엄재, 소죽염재, 소뒹군재 등으로 불린다. 많은 이들은 마차에 짐을 가득 싣고
고개를 오르던 소가 짐을 이기지 못해 마차와 함께 뒹굴어 죽은 곳으로 추측한다.
13. 멀리 가운데는 회문산과 여분산
14. 앞은 서래봉
15. 앞 오른쪽은 차례로 문필봉, 장군봉, 추월산
16. 멀리 왼쪽은 회문산, 앞 가운데는 또 다른 장군봉
17. 연지봉 가는 길에 본 용담
18. 망해봉
19. 멀리 가운데는 추월산
21.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추월산
22. 앞은 불출봉, 그 뒤(가운데)는 서래봉
▶ 내장산(內藏山) 신선봉(神仙峰, △763.5m)
비로소 내장산 품에 든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래도 돌길 벗어나니 걸을만하다. 새로이 산을 오른다.
까치봉 아래 신선봉 갈림길까지 1.7km를 고도 300m로 올라야 한다. 06시가 되어도 어둑하다. 오늘 일출시각은
07시께이다. 산정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바쁘다. 가파르던 오르막은 호남정맥 마루금과 만나고부터 한풀 꺾인
다. 암봉인 봉봉을 오른쪽 사면 산죽 숲 헤치고 넘는다. 검은 실루엣의 까치봉과 신선봉에 이르는 연릉이 장벽으로
보인다.
아무튼 시간이 산을 간다. 내장산 주릉 갈림길이다. 왼쪽은 까치봉 0.3km, 오른쪽은 신선봉 1.2km다. 지금 시각
06시 44분이다. 신선봉에서 일출을 보고자 서둔다. 어쩌면 해는 구름 위로 솟느라 약간 지체할지도 모르고 혹은
가다가 전망 좋은 데가 나오면 거기에 머물러 여유롭게 보리라. 그런데 아쉽게도 그런 데는 없고, 숲속 길의 연속이
다. 도중 두 곳의 암반인 전망대는 검은 신선봉이 정면으로 가렸지만, 그 옆으로 천산만학의 여명을 목도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아득히 먼 피안인 듯 무등산도 본다.
막판 스퍼트 낸다. 그러나 해는 이미 뜨고 말았다. 신선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일출이 멋있던가요?
하고 물었다. 키 큰 나무숲에 가려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구나. 가슴 쓸어내린다. 서운할 뻔했다. 더듬어보건대
오늘 일출을 보려면 까치봉삼거리에서 곧장 신선봉을 향하여 가지 말고, 암봉인 까치봉 정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삼거리에서 30m 정도만 가도 조망이 훤히 트이는 암릉이 시작되니 거기서 보아야 했다.
다만 한 가지 께름칙한 것은 일출을 보고나서도 과연 신선봉을 다녀올 생각이 들까 하는 점이다. 신선봉 정상은
너른 공터다. 해는 나뭇가지 사이로 눈 못 뜨게 빛난다. 조망이 트인 데를 찾으려고 연자봉 쪽으로 더 가보았으나
마찬가지다. 모처럼 배낭 벗어놓고 휴식할 겸 아침밥 먹는다. 정상주 탁주는 확실히 독작보다 대작이 더 맛이 난다.
가깝게는 오지산행에서 6년 전 4월 춘설이 난분분하던 날 신선봉에 올랐다. 대부대였다. 20명. 오늘 그들은 다 어디
가고 나 혼자다. 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화은, 한계령, 더산, 산정무한, 인치성, 진성호, 두루,
향상, 맑은, 구당, 신가이버, 해마, 오모육모, 불문, 자유.
뒤돌아 온 길을 내린다. 아까 들렀던 전망바위 두 곳을 또 들른다. 시시각각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다른 색조의 가경
이다. 산죽 숲을 지날 때 여러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그들 중 한 남자가 호기롭게 얘기한다. 지난여름에 이곳도 몹시
더웠나보다. 대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저 모양이니. 참견하려다 참았다. 까치봉삼거리 지나고 암릉 길을 오른다.
암릉 양쪽에 철난간을 설치하였다. 좌우로 조망이 거침없이 트인다. 왼쪽 멀리는 방장산, 입암산 그리고 우리가
백암산에서 지나온 부드러운 능선이다.
오른쪽은 골골이 옅은 운해를 채운 만학천봉이다. 장군봉, 회문산, 여분산, 강천산, 추월산, 병풍산, 불태산 등을
짚어 본다. 이들을 비롯한 산 첩첩은 서래봉까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까치봉 오르기가 까칠하다. 바위 슬랩을
철계단으로 내렸다가 곧추 오른다. 눈 들면 전후좌우로 가경이 펼쳐진다. 까치봉은 내장9봉 중 가운데에 위치하며
신선봉 다음으로 높다. 2개의 바위봉우리로 바위 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연지봉을 향한다. 먼발치에서나 가까이에서 보는 연지봉은 좌우로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가을날 곱디고
운 적상으로 단장하였음에야. 그런 만큼 부드러운 산길로 연지봉을 오르내린다. 헬기장인 연지봉 정상은 신선봉에
서처럼 키 큰 나무숲으로 조망이 가렸다. 연지봉(蓮池峰)은 연오봉(延烏峰)이라고도 한다. 연지봉에서 망해봉
0.5km다. 망해봉은 연지봉과는 달리 사납게 보인다. 산 모양이 연지봉은 여성스러운데 반하여 망해봉은 남성스럽다.
망해봉 저 슬랩을 오르게 되나보다 하고 미리 손맛 다셨는데 철계단과 데크계단을 오른다. 계단마다 경점이다. 햇볕
은 익었다. 매직 아우어가 지난 지 오래다. 그래도 저 멀리 아득한 첩첩 산은 매직 아우어가 아직 남았다. 망해봉.
맑은 날이면 서해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보다 아침이면 발아래 운해가 가득하여 망해봉이 아닐까 한다.
이다음은 불출봉이다. 암릉을 지나 암봉을 오른다. 데크계단이라 짜릿한 손맛 볼 기회는 없다. 불출봉. 역시 거침없
는 조망이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장관이라고 하여 ‘불출운하’라고도 한다. 북쪽으로 정읍시와 그 좌우로 각각 두승산
과 칠보산이 가깝다.
23. 멀리 가운데는 추월산, 그 앞 오른쪽은 장군봉
24. 오른쪽은 까치봉, 그 뒤 왼쪽은 신선봉
25. 멀리 오른쪽은 추월산
26. 멀리 가운데 왼쪽은 모악산
27. 연지봉의 자락
28. 왼쪽은 까치봉, 오른쪽은 연지봉
29. 연지봉, 저렇게 보여도 상당히 가파르게 오르내린다
30. 앞 왼쪽은 서래봉, 멀리 오른쪽은 추월산, 앞 오른쪽은 월영봉
31. 신선봉
▶ 서래봉(西來峰, 624.0m)
이다음은 서래봉이다. 1.3km. 멀리서도 나이프 릿지 암봉이다. 다가간다. 나이프 릿지 앞에 선다. 직등하는가 마음
졸였는데 등로는 왼쪽 사면으로 났다. 6년 전 그때도 이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석 깔린 내리막이다. 마을로
하산하는 것처럼 내린다. 서래봉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워 마주치는 등산객에게 묻는다. 맞다. 뚝 떨어졌다가
그만큼 데크계단을 오를 거라고 한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여기다.
데크계단 오름길. 우리나라 산에 이런 데가 있던가 하고 오른다. 서래봉.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 있다. 우리도 노송
아래 자리 잡고 오래 휴식한다. 서래봉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에서 나는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1892~ ?)가 1934.8.24.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南遊寄信 (第十九信)’의 내용을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음은
그 일부다.
“(…) 內藏寺 뒷峰을 ‘쓰레’峰이라고하는대 다른까닭이 아니오 嚴峰一帶의 삐죽삐죽 소슨것이 ‘쓰레’이(齒)같이 되
엇으므로 생긴대로 이름을 지은것이나 그럴듯은 하되대인(比擬)인것이 너무나 鈍拙하니 아쉬운대로 말하여 보랴면
삐죽삐죽하되 가지런치는 아니하다고 할까 연햇다 벌엇다 하엿으되 이또한 一狀이 아니라고할까 나역시 形容할수
잇다고自期하기는어렵습니다. 井邑驛에서 內藏으로 向할때 參差한 高峰이 雲際에 건너질린것을 보앗더니 들어와
보니 그高峰이곧쓰레峰의 一帶인대 밖으로 보기에는 열푸른 高尖의 參差함뿐이러니 안으로는 嚴峰이 모두 ‘짙은유
록’빛이오 마침비개인 끝이라 鴉靑같이푸른 晴空을峰넘어로보니 峰勢한칭더 돌보일뿐아니라 벌어진틈이 晴空에받
히어 어떤대는 칼빼어 꽂은 모양도 같고 어떤대는 박쥐날개처저나린 모양도 같아 또한 奇觀이오(…)”
하산이다. 벽련암을 향한다. 서래봉에서 동진하는 암릉 길은 막았고 오던 길을 0.4km 가면 데크로드로 암릉을 돌아
가야 한다. 가을 속을 간다. 벽련암 가는 내리막은 너무 가팔라서 헤어핀 등로로 났다. 돌고 도니 어지럽다. 등로 약
간 벗어난 벽련암을 들른다. 대찰이다. 대웅전 뒤쪽의 서래봉 암릉 암봉이 배광으로 빛난다. 절집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단풍나무가 눈에 띈다. 대단한 거목이다. 2012년 한국임업진흥원 조사 결과 수고 15m, 근원직경 105cm, 흉고
직경 48cm, 수령 310이라고 한다.
벽련암은 일찍이 추사 김정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백련암(白蓮菴)을 벽련암(壁蓮菴)으로 개칭할 것을 권하고
서액을 써 걸은 사실이 있다고 한다. 그 서액은 한국전 때 소실되었다고 한다. 주련 살핀다. 천불전 주련이 낯설다.
自從今身至佛身 지금 이 몸 불신이 되었으니
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께서는 증명하옵소서
我昔所造諸惡業 내가 지난 날 지은 모든 악업을
一切我今皆懺悔 내 이제 참회합니다
32. 불출봉에서 북쪽 조망, 멀리는 두승산(445.1m)
33. 멀리 왼쪽은 추월산, 맨 오른쪽은 투구봉, 병풍산, 불태산
34. 멀리 맨 오른쪽은 투구봉
35. 앞은 서래봉
36. 벽련암 가는 길
37. 벽련암 대웅전과 서래봉
38. 서래봉
▶ 내장사(內藏寺)
벽련암을 나와 대로 잠깐 내리면 내장사 일주문이고, 수많은 사람들에 휩쓸려 대웅전을 간다. 단풍은 물들기 아직
이르다. 그래도 이곳 대로는 단풍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내장사는 당우 몇 채 되지 않은 그리
크지 않은 절이다. 대웅전은 소실되었는지 건립한다고 모금 중이다. 내 내장사에 들른 인증으로 극락전의 주련을
든다.
彌陀休問我 아미타불 계시는 곳 나에게 묻지 말라
一念在回頭 일념으로 생각하는 곳에 계시도다
水碧山空裡 물은 맑고 산은 텅 빈 그 가운데 있으니
風淸月落秋 맑은 바람에 달이 기우는 가을이구나
내장사에서 단풍 숲길 지나고 상가지역을 지나고 내장터미널 주차장까지 약 3km이다. 그 대로가 단풍 구경 온 사람
들로 북적거린다. 내장사 일주문 앞 셔틀버스터미널은 셔틀버스 타려는 사람들이 수백 미터는 줄섰고, 그 아래쪽
케이블카 승강장 역시 그렇게 줄섰다. 산홍(山紅) 수홍(樹紅) 인홍(人紅). 사람 구경한다. 예로부터 내장산은 단풍구
경의 명소였다. 다음은 1925.11.04.자 동아일보에 실린 ‘疑雲이 重重한 普天敎本營探訪’이란 제하의 기사 일부이다.
“(…)南金剛의稱言을듯는內藏山을向하엿든바日暮黃昏에구비구비도라드는自働車는險高한山河로三十里石路를突
破하야目的地를到着하매滿山의丹楓은赤世界를일우엇고夕陽이 照輝함온加一層視線을끄으럿스며層巖絶壁이重重
히소슨山중턱에三棟의巨屋이列立한內藏寺의北隅廣房에宿所를定하니때는九時라夕飯을畢하고(…)”
나는 ‘의운이 중중한(疑雲이 重重한)’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그 용례를 찾아보았다.
吾厭塵世來處顧 나는 티끌 세상이 싫어 온 곳을 돌아보니
萬疊疑雲又重重 만겹 의심스러움이 또 거듭 겹쳤느니라
左塵右塵無容也 왼쪽도 티끌 바른쪽도 티끌 형용할 수 없고
一超無聲還墜聲 한 번 초월함에 소리 없는 것이 도로 소리에 떨어지고
『의암성사 법설(義菴聖師法說)』에 나오는 시구다. 의암 손병희(義庵 孫秉熙, 1861~1922)가 저술하거나 설법한
것을 후에 천도교 교단에서 엮어서 펴낸 천도교 경전에 나오는 글귀라고 한다.
“如是等種種之事가 與世相反故로 當時弟子라도 疑雲이 重重이온 況乎凡夫耶아”
(이와 같은 온갖 경우에 대하여 세상의 도리와 상반되는 까닭에 부처님 당시 제자의 경우일지라도 의심이 넘치는데
하물며 범부의 경우이겠는가)
금강경(金剛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불교용어인가 했더니 그도 아니다. 다음은 1909.3.20. 대한흥학보 제1호에 조소앙으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인
소앙 조용은(素昻 趙鏞殷, 1887~1958?)이 ‘新韓國人은 新韓國熱을 要할진뎌’라는 제목으로 올린 논설의 일부다.
이외에도 ‘의운이 중중한(疑雲이 重重한)’의 용례는 많다. 나만 몰랐다.
“(…)所以로 一線溫脈을 在外同胞에게 信하며 千斤重任을 內國 靑年志士에게 託하는바이러니 及其 事實上 內幕
을 精察할진데 不可信 不可託할 疑雲이 重重한데 엇지할가 五百年 壓制下 結果는 下級이 上級을 仇視하며 地方
이 首府를 敵視하야 階級秩序 以外에 自由흫 唱하며 國民國家 以外에 敵愾흫 吹하야 揚肩 曰 今日今日이 是吾報
復할 好期로다. 時乎時乎여 是吾雪恥할 其日이라 하야 一種 私家的 復讐熱이 國民的 䐉髓를 襲擊코져 하며 且 一
面을 觀컨데 私立學校令 下에 靑年學生은 如何한 狀態에 在한고(…)”
내장터미널 근처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어간다. 음식점마다 단체관광객들이 넘쳐난다. 파전과 동동주 한 병 주문하
여 아사비 님과 하산주 나눈다.
서울 가는 길. 얼근한 술기운에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의 시구를 들춰본다. 1966.10.27. 동아일보의
“「山의 造化」가 이런 것인가, 滿山紅葉이 눈에 부시네”라는 기사에 실렸다. 내장산에 자생하는 굴거리나무와 비자
나무가 천연기념물이라는데 눈 여겨 보지 못했음이 아쉽다.
內藏山 골짜구니
돌벼래 위에
불타는 가을 丹楓
자랑 말아라
神仙峰 등너머로
눈 퍼붓던 날
框子林 푸른 숲이
더 좋더구나
39. 내장사 가는 길
43. 내장사에서 내장터미널 가는 길
45. 내장터미널 가는 길에 단풍나무 숲 사이로 바라본 서래봉
46. 내장터미널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