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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기독교에 침투한 변질된 복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복음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하여 빠른 시간에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복음에는 인간적인 유전 및 많은 거짓된 교리가 섞이게 되었다.
A.D. 4세기경이 되자, 기독교계는 신학적 혼란 속에 들끓게 되었다. 인간의 구속자로서의 그리스도 중심성과 그분에 관한 진리는 거의 잃어버린 바 되었다. 제시될 수 있는 모든 교리의 지류들이 다 가르쳐졌다. 마침내 정설의 정립을 위해 무모하고도 불필요한 교회 협의회가 구성되었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놓여야 할 자리에 교회의 권위가 놓이게 되고 교회가 신앙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회의 때마다 결정되는 교회 협의회의 결의문들은 교회를 점점 더 그리스도의 단순한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 이렇듯 성경이 말하는 완전하고 단순한 복음에서 떠나 인간의 유전이 섞인, 기독교에 들어 온 새로운 사조들은 오늘날 “신신학”, 혹은 “자유주의 신학”, 또는 신학적인 용어로 “도덕적 패배주의”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변질된 복음을 들여온 장본인
이러한 신학적 분위기 속에서 한 사람이 신학적 도그마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큰 거인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그림자가 전체 기독교계에 드리워져 있으며, 슬프게도 그의 오류가 기독교의 여러 모퉁이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는 다름이 아닌 어거스틴이다. 어거스틴은 354년 북 아프리카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모친은 기독교인이었고 그의 부친은 마니교도(Manichaean)였다. 마니교라는 것은 3세기경 마니란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이 종교는 고대 페르샤 종교인 배화교(Zorastrianism) 의 지류라 할 수 있다. 이 종교 단체는 엄격한 이원론적 종교이며 특히 강조하는 것은 빛과 어두움(선과 악)의 이원론적 대립이다.
모든 고대 이교의 상징은 균형의 상징이었다. 십자가(수직과 수평의 균형)는 가장 오래되고 타락한 모든 고대 이교의 상징이었다. 유태인들이 상징으로 채택한 다윗의 별은 합쳐진 두 삼각형의 균형을 나타내는 고대 이교의 기장(記章)이었으며, 힌두교나 불교의 사원 표시는 음양의 균형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선신과 악신, 남신과 여신 또는 남사제와 여사제 등과 같은 균형의 상징이 바로 이교도를 이끄는 상징이었다. 또 이것이 바로 선과 악이 인간의 생애를 함께 다스린다는 것을 믿게 하는 개념이다. 이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신을 무서움과 두려움속에서 섬겼으며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달래기 위하여 희생제물을 바치곤 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이단 종교의 배경에서 양육되었고, 그가 20세 되었을 때 비로소 이태리로 갔다. 밀란에 있는 엠브로스 (Ambross) 아래서 수학하게 되었고 그때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어릴 때 받아들인 이단적 개념을 지워 버릴 수 없었고, 또한 어린 마음에 고착된 사상은 그의 신학적 사상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신학적 견해는 그 이후 700년 동안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시대까지 교회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는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다. 천주교회의 많은 신학적 오류들은 모두 다 어거스틴에 의해서 조장되었거나 혹은 그 뒤를 따른 학자들의 일치된 신학적 사상을 조성하려는 시도의 결과로 개발된 것들이다.
예정설
천주교의 신학자들은 아주 통일성있고 논리적인 신학 이론을 개발하였지만, 그것은 왜곡된 전제 위에 세워졌으며 그 전제된 이론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조화되지 않는 것이다. 이교의 사상이 마음에 고착된 어거스틴은 자유 선택의 문제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절대적이며 전제주의적인 독재자로 이해했다.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어거스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반면 그는 성경에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고 어떤 사람은 구원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내었고, 이 진리를 자신의 신학적 개념에 맞추어 넣기 위해 “예정설”이라는 것을 주창하게 되었다.
예정설의 오류에 대해서는 그의 생존 당시에 벌써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어거스틴은 우리 중에 누가 구원을 얻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같은 은혜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과오를 범하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질문할 자격조차 없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지정해 놓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도록 지정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예정설의 오류는 논리적으로 “한번 구원을 얻으면 영원히 구원을 얻게 된다”는 개념으로 이끌어 간다. 절대적이며 항구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신다. 그리하여 한번 구원받은 사람들은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는다. 반면 영원한 파멸로 지정된 사람들은 결코 구원 얻을 수 없다. 자연적으로 이것은 자신이 구원을 위해서 지정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가상적인 안정감을 준다.
예정설의 모순
그러나 예정설을 믿게 될 때 모순이 생기게 되는데, 특히 복음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의문을 일으키게 된다. 왜 기별을 전파하여야 하는가? 왜 전도는 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사람의 구원과 멸망을 예정한다면 전도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가 수긍할 수 없지만, 예정설의 주창자들의 대답은 성경이 그렇게 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제창은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우연적이라는 견해를 옹호하는 것이다.
한번 구원 얻으면 영원히 구원 얻게 된다는 신조는 죄를 가지고도 살 수 있다는 이론과 급속히 합작하였다. 더 이상 구원을 위하여 죄를 이겨야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어거스틴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도 결코 죄를 이길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이 모든 비성서적 결론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이단적 신앙에 근거를 둔 어거스틴의 거짓 전제로부터 나온 논리적 추론임을 우리는 주지할 수 있다.
원죄설
어거스틴은 또한 죄의 기원에 관한 개념을 일반화 했는데, 그것은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아담의 죄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정죄를 받은 죄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죄라는 것은 십계명을 범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 상태 바로 그것이 죄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은 생애 가운데서 죗된 행위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초에 그는 성(性)이 원죄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생아를 낳음으로써 불법적인 아버지가 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오랫동안 성적 욕망과 싸웠음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약점이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신학적 이론상의 핑계를 찾도록 하였다. 어떤 목사와 신학자도 자신이 경험하는 것 이상의 설교와 신학적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 후 그는 이 원죄 개념의 폭을 넓혀 다른 분야에까지 적용하였다.
이러한 관념 때문에 어거스틴은 로마서 7장 14절로 24절까지에 그려진 사람을 완전히 거듭난 사람으로 보았다. 7장에 묘사된 사람을 연약한 인간으로서 투쟁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열성적인 개인의 경험으로 보는 이전의 견해와는 달리 어거스틴은 그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미 구원된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보았다. 그는 이 귀절과 관련된 단순한 사도 바울의 증언을 묵살하였다. 어거스틴은 영과 육을 우주적인 대립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한번도 영이 육을 이기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인간의 율법적 실패를 이해하지도 못하였고 인간이 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 앞에 완전히 굴복하였을 때 죄를 완전히 이길 수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원죄설과 성육신
어거스틴의 원죄에 대한 견해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생각할 때 큰 모순에 빠지게 된다. 만일 우리가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죄인이 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그리스도 역시 죄인이라는 추론에 도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분 역시 우리와 같이 타락한 인간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다. 성경은 명백하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결코 죄인이라고 불리울 수 없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논리적으로 그리스도는 전체적인 면에서 인간과는 다른 본성을 취하셨다고 결론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가지셨다고 그는 가정하였다. 그리스도가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가졌다는 사상은 로마 천주교회가 무염시태설 (Immaculate Conception)이라는 성경과 맞지 않는 교리를 채택하도록 이끌었고, 또 이것은 19세기경 교회의 다른 신조와 합쳐지게 되었는데, 이 교리는 마리아도 성령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가진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논리적으로 한 발짝씩 수 많은 비 성서적 교리가 어거스틴의 거짓 신학과 합하여 천주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또 다른 딜레마가 생겨났다. 이제 그리스도는 인간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우리의 본성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놓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당하는 유혹이나 시험을 당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자로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여 죄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사람이 그리스도의 본성보다 열등한 본성을 가졌다면 어거스틴이 가정한 것과 같이 인간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애 동안 이루신 것처럼 끊임 없는 죄로부터의 승리를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거스틴의 추론은, 인간은 저주 받은 타락한 본성을 가진데 반해 그리스도는 타락하지 않은 본성을 가짐으로써 우리 인간들보다는 월등하게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죄 없는 생애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의 가설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된 모본이 되시는 것이 중지되었다. 그리하여 히브리 2장 16절에 있는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신 사실에 대한 반대주장을 만들어 내었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에 의해서 그리스도는 유혹 받는 자를 위한 구조자로서의 위치에 계시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은 말할 나위 없이 유혹을 경험하고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부득불 교회는 예수 외에 다른 중보자를 추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중보자로써 공포되었다. 교회는 수 많은 성자를 창조해 냈고, 이들 역시 중보자로 간주되었다. 신도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모든 면에서 죄인임을 드러내는 성직자들에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한번에 한 발자국씩 이교적인 개념을 받아들임으로써 거짓된 가정을 실재화 하기 위한 논리적 추론에 의해 오류에 오류를 더해 가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원죄가 사람을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는 주장이 교회의 신조가 되었다. 수태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람은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도록 선고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 결론은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그 원죄는 제거될 수 있는가? 교회의 신부들이 도달한 해결책은 “세례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곧 이어 질문되어야 할 것은, 그러면 세례 받지 않은 자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들은 저주를 받아 지옥의 영원히 타는 불 가운데로 떨어진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라. 아직 세례 받지 않은 어린 아기가 죽었을 때, 이러한 부모가 받는 충격이 어떠하겠는지를, 당시는 유아 사망율이 아주 높은 때였다. 그 세대에 살던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가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것을 생각하고 당해야 했던 그 괴로움을 어떻게 우리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재빠르게 이러한 근심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다시 제시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제 연옥이 발명되었다. 연옥은 확실히 천국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옥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중간 지점 쯤 된다. 그러나 비록 이 견해를 가지고도 부모의 고통을 달래 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귀여운 자녀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 교회의 교리 가운데 유아 세례 의식을 소개하게 되었다. 출산의 고통 속에 죽어가는 산모의 배 위에 신부가 물을 뿌리고 유아와 산모가 모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선언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계속되어야 할 종교 개혁
아퀴나스와 바벌라드가 어거스틴의 이론을 조금 멈칫하게는 했으나, 중세기의 이 두 신학자들 역시 그들의 사상에 있어서 종교 개혁 당시의 천주교의 교리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중요하게 한 가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틴 루터가 로마 교회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였던 것은 로마 교회가 성 베드로 성당 완성을 위한 모금을 위해 테젤(Tezel) 을 시켜 면제부를 팔게하는 등, 로마교의 지나친 부패에 대한 것이었지 로마 교회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은 앞으로도 계속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루터는 그의 연구 가운데 성경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견을 하게 되었으니, 곧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것이었다(로마서 1:7, 하박국 2:4).
루터는 에르프르터에 있는 어거스틴 학파의 사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는 거기서 사제가 되었다. 그의 저서에서 그는 어거스틴의 사상을 계속해서 흡수하였었으나 너무 많이 취하기 전에 그의 눈을 성경에 고정시킬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루터는 친 어거스틴적인 이단을 내어 던지기는 했으나, 반면 어거스틴의 오류의 대부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예정설, 즉 한번 구원 얻으면 구원을 영원히 간직한다는 설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타락되지 않은 본성을 믿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끊임 없이 복종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고, 유아 세례를 받아 드렸다. 이와 같이 개신교의 개혁 운동 속에서도 천주교회의 사상과 변질된 복음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이론들이 천주교 자체 내에서 보다 개신교 내에서 더욱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왜 오늘날은 루터교회에서 예정설을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루터가 죽고 나서 맬란톤(Melanchton)이 루터 교회를 예정설에서 끌어 내었다. 그러나 화란 개혁교회에 큰 영향을 끼진 스위스의 개혁자 요한 칼빈이나 스코틀랜드 장로 교회에 영향을 준 요한 낙스는 예정설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이 예정설의 교리는 비단 상기 교회들만이 아니라 침례교회를 포함한 많은 정통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받아드리고 있다.
사실 신신학이라고 명명된, 이 인간적인 유전들이 섞인 신학 이론은 고대 이교적 이설과 합쳐진 것이라는 확실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밝혀둔 참되고 명확한 진리의 원칙 위에 확고하게 서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거스틴적 천주 교회의 교리를 받아 드렸거나, 그것 때문에 혼동이 되었거나, 혹은 거기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고있다. 어거스틴적 영향은 그리스도인의 성화 문제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신신학의 이론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나 있다. 매일의 생애에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연구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간이 들여 온 변질된 거짓복음의 치명적 오류로부터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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