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9]
손정도(孫貞道, 1881-1931)②
1907년 4월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하여 서울에서 신민회를 조직했습니다. 7인의 창건위원 양기탁, 전덕기, 이동휘, 이동녕, 이갑, 유동열, 안창호를 필두로 노백린, 이승훈, 안태국, 최광옥, 이시영, 이회영, 이상재, 윤치호, 이강, 조성환, 김구, 신채호, 박은식, 임치정, 이종호, 주진수 등이 합류했습니다. 손정도는 1910년 북경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있다가 신민회 핵심 인물 조성환을 만났고, 안창호 등과 함께 해외에서 시작한 독립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는 천진, 단동, 하얼빈, 블라디보스크 등지에서 동포를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고, 민족운동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1912년에 발생한 가쓰라 타로 암살 미수사건과 ‘105인 사건’ 공모자로 지목되어 체포된 후 고문당하고 전남 진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일제가 이런 사건들을 만들어서 독립운동가들과 항일운동가들을 제거하기 위한 폭압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손정도 역시 그런 일제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1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서 서울 동대문교회와 정동교회를 섬겼으며, 청년들에게는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정동교회에서 3년간 왕성하게 목회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유관순을 비롯한 훌륭한 청년들을 키워냈습니다. 1918년에는 선교사 자격으로 만주로 가는 것이 어려워지자 목사를 사임하고 상해로 망명을 떠났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가족을 돌보는 일도 하고 민족운동도 이어갔습니다. 또한 재산을 팔아 가져온 돈으로 오갈 곳 없는 동포들의 정착 생활을 도왔고, 나중에는 길림 지역에서 목회를 이어갔습니다. 1931년 고문 후유증으로 만주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들 손원일은 우리나라 해군을 창설한 제독이 되었습니다.